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들이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
합니까?
노아 홍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자유주의 과격 환경 전사이며, 세계 최초 환경운동가 노아. 무정하며 어둡고 도끼를 휘두르는 살인마 노아.
지구에 다시 인류가 번성하는 게 싫어 그의 장남의 처와 뱃속 아기를
살해하려 했던 노아.
아하하.. 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올해 초에 개봉하였던 왜곡되고 거짓이 잔뜩 들어간 헐리우드 영지주의 교과서 영화 “노아”에 등장하는
‘노아’입니다. 사탄의
오른팔 헐리우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하고 공격하고 하나님의 종들의 품성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였죠?
누가 성경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했던가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모든 요소가 담겨있어요.
흥미진진한 전쟁 장면
혁명을 이끄는 위대한 영웅
거짓말이 난무하는 드라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기적
아… 어마어마한 내용들이죠? 초대형 히트를 쳐야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전혀 성경적이 아닌 엄청난 창작이죠?
도대체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배우들은 어떤 사상을 가졌기에 이런 대작
창작물이 나오게 된 것일까요?
제작진은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만들면서 하나님을 비웃고 대중에게 왜곡된 사탄의 영지주의로 사상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믿던, 어떤 짓을 하던 진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는 절대로 그들이 지울 수
없습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문제점들에 대해 성경적으로 분석한
영상입니다.
마치면서…
이 영화 역시 영화 ‘노아’처럼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하고 공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종 모세의 품성을 미치광이 싸이코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노아’에 이어
‘모세’까지 헐리우드에 의해 대중에게 미치광이 싸이코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노아는 이 말세에 이 세상을 향해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사람들을 표상하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도록 세상이 타락하였고 회개하고 바벨론에서 나와야 할
것을 촉구하는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종을 미치광이 싸이코로 몰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짐승의 표의 환난이 임하였을 때, 마지막 자비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미치광이 싸이코로서 극단 테러분자로서 몰아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또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로의 종노릇 할 때에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은 영적으로 죄된 세상과 죄를
상징합니다. 또한, 이 말세에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출애굽 당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 말세에도 모세와 같이 예수님의 온유함을 충만하게 닮은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바벨론 시키고자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 마지막 외침이 요한계시록 18장에 다음과 같이 등장합니다.
계 18:1~6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이 마지막 자비의 외침을 하는 사람들을 표상하는 모세를 미치광이로
몰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대중은 이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을 위험한 테러분자로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바벨론과 분리해야 할 때에
오히려 바벨론의 편을 들게 되며 자신의 운명을 영원히 멸망으로 인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심판을 두려운 일로 여기고 우주에서 가장 공정하고 공의롭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우주에서 가장 악하고 불공평한 일로서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수천 수만 수억 살해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살인마에게 아무런 심판도 없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천 수만 수억에게
사기치고 등골 빼먹고 뒤통수친 사기꾼에게 아무런 심판도 없다면 그것이 공의일까요?”
우주에서 가장 사랑이 많으시고 가장 자비로우시고 가장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은 동시에 가장 공정하시고 가장 공의로우신 심판관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선악간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요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가득한 대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죄로 죄악을 행하였다면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고 마음속에 가득한 성령의
은혜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요한계시록 22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흠정역) 계 22:1,2,14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생명과를 먹음으로서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창 3:22 “…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마찬가지로 영원한 하늘에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생명나무의 실과 즉
생명과를 다시 따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우리에게 지금 현재 생명과가 주어져 있으며 생명수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에게는 절대로 따먹지 말아야할 선악과가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생명수와 생명과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우리 마음속 깊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자아를 주님께 굴복하고
의지를 주님께 드림으로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섬기는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되며 의로운 마음을 재창조받아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1:25) “부활이요 생명”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고 예수님의 거룩한 생애가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의 삶 속에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속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절대로 따먹지 말아야할 선악과가
있습니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에 있는 것들 즉 죄된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이며 영혼을 불행케 하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온 우주를 불행하도록 만드는 죄를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죄를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고
범치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결국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반쪽짜리 복음이 너무 편만합니다. “그저 예수님을 지적으로 동의하면 구원이다.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칭의의 경험 즉 거듭남이다.” 이런 엄청난 멸망으로 인도하는 오류가 편만합니다. 이 반쪽짜리 복음을 믿으면 아주 편해요. 아무것도 안해도 되거든요. 삶을 주님의 뜻에 맞도록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며 개혁할 필요도 없고 주님께 자아를 굴복하고 죄악을
버릴 필요도 없거든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은혜 아래 굴복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진정으로 거듭나면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된다고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골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롬 6:1,2,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된 육신의 본성대로 죄를 짓고 살면 우리는 결국 영원히 죽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 굴복하고 주님의 은혜 생명수와 생명과를 먹으며 죄를 버리고 죄를 승리하고 죄된 육신을 승리하고
의로운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지, 아니면 출애굽
당시의 바로 왕처럼 지속적인 의도적 불순종 속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며 결국에는 마음이 완전히 강퍅하여져서 자신의 운명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치게
되든지…
매일 매순간의 선택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들이 어느 쪽에 속한 것들인지 올바로 분별하는 성령의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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