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대장경》 20221212
제목: 아들을 잃어 슬퍼하는 자에게...[만화 빠알리대장경]
https://youtu.be/4O9Pj4OkY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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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슬픔이 생기고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벗어난 이에게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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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 지어진 것은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슬픔에 잠겨 있지 말고, 차라리 '죽어야 하는 것은 죽고, 부서져야 하는 것은 부서진다'라고 죽음에 대한 이치를 곰곰이 생각하여 새기는 것이 낫느니라."
★ 옛 현인들은 아들이 죽었을 때 '죽어야 하는 것은 죽고, 부서져야 하는 것은 부서진다'라고 생각하여 슬퍼하지 않고 죽음을 명상 주제로 삼아 부지런히 수행했다. 과거의 현인들은 아들의 죽음을 그렇게 대했느니라.
★ "현명한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에 대해 더 부지런히 명상하면서 스스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했으며, 평소처럼 음식을 먹고 일상의 일도 해나갔느니라."
★ "그러니 소중한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슬퍼하지 말라.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소중히 여기는 것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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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 내용은 죽음을 통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내용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현인]이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을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을 명상 주제로 삼아 부지런히 수행했다.]라는 말씀은 제가 자주 인용하는 내용이기도 한데요.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과 싸우지 마시고 차라리 그 생각을 주제로 삼아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보면서 부지런히 수행하라는 것과 같은 뜻이랍니다.
왜냐하면 생각도 오온(五蘊) 중에 하나이거든요.
마찬가지랍니다.
죽음이나 슬픔도 오온 중에 하나이니 부처님 말씀처럼 죽음이나 슬픔 등을 명상 주제로 삼아 부지런히 알아차리고 보면서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슬픈 마음이 일어나면 슬픈 마음을 알아차리고 보시면 되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면 두려운 마음을 알아차리고 보시면 되고,
혜가처럼 괴로운 마음이 일어나면 괴로운 마음을 알아차리고 보시면 된답니다.
수행이란 이렇게 내게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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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죽음..?
이태원 사건처럼, 세월호 사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식의 죽음 앞에서 나의 일처럼 많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일반 사람들에게는 슬프고 두려운 것이 죽음이라는 단어이지요.
사실 죽음이라는 명제는 남녀노소는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주제는 아니지요.
왜냐하면 너무 큰일이거든요.
사람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 큰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부처님처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죽어야 하는 것은 죽고, 부서져야 하는 것은 부서지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듯이 그냥 인연 따라 나고 죽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왜냐하면 이 몸뚱이는 그냥 거적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한 이유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출가를 하셨는데요.
결국은 그 이치를 정확히 깨달으셨지요.
흔히 불교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이란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이 생사해탈이 바로 깨닫고 증득한 상태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죽을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정확히 알게 되거든요.
여러분들도 깨닫고 보시면 알겠지만 여러분들의 본성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그야말로 여여하게(한가롭게) 존재하는 그 자체랍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에 대해서 본성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고요.
오늘 부처님 말씀처럼 죽음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없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고 슬픔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밤에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이러면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겠지요.
그러나 훤한 대낮에 길을 가는데도 두려울까요?
죽음의 뒤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요.
이것과 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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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이 육신이 자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이 죽으면 울고불고 하는 것인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그래서 오늘 부처님도 이 육신을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슬픔이 생기고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라고 하신 거랍니다.
그러나 육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벗어난 이에게는 슬픔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육체는 그냥 허울뿐이고 본성이 진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 몸을 소중히 여기지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이 본성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이 육신이 살아있을 때 하나라도 더 본성을 잘 관리하려고 하는 거랍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부활(復活)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육신은 죽어도 성령(불성)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다른 말로
"성령(불성)으로 거듭난다"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같은 뜻이랍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육신을 참 나라고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부처님께서는 본성이 참 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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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비유하는 내용이지요. ^^
여기에 풍선이 여러 개 있습니다.
각각의 풍선 안에는 공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풍선을 우리 몸이라고 비유하고 공기를 우리 본성이라고 비유해 설명드리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풍선이 터져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몸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이때 그 풍선 안에 있던 공기는 어디로 갈까요?
밖과 하나가 되겠지요.
그리고 풍선이 터졌다고 해서 안에 있던 공기가 없어질 수 있나요?
그냥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뿐이지요.
그래서 옛 분들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 하는 거랍니다.
이미 옛 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풍선 안에 있는 진짜배기는 나 몰라라 하고,
이미 터진 풍선 쪼가리만 보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육체가 죽었다 그래서? 풍선이 터졌다 그래서? 아이들처럼 울고불고 하면서 슬퍼하고, 서러워하고 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부처님 말씀처럼 그 아이에게는 지금 터진 풍선이 자기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얼마든지 다른 풍선들이 차고도 넘칠 만큼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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