홍석현과 홍준표의 혈투
2017.6.22.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였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출마선언을 하면서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은 “신문 갖다
바치고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청와대 특보자리 겨우 얻는 언론”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고소장 제출전 6.19. 중앙일보는 입장문과 사설을 통하여 홍준표를 비난했고 6.20.에는 신문역사상
처음으로 8면 전면을 할애하여 비난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이미 검찰 고발장을 써놓은 상태에서 형식적
절차인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홍 전지사는 “실명을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재갈을 물리려한다”며 맞대응을 할 것을 천명하였다.
언론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전 중앙일보 등의 회장이 전에는 경남지사에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를
지냈지만 현재는 아무런 직책도 권력도 없는 홍준표를 왜 고소한 것일가?
세간에 관심갖을만한 사건이어서 사건 발생이유, 홍석현의 좌클릭과정 등에 대하여 살펴보고자한다.
1. 홍석현은 누구인가?
홍석현(1949년생)은 홍진기, 김윤남의 장남으로 태여나 경기고등학교, 서울공대 전자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석현은 대통령비서실장보좌관, 삼성코닝 부사장, 중앙일보 회장, 세계신문협회장, 2005년에는
주미대사 등을 지냈다.
부인은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딸이고, 누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이고, 동생으로
홍석조 전 고등검사장,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노신영 전 국무총리 며느리에
전 삼성미술관 총괄부관장이였던 홍라영 등 4명을 두고 있다.
2. 홍진기와 이병철의 관계
홍석현의 부친 홍진기는 경기도 고양에서 태여나 경성제국대학 법과를 종업하고, 1943년에 판사가되여
해방전까지 전주지방법원에서 판사생활을 한다.
홍진기는 이승만 정부시절 법무부장관, 1960년에는 내무부장관을 지냈으나 3.15부정선거로 말미암아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부정선거 책임자로 몰려 무기징역을 받게된다.
5.16군사혁명에 의하여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박정희 혁명정부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박정희는 당시 재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당시 재계 선두주자인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등과
자주 접촉하게되였고 전경련을 만들어 이병철을 회장으로 앉힌다.
홍진기는 1963년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데 아마 사업상 관계, 법조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이병철 회장의 도움을 받지않았나 생각된다.
1965년에는 이병철은 중앙일보를 창간하는데 이병철이 사장이 되고, 홍진기는 부사장이 된다. 1968년에는
이병철은 회장이 되고 홍진기를 사장으로 맡겨 언론분야는 홍진기가 책임지고 담당하도록 한다.
당시 이병철은 한국비료에서 사카린밀수 사건이 터저 수습책으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던 때이다.
3. 보광그룹의 탄생
홍진기는 중앙일보외에 1963년에 TV부라운관 생산업체로 삼성자회사 형태로 보광(주)을 창업한다.
1986년에 홍진기는 사망하는데 그후 보광은 홍석현, 홍석조, 홍석규 형제들이 기업을 확장시켜 1999년
중앙일보와 보광이 삼성으로부터 분리될 때는 보광그룹은 호텔, 스키장, 골프장 등 레저산업분야
40개업체로 성장하게된다.
1999년에는 보광그룸 탈세사건이 터저 홍석현 회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30억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김대중 정부는 홍 회장을 사면해준다.
뒤에서 홍석현이 김대중과 가까워진 것을 언급하겠지만 다 이런 곡절이 있을 것이다.
4. 홍석현과 김대중 및 노무현과의 관계
홍석현은 어느 강의에서 김대중과의 관계를 언급했는데 1994년 야당지도자로 있던 김대중에 의하여
일산자택으로 초청되여 남북문제 등에 대하여 깊은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고하였다.
그후 1995년부터 홍석현은 중앙일보의 신문논조를 “보수우익”에서 “중도우익”으로 바꾸고,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한겨레와 같은 것으로 좌클릭했다고 하였다.
