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투기, 키부츠 학살지휘자 등 3명을 爆殺하다! 趙甲濟
10월14일 戰況 *이스라엔군은 가자 지역의 북부 주민들이 남부로 대피하는 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두 개의 도로를 지정하고, 오전 10~오후 4시까지는 폭격을 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하마스가 주민들의 이동을 막고 있다고 했다.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언론이 미리 대피할 시간을 준 이스라엘을 비판할 게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하마스를 비판할 것을 요청했다. *하마스에 의하여 학살된 20여 개 나라 외국인 중 태국, 네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인들이 많은 것은 이들이 집단농장 키부츠에 와서 고용노동을 했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하마스는 푸틴이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휴전을 제의한 것을 환영했는데 이게 완전히 코미디이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하마스처럼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총책임자가 유체이탈적 발언을 한 것을 똑 같은 학살집단이 환영한 것이다. 러시아, 하마스, 이란, 북한이 악의 축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다. *레바논의 이스라엘 접경지역에 들어가 취재하던 로이터 통신 기자가 이스라엘군의 폭격(포격)으로 사망하고 곁에 있던 여섯 명의 기자들이 다쳤다. *이스라엘군 특공대는 가자 지역으로 들어가 인질 수색 작업을 벌였는데 다수의 屍身을 수습, 돌아왔다고 한다. *하마스는 몇 년 전부터 이스라엘 지형의 모형까지 만들어놓고 공격훈련을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하여 창의적 작전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약3000명이 침투했는데 그 가운데 약1500명이 사살되었다. 이스라엘군은 부상자 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진압하던 이스라엘 군 戰死者는 200여 명이다. *이스라엘군의 초동 대응이 늦은 것은 하마스가 드론으로 통신시설을 폭격하여 가자 지구 부근에 배치된 이스라엘군의 통신망을 마비시킨 데다가 전초기지들을 점령, 군인들을 사살한 때문이다. 예비군들이 뉴스를 듣고 자발적으로 출동, 집단농장을 지키는 데 활약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은 實傳경험이 있고 무기(주로 권총)을 평상시에 갖고 있어 대응할 수 있었다. 장교 출신 예비군들은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끌어모아 하마스와 싸우기도 했다. 이스라엘 집에는 대피실이 있는데 잠금 장치가 없어 뚫린 곳이 많았다. 하마스는 집에 불을 질러 사람들이 대피소에서 나오게 하여 사살하기도 했다. *가자와 이집트 사이의 통로는 현재 막혀 있다. 이집트 측은 열어놓고 있는데 가자 쪽에서 열지 않은 것은 폭격 때문인지, 하마스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약36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하였으므로 속전속결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앞으로 며칠 안으로 3개 사단 정도를 동원, 가자로 진입, 시가전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백 km의 땅굴이 있으므로 地上戰 못지 않게 地下전쟁도 치열할 것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西岸지구의 무장세력도 이스라엘을 집적대겠지만 의미 있는 타격은 어려울 것이다. *IDF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지난 토요일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하마스의 특공대 누크바의 중대장 알리 콰디를 드론을 이용한 정밀폭격으로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콰디는 2005년에 이스라엘 기업인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2011년 이스라엘군 포로와 교환조건으로 풀려났었다. 그는 지난 7일 가자 장벽을 부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스라엘군은 10.7일 테러에 가담한 하마스 간부들을 차례로 죽이고 있다. IDF는 홈페이지에 알리 콰디의 거처를 폭격하는 영상도 첨부했다. *어제는 하마스의 공습부대 대장 메라드 아부 메라드를 같은 방법으로 폭사시켰다. 메라드는 패러글라이더 부대를 지휘,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에 간여한 자이다. *IDF는 15일 이스라엘 전투기가 하마스의 누크바 남부지역 특공대장 빌랄 알 케르드라의 거처를 폭격하여 죽였다고 발표했다. 이 자는 니림 키부츠의 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소속 요원들도 함께 제거했다. /////////////////////////////////////////// *자료 1972년 西獨의 뮌헨에서 열린 여름 올림픽의 선수촌으로 침입한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테러단이 이스라엘 선수 및 코치들을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한 끝에 11명을 죽였다. 서독 경찰관 1명도 사망하였다. 테러단 5명이 총격전으로 죽었고 세 명이 잡혔다. '검은 9월단'은 그 뒤 서독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하여 西獨 정부를 위협한 끝에 잡혀 있던 세 명의 동료를 구해냈다. 골다 메이어(여성) 이스라엘 총리는 이 테러를 기획하고 가담한 범인들을 암살하는 조직을 만들게 하였다.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스라엘 군대가 합동으로 특수조직을 만들었다. 이 팀의 첫 작전은 1973년 4월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침투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정보책임자 모하메드 유수프 알 나자르 등 세 명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 特攻(특공)작전의 지휘관은 나중에 이스라엘 군의 총참모장, 그리고 수상이 된 에후드 바락(현재 국방장관)이었다. 