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공 스타다큐]설기현이 영국 빅리그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박지성, 이영표의 그늘에 가려 관심을 받지 못할 때도, 세네갈 전 역주행으로 비난을 받을 때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리미어리그의 큰 별로 우뚝 섰다.
“여려움 딛고 성공하기까지 우리 가족이 흘렸던 눈물”
설기현 가족은 모처럼 만에 강릉 어머니 집에서 다함께 추석을 보냈다. 아시안컵 대회를 치르기 위해 지난 9월 30일 가족과 함께 귀국한 설기현은 시리아 전을 마치고 지난 10월 14일 영국으로 출국하기에 위해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항에서 만난 어머니 김명자씨는 얼마나 좋은지 싱글벙글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단다. 엄마, 아빠의 장점만을 빼어 닮은 큰아들 인웅이(5세)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다. 아빠의 영향 탓인지 오히려 아주 익숙한 표정이다. 둘째, 여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탑승수속을 밟는 아내 윤미(25세)씨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지금 올라오는 길이에요.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강릉 시댁에서 추석을 보내고, 부산 친정으로 내려갔어요. 오빠의 축구 경기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시리아 전은 부산에서 TV를 통해 봤구요. 내일이 여진이 돌이라, 영국에 가면 조촐하게 돌잔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인웅이의 손을 잡은 설기현은 여기저기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팔에 상처를 입은 것 외에는 대체로 건강해 보였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며 손을 흔들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빛을 뿜었다. 역시 스포츠 선수에겐 얼마나 활약하느냐가 인기의 척도인 것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설기현과 그의 가족이었다.
설기현(27세)의 전성시대다. 지난 시즌 박지성과 이영표를 빼고 프리미어리그를 이야기할 수 없었다면 올 시즌에는 설기현이다. 그러나 박지성, 이영표와는 달리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이뤄낸 성공이라 더욱 극적이다. 특히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과 함께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 속에 영국 땅을 밟았다면 조용히 영국에 도착한 설기현은 언제나 언론과 팬들의 관심 밖이었다.
설기현은 지금의 자리(프리미어리그)에 오기까지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는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챔피언십 울버햄프턴에서 실감했다. 지난 2004년 벨기에 최고 명문 구단인 안더레흐트에서 영국 땅을 밟을 때는 솔직히 1년이면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갈 거라 생각했다. 프리미어리그라는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동시에 채찍질했다.
그러나 자리를 잡을 만하니 시련이 찾아왔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설기현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존스 감독이 경질된 것. 글렌 호들 감독이 오기 전 한 달 동안 감독대행을 맡은 스튜어트 그레이 코치는 설기현을 교체 멤버로 밀어냈다. 지난해에는 피부병과 부진으로 벤치를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일이 안 되려고 하는지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도 설기현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소속팀에서 못 뛰니 대표팀에서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월드컵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의 골을 이끌어낸 멋진 센터링으로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지금 생각해도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그렇게 믿음을 주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이후 챔피언십 챔피언인 레딩의 스티브 코펠 감독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레딩과 인연이 맺어지자 자신감이 새로 솟구쳤다. 혼자라고 느낄 때 그래도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진흙 속의 진주였던 설기현은 첫 경기에서부터 레딩 돌풍의 주인공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그의 성공 뒤에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 모두 맛본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것 자체에 그는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9월 19일, 프리미어리그 데뷔 이후 세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멋진 결승골을 터뜨리자 현지에서의 그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는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에 주목했다. 박지성, 이영표에게만 관심을 쏟던 한국 기자들도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국 기자들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사화되고 있다. 모두 축구를 잘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들이다. 불편함도 있지만 그는 싫은 기색 없이 인터뷰에 응한다.
그는 현지 기자들과 영어로 인터뷰를 유창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며 손사레를 친다. 사실 그는 언젠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할 그날을 위해 벨기에 시절부터 개인교사를 두고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왔다. 지금은 통역도 따로 두지 않을 정도로 감독 및 스태프,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뷔골을 넣을 당시의 소감을 물으니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기뻤다”고 한다. 빨리 자랑하고 싶어 서둘러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와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골은 더욱 멋졌다. 이번에는 강릉의 어머니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뉴스 보고 알았어요. 유선방송이 나오지 않아 기현이 골 넣은 다음날 바로 위성방송 신청했어요. 요즘 기현이랑 전화 통화를 하면 그 애의 기분이 상당히 좋은 걸 알 수 있어요. 다른 거 다 떠나서 딱 한 가지!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축구의 재미를 새삼 만끽하고 있죠.”
벨기에 진출 후 레딩 FC 입단 전까지 좋은 일보다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던 탓에 스스로 잘 안 풀리는 운명이라고 자책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인고의 세월을 보낸 덕분에 선수로서 대접을 받고 운동을 하고 있으니 엄마로서 너무 대견스럽고 흐뭇할 수밖에 없다.
“과일 좌판은 지난해 12월에 걷어버렸어요.”