아마 일산에서의 김대중의 만남에는 햇볓정책의 기획자이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통일부 장관에 안기부장을
지낸 당시 김대중의 대선조직인 아태재단 사무총장이었던 임동원 등이 참석해서 햇볓정책에 대하여
논의하지않았겠는가 하는 추정을 해본다.
남북문제 해결을 고심하던 중 문화유산답사에 대한 책의 저자로 유명하던 유홍준 작가(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재 청장으로 근무)를 만난 일이 있는데, 유홍준으로부터 남북문제 물고를 트기위해서는
북한문화유산탐방 푸로젝트를 하면 어떻겠는냐는 제안을 받았다고한다.
그리하여 일본 언론계를 통하여 북측에 의사를 타진한 바, 신문논조를 바꾼 것이 확실하면 해보자는
응답이 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4회에 걸쳐 방북하게되는데 마지막에는 홍석현 회장을 비롯한 유홍준
등 좌파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방북취제단을 구성하여 방북하여 북한문화유산을 취제하여 중앙일보에
독점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언론사 사주로서는 홍석현이 2000년 박지원이가 언론사 사주 46명을 대리고 방북하기전 2년전에 처음으로
방문한 셈이다.
홍석현 방북시에는 북한 아태위원회 부위원장 이종혁이 안내를 하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에 전격적으로 임명하게된다.
진보정권에서 외교관 경력이 없는데다가 보수색체가 강한 홍석현을 왜 하필 주미대사로 임명했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이어서 홍석현을 유엔사무총장으로 밀려고 추진하다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이를 포기하고 반기문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6. 삼성가 및 김대중과 원불교와의 관계
원불교는 1891년 전남 영광 어촌에서 태여난 소태산 박중빈에 의하여 1916년에 탄생된다.
원불교는 불교를 중심으로 개혁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 3천년전의 불교를 오늘날의 삶에 맞도록
시대화하고 대중화한 종교라고 할 수 있으며 전북 정읍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신자가 30만에 이르고
우리나라의 4대종교의 하나이다.
홍석현의 어머니 김윤남은 목포 출신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분의 딸이라고 한다. 김윤남은
일찍이 원불교에 심취되여 신자로서는 최고직위인 원종사까지 오fms 분으로
원불교 재단의 대주주였고 사망후 가족들에 의하여 남긴 재산 170여억원이 원불교 재단에 기증되였다고 한다.
홍석현의 누나 삼성 이건희 부인인 홍라희도 남편 이건희와 함께 대주주로서 원불교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한다.
김대중은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일찍이 원불교에 관심이 많아 1967년, 1992년 대선출마시에 2번이나
원불교 본부를 방문한 바 있고, 1994년에는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총무처에 전화하여 국가적 행사에 불교, 천주교, 기독교 대표만 단상에
올리고 있는데 원불교도 함께 올렸으면 좋겠다고하여 그때부터 원불교 대표도 단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후 원음방송을 전국적으로 확대 허가해주는 등 원불교 지원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한다.
김대중이 마지막 운명시 원불교 조정근 교정위원장에게 남긴 것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친필이
새겨진 항아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에서 원불교도 우리나라의 4대종교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한다.
이와같이 원불교는 삼성가와 김대중과의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는데 원불교에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김대중의 햇볓정책을 추종해서 그런지 금년 2월 18일 촛불집회가 극성일 때 원불교 신자 수천명이
광화문 촛불집회에 합류하여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였고, 경상북도 상주에도 원불교 신자가
수시로 출몰하여 사드배치 반대운동에 앞장서고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가?
7.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과 홍석현의 관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은 조선일보 등 모든 신문, 방송언론이 총동동원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2016년
10월 24일 JTBC 방송의 손석희 앵커에 의한 최순실 테블릿PC 폭로보도에 의하여 폭발 되었다.