이 국가公認 암살단은 주로 유럽과 중동을 돌아다니면서 팔레스타인 테러단을 추적하여 죽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였다. 1973년 6월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한 모로코인을 뮌헨사건 관련자 알리 하산 살라메로 誤認(오인)하여 암살하였다가 요원 다섯 명이 붙들렸다. 이스라엘 정부는 외교를 통하여 2년 뒤 옥살이하던 요원(여성 2명, 남성 3명)을 전원 송환받았다. 이스라엘 암살팀은 살라메에 대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9년 1월22일 그를 베이루트에서 발견, 원격조종 폭탄으로 죽였다. 이 보복작전은 '신의 분노'라는 암호명을 가졌다. 1992년까지 20년 동안 계속되었다. 얼마나 많은 테러관련자들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 명으로 추정된다. 뮌헨 사건 관련자 중 생존자는 두 명이라고 한다. 이 보복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년 전 개봉되었던 '뮌헨'이란 작품이다. 스필버그가 제작하였다. 한국이 이스라엘 같이 보복하였더라면 1·21 청와대 습격사건 관련자,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관련자, 아웅산 폭파사건 관련자, KAL기 폭파사건 관련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일성, 김정일이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국가가 自國民(자국민)에게 가해진 외부세력의 危害(위해)에 대하여 보복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면 正義불감증에 걸렸다고 봐야 한다. 그 첫 징조가 法治(법치)파괴 현상에 대한 정부의 무감각이다. 두번째 징조는 主敵(주적)에 대한 적개심의 무감각이다. 李明博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正義불감증에 걸렸다. 그의 위선적인 중도실용 노선이 이 불감증을 더욱 깊게 한다. 敵과 犯法者(범법자)에 대한 분노를 죽이는 게 중도실용이다. 작년 임진강 水攻(수공)에 대하여, 재작년 금강산 관광객 사살 사건에 이스라엘식으로 對應(대응)하였더라면 天安艦(천안함)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 이스라엘 특공작전 약사(略史) - 아이히만 납치에서 엔테베 작전까지 ● 1960년 5월 이스라엘 해외담당 첩보기관 모사드는 하렐 부장의 현지 지휘 아래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 국영항공회사 엘 알(EL AL)편으로 데리고 왔다. 유태인 학살의 한 주역(主役)인 前 나치 비밀경찰 간부 아이히만은 공개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62년 5월31일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스라엘 형법은 다른 범죄에 대해선 사형을 금지하고 있으나 유태인 학살 범죄만은 예외이다. 아이히만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에서 사형된 유일한 인간이다. ● 이스라엘과 프랑스의 우호·협력관계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알제리아 독립운동 조직에 대한 정보를 프랑스에 제공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했다. 核무기의 비밀개발에도 두 나라는 협력했다. 이집트의 나세르에 대한 공동전선도 형성했다. 그러나 드골의 재집권 이후 알제리아가 독립해 버린 뒤 협력의 기반이 약화되었다. 1967년 6월 전쟁 전야 드골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하여 선제공격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으로 대승하자 드골은 對이스라엘 무기 금수조치를 취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합동공작을 벌여 스위스가 만들고 있던 프랑스의 미라즈 전투기 설계도를 훔쳤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든 전투기가 케피어(Kfir)이다. 1967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이스라엘군의 무기조달처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프랑스의 쉘부르그 항구에 있던 미사일 발사함 5척을 공해상으로 빼돌려 1970년 새해 첫날에 이스라엘 하이파 항으로 몰고 왔다. 이 배들은 對이스라엘 금수조치에 의하여 주문국인 이스라엘로의 인도가 거부돼 있었다. 이스라엘은 노르웨이 석유회사가 구입하는 식으로 위장한 다음 특공대를 선원으로 변장시켜 승선시킨 뒤 배 5척을 소매치기한 것이다. ● 1969년 12월 이스라엘 공수부대의 특공대 66명은 세 대의 헬기에 나눠타고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영토 내로 약 60km쯤 진입했다. 사막에 착륙한 그들은 소련제 P-12 레이다 기지를 습격, 2.5t 레이다를 해체하여 헬기에 싣고 돌아왔다. 소련정부는 최신무기가 이스라엘 손에 넘어간 데 화가 나서 이집트에 대한 최신 고급무기의 제공을 일시 중단했다. ● 1976년 7월 이스라엘 특공대는 네 대의 허큐리스 수송기에 나눠 타고 아프리카 깊숙이 날아갔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이 납치한 에어프랑스 여객기엔 2백46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그 중 77명이 이스라엘 시민이었다.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6일째 억류돼 있던 이들 인질을 구출한 엔테베 작전은 기발한 착상(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으로 변장한 이스라엘군인이 수송기에서 지프차를 타고 내리는 바람에 공항경비병들은 외국 순방중이던 아민이 귀국한 것으로 착각했다)과 대담한 공격, 그리고 최소의 인명손실로 하여 그 뒤에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완벽한 드라마였다. ● 1981년 6월 이스라엘 공군은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용으로 건설중이던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했다. F-16, F-15 편대는 사우디 아라비아 상공으로 우회하여 이란쪽으로부터 공습을 단행하였다. 