설기현 선수가 8살 되던 해 탄광사고로 남편을 잃고 서른한 살 청상으로 네 아들을 홀로 키웠다. 포장마차 3년, 막노동 12년, 과일노점 3년 등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설기현은 훌륭한 선수가 돼 엄마를 호강시켜드리겠다고 결심했다. 2000년 벨기에로 이적하면서 받은 계약금을 몽땅 털어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린 일이다.
온갖 힘든 세월을 보낸 그녀지만 요즘은 “손자들 예뻐, 며느리 착해, 아들 성적 좋아” 웃을 일만 있단다. 특히 머나먼 타지에서 아이들 키우며 힘들 텐데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집안일을 챙기는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고 한다.
“나의 성공 배경은 든든한 가족”
설기현의 내조에만 온 신경을 다 쓰는 윤미씨는 설기현의 어머니와 더불어 ‘프리미어리거 설기현’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설기현의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친 순애보의 여주인공 같은 그녀다.
광운대 4학년이던 2000년, 벨기에 입단 후 낯선 땅에 홀로 던져진 설기현은 향수병에 시달렸다. 당시 친구 동생이던 여자친구 윤미씨에게 “날 위해 희생하면 나중엔 널 위해 희생하겠다”며 제발 와달라고 매달렸다. 그녀는 두말 없이 돈도 명예도 없는 그에게로 날아갔다. 2002년 월드컵 때 인웅이가 태어났고, 이듬해인 2003년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딸 여진이가 태어난 것이다.
지난해 태어난 딸 여진이까지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설기현은 아이들을 보면 힘이 부쩍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단다. 평상시 훈련이나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꼭 인웅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다고 한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인웅이도 축구를 좋아한다. 여차하면 축구선수로 대를 이을 지도 모르겠다. 원래 계획보다 늦게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지만 가족들이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할 꿈이었다. 설기현은 특히 아내 윤미씨가 없었다면 아마 한국으로 일찌감치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결혼 5년차를 맞는 아내 윤미씨는 운동 선수를 남편으로 둔 특별함 때문에 인터뷰 때마다 내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내조란 게 삼계탕 끓여주고 맛있는 반찬 해주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남편을 이해하고 편하게 해주는 게 최고의 내조라고 봐요. 음식이야 밖에서도 잘 먹고 다니기 때문에 제가 잘 해줘도 별로 티가 안 나요.”
설기현 선수는 자신이 올해 이렇게 펄펄 나는 비결은 아내가 해주는 음식 때문이라며 그 공을 윤미씨에게 돌렸다. 사실 챔피언스리그와 한국을 오가며 벌이는 국가대표 경기 등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느라 체력이 말이 아니다. 지난 주에는 허리 부위와 무릎 인대 부위가 약간 손상돼 2주 정도 결장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두 아이 키우느라 외로울 새 없는 영국 생활
이들 네 식구의 보금자리는 영국의 작은 도시 레딩에 위치한 아담한 전원주택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울버햄프턴에 살던 가족은 설기현이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이사를 했다. 벨기에를 거쳐 지금의 영국 레딩에 이르기까지 6년 동안 네 번 짐을 쌌다 풀렀다를 반복했다.
차가 없으면 아예 이동이 불가능한 시골에 살고 있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어요. 정말 심심해졌으면 좋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들 때문에 홈경기가 아니고서는 남편의 시합을 보러 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빠 뛰는 모습 보러 가자”고 보채는 아들 인웅이의 성화에 집을 나서야 한다.
아내 윤미씨는 6년 동안의 유럽생활을 통해 영어가 많이 늘었다. 전공인 미술 공부는 두 아이 키우느라 엄두도 못내고 있다.
가슴 아팠던 기억도 있다. 월드컵 전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역주행 사건’으로 온갖 비난에 시달리는 남편을 보며 윤미씨는 남모를 가슴앓이를 했다.
“4년 전에도 남편의 플레이에 대해 말들이 많았거든요. 그때 참 힘든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또 다른 차원이더라구요. 인터넷에 대해선 어느 정도 무뎌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믿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마구 흥분하니까 기현씨가 그냥 참고 넘기라고 충고하더라구요. 이전엔 그 말을 제가 했었는데 말이죠.”
이번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는 설기현은 일단 주중에 있는 경기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9시간의 시차와 함께 15시간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만큼 피곤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걱정없단다. 아내 윤미씨는 돌아가면 여진이 돌에 인웅이 유치원 준비 등 집안일이 산적해 있어 정신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빨리 이 어수선함에서 벗어나 레딩의 자택에서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출국 이틀 뒤 설기현은 영국 최강 클럽팀 첼시와의 시합에서 피로 때문에 라인업에서 빠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당당히 선발출장해 65분간 활약을 펼치고 홈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교체됐다. 그의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첫댓글 설기현 선수 멋지네여 ㅠ.ㅠ 제발 조금더 힘내셔서 프리미어리그에서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시길.
아내 이쁘다
아내 이쁘다
그렇지만 딸은 아버지와 판박이라는거...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