홍석현은 유투브 방송에서 최순실 테브릿PC 폭로전 청와대로부터 5~6번이나 손석희를 자르라고
전화왔는데 그중 2번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전화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태극기집회시 연사로 나온 김경제 자유총연맹 총재도 홍석현 회장을 어느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적이
있는데 JTBC 손석희 사장에 대해서 제재를 가해달라고하니까 회장이라도 방송사 사장을 자를만한 힘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홍석현은 중앙일보 회장을 그만 둔 뒤에도 강의, 유투브 방송에 극좌파 연예인 김제동과 함께나와
활동한다고 한다.
이재용 검찰진술서에서도 이재용은 박근혜 대통령 독대시 박근혜 대통령이 JTBC가 현정권에 대하여
비판적이냐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어서 외삼촌인 홍석현에게 이야기한 일이 있다고 나와있다.
홍석현은 좌파언론인 거목인 손석희를 왜 JTBC 사장겸 앵커로 앉혔을가?
표면상으로는 종편 중에서는 JTBC 방송이 시청률이 제일 낮아 방송허가권을 유지하기위해서 홍석현을
스카웃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방송도 중앙일보와 함께 좌클릭시키기위한 작업이 아닐가?
세간에는 삼성도 이건희 회장이 쓸어지기 전까지는 이건희가 버티고 있어서 홍석현 등 외가집 식구들이
함부로 못했는데 이건희가 쓸어지고 이재용이 구속되고 난 다음에는 외가집 식구들이 삼성을 통채로
먹을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나돈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이재용이 구속되고 나니까 보광그룹의 자회사 휘닉스 주식이 급등하고, 이부진 호텔신라
등의 주식이 오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가?
이제보니 이 사람들은 완전히 한 패거리가 되어 박근혜 죽이기작전에 가담한 사람들이고나 하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 수 있겠다.
8. 홍석현과 문재인과의 관계
홍석현은 대선기간중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집에 찾아와 만난 적이 있는데 도움을 요청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외교 및 통일 분야의 장관을 맡아달라 하길레 이제는 그런 군번은 아니라고 거절하면서 평양
특사나 미국 특사는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한다.
대선기간 중 홍석현은 갑자기 중앙일보 등의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하면서 국가를 위해 더 큰 일이
있으면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석현이가 이제는 대선출마까지 하려나보다 하는 뉴스가 퍼저나가기도 했지만 정작 그의 행보는
김종인, 정운찬 등과 만나 제3지대에서 반문세력을 결집하는 듯 시늉만 하더니 대선출마를
슬그머니 접고말았다. 이제보니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주기위한 모략작전이 아니었을가하는 생각이 든다.
중앙일보 대기자 김영희는 작년 7월 “사드배치를 포기하자”는 칼럼을 쓴 바 있다.
이런 칼럼은 김영희 기자 혼자서는 쓸 수 없는 것이고 홍석현 회장과 협의를 했으리라본다.
또한 대선 막바지에 국정교과서 찬성 등 보수우파 논객으로 알려진 김진 논설위원을 갑자기 팽시킨
것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전 사전정지작업이 아닐가?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홍석현을 대미특사로 파견하고 그를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지명한
것을 보면 문재인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지를 알 수있다.
9. 결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석현은 보수언론의 대변지 역할을 해왔던 중앙일보 등의 언론논조를
왜 좌클릭시켰을가? 김대중 및 노무현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삼성가 및 김대중은
원불교와 어떤 관계인가? 나아가 문재인과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의문이 조금은 풀렸으리라고 본다.
홍준표는 검사출신으로서 홍석현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가?
홍준표가 주장한 문재인 정권은 주사파 정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맞다고 생각한다.
이념으로 똘똘 뭉쳐진 좌파정권을 견제하기위해서는 홍준표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홍석현과의 싸움은 위와같은 사실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면 자동적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반드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되어 주사파 정권을 강력하게 견제해주기 바란다.
이형규 올림
Daum 메일앱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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