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남겨 놓은 물 한 병
한 남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음식과 물은 모두 바닥났고, 마지막 이틀 동안 그는 물 한 방울만이라도 마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곧 물을 찾지 못하면 몇 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 하나가 살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걷던 중 멀리 오두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막에서는 이미 여러 번 신기루에 속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희망 이었기 때문이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오두막을 향해 걸었다.
가까이 갈수록 희망은 더욱 커졌다.
이번에는 정말 행운이었다.
오두막은 신기루가 아니라 실제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오두막은 오래전부터 버려진 듯 인기척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에는 손펌프가 하나 있었다.
그는 다시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급히 펌프를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펌프처럼 보였다. 실망한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제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천장에 병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간신히 병을 손에 넣었다.
병을 열어 물을 마시려는 순간,병에 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물을 펌프에 먼저 부어 펌프를 작동시키세요. 그리고 다음 사람을 위해 병에 다시 물을 채워 놓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물을 그냥 마셔 자신의 목숨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펌프에 부어 정말 물이 나오기를 믿어볼 것 인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물을 부었는데도 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쪽지가 틀렸다면?’
‘지하수마저 말라버렸다면?’
‘하지만 정말 펌프가 작동 해서 충분한 물이 나온다면?’
마침내 그는 쪽지를 믿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병 속의 물을 모두 펌프에 부었다.
그리고 희망을 품고 펌프질을 시작했다.
몇 번을 힘껏 움직이자, 마침내 시원하고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 했다. 그는 마음껏 물을 마셨다. 정신도 다시 맑아졌다. 그리고 쪽지에
적힌 대로 병에 다시 물을 가득 채워 천장에 매달아 두었다.
그 일을 하던 중, 또 다른 유리병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연필 한 자루와 함께 사막을 빠져나가는 길이 표시된 지도가 들어 있었다. 그는 길을 머릿속에 익힌 뒤 지도를 다시 제자리에 넣었다.
자신의 물통도 모두 가득 채우고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조금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쪽지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나 역시 당신처럼 의심 했습니다.
하지만 이 펌프는 정말 작동합니다.”
이 우화는…
「사막의 펌프」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펌프가 아니다. 천장에 매달린 물 한 병이다.
*마중물:priming water
그 물 한 병은 어느 한 사람이 남겨 놓은 것이 아니다. 앞서 이곳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갈증을 해결한 뒤, 다음 사람을 위해 다시 채워 놓았기에 오늘도 그 자리에 매달려 있는 것 이다.
만약 누구라도 앞사람이 남긴 메시지를 믿지 않았거나, 자신의 갈증을 해결한 뒤 그 물 한 병을 다시 채워 놓지 않았다면, 그 순간 다음 세대로 이어져 온 신뢰의 유산은 끊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때로는 그 믿음에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먼저 걸어간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걸고 남겨 준 신뢰의 유산 위에 세워진 믿음이다.
부모가 남겨 준 삶의 지혜, 스승이 남겨 준 가르침, 선배들이 남겨 준 경험, 과학자들이 남겨 준 연구,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 온 양심과 책임….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남겨 놓은 ‘물 한 병’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떠나야 한다. 그때 우리 역시 이름 모를 다음 사람을 위해 물 한 병을 다시 채워 두고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남겨 주는 가장 소중한 신뢰의 유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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