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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취허(避實就虛)
실질(實質)을 피하고 허상(虛像)에 나아간다는 뜻으로, 적의 주력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골라서 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실질을 버리고 공론만 일삼음을 뜻하기도 한다.
避 : 피할 피(辶/13)
實 : 열매 실(宀/11)
就 : 나아갈 취(尢/9)
虛 : 빌 허(虍/6)
(유의어)
피실격허(避實擊虛)
출전 : 손자병법(孫子兵法) 제6편 허실(虛實)
경쟁자와 다투거나 적과 싸울 때 양측이 완벽하기는 어렵고 틈이 있기 마련이다. 상대가 강한데 제 실력은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덤비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꼴이 된다. 반면 덩치만 믿고 적을 깔보다간 다윗(David)의 돌팔매에 당한 골리앗(Goliath) 신세를 못 면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전략가 손자(孫子)의 병법은 전장을 넘어 인생의 가르침이 되고 국가경영의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이라 평가된다. 여기 나오는 잘 알려진 말이 지피지기(知彼知己)와 함께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어느 것이나 상대의 실력을 잘 분석하고 대비하면 그르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쌍방의 약점과 장점을 잘 이용하여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은 '손자병법(孫子兵法)'의 가장 핵심인 6편 허실(虛實)편에 나온다. 대치한 병력의 상대적 집중과 분산을 잘 파악하여 적군의 충실한 부분을 피하고(避實) 허약한 면을 이용하여 공격하면(就虛) 항상 이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분을 보자.
군대의 형태는 물과 같은 형세를 띠어야 한다면서 이어진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을 향한다(水之行 避高而趨下/ 수지행 피고이추하), 군대의 형세도 수비가 충실한 곳을 피하고 허술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兵之形 避實而擊虛/ 병지형 피실이격허)." 물에 영원한 형태가 없듯이 적의 허실에 따라 대응해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고조(漢高祖)의 손자이기도 한 문학 애호가 유안(劉安)이 회남왕(淮南王)으로 있으면서 많은 문사와 방사를 초빙해 백과사전격의 책을 남긴 것이 '회남자(淮南子)'다. 마지막 요략(要略)편에 전투에서 이기는 술수와 변화를 자유자재로 하는 책략을 밝히면서 이 성어가 등장한다.
적군을 속이기 위하여 "실을 피하고 허로 나가도록 한다면, 적군을 격퇴하는 것이 마치 양떼를 뒤쫓는 것과 같다(避實就虛 若驅群羊/ 피실취허 약구군양)"고 표현했다. 허를 찌르는 격허(擊虛)가 허를 이용하여 취하는 취허(就虛)로 변했다.
싸움터에서의 적이나 경쟁상대의 전력을 잘 살펴 취약한 부분을 집중 공격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글자대로 문제의 실제를 떠나 허망한 것을 좇는다면 다른 문제다. 겉으로 드러나는 근사한 계획을 세운 뒤 명목만 찾다가 실질을 잃고 부작용이 드러나는데도 밀고 나가는 경우가 그렇다.
적을 공격할 때는 탄탄한 곳을 피해야 하지만 이상만 좇는 공리공론(空理空論)은 피해만 가져온다. 개인이 세우는 계획도 물론 그렇고,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들은 더 명심해야 할 일이다.
■ 피실격허(避實擊虛)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공격한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제6편 허실(虛實)에서 "군대의 형태란 적의 튼튼한 곳을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주력이 있는 곳은 피하고 힘이 약한 곳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를 '피실취허(避實就虛)'라고도 하는데, 회남자(淮南子) 요락훈(要略訓)에서는 "튼튼한 곳을 피하고 빈틈을 찾는 것이 마치 양 떼를 모는 것과 같다"고 했다.
'피실취허(避實就虛)'를 운용하여 빈틈을 치면 튼튼함이 감소된다. 공격을 가하는 쪽이 작전 목표를 선택하여 진공 노선과 주요 공격 방향을 확정할 때, '피실격허(避實擊虛)'를 잘 활용하면 그 작전은 노련한 백정이 소를 잡듯 순조롭고 여유가 생긴다.
전쟁사에서 '피실격허(避實擊虛)'의 전례는 매우 많다. 전국시대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했을 때, 제나라가 조나라를 구원하러 나섰다. 제나라 위왕은 전기(田忌)를 장군으로 손빈(孫臏)을 군사로 삼았다. 전기는 대군을 이끌고 곧장 조나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손빈은 전기를 말리며 다음 같은 말을 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풀려면 함께 얽혀서는 안 되며, 싸움을 구원하러 나선 자가 함께 어울려 치고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적의 요충지나 빈틈을 공격하는 비항도허(批亢搗虛)의 계략으로 형세를 절도 있게 통제하면 저절로 풀리는 법입니다."
여기서 손빈이 말하는 '비항도허(批亢搗虛)'가 바로 '피실격허(避實擊虛)'와 같은 말이다. 이 전법은 수천 년 동안 군사 전문가에 의해 연구되고 운용되어 왔다.
■ 위위구조(圍魏救趙)와 피실취허(避實取虛)
1. 위위구조(圍魏救趙)
위(魏)나라를 포위하여 조(趙)나라를 구하다. 정면충돌을 피하고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秘本兵法)의 2번째 계책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 제갈량(諸葛亮)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천하삼분론(天下三分論)'이라는 전략적 대안을 유비에게 설명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융중대(隆中對)'라 한다. 요점은 유비는 가장 장자인 조조(曹操)에게 대항하기 위해 오(吳)와 연합해야 하며, 일시에 천하를 통일하지는 못하므로 삼국정립을 통해 세력을 다진 후에 기회를 노렸다가, 나중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한왕실을 부흥하는 기치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라 유비(劉備)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를 크게 무너뜨린 후에 형주(荊州)를 차지하였고, 나중에 다시 익주(益州)까지 점령하여 촉한(蜀漢)을 건국했다. 삼국정립의 한 축을 차지한 것이다. 오와 촉은 서로 연합하면 조조를 견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서로 분리되면 국력이 조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삼국정립은 오와 촉으로서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화했다.
AD 219년 촉의 대장 관우(關羽)는 유비가 한중(漢中)을 탈취하여 위나라의 서북방을 압박하자 공명심이 발동했다. 그는 오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위나라의 동남방을 공격하기로 했다. 관우는 강릉(江陵)에서 북쪽으로 진군하고, 손권은 합비(合肥)를 공격했다.
관우는 번성(樊城)에서 조인(曹仁)의 부하 우금(于禁) 등 칠군(七軍)을 수장(水葬)시켰다. 번성이 포위되자 화하(華夏)가 진동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조조는 적의 예봉을 피하여 본거지를 옮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조의 군사(軍師) 사마의(司馬懿)가 계책을 세워 다음과 말했다. "우금의 부대가 수몰(水沒)되었지만 국가의 대계(大計)를 그르칠 만큼의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유비와 손권은 겉으로는 친하지만 속은 딴판입니다. 관우가 뜻을 이루는 것을 손권은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사람을 손권에게 보내어 강남(江南)을 떼어주겠다고 하면 저절로 번성의 포위가 풀릴 것입니다."
사마의는 적을 분산시켜서 세력을 약화시킨 후에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조는 그의 의견을 채택했다.
조조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손권은 이익을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갔다. 그는 얼마 전에 관우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가 관우로부터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적벽대전의 승리는 실질적으로 오나라가 전국력을 기울여 싸운 결과였지만, 가장 중요한 전리품인 형주는 유비가 차지하고 말았던 것에 내심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관우를 공격하여 형주를 차지하겠다고 생각했다.
조조의 사신이 오자 손권은 조조에게 글을 보내어 자신이 관우를 토벌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손권을 우방으로 생각한 관우는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조조의 모사 동소(董昭)는 손권의 배신을 폭로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그는 두 적을 동시에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관우도 손권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 번성에서 후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는 관우는 강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번성에서 대공을 세우고자 절대 물러 날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조조군에 퇴각하는 것을 알면 오히려 사기가 높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동소의 견해와 달리 관우는 철수를 하지 않았고, 오군의 기습을 받은 형주는 함락되었다. 관우는 앞뒤로 적을 맞이하여 맥성(麥城)으로 패주했다가 손권에게 잡혀서 죽었다.
조조는 유비와 손권의 모순관계를 이용하여, 이(利)로서 손권을 유혹하여 쌍방의 연맹을 깨뜨렸다. 촉은 이로서 큰 손실을 입었고 점차 국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손권도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했다. 비록 형주를 얻었고, 촉과의 이릉대전(夷陵大戰)에서 무려 7백리에 이어진 영채(營寨)를 불태우는 완승을 거두었지만 다시는 북상하여 천하를 노릴 기회를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조조는 유비와 손권의 연맹을 깨뜨려 점차적으로 우세를 차지하기 시작하였고, 이 후로 촉과 오가 다시 연맹을 하였지만 이미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 하나의 모략이 삼국의 대치 상황을 무너뜨리고 위를 가장 강대한 나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 피실취허(避實就虛)
정치투쟁 중에서 각종 정치세력은 자기의 유리한 입장에 따라,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공격하며 때로는 평화적 공존을 한다. 어떤 상태를 선택하든 궁극적으로는 정치투쟁의 전략이다.
피실취허(避實就虛)는 정치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요한 책략이며 승리를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상대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골라서 공격하는 것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하느냐가 모든 싸움에서 승리를 얻기 위한 기반이 된다.
한고조 유방(劉邦)의 황후 여씨(呂氏)는 강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에 정권을 장악하여 실질적으로 한왕조의 2대 황제나 다름이 없는 지배자가 되었다. 그녀가 정권을 잡았던 10년 동안 유씨 성을 가진 제후와 왕들의 세력이 강대해졌고, 공신집단은 여전히 정권의 버팀목이 되었다.
종실과 공신들은 여후와 밀약을 맺고, 질투에 눈이 멀었던 그녀가 참혹하게 척부인(戚夫人)을 죽이고 흉악하고 잔인한 수법으로 공신들을 제거하였으며,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를 독살하고 유씨 종실의 세력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것까지 묵인했다.
