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곡예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 붉은 휘장 속 날갯짓이 슬프다. 그러나 꿈 꾼다. 공중곡예, 제비돌기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질 거라고. 관객의 웃음은 무대 뒤 눈물의 씨앗.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커스단. 자매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고 없다. (1995년 6월28일)
2‘테러리스트 잡는 경찰’
-경찰특공대원 박용수 경사-
태권도 4단, 특공무술 3단, 검도 1단, 특기는 대검 던지기. 그는 화려한 무술로 테러리스트를 1~2초 안에 진압해야 하는 경찰특공대 대원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경찰특공대의 존재가 알려져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경위로 진급한 그는 현재 서울 은평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에 몸담고 있다. (1995년 8월31일)
3‘저축통장 10여개 만든 여고생’
-사랑통장 이영미-
교대 방적공장에서 일하며 꿈 키우던 여고 3년생. 하루 3~4시간 잠자며 받은 45만원 월급을 쪼개 10여개 통장에 저축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중풍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할래요. 저처럼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독자들은 부끄럽다며 삶의 반성문을 보내왔다. (1995년 9월4일)
4‘1무 199패… 드디어 첫승’
-서울대 야구부-
시합에서 이겨본 적 없었다. ‘참가에만 의의를 둔 팀’이라며 홀대받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창단 28년이 되던 지난해 가을, 1무199패의 전적 끝에 드디어 첫승을 거뒀다. (1995년 9월14일)
5‘푸른 눈의 수도승’
-현각스님-
진리를 찾기 위해 안락한 미래가 보장된 예일·하버드대 학위를 포기하고 한국에 온 스님. 한국에 온 이유를 한국 불교가 세속을 떠나 진리의 숲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보도 이후 누구나 알아보는 스타가 됐지만 해탈의 순간을 찾아 오늘도 빈마음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삶은 여전하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도 썼다. (1995년 11월14일)
6‘외롭게
싸우는 할머니들’
-나눔의 집-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은 사죄하라!’ 외치는 할머니들. 말년 오갈 데조차 없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경기 퇴촌 ‘나눔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들의 외로운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슬픔과 분노에 찬 진실을 증언할 할머니들이 한분 두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1996년 1월18일)
7‘노고단 지키는 지리산 할아버지’
-지리산 산장지기 함태식-
지리산 노고단에 최초로 산장이 세워지던 1972년부터 산장을 맡은 함태식씨(77). 난방도 제대로 안되는 노고단에서 나무도둑을 혼내고 조난당한 사람을 구해온 세월이 30년을 넘었다. 칠순이 훌쩍 넘었지만 하산할 생각이 없다는 함씨는 여전히 산장을 지키고 있다. (1996년 1월25일)
8‘감자탕에서 건진 돈과 우애’
-감자탕집 7형제-
7형제가 모두 뼈감자탕집 사장인 집안이 있다. 원조는 큰형 이정만씨. 이화동의 소문난 감자탕집 맛을 그대로 재현한 이씨의 손맛은 손님을 불러모았다. 이후 6명의 동생들이 나란히 감자탕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6년 3월27일)
9‘노동자 출신 검사, 국회로’
-고졸검사 노관규-
고등학교 졸업후 구로공단에서 1년 동안 노동자로, 이후 하급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3전4기 끝에 사법고시 합격한 남다른 이력. 찢어지게 가난한 삶에서 고졸, 고학, 고집으로 고시 합격한 그의 수기는 인간승리의 강한 메시지를 남겨줬다. 이후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로 활약하다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1996년 7월2일)
10‘엄마·아빠 보고싶어요’
-바다 하늘 땅 3남매-
예쁜 이름만 지어주고 집을 나가 버린 엄마, 아빠. 병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고사리 손으로 동생 하늘과 땅을 돌보던 소년가장 김바다. 주일이면 교회에 달려가 “엄마, 아빠와 살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조부모가 돌아가신 후 파주 ‘평화원’에서 살고 있다. 어느새 고교생, 중학생이 됐다. (1996년 8월13일)
11‘정선에서 자유를 찾다’
-귀순용사
이영광-
이영광씨는 세계일주의 꿈을 품고 40년 전 휴전선을 넘었다. 그러나 팍팍한 자본주의 경쟁체제 역시 그에게는 갑갑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들어간 강원도 정선군의 단임마을은 이제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1996년 9월9일)
12‘친절을 파는 기사식당’
-송림식당 모녀-
서울의 택시기사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송림식당. 기막힌 돼지불고기 백반의 맛도 유명하지만 박정자, 이연화씨 두 모녀의 친절이 더 유명하다. 무료 세차 서비스와 잔돈을 거슬러주는 미소는 식탁 5개의 조그만 식당을 4층짜리 건물로 크게 했다. 세월은 흘러도 식당의 맛과 인심은 변함이 없다. (1996년 10월30일)
13‘마지막 홍어잡이배의 전설’
-‘청신호’ 사람들-
한때 흑산도 경기를 좌우했던 홍어잡이배. 대형 선박이 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더니 청신호 한대만 남았다. 배를 타야 마음이 편한 섬사람들. 서로 외로움을 보듬어 안으며 홍어잡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기사가 나간 뒤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현재 8척이 출어하고 있다. (1996년 12월19일)
14‘팔다리 없어도 잘 자라요’
-아기예수 구원이-
팔과 다리 없이 태어났다. 부모는 ‘아기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다. 타락하고 오염된 인간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고 하늘이 보낸 가르침. 손 대신 입으로 책장을 넘기며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책을 읽는다. 충북 청원군 외진마을 ‘성 황석두 루가 전교수도회’가 보금자리.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기를. (1996년 12월30일)
15‘백두대간 종주가 시작이었죠’
-장용호·조해 부자-
1년2개월간 총 41차례에 걸친 산행 끝에 진부령부터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1,700리를 종주했다. 부자는 산이슬에 등산화를 함께 적시며 서로를 알고 이해하게 됐다. 이들은 백두대간 종주 후 1년여 동안 낙동정맥, 금북정맥을 차례로 종주했다. (1997년 1월16일)
16‘섬마을 소녀가장 이젠 대학생’
-청산도 소녀가장 양보라미-
푸른 섬을 닮은 11살짜리 여자 아이.
