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시간 맞춰서 일어나고,
시간 맞춰서 입선하고 방선하고 이렇게 선방생활을 허게 되고 참선허게 됩니다마는,
가장 주의헐 것은
한 생각 단속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선을 허거나 안 허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끊임없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눈을 볼 때에도 눈을 통해서 뭘 보고 생각하고,
귀를 통해서 무슨 말이나 소리를 들으면 그 듣는 디에
끄달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육근을 통해서
모든 경계를 당하면 거기에서 생각이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일어나자, 날랴고 헌 그 찰나에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뭣고 화두를 허는 분은 ‘이 뭣고?’
무자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화두를 들고 또 들고 그렇게 단속을 허는
것입니다. 천하에 간단하고 쉬운 것이고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자세를 단정히 하고 호흡을 단전호흡을 허면서 떠억
화두를 드는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입니다.
‘판치생모가 무엇인가?’ 하고 판치생모를 가지고 따지는 것도 아니고, 무자는 ‘어째서 무(無)라했는고?’
‘무(無)?’ ‘어째서?’
그 ‘어째서?’라고 허는 거기다가 의심의 눈을 박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허다보면 사람에 따라서 어떠헌 경계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무슨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허고 느끼는 그런 것이, 그런 경계가 있는 사람,
화두가 무슨 선풍기 돌아가듯이 그렇게 뭐 돌아간 것처럼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 또 어떠헌 실지(實地)는 없는
환상이 나타나는 사람, 또 그렇게 하다 꿈, 자며는 잘 때 꿈에 어떤 경계가 나타나는 사람, 그런 것이 나타나면 ‘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
그냥 요대로 해나가야 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 여태까지 나타나지 아니하던 경계가 나타나니까 그것을 어디 가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만날랴고 해도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저한테 편지를
보낸 사람도 있고, 만나고자 원해도 만나기가 어려워서 그런 분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조실(전강)스님 법문을 들으면 자연히 그런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리라고 믿고,
우선 그런 어떤 경계가 일어나면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자기의 본참화두를 떠억 거각을 해나가면
그러헌 경계가 차츰차츰 시일이 지내가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행을 허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눈 오는 날도 있을 것이고, 또 하늘에 까마귀나 까치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수도 있을 것이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헌 경계가 일어나거나 자기의 갈 길을 열심히 가면 그만입니다.
열심히 가다보면
구름도 사라지고, 비도 그칠 것이고, 새도 지나가면
그만이고, 비행기도 날아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낱낱이 거기에 집착을 해가지고 공포심을 낸다든지, 그걸 가지고 점을 친다든지, ‘
좋다, 나쁘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나가다 보면
전생에 지은 자기의 업과 금생(今生)에 자기의 오장육부의 체질에 따라서, 다 같이 가부좌 반가부좌를 하고
정진을 해도 육체상에 또는 정신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경계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좋다. 나쁘다’ 끄달리지 말고
심호흡을 허면서 ‘이 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허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열심히 들어가면
저절로 그러헌 경계는 사라지고 올바른 정진궤도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