그러나 여후는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여 침식이 편하지 않았다. 여후의 마음속에는 여씨 일족을 중용하여 종실과 공신들의 세력에 대항하는 힘을 길러서 자기의 통치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고 싶었다.
AD 180년 여후는 병이 깊어지자,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여씨 가문의 흥망이 위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카 여록(呂祿)을 상장군(上將軍)으로 임명하여 북군(北軍)을 관장하게 하였고, 여산(呂産)을 상국(相國)으로 삼아 정무(政務)를 총괄하게 하는 한편, 남군(南軍)을 장악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씨로서 왕이 된 사람들에 대한 대신들의 평가가 좋지 않다. 내가 죽으면, 황제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대신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다.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지켜야 한다. 나의 장례식을 치른다고 궁궐을 비우지 말아야 한다. 공신들은 노련한 사람들이다. 자칫하다가는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이다."
여후는 공신집단과 유씨 종친들이 비밀리에 연합하여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녀는 미리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장차 여씨가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강한 성품을 지녔지만, 대단한 정치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과연 여후가 죽고 난 후, 유씨 성을 가진 왕인 제왕(齊王)과 초왕(楚王)이 여씨를 제거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군사를 일으켰다. 공신 주발(周勃)과 진평(陳平) 등도 여러 유씨 왕들과 모의하여 여씨를 안에서 몰아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록과 여산이 군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기가 죽어 있던 제후와 공신들은 자기들의 세력만으로 여씨를 당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때 일생을 음모(陰謀)로 살았다는 평을 받은 진평(陳平)이 승리의 관건이 될 하나의 계모를 제시하였다. 그것이 위위구조지계 중에서 '피실취허'라는 수단이었다.
진평과 주발은 먼저 역상(酈商)을 잡아 여록과 친한 그의 아들 역기(酈寄)를 위협하고, 여록을 속여 이렇게 말하도록 하였다. "고제와 여후는 함께 천하를 평정하여 유씨를 아홉 왕에, 여씨를 세 왕에 봉했습니다. 이것은 대신들도 합의한 것으로 이미 제후들에게 통고되었으며, 제후들도 당연히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태후께서 돌아가시고 황제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 그대는 조왕의 인수를 차고서 위급한 봉지를 지키려고 하지는 않고, 상장군의 신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장안(長安)에 주둔하고 있으니, 대신들과 제후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겠습니까? 상장군의 인수(印綬)를 반환하고 병권을 태위(太尉) 주발(周勃)에게 넘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양왕(梁王-呂産)께서도 상국(相國)의 인수를 반환하시고 대신들과 맹약을 맺은 후에 봉국(封國)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제왕(齊王) 유양(劉襄)도 명분이 없어서 물러날 것이며 대신들도 안심을 할 것입니다. 사방 천리나 되는 조나라 땅의 왕으로서 편안하게 지내시는 것이 만세에 이로운 일일 것입니다."
여록은 마음이 움직였지만 다른 여씨들은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공신집단과 제후들이 여씨를 내몰려고 하자, 여씨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왔다. 쌍방이 화살을 겨눌 위기에 처하자, 력기가 다시 여록에게 군권을 반환하라고 재촉했다. 여록이 망설이는 틈을 이용하여 설득하여 북군으로 들어 간 주발은 북군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아직도 남군은 여씨가 장악하고 있었다. 교전이 벌어지면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판세였다.
한대의 경성(京城)과 황궁(皇宮)에 대한 수비는 중앙집중적인 직속군(直屬軍)으로서 4개 부대로 구성되었다. 그 중 하나는 궁궐 안의 경비를 담당하는 낭관(郎官)들로서 낭중령(郎中令)의 통솔을 받았으므로 낭위(郎衛)라고 불렀다. 낭관은 의랑(議郞), 중랑(中郞), 시랑(侍郞), 외랑(外郞)으로 구분되었고 그들의 임무는 주로 숙위(宿衛)를 하며 황제의 명령에 따르거나 자문(諮問) 역할이어서 별다른 실권이 없었다.
다른 하나는 외궁(外宮)의 경비를 맡은 위사(衛士)들로 위위(衛尉)의 통솔을 받았다. 위사의 지휘기관은 장안성(長安城) 안에 있는 미앙궁(未央宮)에 주둔하였고, 미앙궁이 장안성의 남쪽에 있었으므로 '남군'이라 불렀다.
남군은 초기에 약 2만 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었지만 한무제가 반으로 줄여 나중에는 1만 명이 되었다. 병사들은 각 군국에서 번갈아 차출하였다. 위위의 아래에는 남궁위사령(南宮衛士令)과 북궁위사령(北宮衛士令)이 있어서 각각 남궁과 북궁의 위사들을 관장하였다.
위사령은 좌우도후(左右都候)를 두어 궁중 안을 순찰하였고, 궁액문(宮掖門)에는 사마(司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이들은 궁 안에 주둔하고 있는 위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말을 관리하였으며 궁문을 지키는 위사들을 관장하였다. 또 공거사마령(公車司馬令)이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각종 문서와 공헌물(貢獻物)을 수발하였다.
또 다른 하나는 경성을 지키는 둔병(屯兵)으로 초기에는 중위(中尉)의 지휘를 받았다. 이들은 주로 장안성 북쪽에 주둔하였으므로 북군이라고 불렀다. 한무제가 북군을 개혁하여 팔교위(八校尉)를 설치하고 각 교위마다 8백명을 거느리게 하였다. 평소에는 경사의 수비를 맡고 있다가 전쟁이 나면 황제가 임명한 장군을 따라 전원 전쟁에 참가하였다.
마지막 하나는 경사의 안과 밖을 수비하는 위수군(衛戊軍)이다. 한무제가 집금오(執金吾)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였던 일종의 기마순찰대(騎馬巡察隊)로서 장안성 안에 주둔하였다. 성문교위는 성문에 주둔하는 수비병을 이끌었고, 장안성의 좌, 우, 경보도위(京輔都尉) 세 명의 지휘관을 부하로 두고 장안성 외곽을 수비하게 하였다. 이 부대는 집금오의 통제를 받는 독립부대로서 장안에 주둔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산이 2만명에 이르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더구나 황제를 끼고 있었으므로, 만약 주발이 거병을 한다고 해도 호각(互角)을 이룰 수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황제의 위세를 끼고 나오면 승리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여산은 미앙궁에 주둔하여 군대의 발동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공신과 종실이 병변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긴다는 확신이 없었다.
진평과 주발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여록이 병권을 포기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동시에 남군이 주둔하고 있던 미앙궁을 지키는 위위에게 여산을 궁전 문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하고, 주허후(朱虛侯)에게 1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앙궁에 주둔하도록 하였다.
여록이 북군을 떠났다는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한 여산은 미앙궁으로 들어가 난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였다. 이 때 유장(劉章)이 이끄는 북군이 오자 여산은 여록이 자기를 구원하러 온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북군은 여산의 기대처럼 원군이 아니라 이미 적군으로 변했다. 여산은 급히 도망쳤으나 낭중령 관부의 측간에서 피살되었다. 여산이 죽자 주발은 여씨 남녀를 체포하고 노소를 막론하고 몰살시켰다. 이어서 병권을 반환하고 도망친 여록을 추격하여 죽이고, 여후의 여동생으로 개국공신 번쾌(樊噲)의 아내였던 여수(呂嬃)를 대나무 채찍으로 때려서 죽였다. 이로서 여씨의 정권은 막을 내렸다.
이상의 사건을 종합해 보면, 진평과 주발가 두 차례나 '피실취허(避實就虛)'의 수법을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여록이 병권을 휘둘러 유능하고 전투력이 높은 북군을 거느리고 나오게 되는 '실'을 피하고, 여록에게 위험보다는 이익이 보장되는 안전한 길을 생각하는 '허'가 있다는 점을 노려 집중적으로 설득하여 북군을 장악하여 불리한 국면을 유리하게 바꾸었다.
둘째는 여산의 미앙궁 진입을 막아서 여산이 가진 '실'을 피하고, 그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허'를 노려서 기습공격을 하여 최종적인 승리를 얻었다. 이것은 흉험한 입장을 피하고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사례이다.
■ 손자병법(孫子兵法) 6篇 허실편(虛實篇)
(주도권을 잡으려면)
전투에 있어서 승리의 비결이란, 아군의 실(實)로써 적의 허(虛)를 찌르는 것이다. 그 전술은 적에게 조종당하지 않고 오직 적을 조종하는데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용병하는 방법도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나, 항상 적의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쳐야 한다는 것이 이 편의 요지이다.
(1) 주도권을 쥔 쪽이 이긴다
孫子曰(손자왈)
凡先處戰地 (범선처전지)
而待敵者佚 (이대적자일)
손자가 말하기를, "무릇 먼저 전지에 있어서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하고,
後處戰地(후처전지)
而趨戰者勞(이추전자로)
늦게 전지로 나아가 싸움을 하는 자는 수고롭다.
故善戰者(고선전자)
致人而不致於人 (치인이불치어인)
그러므로 싸움을 잘하는 자는 사람을 조종하고 사람에게 조종당하지 않는다.
대체로 한 걸음 앞서서 전쟁터에 도착하여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편하다. 그러나 뒤늦게 전지로 나오는 대로 공격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그러므로 싸움에 능숙한 사람은 이 이치에 따라 먼저 공격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상대를 끌어들여 영격(迎擊)을 하는 전법을 취한다. 공격 전법보다는 영격 전법이 훨씬 유리하다.
움직임이 있을 때는 그에 수반하는 힘의 소모를 생각해야 한다. 크게 움직이면 큰소모가 있고, 작게 움직이면 작은 소모가 있게 마련인데, 이것은 설비나 능률과도 통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적당한 설비만 갖추면 100이 움직여서 100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이것이 불완전 하면 120이 움직여서 80의 효과 밖에 얻지 못하게 된다.
