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동 최윤덕도서관으로
울산 친구로부터 가을에 한 차례 택배로 부쳐온 고성 자란만 가리비가 어제 또 부쳐와 찜통에 익혀 살을 까먹었다. 우리는 늦깎이로 교육대학에 만나 초등교사로 재직 중 지역은 달라도 야간 강좌 대학 국문과에 진학해 4년을 꼬박 다녔다. 요새 뜬금없이 소환된 ‘서울의 봄’ 당시 군사 정권이 시위 대학생을 강제 징집하려고 졸업 정원제를 시행해 편입생을 받을 여력이 없어서다.
친구도 나처럼 초등에서 중등으로 전직해 잠시 국어를 가르치다가 아주 드물게 다시 초등 교단으로 복귀했다. 다른 교육대학 동기들을 다수가 장학사를 하고 교장도 역임했으나 친구와 나는 평교사로 교직을 마쳤다. 퇴직하고 보니 서로 지나온 이력에서 학교 관리직에 이르지 못하고 정년을 맞음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규모가 크든 작든 조직을 끌어갈 깜냥이 아님을 스스로 안다.
친구는 중년 들어 경주 산내에 꽤 넓은 농장을 마련했다. 일손을 도우러 주말이나 여름 방학에 산방을 찾아가곤 했으나 농사일이 지쳐 처분해 홀가분히 지낸다. 그 이후 코로나가 덮쳐 와 서로는 자주 대면 못해도 마음은 끈끈하게 이어져 온다. 해가 바뀐 새해 일월 어느 날 북면 마금산 온천장에서 다른 친구 내외들과 얼굴을 보기로 예정되어 지난주 숙소 여건을 확인해 놓았다.
며칠째 아침 기온이 빙점 부근 내려간 십이월 넷째 일요일이다. 지난 일요일은 북면 내산 산등선을 넘어 함안보를 빠져나온 강 언저리를 누벼 온천 족욕장에 발을 담그고 왔다. 이번 일요일 아침도 북면으로 나서는데 온천장 못가 무동 신도시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곳은 창원이 낳은 조선 초기 인물 최윤덕 출생지와 가까워 그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이 신축되어 가끔 들린다.
102번을 타고 원이대로에서 월영동으로 가던 차를 내려 북면으로 가는 17번 버스로 갈아탔다. 소답동을 거쳐 천주암 아래에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감계 신도시와 동전 일반산업단지를 지났다. 동전 교차로에서 무동으로 가니 거기도 감계만큼 규모가 되는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입주민 자녀들이 다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보였다. 몇 차례 들린 산기슭의 최윤덕도서관을 찾아갔다.
지난여름은 무척이나 더워 냉방이 잘 된 공공도서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층 부모들이 다수 보였는데 겨울에는 이른 시각이라선지 열람실이 한산했다. 내가 지정석 삼아 앉았던 구석진 곳 한 자리 차지해 놓고 서가로 다가가 책을 골라 뽑았다. 약초와 꽃에 관한 도감에 이어 인문학 코너에서 눈길을 끄는 책까지 다섯 권을 가려내 열람석으로 돌아와 독서삼매에 빠졌다.
어제도 대산 마을도서관에서 약초에 관한 두꺼운 도감을 일별했는데 부피가 큰 책은 대출하지 않고 즉석에서 펼쳐 읽고 제자리 꽂아둠이 편했다. 틈이 날 때 도서관에서 펼쳐 본 야생화나 산야초 도록은 봄이나 여름 산자락을 누비는 현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약초에 관한 도록을 먼저 펼치고 다음에 이어진 책도 화초 도감인데 거기서도 야생화나 산야초 정보를 취할 수 있었다.
때가 되어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받아 준비한 술빵으로 한 끼를 때웠다. 이후 열람실로 돌아오니 오후에는 햇살이 퍼져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다수 보였다. 열람석에서 아침에 뽑아둔 김종원의 ‘매일 인문학 공부’를 펼쳤다. 그 책 6장 ‘성장’ 편에 ‘고독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 자에게는 지혜를 담은 문장을 쓸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나에게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날씨가 추워 자연 학교는 실내수업으로 도서관에서 한나절 보내고 나와 온천장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도중에 ‘최윤덕도서관’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여진과 왜를 쫓아 조선 초 국경 그은 / 내곡리 태어나서 사리실 묻힌 장상 / 최윤덕 얼을 받드는 도서관을 세웠다 // 무동리 산중 동네 박씨들 살던 터에 / 아파트 숲을 이뤄 입주민 문화시설 / 젊은 층 이이 데려와 독서 열기 뜨겁다” 2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