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나와 들녘으로
갑진년 한 해가 일주일을 남겨둔 세밑 화요일이다. 지난주 금요일 올봄에 맡겨진 근교 농촌 국도변에서 주어진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은 임무가 종료되었다. 그러함에도 그 이튿날 그곳 마을도서관을 찾아 열람실에서 책을 펼쳐 봤다. 시내 도서관보다 장서는 적어도 열람자가 없어 개인 서재처럼 혼자 지내 흡인력이 있다. 이번에도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으로 걸음을 나섰다.
평소와 같은 아침 이른 시각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역 앞 1번 마을버스 출발지로 갔다. 동읍 자여 아파트단지로 오가는 7번 마을버스는 운행 간격이 짧게 자주 다녀도 1번은 20분 간격이라 조금 기다려야 했다. 역전 거리와 맞은편 천주산이 구룡산으로 건너가는 굴현고개 풍광을 사진에 담아 몇몇 지기들에게 안부로 전했다. 내가 머무는 위치는 일과를 마치면 일기의 글감이 되었다.
정한 시각 다가온 1번 마을버스로 소답동과 도계동을 거치니 일터로 가는 승객이 늘어나 서서 가는 이도 생겼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동읍에 이르러 행정복지센터와 식당이나 카페로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 내리자 빈자리가 생겼다. 아침 마을버스에는 동읍 일대 서비스 직종과 대산 일반산업단지 생산직으로 구분되어 후자는 주남저수지를 지나 들녘을 더 달려 장등과 가촌에서 내렸다.
가술에 닿아 평생학습센터를 찾으니 1층에는 노인대학 강좌에 참여하는 몇몇 할머니들이 와서 기다렸다. 2층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에 올라가니 사서와 센터장 두 분이 맞아주었다. 주 3회 한글 문해반 교실이 열리는 요일이 아니라 열람실은 아무도 없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품집들은 몇 차례 들렸을 때 섭렵해 지난번은 산야초 도감과 조정래 소설 ‘정글만리’를 읽었다.
생애 첫 직장으로 지난봄 부임한 사서가 선정해 구비한 신착 도서로 집으로 빌려 가 읽은 ‘인생의 의미’는 반납하고 새로 읽을 책을 골랐다. 역시 신간 코너 비치된 고명환의 ‘고전이 답했다’를 펼쳤다. 저자는 연구실을 지킨 학자가 아니어도 대단한 독서가고 다수의 저서도 펴낸 이였다. 한때 촉망받던 개그맨이었다는데 나는 방송가는 어두워 책에서 처음 대했는데 성실하게 살았다.
글쓴이는 요식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는데 나라 밖으로도 자주 나가는 대단한 열정으로 살았다. 나폴레옹이 그의 생애를 전장에서 보내면서도 머리맡에는 책을 놓고 잠들었다는데 고 작가도 독서의 폭과 깊이가 대단해 그의 강연과 글쓰기 원천이었다. 내보다 나잇살이 적어도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가 남겨가는 삶의 궤적을 담은 책을 독파했다.
농촌 읍면 소재지라 도서관을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점심때가 되어 열람실을 나왔다. 가끔 들린 식당을 찾아 추어탕을 시켜 한 끼 때우고 거리를 지나면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받아 마셨다. 이어 낯익은 골목길에서 공장과 밭뙈기의 언덕을 넘어 들판으로 나갔다. 체험형 단감 농장인 ‘감미로운 빗돌배기 마을’에서 죽동천을 건너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저 멀리 강 건너 밀양 수산 높은 아파트와 덕대산이 바라보였다. 구산마을과 모산리 사이 넓은 들판은 벼농사 이후 뒷그루 작물 당근 농사가 시작되었다. 트랙터로 논을 갈아 철골과 비닐 필름을 입힌 내부는 이랑을 지어 당근 씨앗을 파종해 겹으로 다시 필름을 덮어둔 상태였다. 이렇게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넘겨 봄이 되면 파릇한 잎줄기는 황톳빛 뿌리를 내려 초여름 캐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사계절 오이 농장이다. 주인장은 내가 가져가라고 하품 오이를 온실 밖에 두어 가방과 봉지에 채워왔다. “벼 가꾼 여름보다 추수 후 뒷그루로 / 비닐을 덮어씌운 겨울철 특용작물 / 온 들녘 당근 심어서 농가 소득 높였다 // 사계절 온실에는 다다기 오이 농사 / 한겨울 추위에도 실내가 후끈한데 / 네댓 명 베트남 청년 땀 흘리며 일했다” ‘모산리 겨울 농사’ 전문. 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