이것도 남을 조종하고 남에게 조종 당하지 않는 것의 일종이다.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같은 물건을 팔려고 할 때, 이 쪽에서 적극적으로 팔려고 하는 것과 상대가 사러 오는 것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이것은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이 이치도 따지고 보면 결국 남을 조종하느냐 조종당하느냐의 차이이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당하였을 경우, 어쩔 줄 모르고 애를 끓이느니 남에게 조종 당하는 편이 편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것은 사람을 조종하려면 조종할수 있는 무엇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겠으나, 그보다는 상대가 움직이는 쪽으로 조종 당한다는 것은 이 쪽의 노력 여하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좀 처럼 남을 조종하는 상대가 움직여 오는 일이 적으므로, 이쪽에서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에 무리가 생기는 것이다.
[예화]
● 주도권을 쥔 쪽이 이긴다.
善戰者(고선전자)
致人而不致於人(치인이불치어인)
싸움을 잘하는 자는, 사람을 조종하고 사람에게 조종당하지 않는다.
오대시대(五代時代)의 일이다. 후주(後周)가 돌궐(突厥)을 사주하여 후제(後齊)를 공격하니, 후제의 장군 단소(段韶)가 이를 영격하려는 진을 폈다. 마침 큰 눈이 내린 뒤였는데, 후주에서는 보졸(보졸)을 전위에 내세우고 서쪽에서 몰려와 성 밖 2리 지점까지 육박하였다.
후제의 여러 장수는 영격하려고 역진공(逆進攻)을 주장하였으나, 단소는 허락하지 않았다. "보졸의 기력이나 기세에는 한도가 있다. 더욱이 지금은 적설도 깊으므로 공격해 나아가기에는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다. 아직은 진중에서 대기하라. 적은 피로 하고 아군은 힘이 남아 있으므로, 적을 격파 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뒤 한번의 교전으로 단소가 후주군을 크게 격파하니, 그 전위는 전멸되고, 후주군은 정신없이 도망쳐 버렸다. 먼저 형세의 자리에 진을 펴고 적을 기다리면 충분히 준비도 할수 있고, 병사나 말도 영기(英氣)를 기를 수가 있다.
그러나 전쟁터에 도착하는 것이 늦으면 충분한 준비를 갖출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피로해진 인마를 바로 전투에 투입 시키게 되므로, 싸움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칼자루를 쥔 상대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그러므로 싸움에 능숙한 사람은 상대를 분망하게 하여 피로하게 만드는 등 결코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한 광무제의 부하였던 건위대장 경감(耿弇)이 장보(張步)를 격파한 고사(故事)도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전하는 것으로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되어 있다.
장보의 장 비읍(費邑)이 동생인 감(敢)을 분견(分遣)하여 굳게 지키고 있던 거리성(巨里城)을 경감이 공격하였다. 투강자의 입에서 비읍이 내원(來援)하는 것을 안 경감은 공구(功具)를 정비하도록 전군에 명령하고, 3일 후에 거리성을 맹공한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남모르게 포로를 석방하였다. 물론 그들의 입을 통하여 경감 군의 의도를 알게 된 비읍은 그날 과연 정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진격해 왔다.
경감은 크게 기뻐하며 비로소 여러 장수들에게 본심을 밝혔다. "공격 용구의 점검을 명한 것은 비읍을 유인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정말 적시에 와 주었구나." 물론 경감이 크게 적을 격파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으며, 비읍은 전사하고 말았다.
(2) 미끼로써 적을 유인하라
能使敵人自至者(능사적인자지자)
利之也(이지야)
능히 적을 스스로 이르게 함은 利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能使敵人不得至者(능적인부득지자)
害之也(해지야)
능히 적을 이르지 못하게 함은 이를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자발적으로 이쪽으로 접근 하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로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반대로 저쪽에서 움직여 오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것은 상대에게 손해를 예측하게 하는 그 무엇이있기 때문이다.
팔짱을 끼고 저쪽에서 움직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상대가 움직여 올 만한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편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상대가 느끼지 않으면 상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면 반드시 그에 수반하는 손실이 있으므로 무리해서 움직여 올 리가 없는 것이다.
신상품을 예로 들어 보자. 본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구상에서 생긴 것,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한 것이 없어서 부자유한 것, 또는 재래품과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사용법이 간편하고 견고한 것, 혹은 뛰어나게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것 등등,
상대에게 충분히 보답이 될 만한 이익을 내보이지 않으면, 신상품에 대한 구매욕은 기대할 수 없어진다. 더욱이 그 상품이 무익 유해하다면 그와 같은 염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절대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인생에도 사업에도 모두 통하는 철칙이다.
(3) 적을 평온하게 하지 말라
故敵佚能勞之(고적일능로지)
그러므로 편하면 능히 이를 피로하게 하고,
飽能飢之(포능기지)
배부르면 이를 주리게 하고,
安能動之(안능동지)
안전하면 능히 이를 움직이게 한다.
수동과 능동에는 이처럼 차이가 있는 것이므로 상대는 가급적이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 것이 본연(本然)의 상태이다. 그렇다고 체념을 하고 있어서는 전쟁이 되지 않는다.
만약 적이 편안한 상태에 있는 듯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애쓰게 만들어서 피로한 상태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다. 식량이 풍부해 보일 때도 방법을 강구하여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상대의 안정을 어떻게든 무너뜨리는 것인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평온하고 안정된 상대만큼 싸움 상대로서 대하기 힘든 것은 없다. 이 같은 상대와 싸우게 되었을 때는 이쪽이 유인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보이기 쉬우므로 한 수 늦어진다. 평온 상태에 있는 상대에게는 허점이나 결함이 없는 법이다.
상대가 비로소 움직이게 되었을 때,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지 찌르고 들어갈 허점의 기회도 생긴다.사업의 경우라면 판로나 구입로를 혼란시키는 수단도 있을 것이고, 자금망을 혼란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목적은 일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상대를 동요시켜서 찌르고 들어갈 허점을 만드는 데 있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려들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상대의 맹점을 찌르면 반드시 이긴다
出其所必趨(출기소필추)
趨其所不意(추기소불의)
그 반드시 가는 곳으로 나가고, 그 뜻하지 않은 곳으로 간다.
行千里而不勞者 (행천리이불로자)
行於無人之地也 (행어무인지지야)
천 리를 가도 피로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없는 곳을 가기 때문이다.
攻而必取者(공이필취자)
攻其所不守也(공기소불수야)
공격하면 반드시 취함은, 그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守而必固者(수이필고자)
守其所不攻也(수기소불공야)
지키면 반드시 견고한 것은, 그 공격하지 않는 곳을 지키기 때문이다.
상대가 빈틈없이 정비된 태세로 있을 때 그것을 공격하려면, 이쪽이 손을 썼을때 싫어도 반드시 상대해 올 요소를 향하여 공격을 가한다. 그러면 적은 반드시 반응을 보여서 움직이게 된다. 상대가 움직여 주기만 하면 그 움직임에 따라 그곳으로 관심이 모이므로 아무래도 주의가 미치지 않는 곳이 나타난다. 그때 그곳을 서슴없이 찌르는 것이다.
주의가 다른 곳으로 돌려지는 장소는 방비력도 적으므로, 아무리 먼 거리의 강행군이라도 무저항인 곳이면 편안하게 공략할 수 있다. 상대의 수비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공격하면 반드시 취할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여 방비하는 쪽에서 보면 절대 패하지 않는 방비란 상대가 공격하려 들지않는 곳을 굳게 지키고 있을 경우이다.
상대가 속임수를 쓰려고 표면상으로 공격을 가하지 않는듯 생각 되어도, 허를 찌르기 위하여 공격해 올 듯한 장소를 오히려 빈틈 없이 굳히고 있다는 속임수의 또 속임수를 쓰는 수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역수전법(逆手戰法)이다. 이는 정(正)이 있고 난 후의 역이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제1장 시계편에서 제5장 병세편에 이르기 까지의 태세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만 비로소 살아나는 역수이므로, 그것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조잡스러운 전술이 되고 말 위험이 있다.
상대의 A를 목표로 공격할 때는 먼저 상대가 응전하지 않을 수 없는 B에 손을 댄다. A에 대한 관심을 B로 옮기려는 것이므로, B에 대한 공격은 그 값어치가 될만한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목적은 B가 아니라 A이므로, B에 대한 공격은 절대로 깊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군대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므로,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기세에 휩쓸려서 너무 깊이 움직이는 수가 있다. 따라서 이 무렵의 가감은 여간 어렵지가 않다. 물론 지키는 편도 그러한 점을 대략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리 손쉽게 이쪽의 수단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최악의 경우, 그 허를 찌르고 있는 이쪽의 허를 다시 찌르는 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것을 구체적인 보기에 해당시켜 보자. 예를 들면 다소 품절 경향이 있는 주원료를 다른 사람과 경쟁적으로 구입 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물건에는 누구나 노리는 주산지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도 이쪽 요구를 채워 줄 만한 생산지가 있다고 하자. 이와 같은 경우에 타사의 활약을 봉쇄하려고 생각 하였을 때는 먼저 주산지에 과장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노리고 있는 구입처에는 가급적 은밀하게 준비를 갖추고, 주산지에서의 응전에 상대의 주의를 집중시켜둔 다음 실제 행동은 제2의 목표지를 향하여 단숨에 공략하는 전법이다. 그 뜻하고 있지 않은 곳으로 가려면 우선 누구나 뜻하는 듯한 곳을 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물론 공격하는 쪽만이 아니라, 지키는 쪽에서도 이러한 마음 가짐은 필요하다.
[예화]
● 상대의 맹점을 찌르면 반드시 이긴다.
攻而必取者(공이필취자)
攻其所不守也(공기소불수야)
공격하면 반드시 취함은, 그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후한(後漢) 때, 장보(張步)는 도읍을 극(劇)에다 정하고, 동생 남(藍)에게는 서안(西安)을 지키게 하였고, 또 다른 장군에게는 임동(臨潼)을 지키게 하였다. 마침내 임동에서 40리쯤 떨어진 지점에 경감(耿弇)이 군사를 이끌고 진주해 왔다.
