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야!”
축축한 손이 뒤로 확 딸려가는 가 싶더니 원귀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든 해수 앞에 초란이 누나와 할머니가 엄마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의 등 뒤에 매달린 초란이 누나가 소리를 쳤다.
“해수야! 얼른 도망가!” 원귀가 버둥거리면서 괴성을 질렀다. 매끈한 철판을 갈퀴로 마구 긁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간신히 괴물을 잡고 이리 저리 휘둘리다가 나가 떨어졌다.
“어이구!”
“할머니! 해수 데리고 어서 나가, 빨리!”엄마는 힘이 셌다. 초란이 누나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너는 어떡하고, 이 년아!”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해수까지 먹히면 이 놈 누가 막을 거야! 얼른 가!” 원귀가 괴성을 다시 한 번 지르면서 몸부림쳤다. 초란이 사시나무 흔들리듯 마구 흔들거렸다. 막는 게 아니라 간신히 잡고 버티는 정도였다.
“그러다 너 죽는다고 이 년아!”
“에이씨, 한 번 죽었는데 뭐 또 죽어? 얼른 데리고 나가!”
결국 엄마에게서 나가 떨어져 버린 누나는 구석에 팽개쳐져 버렸다. 할머니는 급히 몸을 추슬러서 해수에게로 갔다.
“해수야, 어여 일어나, 어여.”
“할머니, 나 무서…”
초란이 비명을 질렀다. 원귀가 누나의 목을 잡고 물어뜯고 있었다.
“어이구, 해수야. 어서!”
할머니의 재촉에 해수도 젖은 바지를 끌면서 일어났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해수는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얼른! 얼른 가야 혀!” 할머니의 재촉에 해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찾았지만 1층에 머물러 있었고, 그는 무심코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그럴 시간 없당께!”
할머니가 손짓을 하면서 재촉하는 바람에 그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으로 뛰어내려 갔다. 8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할머니는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가…
뒤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울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해수는 숨을 삼키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위층에서 엄마가 쫓아오고 있었다. 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아이구, 이걸 어째?”
할머니의 탄식에 정신을 차린 해수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서 다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아파트 내벽을 마구 튕기며 해수의 귀에 다시 돌아왔다.
이리 와…
해수는 뒤를 돌아보기 싫었으나 엄마의 목소리는 무서우면서도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리 와…
푸르죽죽한 얼굴에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해수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고, 그 눈은 해수의 바로 코앞에 있었다. 해수는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 나가려고 했으나 그만 발이 꼬이고 말았다.
“아얏!”
“해수야!” 어디까지 굴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뒹군 해수는 무릎과 손바닥이 아파오면서 눈물을 다시 흘렸다. 앞서 가던 할머니가 기겁을 하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원귀가 만족하는 괴성을 지르면서 바로 그에게 덮쳐갔다. 그러나 그 순간은 다시 한 번 저지당했다.
“할망구가 얼른 도망가라니까…”
얼굴이 상처투성이로 바뀐 초란이 누나가 간신히 뒤에서 원귀를 잡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좌절된 목적에 쇳소리를 냈고, 그 와중에 초란은 할머니에게 말했다.
“얼른 도망…”
분노에 찬 원귀가 자신을 잡은 초란이 누나의 팔을 잡아서 꺾기 시작했다. 초란이 누나의 신음을 들을 겨를도 없이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이어졌다. 누나가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그녀의 팔이 팔꿈치에서 뜯어져나갔다. 찢어진 부분에서 피가, 아니 해수의 눈에는 피로 보이는 이상한 잿가루가 마구 흘러내렸다.
초란은 비명을 삼키며 다른 쪽 팔로 죽을힘을 다해 원귀를 붙잡았고, 원귀는 더 약이 올라 괴성을 질렀다.
“초란아! 아이구!!” 할머니가 안타깝게 불렀지만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다. 초란은 마지막 힘을 짜내 절규했다.
“도망가라니까!!!”
할머니는 뻣뻣하게 굳더니 이내 해수에게 몸을 돌렸다.
“해수야, 얼른 일어서, 여기서 얼른 나가야 돼.”
“누나가…”
“누나는 괜찮을껴. 어여, 어여 일어나자!” 해수는 일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무서워…”
“그려, 그려, 할미도 무서워, 근디 여기서 도망 안가믄, 아니 도망 못가믄 해수…큰 일 나는 겨. 학교도 못 가구, 친구하고도 못 놀구…” 초란이의 다른 한 쪽 팔이 뜯겨나가는 소리를 할머니는 애써 무시했다. “할미하고도 못 놀아.”
“정말?”
해수가 마지막 말에 큰 반응을 보였고, 할머니는 그게 반가웠다. “그려, 그러니께 얼른 뛰어서 할미집으로 가자, 잉? 우리 해수 달리기 잘하지?”
해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실제로 그는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파트 미화를 위한 가로수들이 어둠에 가려졌지만 격렬히 움직이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해수는 하마터면 밀려나갈 뻔 하는 여린 몸을 추스르고 얼른 할머니가 말한 지하 주차장 입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귀에는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도 엄마가 지르는 괴성으로 들렸다. 해수는 어느새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잊고 달렸고, 얼마 안 있어서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광풍이 그의 입장을 환영해주고 있었다.
“할머니…” 메아리마저도 조심스럽게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을 때렸다. 형광등조차도 무슨 힘에 눌린 듯 빛을 발하지 않는 곳에서 해수는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방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할머니…” 대답이 없다. 할머니가 안 계시다고 생각하지 대수롭지 않았던 주위에 어둠조차도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벽 쪽으로 가서 찾아보려고 했지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자동차들이 그를 막았다. 어디랄 것도 없이 그는 이리저리 허둥거리며 헤매고 있었다. 전에 엄마하고 아빠하고 같이 갔던 ‘미로의 집’보다 더 어렵고 무서웠다. 시커먼 점액이 뒤덮인 것 같은 벽 쪽에는 가기도 싫었다.
“해수야! 여기여!”
할머니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자 이제껏 해수에게 보이지 않았던 문이 보였다. 그 문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 생겨난 듯한 느낌을 그는 알지 못했다. 해수는 그 쪽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해수야?” 반대편에서, 그러니까 주차장 입구에서 해수에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 해수는 할머니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해수야, 어디 있어? 해수야…”
엄마다! 아까 전에 괴물 같았던 엄마 목소리가 바뀌었다. 예전처럼 상냥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첫댓글 헉..해수엄마가 원귀였군요-_-;;...초란이언니 불쌍해요 ㅠ.ㅠ...
아 읽고 나니 손에 땀이 베여 있습니다ㅜㅜ
워메- 무서운거 ㅠ
ㅠ.ㅠ 다음편은 언제 올라오나요?? 해수가 엄마한테 가면 안되는데....
해수가 불쌍하네ㅠ엄마한테 가고싶어도 갈수없으니ㅠ 그나저나 스릴만땅이네여ㅎ
성원 보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__)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