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曲 • 폐허에서
일어나자 일어나자
저 하늘은
네 무덤도 감추고
꽃밭에서는
사람 걷는 소리 들린다.
오늘 아침 바람은
어느 쪽에서 부는지
한 모랭이 두 모랭이
삼세 모랭이 지나가면
사람 걷는 소리는
산 쓰러지는 울음으로 변하고
누워 있는 땅은 조금씩
아, 조금씩 흔들리는데
몸 덥힐 햇빛도 없는 곳에서
길은 한 켠으로 넘어진다.
그리고 밤이 오면
저 무서운 꽃밭에서 들리는
누구 머리칼 젖히는 소리
옷고름이 탁 하고
저고리에서 떨어지는 소리
새벽에도 그치지 않고
잠 속에서는 더 크게 크게
그렇구나, 나는 어느새
몹쓸 곳에 누워 있다.
달빛도 멀리 지나가 버리는
무덤 위에서
가끔 반딧불 하나가
드러누운 빈 길로 달려 나간다.
모래이불을 펴고
오늘밤도 돼지꿈이나 기다릴까.
산이 바다로
다시 산으로 설마
변하지는 않겠지만
한 마리의 배고픈 돼지는
만날 수 있으리라.
열 두 모랭이 눈감고 기어가면
어디서 울고 있는 신령님이라도
만나지 않으리.
꽃밭에서 아직
걷는 사람이여
어디에 누울까 누울까 말고
가벼이 떨어지는 옷고름 위에
하늘과 함께 나의 뼈를 뉘여다오.
가만히 소리 나지 않게
발자국도 없이 一世紀를.
三曲 • 사랑
저 혼자 부는 바람이
찬 머리맡에서 우네.
어디서 가던 길이 끊어졌는지
사람의 손은
빈 거문고 줄로 가득하고
창밖에는
구슬픈 승냥이 울음소리가
또다시
만 리 길을 달려갈 채비를 하는구나.
시냇가에서 대답하려무나
워이 가이 너 워이 가이 너
다음 날 더 큰 바다로 가면
청천에 빛나는 저 이슬은
누구의 옷 속에서
다시 자랄 것인가.
사라지는 별들이
찬바람 위에서 우네.
만 리 길 밖은
베옷 구기는 소리로 어지럽고
그러나 나는
시냇가에
끝까지 살과 뼈로 살아있네.
- 허무집, 서정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