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밖에서 찾는 것은
그것은 방법 중에서 가장 먼 방법이 되는 것이고,
유치원 애들한테 일러주는 방법에 지내지 못합니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쉬운 길은 가장 가까운 데서 찾는 것이 제일 쉬운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 땅 속을 뒤져가지고 보물을 찾을라고
허는 것,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 몸밖에 저 하늘에서
진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어리석기가 한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눈으로 볼 때 볼 줄 아는 놈을 찾고
썽이 날 때 썽낼 줄 아는 놈을 찾는다면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가 없고 거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계시다’ 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저 수 억만 키로 우(위)에 저 허공 속에 계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을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헐 수 없다’고
말한 그 말을 바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바로 찾을 수, 찾은 사람은 우리가 언제나 어데서나 하나님 품에 있다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장 가까운 데 계신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도망갈라야 하나님의 품안을 도망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우주에 가뜩 차 계시고 우리의 가슴 속에
언제나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있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저 멀리 허공 속에서 찾고 저 푸른 하늘 저 밖에서 찾는다고 허며는 그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부처님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부처님이 삼천 년전 인도에 계시, 계시다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안 계신 줄 안다면 그 사람은 불교를 옳게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이 우주 속에 충만해 계시고 우리가 말하고 듣고 있는
그 찰나에도 부처님을 여의고는 우리는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보고 듣는 가운데에 소소영영헌 그곳에 부처님은 계신 것입니다.
그 보고 듣는 그놈을 여의고 우리의 자성(自性)을 찾는다던지 부처님을 찾는 동안에는 영원히 부처님을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속에 있으면서 부처님을 찾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을 뵙지 못한 것뿐이고 부처님은 언제나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잠시도 여읠 수 없는 그 부처님 찾는 방법이,
사량심(思量心)을 버리고 ‘이 뭣고?’
이론으로 찾을려 허지 말고 다맛 꽉 맥힌 마음으로
본참화두에 충실헐 때에 우리는 언제나 부처님 품안에
있는 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뭣고?’
이론으로 풀랴고 아니헐 때 우리는 참선을 바로 허고
있는 것이고, 참선을 바로 헐 때에 바로 거기에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