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진국 반열
십이월이 하순에 접어든 셋째 주말이다.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달 초순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소환되어 탄핵 정국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기증이 난다. 나는 방송 화면은 접근하지 않아 뉴스에 둔감해도 어쩌다 귀동냥으로 듣고 인터넷으로 뜬 기사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된다. 이런 와중 나라 밖으로부터 자랑스러운 뉴스거리 하나가 시사 뉴스에 묻혀 지나갔다.
지난 시월 스웨덴 한림원에서 우리나라 작가 한강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발표 열흘 전 시상식이 있었다. 나라 안팎에서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는가 하면, 한강이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누릴 작품 세계를 구축한 훌륭한 작가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모국어로 쓰인 소설이 외국어로 번역 세계인들에게 읽혀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어 어깨가 으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은 바 있지만 문학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노벨상이다. 앞으로 과학 분야에서도 한국인 수상자가 연이어 나오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과학 영역의 물리, 화학, 생리 의학에 이어 경제학까지 6개 분야에서 지난해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자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다. 이 가운데 문학상과 평화상은 수상자 선정에서 가끔 논란이 일기도 한다.
지금은 잊혀 가지만 매년 가을 스웨덴 한림원에서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즈음 기자들이 자택 밖에서 밤샐 정도로 주목을 받은 한 문사가 있었다. 한강보다 먼저 우리나라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법도 했는데 그가 시인 고은이다. 젊은 날 법정 스님과 같이 효봉 선사 제자로 불도를 수행하다 환속한 시인으로 문학적 역량이 대단했는데 성 추문에 휩쓸려 후보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 문턱에서 주저앉은 고은 말고도 우리나라에서 문학상을 받을 작가 반열에 오른 이를 꼽으라면 박경리 선생이 아닌가 한다. 예외적 경우가 있었지만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생존자에만 수여하기에 박경리 선생의 수상 기회는 사라졌다. 노벨상은 인종과 국적과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준다지만 문학상에서 한국인이 또 배출되려면 한 세대는 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경리 외에도 우리나라 현역 문인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반열에 오를 만한 작가를 꼽으라면 세 명 떠오른다. 이에 끼지 못한 문사는 서운하려나. 셋 모두 소설가인데 두 명은 진보에서, 한 명은 보수에서 진영을 대표하는 작가적 중량감이 돋보인다. 그들은 아직도 왕성한 집필을 하는 조정래와 황석영과 이문열이다. 조정래와 황석영 여든을 넘겼고 이문열도 칠십대 후반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은 부녀 문인으로도 유명하다. 생존해 있는 부친의 문학적 역량도 대단한 작가로 나는 그의 작품도 다수 읽었고 젊은 날 밀양에서 대면해 딸이 문학의 길로 들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 한승원은 중앙대로 흡수된 서라벌예술대학 출신으로 당시 밀양에 살던 친구 시인 이재금을 찾아왔다. 이재금 시인은 오십대에 지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올가을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자로 선정되자 그의 작품을 펴낸 출판사는 유례가 없는 호황을 누렸다는 후문이 들렸다. 그의 ‘채식주의자’는 이미 읽은 바였고, 시월 이후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독파했는데 가슴은 납덩이가 누르는 듯 무겁게 느껴왔다. 내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지만 광주 5·18은 우리 현대사였고, 제주 4·3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 역사의 상흔을 다루었다.
십이월 셋째 토요일은 날씨가 추워 실내 수업으로 전환했다.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자 흐린 하늘에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창원역에서 근교 농촌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가술에 이르러 평생학습센터 도서관을 찾았다.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인 열람실에서 앞서 언급한 노벨상 수상자 후보에 올릴만한 이로 꼽은 조정래가 십여 전 전 펴낸 ‘정글 만리’를 펼쳐 오늘날 중국을 새롭게 봤다. 2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