젖먹이 때 엄마, 아빠와 헤어져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수발하며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던 모습이 큰 감동을 줬다. 새벽에 일어나 밥 짓고 농사 짓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 눈빛이 아직 선하다. 지금은 섬을 떠나 스튜어디스의 꿈을 키우는 대학생이다. (1997년 2월7일)
17‘장애는 이겨내라고 있는 거요’
-장애인의 대부 양복규-
전주시 완산구 전동 동아당 한약방 원장. 1원 한푼 헛되게 쓰지 않는 구두쇠. 아끼고 아낀 재산을 털어 동암고, 동암사회복지관, 동암재활원, 초등학교 등 장애인 시설과 교육기관을 세웠다.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1급 장애인으로 몸 성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 주인공. 지금도 병든 이웃을 위해 일하고 있다. (1997년 4월4일)
18‘벌통이 두배이상 늘었습니다’
-양봉가 안상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제주, 경북, 철원 등 전국을 돌며 꿀을 모아 팔았다. ‘벌수염 사나이’로 유명하다. 매거진X에 보도된 뒤 이름이 알려져 방송에 80여회 출연하고 청와대에서 신지식인상도 받았다. 당시 280개였던 벌통이 600여개로 늘었다. (1997년 5월26일)
19‘천사는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혈액종양 투병하던 민선홍-
“아빠 나 안죽어. 제발 울지마….” 하늘이 시샘한 것일까. 예쁘게 자라 패션모델이 되는 게 꿈이었다. 1m67의 키, 백옥처럼 흰 얼굴. 남자 아이보다 더 기운 센 아이. 갑자기 찾아온 혈액종양이 꿈을 삼켰다. 수천만원의 성금이 모아지며 따뜻한 사랑이 있음을 알려줬지만 끝내 하늘로 떠났다. (1997년 5월29일)
20‘22남매를 키우는 처녀엄마’
-SOS 어린이마을 정근희-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아이들만을 위해 살 수 있겠습니까?” “예.” 25세 철부지로 시작한 엄마노릇. 갈 곳 없는 성이 다른 22남매를 키우며 처녀엄마는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한핏줄로 맺어진 식구는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울타리다. 엄마의 손길은 지금도 따뜻하다. (1997년 6월5일)
21‘야생화 찾아 20년’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정연권-
국내 최초 야생화 향수 ‘노고단’을 개발했다. 야생화를 찾아 틈만 나면 지리산에 오른 게 어느덧 20년. 갑작스레 쏟아지는 장대비도, 어두운 밤의 숲길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일본의 한 기업에 원추리, 물매화 등 야생화 압화 10만달러어치 수출계약을 맺었다. (1997년 6월9일)
22‘한국노래에 푹 빠졌어요’
-일본인밴드 ‘곱창전골’-
일본인 4인조 밴드. 우연히 신중현, 김창완의 음악을 듣고 홀딱 반해 밴드를 결성했다. 99년 한국어 첫앨범 ‘안녕하시므니까’를 발표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하는 등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7년 10월31일)
23‘소리를 찾으려 소리를 잃어도’
-타악기 연주자 최소리-
20여년을 소리를 찾아 무언가를 두드리며 살았던 세월. 록그룹의 드러머였던 그는 무조건 소리가 좋아 소리 자체를 찾아다녔다. 97년 소리연구소를 내며 아이 낳으면 주려고 했던 이름 ‘소리’를 자신이 가졌다. 타악기의 최고주자로 우뚝 섰지만 소음성 난청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소리를 찾아 소리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1997년 11월7일)
24‘자연을 닮은 그는 떠났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
강아지똥, 몽실언니, 점득이네…. 100편이 넘는 주옥같은 그의 동화는 아동문학사에 한획을 그었다. 매거진X는 글쓰기를 중단한 그를 97년 만난데 이어 2004년 5월, 병마에 시달리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자연을 닮은 작가 권정생은 하찮은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고 먼길을 떠났다. (1997년 11월21일, 2004년 5월1일)
25‘사랑때문에 밀항만 14번’
-밀항전과자 정상실-
우연히 타게 됐던 미국행 밀항선. 그곳에서 독일여성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 정씨는 불법체류로 쫓겨난다. 이후 30년간 밀항만 14번. 함부르크행 배만 보이면 무조건 탔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이후에도 전과자인 그에겐 여권이 발급되지 않는다. 한 여인 때문에 망쳐버린 인생.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 속에나 나옴직한 사랑의 힘. (1998년 1월23일)
첫댓글 이영광씨는 김형경씨 소설 '성에'에 나오시는 그분 같네요. 일기가 참 재미난데.. 남북한 체제를, 이데올로기를 떠나 살아보니 어떻더라.. 이야기한 게 좋았어요. 제각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그런데 권정생 선생님은 지금 살아계시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