진을 치자 경감은 자세하게 시찰 하였다. 서안은 비록 성은 작으나 견고하고 남이 인솔하고 있는 군사도 정예하다는 것과, 임동은 유명하기는 하나 실제로는 공격하기 쉬운 성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경감은 군사에 명하여 무기를 준비시키고 5일후에 서안을 공격하여 성 주위에서 군사들에게 한참 동안 함성만 지르게 한 다음 그대로 후퇴해 버렸다. 남은 오랫동안 이어지는 함성을 듣고 틀림없이 적이 공격해 온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철통같은 수비 태세를 취하였다.
호기 도래라고 경감은 밤중에 조식(朝食)을 취하게 하고 출발하여 새벽에는 임동성에 도착하였다. 이에 부장 순량(荀粱) 등은 작전에 대하여 이의를 내놓았다. "어서 속히 서안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러자 경감은 말하였다. "서안은 우리 군사들의 함성을 듣자 공격당하는줄 알고 철통 같이 성을 고수하고 있다. 원군도 내보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서안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임동을 불의에 친다면 몹시 놀라서 당황할 것이다. 그틈을 타서 힘을 다하여 공격한다면 반드시 하루만에 함락시킬 수 있다. 임동이 함락되면 서안은 고립된다. 이것이 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경감이 임동성을 공격하니,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이와같이 맹점은 있는 법이고, 틀림없이 무방비 상태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5) 자기의 정체를 알리지 마라
故善攻者(고선공자)
敵不知其所守(적부지기소수)
그러므로 잘 공격하는 자는 적이 그 지킬 곳을 모르고,
善守者(선수자)
敵不知其所攻(적부지기소공)
잘 지키는 자는 적이 그 공격할 곳을 모른다.
微乎微乎(미호미호)
至於無形(지어무형)
은밀하고 은밀하여 형태가 없음에 이르고,
神乎神乎(신호신호)
至於無聲(지어무성)
신기하고 신기하여 소리가 없음에 이른다.
故能爲敵之司命 (고능위적지사명)
그러므로 능히 적의 사명(司命)이다.
進而不可禦者(진이불가어자)
衝其虛也(충기허야)
나아가되 막지 못함은 그 허를 찌르기 때문이고,
退而不可追者(퇴이불가추자)
速而不可及也(속이불가급야)
물러나되 쫓지 못함은 신속하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공격 방법은 상대로 하여금 어디를 어떻게 지켜야 완벽한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게 하고, 또 이상적인 수비에 부딪히면 상대는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면 좋은지 실로 미묘해져 목표를 세울수가 없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것이니, 마치 목소리가 없는것을 상대로 하거나 형태가 없는 것을 잡는 것과 같다. 따라서 뜻대로 상대를 요리할 수가 있다.
이쪽의 진격을 눈치채더라도 상대의 허점을 불의에 찌르는 것이므로 응수할 수가 없게 된다. 똑같이 상대가 퇴각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 행동이 뒤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면 팔짱을 끼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상대가 어디서 어떻게 나올 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궁리끝에 '옳지 이곳으로 나왔구나' 하고 군사를 모으면 그틈을 노려서 허점으로 불쑥 쳐들어 온다.
또한 이 쪽에서도 그 수를 썼는데 상대가 지켜야 할 곳을 빈틈없이 지키고 있다면 정체가 없는 도깨비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지키지도 못하고 공격도 하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신변불가사의, 신출귀몰, 신책귀모 등은 이러한 용병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신의 재주도 아니고 초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요컨대 3조항의 "편하면 능히 이를 피로하게 한다"로 부터 열거해 온 역수를 계속 뒤집어 씌우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나, 퇴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을때의 퇴각이나,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행동은 모두 신속해야 한다는 것도 여기서 가르치고 있다. 상대에게 응수할 시간을 주는 것은 상대의 허가 실은 허가 아니게 된다. 태세를 재정비할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을 움직이는 속도로 의표를 찌르라는 것이다.
[예화]
● 자기의 정체를 알리지 말라
微乎微乎(미호미호)
至於無形(지어무형)
은밀하고 은밀하여 형태가 없음에 이르고,
神乎神乎(신호신호)
至於無聲(지어무성)
신기하고 신기하여 소리가 없음에 이른다.
다소 구체적으로 말해, 아군이 추격하는 속도보다 적이 후퇴하는 속도가 빠르면 적은 있어도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무형이 되는 것이다. 재빠르게 후퇴를 하면 적의 운명을 내 손에 쥘 수가 없다.
싸움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을 때는 싸움을 할수 있고,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고 판단하였을 때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형, 무성의 정신이다. 명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전술에는 이와 같이 완전치는 않더라도 이에 가까운 것이 많다.
홍수(泓水)라는 강을 끼고 대치한 초(楚)나라 성왕(成王)과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무형, 무성이란 점에서 보면 거의 낙제였다. 양공의 군세는 적고 성왕의 군세는 훨씬 많았다.
수를 믿고 성왕의 군사는 홍수를 건너기 시작하니, 자어(子魚)가 양공에게 말하였다. "적은 보는 바와 같이 대군이지만, 지금이라면 적의 허를 찌를수 있으니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합시다."
그러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강을 다 건너온 초의 군대가 잠시 진형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자어가 다시 말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공격할 시기는 없습니다."
양공이 말했다. "아니다. 적이 진형을 정비할 때 까지 기다리자."
이렇게 하여 초의 진형이 정비되자, 양공은 공격 개시의 북을 울렸다. 물론 양공은 진형을 갖춘 초의 대군을 이길 수가 없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원망하자 양공은 태연히 말하였다. "군자란 남이 곤경에 처하였을 때, 그것을 괴롭혀서는 안되는 법이다. 초의 진형이 정비될 때까지 공격 신호를 내리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자어는 화를 내며 말했다. "전쟁은 승리가 공적의 전부입니다."
자어의 말대로 전시에 평화시의 도리를 들추어 본들 아무 소용도 없는것이다. 양공은 아군을 유형으로 하고 적을 무형에 가깝게 한 다음에 싸웠다. 전쟁 법칙과는 전혀 반대되는 지휘를 하였으므로 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6) 상대방의 의도를 어긋나게 한다
故我欲戰(고아욕전)
그러므로 내가 싸우고자 하면,
敵雖高壘深溝(적수고루심구)
적이 비록 누(壘)를 높게 하고 구(溝)를 깊게 한다 하더라도,
不得不與我戰者 (부득불여아전자)
나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음은,
攻其所必救也(공기소필구야)
그 반드시 구하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我不欲戰(아불욕전)
내가 싸움을 바라지 않으면,
雖劃地而守之(수획지이수지)
敵不得與我戰者 (적부득여아전자)
비록 땅을 그어 놓고 이를 지킨다 하더라도 적이 나와 싸우지 못함은,
乖其所之也(괴기소지야)
그 가는 곳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적이 아무리 성벽이나 누를 높이하고 구를 깊이 파서 엄중하게 수비를 굳혀도 이쪽에서 싸우려고 들면, 상대는 싫어도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는 상대에게 가장 급소가 되는 곳, 이를테면 적의 본거지라든가 무기고, 탄약고, 양식고 또는 전후를 연락하는 통로 등을 공격하면 된다.
반대로 이쪽이 싸움을 시작하면 오히려 불리하다고 생각 하였을 때는, 비록 굳은 진지를 구축하지도 못하고 단순히 땅에 선을 그어 놓았을 정도의 간단한 방비라도, 충분히 상대의 출격을 막을수가 있다. 그것은 상대의 목적과 크게 어긋나게 하는 것이다.
목적과 어긋나는 것이란 방비진을 친 곳이 뜻밖의 곳이거나 그 방위 방법이 손쉽게 손을 댔다가는 큰코 다칠것 같은 태세로 되어 있다든가 하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적의 예상을 뒤엎는 방비를 갖추는 것이다.
이 조항은 오로지 다음에 말하는 문장의 전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것만 떼어서 보면 아무런 의의도 없는 것이다. "갖춤이 있으면 근심이 없다"라는 말이 있으나 이말은 반드시 금과옥조가 아닌 것을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견고한 방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어딘가에 잠재해 있는 급소를 찔리면 뜻밖에도 간단하게 파탄이 온다.
또 특별한 방비 태세가 없어도 상대의 창끝을 교묘하게 피하는 수를 쓰면 강한 타격을 받지 않고도 넘길 수 있다. 걸어 오는 싸움을 언제나 받아 들이라는 법은 없는 것이므로, 일상 생활에서도 노련한 사람은 가볍게 넘겨 버리는 수를 쓴다. 단 이 방법을 써서 적을 대할 때는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으면서 이 방법만을 믿고 싸우려 들었다가는 뜻 밖의 위험한 사태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7) 적의 세력을 분산시켜라
故形人而我無形(고형인이아무형)
그러므로 적에게는 형(形)을 보이게 하고 나는 형이 없으면,
則我專而敵分(즉아전이적분)
곧 나는 집중할 수 있으나 적은 나뉘게 된다.
我專爲一(아전위일)
敵分爲十(적분위십)
나는 하나로 집중하고 적은 나뉘어져 10이 된다.
是以十攻其一也 (시이십공기일야)
이것이 10으로써 1을 공격하는 것이다.
則我衆而敵寡(즉아중이적과)
즉 나는 중(衆)이 되고 적은 과(寡)가 된다.
能以衆擊寡者(능이중격과자)
능히 중으로써 과를 치면,
則吾之所與戰者弱矣(즉오지소여전자약의)
곧 나와 더불어 싸우는 자는 약하다.
적으로 하여금 형(形)을 나타나게 하려면 전개된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는 가급적 뚜렷한 진형을 취하게 하고, 이쪽은 가급적 포착하기 힘든 대형으로 포진을 한다면 이쪽에서의 공격은 집중적인 것이 되나, 적으로서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힘이 분산되고 말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쪽의 힘은 집중된 하나가 되고 상대의 실력은 분산되어 10으로 나뉜다는 것이니, 하나의 힘이 10분의 1로 줄어든다고 생각해도 좋다. 즉 10분의 1대 1의 공격력과 수비력의 대결이다. 대세력과 소세력의 싸움은 비록 같은 수의 군대라고 하더라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상황 전개에 따라 상대방을 치는 것이므로, 마치 상대를 작게 오그려서 한 곳으로 모아놓고 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적에게는 형(形)을 보이게 하고'라는 곳을 비실재의 형을 적에게 보이는 위장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대결하는 실수와 이쪽은 실수 이상의 활동을 하고,상대에게는 실수 이하의 활동을 시키면 전력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으므로,역시 상대에게 형을 보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8) 결전지는 적이 알지 못하게 하라
吾所與戰之地(오소여전지지)
不可知(불가지)
내가 함께 싸우려는 곳의 땅은 알 수 없다.