이라크 측에선 한동안 이란 공군기의 공습을 받은 것으로 착각했다. ● 1985년 10월1일 이스라엘 공군 F-15 편대는 튜니시아에 있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본부 건물을 폭격, 75명이 죽었다. 공중급유를 받아 가면서 1천9백km를 날아와 폭격한 이스라엘 편대는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귀환했다. 이 폭격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가 사이프러스에서 세 명의 이스라엘人을 죽인 데 대한 보복이었다. ● 1986년 10월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이스라엘의 비밀核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의 증언을 게재하여 이스라엘이 이미 核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모사드는 미인계를 써 바누누를 로마로 유인한 뒤 선박편으로 데리고 왔다. 바누누는 반역혐의로 재판에 넘어가 징역 18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풀려났다. 변호인들은 바누누의 폭로를 反核양심선언으로 몰고가려고 했으나 이스라엘 언론이 납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유력 일간지 하아레츠의 칼럼은 「민주국가라 하더라도 그런 폭로를 한 인물은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바누누가 아직도 송환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정부에 대해서 왜 그를 내버려 두고 있느냐고 추궁해야 한다」고 했다. ● 1988년 4월16일 이스라엘 특공대는 튜니시아의 해안에 상륙,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의 주요인물인 아부지하드를 그의 집에서 암살한 뒤 철수했다. 이스라엘 군은 이 작전을 지휘하기 위하여 전자전 통제기를 지중해 상공에 띄웠다. 당시 이스라엘군 참모차장 에후드바락(뒤에 총장)이 이 비행기에 타고 지휘하고 있었다. 이 전자 정보기는 특공대가 침투한 지역의 전화 및 무전시설을 마비시켜 특공대의 탈출을 도왔다. ////////////////////////////////////////////////////////// *이스라엘 전쟁을 취재하던 기자들 가운데 로이터 통신 기자 등 12명이 사망했다. 한국 기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전쟁 취재중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총탄을 피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든지 위험지역을 피하는 요령이 있든지 일 것이다. *네타냐후를 반대하던 시위에 참여하여 정권 측으로부터는 '반역자'란 욕을 먹고 "앞으론 동원령이 내려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고 하던 예비군들이 하마스 공격 이후엔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네타냐후의 사법 장악 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지만 국가가 위험할 때는 뭉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예비군은 "이런 때는 정치는 사소한 것이다"고 했다. 정치권도 反네타냐후 세력까지 戰時내각에 참여하는 등 단합하고 있다. 한국은 敵前분열인데 이스라엘은 敵前단결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말을 잘한다. 정직하게, 간결하게, 당당하게 말한다. 기자들이 물고 늘어져도 하고싶은 말만 하고 둘러대지 않으며 반박을 서슴지 않는다. 기자들이 무안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가자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간인 사망이나 물자부족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는 식의 보도를 한다. 원인 제공자인 하마스의 책임을 추궁하진 않는다. 이스라엘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는데 하마스는 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를 악용하여 언론억압세력을 비호하는 격이다.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 "가자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붙잡아간 이스라엘 인질을 다 집으로 돌려보내기 전까지는 전기 스위치는 켜지지 않을 것이고, 물은 공급되지 않을 것이며, 연료트럭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게 인도적 조치에 대한 인도적 조치의 원칙이다. 아무로 우리에게 설교할 생각을 말라." "우리는 그들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살고 싶으면 제발 남쪽으로 가라" *IDF: "이스라엘군은 곧 가자 시에서 대규모 작전을 펼 것이다. 하마스 테러분자들은 민간인들의 집 밑에 땅굴을 파고 밀집지역에 숨어 있다. 가자 시민들이여,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남쪽으로 철수하라. 시민들을 인간방패로 삼는 하마스 테러분자들과 멀어져라." *질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북부지역 민간인을 철수시키라는 이스라엘 요구에 토를 다는 데 대하여)부끄럼을 알라. 유엔은 그동안 하마스가 무장을 하고 민간시설과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는 데 대해선 눈을 감아왔다. 이제는 인질석방에 노력하고 하마스를 규탄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존중하라." *요아브 갈란트 "하마스는 문명화된 사람들 사이에선 살 수 없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가자와 지구에서 날려버릴 것이다." *戰時내각출범 기자회견에서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하마스 조직원은 죽은 목숨이다. 그들은 소년 소녀들 머리를 쏘고, 태워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 살해하고, 군인들을 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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