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은 없어도 되는 장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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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륵꾸륵 뱃속이 요란하더니 역시 설사다. 화장실을 오락가락하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장 속에서도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다. 우리 인간의 장에는 100조 마리 이상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설사는 이 박테리아들에겐 거주지를 휩쓸어버리는 태풍이나 마찬가지다. 심한 설사는 유익균, 유해균 따질 것 없이 대장을 초토화 시킨다. 그래도 대장에겐 믿는 구석이 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천연덕스럽게 원래 모습을 되찾는 들판처럼, 균들이 금방 장 속에 다시 자리를 잡고 제 할 일을 하리란 믿음이 있다.
만일 맹장 수술, 정확하게 말하자면 맹장 아래 붙은 충수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장내 환경이 복구되는 데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그곳이 바로 몸속 유익균들의 은신처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감춰두려면 입지 선정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충수의 위치는 절묘하다. 맹장은 소장이 끝나고 대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위치한 주머니 모양으로 생긴 기관이다. 충수는 여기에 벌레 모양으로 늘어진 6~10cm 크기의 장기다. 소화기관과 아주 가깝지만 정작 소장서 소화된 음식물은 이곳을 거치지 않고 지나간다.
사진. 맹장은 대장이 시작되는 부분에 위치한 주머니 모양의 기관이다. 충수는 여기에 벌레 모양으로 늘어진 6~10cm 크기의 장기다. (출처: shtterstock)
■ 충수는 스파이?!
말하자면 충수는 스파이 같다. 소화기관인 척하며 장에 붙어 있지만 실은 면역기관이다. 충수는 유익한 박테리아들을 가득 담고, 맹장 아래에 붙어 장의 움직임을 살핀다. 그러다 콜레라나 이질 같은 위험한 병원균이 몸을 휩쓸어 장이 초토화되면, 이 은신처에 숨어 있던 유익균들을 재빨리 대장으로 보내 회복을 돕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9만 여 건의 충수 제거 수술이 행해진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떼어내도 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 제거 수술을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바로 그곳이 장 내 비상사태를 대비해 유익균을 비축해두는 창고였다니!
충수의 존재는 수수께끼였다. 다윈은 이것이 고릴라나 인간 같은 대형 영장류에만 있는 장기로, 초식 위주로 살던 시절 발달한 장이 퇴행해 남은 기관이라고 봤다. ‘충수는 맹장이 위축되면서 생긴 주름 중 하나로 쓸모없는 구조체 중 하나’라는 이 주장은, 이후 150여 년 간 충수에 대해 가장 그럴 듯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의문은 남아 있었다. 충수에는 수많은 림프 조직이 있다. 소장과 대장 사이에 있지만 소화기관이 아니라 면역기관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근 들어 충수의 역할을 다시 봐야 한다는 연구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 2007년 미국 듀크대 의대 윌리엄 파커 교수
등의 연구진은 식성이 다른 동물 361종을 조사해 그중 50여 종이 충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버, 코알라 등에게도 충수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장에는 박테리아, 점액, 면역체계분자가 하나로 합쳐진 얇은 생체필름이 존재하며, 이것이 가장 강하게 형성돼 해로운 균이 서식하지 못하게 된 곳이 바로 충수라고 주장했다.
2013년엔 후속 연구를 통해 총 533종 포유류의 내장과 그 환경 특성을 조사해 충수의 진화과정을 추적했다. 연구를 이끈 미국 미드웨스턴대 헤더 스미스 박사 연구 팀은 충수가 각기 다른 종에서 각각 32~38차례에 걸쳐 진화했으며, 대다수의 경우 한번 나타나면 진화 혈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충수가 있는 동물은 내장 내 림프조직의 밀도가 높아 이 조직에서 몸에 유익한 박테리아가 자라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충수가 있는 동물이 없는 동물에 비해 면역력이 더 높다고 밝혔다. 미시건 대학의 랜돌프 네스 박사 등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연구결과에 대해 진화의 횟수가 과연 30차례에 이르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여러 번 진화했다는 점에는 동의를 표하고 있다. 충수가 모종의 유익한 기관이라는 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 맹장염은 환경의 변화가 만든 병?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충수가 그렇게 유익한 기관이라면 제거 수술을 해도 괜찮은 걸까? 결론적으로 충수가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염증이 난 충수를 그대로 두는 쪽이 문제를 일으킨다. 충수에 염증이 생기면 급속하게 진행된다. 급성 충수염의 경우 3일 이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충수가 터져 뱃속 전체로 고름이 퍼져 복막염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충수가 박테리아 은신처라는 가설을 처음 내놓은 윌리엄 파커 교수는 맹장염에 대해 ‘산업화 이후 할 일을 잃은 맹장이 심통을 부린다’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충수가 있는 동물은 충수염에 걸리지 않지만 사람은 걸린다며, 산업화 이후 음식과 물이 청결해진 덕분에 충수가 할 일이 없어져 생긴 병이라고 주장한다. 아토피처럼 맹장염도 환경의 변화가 만든 병이라는 것이다. 맹장염이 학계에 최초로 보고된 때는 1886년경으로, 그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맹장은 흔적기관일 뿐이라는 주장 역시 여전하다. 만일 위 연구진의 주장처럼 맹장이 유익한 기관이라면 어째서 더 많은 종이 맹장을 갖고 있지 않은 건가? 또 제 아무리 유익한 기능이 있다 해도 충수염이 발생하는 원인과 예방책까지 알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해마다 9만 건의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 떼어내지 않으면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과연 지구상에 충수를 가진 동물은 몇 종이나 될까? 우리는 언제쯤 충수의 미스터리를 다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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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은 쓸모가 있었다…과학자들 '면역체계 기여도' 확인
송고시간2017-01-13 15:16
https://www.yna.co.kr/view/AKR20170113125100009
유익한 박테리아의 은신처…"맹장 뗀 사람들 질병 회복속도 늦어"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사람 몸에 없어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알려진 장기, 맹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미국 애리조나 미드웨스턴대의 연구 결과 맹장이 우리 몸에 유익한 박테리아의 저장고 역할을 해 면역체계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더 스미스 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맹장의 진화를 알아보기 위해 533 종 포유류의 내장과 그 환경 특성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맹장이 각기 다른 종에서 각각 30차례에 걸쳐 진화했으며, 대다수의 경우 맹장이 한 번 나타나면 진화 혈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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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맹장이 있는 동물은 내장 내 림프 조직의 밀도가 높았는데, 이는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림프 조직은 몸에 이로운 영향을 끼치는 종류의 박테리아가 자라도록 자극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박테리아는 맹장에 보관되는 까닭에 설사병과 같은 재난을 겪더라도 모두 소실되지 않는다.
스미스 부교수는 "맹장을 제거한 사람들, 특히 몸에 이로운 소화관 박테리아가 몸에서 모두 빠져나간 사람들은, 질병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구촌에서는 지역을 불문하고 맹장이 위험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 병원 신세를 지는 환자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능이 뚜렷하지 않은 채 골칫거리로만 몰린 탓에 맹장이 진화 때 사라지지 않은 이유, 그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로 인식되곤 했다.
맹장염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사들은 맹장 입구가 막혀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본다.
평균 성인 맹장의 길이는 5∼10㎝ 정도이며, 지름은 6∼8㎜ 수준이다.
또한 사람을 비롯한 영장류나 토끼와 같은 일부 동물은 맹장을 갖고 있지만 개나 고양이 등은 맹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