不可知(불가지)
則敵所備者多(즉적소비자다)
알 수 없으면 곧 적은 갖추는 바가 많다.
敵所備者多(적소비자다)
적의 갖추는 바가 많으면,
則吾所與戰者寡矣 (즉오소여전자과의)
곧 나와 함께 싸우는 바는 적다.
'알 수 없다'는 '알게 할 수 없다'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적과 회전해야 할 결전지는 좀처럼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전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불필요한 병력을 이곳 저곳에 배치시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이쪽 주력과 충돌할 상대의 병력이 대부분 다른 곳으로 분할되므로 소수의 적과 싸우고 적은 희생으로 끝나게 되기 때문에 승리가 보다 확실하게 되는 것이다.
전황(戰況)의 추이로 미루어 보아 적을 공격하기 위한 군대의 배치나 그 행진 방향 등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대개 이 근처에서 결전이 되겠다는 지리적 예측이 서는 법이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만은 가급적 예상이 서지 않는 곳을 택하여 상대의 판단을 혼란시켜서 정체가 뚜렷하지 않은 전황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실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실력을 작게 만드는 것이 된다는 추리는 극히 초등 수학적인 것이나, 사업경영 등에서도 여러모로 응용할 수 있는 전술이다.
특히 세력이 백중한 상대와 대적하였을 때는 상당히 효과적인 전법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결전이 임박하였을 때 당황하여 상황을 어름 어름해 버리려고 해도, 그러한 얕은 꾀로는 곧 발견되고 말 것이므로, 사전에 충분한 배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9) 갖춤이 있으면 근심이 없다
故備前則後寡(고비전즉후과)
그러므로 앞에 갖춤이 있으면 곧 뒤가 적고,
備後則前寡(고비전즉후과)
뒤에 갖춤이 있으면 곧 앞이 적다.
備左則右寡(비좌즉우과)
왼쪽에 갖춤이 있으면 곧 오른쪽이 적고,
備右則左寡(비우즉좌과)
오른쪽에 갖춤이 있으면 곧왼쪽이 적다.
無所不備(무소불비)
則無所不寡(즉무소불과)
갖추지 않은 바가 없으면, 곧 적지 않은 곳이 없다.
寡者(과자) 備人者也(비인자야)
적은 자는 적에게 갖추는 자이다.
衆者(중자) 使人備己者也(사인비기자야)
중(衆)한자는 적으로 하여금 자신을 갖추게 하는 자이다.
전후좌우로 분산될 수록 그만큼 지키는 자의 힘이 소홀해 지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빠짐없이 사방을 두루 방비하게 되면 전체가 다 소홀해 지고 만다. 방비할 곳이 많을수록 각 부서의 전력은 적어지고, 반대로 상대에게 방비시키는 곳이 많을수록 이쪽의 전력은 강대해 진다. 이쪽의 행동 목적이 비익(秘匿)의 깊고 얕음, 또는 대소가 그대로 이쪽 전력의 대소에 통하게 되는 것이다.
'갖춤이 있으면 근심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의 경우는 오히려 방비가 근심이 되고 만다. 생각없이 닥치는 대로 방비를 굳힌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상대로 인하여 방비를 해야 하는 쪽과 방비를 하도록 하는 쪽과의 우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하는점이 전력의 다소에 통하게 된다면 여간 큰 일이 아닌 것이다.
제3장 모공편에서 인용한 "10이면 곧 이를 포위하고, 5이면 곧 이를 공격하고, 배가되면 곧 나눈다"는 말은 싸움이 물량작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었으나, 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작전을 운용하는 법에 따라서는 병력을 5배, 10배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10이면 포위한다는 것이 반드시 전병력의 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5라도 포위할 수 있고 대등하더라도 포위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10) 결전지와 일시를 알면 적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故知戰之地(고지전지지)
知戰之日(지전지일)
그러므로 싸움의 땅을 알고 싸움의 날을 알면,
則可千里而會戰 (즉가천리이회전)
곧 천리에서라도 회전해야 한다.
不知戰地(부지전지)
不知戰日(부지전일)
싸움의 땅을 모르고 싸움의 날을 모르면,
則左不能救右(즉좌불능구우)
右不能救左(우불능구좌)
곧 왼쪽이 오른쪽을 구할 수 없고, 오른쪽이 왼쪽을 구할 수 없다.
而況遠者(이황원자)
數十里(수십리) 近者(근자)
數里乎(수리호)
하물며 먼 자는 수십 리, 가까운 자라도 수 리에 있어서랴.
以吾度之(이오탁지)
越人之兵雖多(월인지병수다)
내 이를 생각건대 월나라 병사가 비록 많다 하더라도,
亦奚益於勝敗哉 (역해익어승패재)
역시 어찌 승패에 도움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결전장이 확실하게 예측되고, 그 시일이 추정도 가능하면 그것이 아무리 먼 곳일지라도 충분히 이쪽이 생각한 대로 회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강의 짐작이라도 서지 않는다면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왼편에 포진하고 있는 병력이, 적의 주력과 조우(遭遇) 하여 싸우고 있는 오른편의 아군을 원조할 수 없으며, 왼편에 있는 병력이 오른편에 있는 병력을 돕지 못한다. 전방에 위치하고 있는 병력이, 후방을 돕지 못하고, 후방의 병력이 전방을 돕지 못하는 수가 있게 된다.
하물며 수십 리나 떨어져 있는 아군이라면 한층 더할 것이다. 수십 리가 아니라 수 리라도 어떻게 구원하러 달려갈 수 있겠는가. 손자로서는 아무리 적국인 월나라 병사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그 병사의 수가 많은 것이 싸움의 승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전황 판단에 따라 결전장을 예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능력 차이로 어떻게 전력이 총화적으로 보람있게 사용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점에 대한 설명이다. 마지막에 손자가 숙적인 월나라에 대하여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은 유쾌하나 역시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예화]
● 결전지와 일시를 알면 적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知戰之地(고지전지지)
知戰之日(지전지일)
싸움의 땅을 알고 싸움의 날을 알면,
則可千里而會戰 (즉가천리이회전)
곧 천리에서라도 회전해야 한다.
'맹자'에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불여지리(不如地利)"라고 하였고, 관자(管子)도 '천시지리(天時地利)'를 말하고 있다. 그곳은 배(舟)가 좋은가, 전차를 통과시킬 수 있는 평원인가, 또는 보병을 전개시킬 곳인가, 기병으로 단숨에 격파할 수 있는 곳인가를 알지 못하고는 싸울 수가 없는 곳이다. 즉 지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漢)무제(武帝)는 서역(西域) 평정을 국시로 삼았다. 먼저 흉노를 격멸하기로 하였으나, 강대한 흉노를 대적하려면 전부터 흉노를 원수로 생각하고 있는 대월씨(大月氏)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하여 장건(張騫)이 사신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흉노 영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대월씨에게 갈 수가 없었으므로 장건은 그곳을 지나다가 붙잡혀서 10여 년의 구류 생활을 하였다.
마침내 장건은 기회를 포착하고, 겨우 탈출하여 다시 서로 향하였다. 대완국(大宛國), 키르키즈(康居國)을 지나 아프가니스탄 북부(大夏韓)를 경유하여 대월국으로 들어갔다.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는 할수 없었으나, 십수년 동안 서역에서의 생활은 장건의 지식욕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손국(烏孫國), 간치(干寘), 누란(樓蘭), 고사(姑師), 안식(安息; 폐르샤), 신독(身毒; 인도)에 이르기까지 두루 견문을 넓혔으며, 곤륜산(崑崙山)에서 발하는 발하는 황하의 근원까지 알게 되었다.
후에 장건은 교위(校尉)가 되어 대장군을 따라 흉노를 공격 하였는데, 황야에서 수초(水草)가 있는 곳을 세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은 막힘없이 싸울수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장건은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이듬해 구경(九卿)의 하나인 위위(衛尉)로 승진 하였으나 숱한 실책을 범한다. 이광(李廣) 장군과 함께 다시 흉노를 공격하였으나 전면 포위를 당하여 대패한 것이다. 이는 장건이 회전 기일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것이 원인이었다.
원칙대로 하자면 참죄에 해당되는 실책 이었으나 서역통(西域通)의 제1인자인 까닭에 특별히 용서 받아 서민(庶民)이 되었고, 그 후에도 무제에게 헌책하여 오손국 기타 서역 제국과 화친을 맺고 흉노 붕괴에 성공하였다.
싸움터를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어서 어느때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면 자기 지역을 멀리 떠난 적지라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예는 극히 많다. 이를테면 잘 알려져 있는 손빈(孫臏)과 방연(龐涓)이 마릉(馬陵)에서 벌인, 숙원의 대결에 제(齊)나라의 장군 전기(田忌)가 손빈의 계략을 듣고 저녁 무렵에 방연의 군이 반드시 도착할 것을 추정하여, 험조한 곳에 복병을 숨겼다가 대승한 것은 시일과 싸움터를 잘 판단한 결과라고 하겠다.
(11) 아군이 우세하면 상대의 열세한 면을 찌르라
故曰
그러므로 말하기를,
勝可爲也(승가위야)
승리는 만들 수 있는 것이다.
敵雖衆(적수중) 可使無鬪 (가사무투)
적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싸울 수 없게 해야 한다.
故(고) 策之而知(책지이지)
得失之計(득실지계)
그러므로 이것을 헤아려서 득실의 계략을 알고,
作之而知動靜之理 (작지이지동정지리)
이것을 일으켜서 동정의 이(理)를 알고,
形之而知死生之地 (형지이지사생지지)
이것을 드러나게 하여 사생의 땅을 알고,
角之而知有餘不足之處 (각지이지유여부족지처)
이것을 충돌시켜서 남고 부족한 곳을 안다.
