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스물 다섯 번째로 서울 의릉(懿陵, 경종과 선의왕후)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서울 의릉
의릉(懿陵, 경종과 선의왕후)
위치 : 서울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조성 연도 : 1724년(영조 즉위), 1730년(영조 6)
왕릉 형식 : 동원상하릉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동원상하릉은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 아래로 조성한 능으로,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조성하였다. 효종 영릉과 경종 의릉 2기가 해당되며, 왕의 능침에만 곡장을 둘렀다.
▷ 의릉(懿陵) 이야기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위에 봉분이 경종의 능이고, 아래 봉분이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렇게 능을 위아래로 조성한 이유는 쌍릉의 형태처럼 봉분을 나란히 조성할 경우,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이 벗어나기 때문에 위아래로 배치한 것이다.
의릉은 1724년(경종 4)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양주 중랑포 천장산 언덕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이후 1730년(영조 6)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의릉 아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의릉 두 능의 봉분은 모두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둘렀고, 난간석에 십이지신을 문자로 새겼다. 경종의 능침과 선의왕후 능침 석물은 각각 조성되었으나 곡장은 경종의 능침에만 둘렀다. 의릉의 무석인은 갑옷 아래에 표범가죽을 두른 모습으로 조각된 것이 특징인데, 특히 경종의 능침 무석인이 두른 표범가죽은 둥글게 말린 꼬리까지 표현되어 있다. 또 선의왕후의 능침 석호는 다른 왕릉의 석호와 달리 꼬리가 등 위까지 올라가게 표현되었다.
의릉은 1960년대 초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의릉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능 주변으로 청사, 운동장, 강당 등을 짓고 일반인에게 비공개하였다. 이후 회의실을 비롯하여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인공연못을 조성하는 등 훼손이 심하였다. 이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고 청사를 서초구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외래수종 제거, 전통수종 식재, 인공연못 성토, 금천교 복원 등 기초적인 의릉 능제복원 공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경종(景宗) 이야기
경종(재세 : 1688년 음력 10월 28일(27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 재위 : 1720년 음력 6월 13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은 숙종과 옥산부대빈(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8년(숙종 14) 창경궁 취선당에서 태어났다. 경종이 태어나고 원자로 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기사환국(己巳換局,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이 교체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690년(숙종 16)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701년(숙종 27)에 무고의 옥으로 어머니 장씨의 죽음을 목격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1717년(숙종 43) 숙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고(대리청정), 1720년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경덕궁(현 경희궁) 숭정문에서 왕위에 올랐다. 경종 재위기간에는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여 옥사가 일어나 이를 수습하였고, 1723년(경종 3) 서양의 소화기를 참고하여 수총기(水銃器)가 만들어졌다. 이후 1724년(경종 4)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종 재위 기간인 1721년(경종 1)과 1722년(경종 2)에는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의 왕세제 책봉을 둘러싸고 큰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를 신축·임인옥사(신임옥사)라고 한다. 1721년 당시 노론의 4대신인 김창집, 이건명, 이이명, 조태채를 중심으로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자는 주장을 하였는데, 소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은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자 노론은 더 나아가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심해졌고, 소론은 이 일을 두고 노론 4대신을 유배 보냈다. 다음 해인 1722년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고변이 원인이 되어 소론은 노론 4대신을 사사하고 그 주변 인물들을 제거하였다. 이렇게 반대파를 제거한 소론은 정권을 잡게 되었으나 경종이 재위 4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실권을 잃었다.
* 경종 탄생일 : 『숙종실록』에는 10월 27일(숙종실록 19권, 14년 10월 27일)로, 지문(誌文)과 행장(行狀), 표석에는 10월 28일로 기록되어 있음.
▷ 선의왕후(宣懿王后) 이야기
선의왕후 어씨(재세 : 1705년 음력 10월 29일 ~ 1730년 음력 6월 29일)는 본관이 함종인 함원부원군 어유구와 완릉부부인 이씨의 셋째 딸로 1705년(숙종 31)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18년(숙종 44) 왕세자빈 심씨(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경종과의 사이에서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영조가 즉위하자 경순왕대비(敬純王大妃)가 되었다. 이후 1730년(영조 6) 경덕궁(현 경희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서울 懿陵 舊 中央情報部 講堂)
이 강당은 1962년부터 1995년까지 옛 중앙정보부에서 사용했던 강당으로 1962년에 건축가 나상진의 설계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10년 뒤 강당 옆에 회의실을 지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곳에서 1972년 분단 이후 최초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과 관련하여 합의한 「7·4남북공동설명」이 발표된 역사적인 장소성을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첫댓글 아..........21로 올라갔네요....아쉽스!!
22222222222222
@《해인재인강인》아빠
숫자에는 쉼표를 찍어야죠.
222,222,222,22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