그러므로 승리라는 것은 이쪽에서 유도하는 방법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적병 수만명이 문제라면 아무리 상대가 많더라도 그 대부분을 실제 전투에 참가시키지 않는 것과 같이 만들 수가 있다. 우선 상대편을 충분히 관찰하여 여러 상태에 따른 결과를 착실히 계산하고 국소전을 벌여 봄으로써, 어떻게 움직여올 태세에 있는지 대체적인 방향과 경향을 알아내는 것이다.
다음에 적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진형을 보이고 그 반응을 살피면 어느곳이 유리한 곳이고 불리한 곳인지를 알수 있다. 또 상대와 이쪽을 비교 검토하기 위하여 소부대의 병력을 충돌시켜 본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어느곳을 보강해야 하는지 또는 어느곳에서 좀더 힘을 빼야 좋은지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 맞추어 충분한 태세를 갖추고 계획을 세우면 좋을 것이다.
예민한 관찰력과 그 활용 여하에 따라 적은 병력도 크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네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관찰을 위해서는 양쪽의 군세를 접촉시켜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용히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으면 알 수가 없다.
적당히 상대를 자극해 보고 그 반응으로 실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이것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만전의 주의가 필요하다. 애써 군사를 출동시켰다가 오히려 이쪽이 노출 되고 만다면 그야말로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실마리가 잡히면 그 다음은 계산이다. 사방 팔방으로 모든 면에서 검토를 해 보고, 불필요한 곳에는 군사를 쓰지 말고 이곳이라고 생각되는 급소, 그것도 가급적이면 방비가 허술한 곳을 노려서 맹공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화]
● 아군이 우세하면 상대의 열세한 면을 찌르라.
作之而知動靜之理(작지이지동정지리)
이것을 일으켜서 동정의 이(理)를 알고,
形之而知死生之地(형지이지사생지지)
이것을 드러나게 하여 사생의 땅을 알고,
角之而知有餘不足之處(각지이지유여부족지처)
이것을 충돌시켜서 남고 부족한 곳을 안다.
위(魏)나라 때 사마의(司馬懿)가 요동평전에 출진하였다. 그런데 너무나 행동이 완만하였으므로 사마진규(司馬陳珪)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옛날에 상용(上庸)이 맹달(孟達)을 공격하였을 때, 8개군을 동시에 진격시켜 주야로 쉬지않고 공격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닷새만에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고 맹달을 격파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멀리서 공격하니 아주 한가롭지 않습니까? 저로서는 통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사마의가 대답하였다. "맹달은 병력은 적었으나 양식은 넉넉하여 1년을 견딜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병력은 맹달의 4배나 되었으나 양식은 1개월 남짓한 상태였다. 1 개월분의 양식으로 1년분의 양식을 가진 적을 공격할 때는 급습을 하는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한편 4배의 병력으로 공격하는 것이므로, 가령 반으로 준다 하더라도 그때는 강경한 공격을 해야한다. 그래서 사상을 돌보지 않고 양식의 소모와 경쟁을 하듯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군은 병력이 많고 아군은 적다. 그러나 적은주리고, 아군의 양식은 충분하다. 비가 오므로 교전은 하지 않고 있으나, 적의 양식은 동이 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양식이 다 떨어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당하지 않은가."
얼마 후 비가 그치자, 사마의는 주야를 불문하고 공격하여 드디어 요동을 평정하였다. 적의 4배가 되는 병력은 아군으로서는 우세한 면이고, 적으로서는 열세한 면이다. 1년분의 양식이 있는 것은 적의 우세한 면이고, 한 달치 밖에 없는 것은 아군의 열세한 면이다. 적의 병력이 많은 것은 적의 우세한 면이고, 적이 주리고 아군이 포식하고 있는 것은 아군의 우세한 면이다.
따라서 하나는 속공을 취하고, 하나는 지구전을 취하는 것은 거의 자명한 일인 것이다. 대개 싸움에 임할 때는 언제나 아군의 우세한 면으로 적의 열세한 면을 쳐야 한다. 그러므로 상호의 우세한 면과 열세한 면을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 판단 자료를 주지 말고 비밀리에 준비하라
形兵之極(형병지극)
至於無形(지어무형)
병사를 형(形)하는 극치는, 무형에 이른다.
無形(무형)
則深間不能窺(즉심간불능규)
무형이면, 곧 심간(深間)도 능히 엿볼 수 없고,
智者(지자) 不能謀(불능모)
지자라도, 꼬할 수가 없다.
因形而措勝於衆(인형이조승어중)
형에 의하여 승리를 중(衆)에다 두면,
不衆能知(부중능지)
중은 알아도 능히 알지 못한다.
人皆知我所以勝之形(인개지아소이승지형)
사람은 대개 내가 승리한 까닭의 형은 알지만,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이막지오소이제승지형)
내가 승리를 억제하는 까닭의 형은 알지 못한다.
故(고) 其戰勝不復(기전승불복)
그러므로, 그 전승은 다시 하지 않고,
而應形於無窮(이응형어무궁)
더욱이 형의 무궁함에 응해야 한다.
전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형이라고 보이는 뜨렷한 것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느 것이라고 요량할 수 없도록 언제 어느 때든 변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무엇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모습이야말로 진형의 극치가 될 것이다.
이쯤되면 아무리 은밀하게 탐색을 해도 도저히 실체를 잡을수는 없을 것이며, 일체가 일정하지 않으므로. 아무리 지모가 뛰어난 명장이라도 그 정체를 추측할 수 없게 된다. 적이 만약 이러한 진형을 취해 오면, 이쪽은 이렇게 움직여서 이렇게 된다는 것과 이렇게 하면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은 철저하게 해두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가는 알지 못한다.
적과 전투를 하여 승리를 얻은 진형은 다 경험하는 것이나, 과연 이 쪽의 어떠한 형이 상대를 격파하였는지, 그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변점무쌍한 전승의 진형이란 같은 형이 두번씩 반복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일정한 것이 아닌만큼 때에 따라 또는 형에 따라 무한하게 생겨나는 것이다.
무형(無形)의 형(形)이라고 하면 추상적인 것 같이 들리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싸우는 태세, 즉 가장 좋은 진형은 따지고 보면, 전혀 형태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직에 얽매여 꼼짝도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싸움의 형은 아니다. 최고의 형으로 조직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면서도 조직의 본질을 잃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다. 그러한 형이야말로, 진정한 전투형이라는 것이다.
일의 내용이 바뀌면 방법도 달라지게 되므로 부득이 조직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경 때문에 가령 일시적이라고는 하더라도 연락이 늦어 지거나, 인계가 순조롭지 못하여 사고가 생기고 혹은 기동력이 둔해져서 능률이 떨어지는 수도 있다. 이것은 본래의 조직이 형을 위한 조직으로서 진정하게 살아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형의 무궁함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화]
● 판단 자료를 주지 말고 비밀리에 준비하라.
形兵之極(형병지극)
至於無形 (지어무형)
병사를 형(形)하는 극치는, 무형에 이른다.
無形(무형)
則深間不能窺(즉심간불능규)
무형이면, 곧 심간(深間)도 능히 엿볼 수 없고,
智者(지자) 不能謀(불능모)
지자라도, 꼬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하든지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스파이가 들어 와도 헛수고이다. 또 지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손자는 형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전쟁에 있어서 가장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패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구원을 받아 돌아온지 7년이 지난 때였다. 나라의 힘도 겨우 충실해 지고 백성들은 구천에게 은혜를 느껴서 오나라에 보복을 하려고 하자, 대부(大夫) 봉동(逢同)이 간하였다. "우리 나라는 이제 막 국세를 회복하여, 상승을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전쟁 준비를 시작한다면 오나라는 근심을 하고 반드시 공격해 올 것입니다. 맹금이 먹이를 공격할 때는 반드시 그형을 숨기는 법입니다. 당분간은 오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는 제(齊), 초(楚), 진(晉)나라 3국과 화친 하도록 노력하고, 오나라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오나라 왕이 신이나서 싸움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었을 때가 기회입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며, 대부 종(種)이 월의 왕에게 간하였다. "오나라 왕의 정치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근래 교만해진 것 같습니다. 식량을 빌려 달라고 청을 하고 실정을 탐지해 보십시오."
과연 오나라 왕은 월나라에 식량을 주었고, 월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3년이 지났다. 월의 왕 구천은 범려(范蠡)에게 물었다. "이제 오나라를 공격해도 좋지 않을까? 오의 왕은 충신인 오자서를 죽이고, 그 후로는 아첨하는 자만을 상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범려는 아직 시기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다음해 봄, 오의 왕은 북상하여 황지(黃地)라는 곳에서 제후를 모았다. 정병은 모두 왕을 따랐으므로, 오나라에는 노약자와 어린이만이 남아 있었다. 이에 때를 맞추어 범려는 기회가 왔음을 왕에게 고하였다. 월의 왕은 성난 파도와 같이 오나라로 진격해 들어갔다. 오의 군대는 대패하였다.
다시 4년이 지났다. 오나라의 정예는 거의 제와 진나라와 전투에서 전사 하였고 백성은 피폐되어 있었다. 월나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를 공격하여 각처에서 크게 격파시켰다. 오의 도읍을 3년동안 포위하니, 오의 군대는 완전히 격멸당하였다. 마침내 오의 왕은 자살하고 월의 왕 구천은 20여 년의 복수를 끝냈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상대의 형세를 탐색하여 거기에 대응함으로써 드디어 승리를 한 것이다.
(13) 세상에는 일정 불변한 것이 있을 수 없다
夫兵形象水(부병형상수)
무릇 군사의 형(形)은 물에 형상한다.
水之形(수지형)
避高而趨下(피고이추하)
물의 형은, 높음을 피하여 아래로 향하고,
兵之形(병지형)
避實而擊虛(피실이격허)
군사의 형은 실을 피하여 허를 친다.
水因地而制流(수인지이제류)
물은 땅으로 인하여 흐름을 제압하고,
兵因敵而制勝(병인적이제승)
군사는 적으로 인하여 승리를 제압한다.
故(고) 兵無常勢(병무상세)
水無常形(수무상형)
그러므로, 군사는 일정한 태세가 없고, 물에는 일정한 형이 없다.
能因敵變化而取勝者(능인적변화이취승자)
謂之神(위지신)
능히 적으로 인하여 변화하고 승리를 취하는 자, 이를 신(神)이라고 한다.
故(고) 五行無常勝(오행무상승)
四時無常位(사시무상위)
그러므로 오행에 일정한 승리가 없고, 사시에 일정한 자리가 없으며,
日有短長(일유단장)
月有死生(월유사생)
해에 단장(短長)이 있고, 달에 사생(死生)이 있다.
전쟁할 때의 태세를 물에 비유해 보면 알기쉽다. 물이란 높은 곳으로는 흐르지 않는다. 반드시 낮은곳으로 흐르는 것이다. 싸움도 이와 같아서 상대가 충실해 있는 곳은 가급적 피하고 방비가 허술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 순서이다.
또 물이란 지세에 따라 흐르는 모양이 결정된다. 군사도 이와 같아서 적의 형에 순응하여 이기는 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의 태세에는 일정한 상태라는 것이 있을수 없다. 이것은 물에 일정한 형이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상대에 따라 자유로 변화하고 자재로 승리를 제압하는 것은 진정 달인의 재주라고 칭할 만하다.
우주간의 오행은 항상 변화해 가고 1년 4계절의 기후도 그때그때 변화해 가는 것으로서 상태라는 것이 없고, 해도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어서 그 계절에 따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며, 달도 둥글게 찰때가 있고 기울때가 있어서 하루하루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전쟁의 진정한 모습이다.
결전장에서 군사들의 대형 배치를 물에 비유하고, 오행을 보기로 삼아 4계정, 일조(日照), 달의 영허(盈虛)에도 비유하고 있다. 어느 것이나 앞서 말한 것을 되풀이하여 다른 현상에 빌려 예를 거듭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병의 움직임이란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가야 할 곳으로 가는것인 바 무리를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군사도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자연법칙, 사회법칙, 생활욕구 등을 충분히 존중해야 하며, 각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목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예화]
● 세상에는 일정 불변한 것이 있을 수 없다.
兵無常勢(병무상세)
水無常形(수무상형)
군사는 일정한 태세가 없고, 물에는 일정한 형이 없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맹자(孟子)보다 다소늦게 추연(騶衍)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그의 사상은 광원(廣遠)으로서 더욱이 반드시 작은 것에서 전부를 확인하고 대(大)를 추론하여 무한대에 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나라에서 중시되었고, 위나라 혜왕(惠王)은 대등한 예로써 출영하였으며,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은 스스로 자리에 먼지를 털고, 연나라 소왕(昭王)은 비(箒)를 선도하여, 갈석궁(碣石宮)을 짓고, 그에게 사사할 정도였다.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필사적으로 관직을 찾아 헤매던 식객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던 것은 그의 오행설이었다.
역대 제왕의 변천을 들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오행으로 해석하였고, 우주 만물은 모두 오행의 변천에 따라 성쇠한다고 하였다. 목은 화를 낳고. 화는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
이것을 역대 왕조와 조합시키면 요(堯; 火), 순(舜; 土), 우(禹; 金), 은(殷; 水), 주(周; 木)가 되고, 천지 개벽 이래의 영고 성쇠, 다시 산, 천, 곡, 금수, 수류의 변환을 말한다. 이 오행이 음양 이기(二氣)의 소장과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을 계속하므로, 이 세상에는 미리 정해진 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손자는 말한다.
풍림화산음뢰(風林火山陰雷)
손자는 군쟁편(軍爭篇)에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말했다.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이동할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나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적을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하게,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은 센고쿠 시대의 일본 무사인 다케다 신겐의 전술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빠른 것은 바람처럼, 조용한 것은 산림처럼, 공격은 불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산처럼 하라는 뜻이다. J리그 소속팀인 반포레 고후 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손자'의 군쟁(軍爭)편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병법은 적을 속여 세우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병력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함으로써 변화를 꾀한다. 그러므로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 우회하여 공격할 것인지 곧바로 공격할 것인지를 먼저 아는 자가 승리할 것이니, 이것이 군사를 가지고 싸우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술을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응용한 사람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다. 그는 이 전술에 감명을 받아 '풍', '림', '화', '산'을 한 글자씩 장식한 군기(軍旗)를 만들었으며, 이후 풍림화산은 그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신겐은 병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타격을 입을 만한 패배는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본래는 '풍림화산음뢰(風林火山陰雷)'가 맞다고 한다. 위의 내용 중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 '음뢰(陰雷)'이다. 그런데 다케다 신겐이 뒤의 '음뢰(陰雷)'를 빼고 '풍림화산(風林火山)'만을 내세웠기 때문에 '음뢰'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같다.
풍림화산(風林火山)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바람처럼 빨리 움직여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숲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불처럼 급할 때도 있고, 때로는 산처럼 고요할 때도 있습니다. 바람처럼, 숲처럼, 불처럼, 산처럼, 손자병법에 나오는 풍림화산(風林火山)의 속도조절입니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의 속도조절은 군대가 전쟁을 할 때 다양한 속도로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풍(風), 때로는 바람처럼 빠르게 공격도 하였다가, 림(林), 때로는 숲처럼 고요하게 숨을 죽이기도 하고, 화(火), 때로는 불처럼 활활 타며 기습 공격을 하고, 산(山), 때로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고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질여풍(其疾如風)이라!
빠를때는 바람처럼 빨라야 한다.
기서여림(其徐如林)이라!
느릴 때는 숲처럼 고요해야 한다.
침략여화(侵掠如火)라!
공격할 때는 불처럼 거세야 한다.
부동여산(不動如山)이라!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무거워야 한다.
인생을 한 편의 전쟁 드라마라고 표현한다면 풍림화산은 한 사람의 인생의 다양한 속도라고 할 수 있습니 다. 바람처럼, 숲처럼, 불처럼, 산처럼, 인생의 다양한 상황에 맞는 다양한 판단과 결정은 그 사람의 인생을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듭니다.
인생, 바람처럼 달려가야 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야 합니다. 숲처럼 천천히 움직여야 할 때는 무리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불처럼 급하게 일을 처리할 때는 힘차게 타올라야 합니다. 산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할 때는 미동도 하지 않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풍림화산(風林火山), 비록 전쟁에서 속도를 조절해야 승리한다는 전략이지만 인생도 그때마다 다양한 속도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避(피할 피)는 ❶형성문자로 辟(피)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辟(벽; 한쪽으로 기울다, 피)으로 이루어졌다. 부딪치지 않게 피하여 지나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避자는 '피하다'나 '벗어나다', '회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避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辟(피할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辟자는 사람과 辛(매울 신)자를 함께 그린 것으로 '피하다'라는 뜻이 있다. 한자에서 辛자는 주로 노예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避자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죄수가 잡힐까 두려워 길을 피해 다닌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천민들이 상전들을 피해 골목으로 다닌다는 해석이다. 조선 시대 때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던 양반들을 피하고자 서민들이 다니던 길을 '피마골(避馬골)'이라 했으니 避자의 대략적인 의미가 이해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避(피)는 ①피(避)하다 ②벗어나다, 면(免)하다 ③회피(回避)하다 ④떠나다, 가다 ⑤물러나다 ⑥숨다, 감추다 ⑦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망할 도(逃), 숨을 둔(遁)이다. 용례로는 선선한 곳으로 옮기어 더위를 피하는 일을 피서(避暑), 재난을 피해 멀리 옮아감을 피난(避難),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몸을 숨기어 피함을 피신(避身), 난리를 피하여 있는 곳을 옮김을 피란(避亂), 더위를 피함을 피서(避署), 세상을 피해 숨음을 피세(避世),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말을 피사(避辭), 병을 앓는 사람이 있던 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요양함을 피접(避接), 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는 일을 피병(避病), 꺼리어 피함을 기피(忌避), 몸을 피하여 만나지 아니함을 회피(回避), 도망하여 몸을 피함을 도피(逃避),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면하여 피함을 면피(免避), 어떤 일 따위로부터 꾀를 써서 벗어남을 모피(謀避), 세상에 나가 활동하기 싫어 숨어서 피함을 둔피(遁避), 사양하고 거절하여 피함을 사피(辭避), 등지거나 피함을 배피(偝避), 당연히 피하여야 함을 응피(應避), 책임이나 맡은 일을 약삭빠르게 꾀를 써서 피함을 규피(窺避), 혐의를 논변하여 피함을 논피(論避), 서로 함께 같이 피함을 통피(通避),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에 나아감을 이르는 말을 피흉취길(避凶就吉),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를 이르는 말을 사차불피(死且不避), 귀신도 피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단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여 해롭게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귀신피지(鬼神避之), 피하고자 하여도 피할 수 없다를 이르는 말을 회피부득(回避不得),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한다를 이르는 말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 實(열매 실, 이를 지)은 ❶회의문자로 実(실)의 본자(本字), 実(실), 宲(실)은 (通字), 实(실)은 간자(簡字)이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貫(관; 끈으로 꿴 많은 동전, 재화의 뜻)의 합자(合字)이다. 집안에 금은재보(金銀財寶)가 가득함의 뜻으로 전(轉)하여 씨가 잘 여문 열매, 참다움, 내용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實자는 '열매'나 '재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實자는 宀(집 면)자와 貫(꿸 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實자의 금문을 보면 宀자와 田(밭 전)자, 貝(조개 패)자가 결합해 있었다. 집에 밭과 재물이 있으니 이는 매우 풍족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밭과 재물이 貫자로 바뀌면서 집에 돈뭉치가 있음을 뜻하게 되었다. 實자는 '부유하다'를 뜻했으나 후에 '결과가 좋다'는 뜻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은 '열매'나 '재물', '내용'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實(실, 지)은 (1)내용(內容). 실질(實質) (2)실제(實際)의 착실한의 뜻으로 쓰이는 접두어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열매 ②씨, 종자 ③공물(貢物) ④재물(財物), 재화(財貨) ⑤내용(內容) ⑥바탕, 본질(本質) ⑦녹봉(祿俸: 벼슬아치에게 주던 급료), 작록(爵祿: 관작과 봉록) ⑧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행적(行跡) ⑨참됨, 정성(精誠)스러움 ⑩곡식(穀食)이 익다 ⑪굳다 ⑫자라다 ⑬튼튼하다 ⑭실제로 행하다 ⑮책임을 다하다 ⑯밝히다 ⑰적용하다 ⑱그릇에 넣다 ⑲참으로, 진실로 ⑳드디어, 마침내 그리고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다다르다(지) ⓑ도달하다(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빌 공(空), 빌 허(虛)이다. 용례로는 실지로 얻은 이익을 실리(實利), 진짜 이름을 실명(實名), 현실의 경우나 형편을 실제(實際), 실제로 시행함을 실시(實施), 실제로 해냄을 실천(實踐),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실태(實態), 실제로 시험하는 것을 실험(實驗), 실제의 업적 또는 공적을 실적(實績), 실제로 나타냄을 실현(實現), 실제의 역량을 실력(實力), 실제의 물체를 실체(實體), 실제의 사무를 실무(實務), 실상의 본바탕을 실질(實質), 실지로 행함을 실행(實行), 현실에 존재함을 실재(實在),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실제의 상태를 실상(實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事實), 현재의 사실이나 형편을 현실(現實), 틀림없이 사실과 같음을 확실(確實), 거짓이 아닌 사실을 진실(眞實),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음을 절실(切實), 몸이 굳세어서 튼튼함을 충실(充實), 정성스럽고 참됨을 성실(誠實),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과실(果實), 사실 그대로 고함을 실진무휘(實陣無諱), 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실사구시(實事求是), 꾸밈이 없이 성실하고 굳세고 씩씩함을 일컫는 말을 실질강건(實質剛健), 실제로 몸소 이행함을 일컫는 말을 실천궁행(實踐躬行), 사실 그대로 고함을 일컫는 말을 이실직고(以實直告),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다는 뜻으로 말만 꺼내 놓고 실행이 부족함을 이르는 말을 언과기실(言過其實),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을 온후독실(溫厚篤實), 꽃만 피고, 열매가 없다는 뜻으로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화이부실(華而不實),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음 또는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유명무실(有名無實),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계략이나 수단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 또는 허실을 살펴서 상대방의 동정을 알아냄을 이르는 말을 허허실실(虛虛實實), 사실에 근거가 없다는 뜻으로 근거가 없거나 사실과 전혀 다름을 일컫는 말을 사실무근(事實無根), 겉은 허술한 듯 보이나 속은 충실함을 일컫는 말을 외허내실(外虛內實), 갑자기 차거나 비어 변화를 헤아리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일허일실(一虛一實),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 또는 인품이 따뜻하고 성실함이 넘침을 일컫는 말을 온후독실(溫厚篤實), 발이 실제로 땅에 붙었다는 뜻으로 일 처리 솜씨가 착실함을 말함 또는 행실이 바르고 태도가 성실함을 일컫는 말을 각답실지(脚踏實地), 말하면 실지로 행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함 또는 각별히 말을 내 세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유언실행(有言實行) 등에 쓰인다.
▶️ 就(나아갈 취, 관대할 여)는 ❶회의문자로 京(경; 높은 언덕, 도읍)과 尤(우; 손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就자는 '이루다'나 '나아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就자는 京(서울 경)자와 尤(더욱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就자는 尢(절름발이 왕)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손끝에 획을 그은 尤자가 잘못 지정된 것이다. 尤자는 '더욱'이나 '한층 더'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렇게 '더욱'이라는 뜻을 가진 尤자에 '높다'를 뜻하는 京자를 결합한 就자는 '더욱 높아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아가다'나 '(뜻을)이루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就(취)는 아주 높고 살기 좋은 곳에 닿다, 닿다, 완성되다, 이루다의 뜻으로 ①나아가다 ②이루다 ③좇다, 따르다 ④마치다, 끝내다 ⑤(길을)떠나다 ⑥(한바퀴)돌다 ⑦좋다, 아름답다 ⑧곧, 이에 ⑨만일(萬一), 가령(假令) ⑩잘, 능(能)히, 능(能)하게, 그리고 ⓐ관대(寬大)하다(여) ⓑ관대(寬大)한 모양(여) ⓒ다급(多急)하게 재촉하지 않는 모양(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에 착수함 또는 일에 종사함을 취로(就勞), 옥에 갇힘이나 실형을 받게 됨을 취수(就囚), 일을 함을 취업(就業), 역무에 종사함을 취역(就役), 맡은 자리에 나아가 임무를 봄을 취임(就任), 특별히 그 가운데나 그 중에서도 특히를 취중(就中), 죄를 짓고 잡힘을 취착(就捉), 잠을 잠이나 잠자리에 듦을 취침(就寢),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함을 취학(就學), 잠을 자기 시작함을 취면(就眠), 일이 잘 되어 감을 취서(就緖), 재판을 받으려고 법정에 나아감을 취송(就訟), 부모의 곁에서 효양함을 취양(就養), 바른 도리를 좇음을 취의(就義), 직업을 얻음을 취직(就職), 목적대로 일을 이룸을 성취(成就), 물러감과 나아감을 거취(去就), 순조롭게 나아감을 장취(將就), 일을 차차 이루어 감을 진취(進就),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나서지 아니함을 불취(不就), 죄인을 붙잡아 가는 일을 나취(拿就), 나아가 여쭙는다는 뜻으로 손윗사람에게 편지할 때 인사말을 끝내고 여쭙고자 하는 말을 쓸 때에 쓰는 말을 취복백(就伏白), 영세 근로자의 생계를 돕기 위하여 정부에서 실시하는 새마을 사업의 하나를 일컫는 말을 취로사업(就勞事業),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이르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물고기가 그물에서 벗어나 연못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다행히 재난을 면하고 기뻐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탈망취연(脫網就淵), 악한 것을 버리고 선한 것을 취한다는 말을 거악취선(去惡就善), 저편의 계략을 미리 알고 이를 이용하는 계교를 이르는 말을 장계취계(將計就計), 다방면으로 재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잘한다는 말을 수방취원(隨方就圓),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는 말을 소원성취(所願成就) 등에 쓰인다.
▶️ 虛(빌 허)는 ❶형성문자로 虚(허)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범호 엄(虍; 범의 문채, 가죽, 허)部와 丘(구; 큰 언덕)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큰 언덕은 넓고 넓어 아무것도 없다는 데서 텅 비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虛자는 '비다'나 '공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虛자는 虎(범 호)자와 丘(언덕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丘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구)자로 바뀌기 때문에 虛자는 丘자가 결합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丘자는 '언덕'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니 虛자는 마치 호랑이가 언덕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맹수의 왕이 나타났으니 모두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그래서 虛자는 드넓은 언덕에 호랑이가 나타나자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비다'나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虛(허)는 (1)내용(內容)이 비어 있는 것 (2)방심(放心)하여 게을리 한 곳이나 틈. 허점(虛點) 등의 뜻으로 ①비다, 없다 ②비워 두다 ③헛되다 ④공허(空虛)하다 ⑤약(弱)하다 ⑥앓다 ⑦살다, 거주(居住)하다 ⑧구멍 ⑨틈, 빈틈 ⑩공허(空虛), 무념무상(無念無想) ⑪마음 ⑫하늘 ⑬폐허(廢墟) ⑭위치(位置), 방위(方位) ⑮큰 언덕 ⑯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열매 실(實), 있을 유(有), 찰 영(盈)이다. 용례로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을 허위(虛僞), 비거나 허술한 부분을 허점(虛點), 사실에 없는 일을 얽어서 꾸밈을 허구(虛構), 몸이 허약하여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멍함을 허탈(虛脫), 사람됨이 들떠서 황당함을 허황(虛荒), 텅 비어 실상이 없음을 허무(虛無), 실상이 없는 말로 거짓말을 허언(虛言), 텅 빈 공중을 허공(虛空), 피곤하여 고달픔을 허비(虛憊), 마음이나 몸이 튼튼하지 못하고 약함을 허약(虛弱), 쓸 데 없는 비용을 씀을 허비(虛費), 실상은 없이 겉으로 드러내는 형세를 허세(虛勢), 어이없고 허무함 또는 거짓이 많고 근거가 없음을 허망(虛妄), 때를 헛되게 그저 보냄을 허송(虛送), 몹시 배고픈 느낌을 허기(虛飢), 쓸데없는 헛된 생각이나 부질없는 생각을 허상(虛想), 너무 과장하여 실속이 없는 말이나 행동을 허풍(虛風), 겸손하게 자기를 낮춤을 겸허(謙虛), 속이 텅 빔을 공허(空虛), 속이 빔을 내허(內虛), 정신이 허약한 병증을 심허(心虛), 위가 허약함을 위허(胃虛), 원기가 약함을 기허(氣虛), 마음이 맑고 잡된 생각이 없어 깨끗함을 청허(淸虛), 높고 텅 빔으로 지위는 높으면서 직분은 없음을 고허(高虛), 마음이 들뜨고 허황함을 부허(浮虛), 푸른 하늘을 벽허(碧虛),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을 일컫는 말을 허심탄회(虛心坦懷),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을 이르는 말을 허장성세(虛張聲勢), 세월을 헛되이 보냄을 일컫는 말을 허송세월(虛送歲月), 방을 비우면 빛이 그 틈새로 들어와 환하다는 뜻으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실생백(虛室生白),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으로 싸우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써 계략이나 수단을 써서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비난하여 싸움을 이르는 말을 허허실실(虛虛實實), 말하기 어려울 만큼 비고 거짓되어 실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허무맹랑(虛無孟浪), 허명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허명무실(虛名無實), 예절이나 법식 등을 겉으로만 꾸며 번드레하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허례허식(虛禮虛飾), 사심이 없고 영묘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의 실체와 작용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허령불매(虛靈不昧)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