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 서문
열국지 해제
‘열국(列國)’이란 ‘여러 나라’라는 뜻인데, 열국지(列國志)는 사서(史書)와 야사(野史) 등을 기초로 하여,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책으로서. 동주(東周)시대 즉 춘추전국시대 약 550년간의 긴 역사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소설이다. 오늘날 전하는 것은 명(明)나라 말기 풍몽룡(馮夢龍)에 의해 개작된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이다.
이 동주열국지는 중국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그 이후 시대의 전거(典據)가 되며, 또한 수많은 고사성어가 이로부터 유래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지나 초한지 등도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고대 역사
중국의 역사는 이른바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된다. 삼황은 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수인씨(燧人氏)이다. 복희씨는 백성들에게 수렵과 목축을 가르쳤다고 하고, 신농씨는 백성에게 농경을 가르치고 시장을 개설하여 교역의 길을 열었다고 하며, 수인씨는 불을 일으켜 백성들에게 화식(火食)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으며, 따라서 이 시대는 역사가 아닌 신화의 시대이다. 오제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이다. 여기서도 앞의 세 사람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인물이며, 요·순부터 진정한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요·순도 실은 역사적으로 그리 명확한 인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때부터를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요임금 때부터 황하의 치수(治水) 사업이 시작되었고, 그때 치수의 임무를 맡았던 사람이 우(禹)이며, 그는 그 공적으로 순임금을 이어 임금이 된다. 요임금은 아들이 아닌 순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순은 우에게 물려준다. 우임금 때부터 아들이 세습하기 시작하여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가 시작된다.
우임금으로부터 시작된 하왕조는 마지막 임금인 걸왕(桀王)이 폭정을 행하였기 때문에,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에 의해 멸망된다. 그리고 탕왕으로부터 시작된 은왕조는 또 마지막의 주왕(紂王)이 폭정을 행하였기 때문에,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 의해 멸망된다.
이렇게 고대의 중국은 ‘하→은→주’로 이어지는데, 이 세 왕조를 합하여 삼대(三代)라 일컫는다. 그런데 이 시대를 역사 시대라고는 했지만, 실은 기록이 그리 분명하지도 않고 간헐적인 얘기들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본격적인 역사 시대는 동주(東周) 즉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주나라 무왕으로부터 몇 백 년 지난 후에 유왕(幽王)이라는 폭군이 등장한다. 유왕은 포사(褒姒)라는 미인에게 반하여 국정을 그르쳤고, 서융(西戎)의 침입으로 수도를 함락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유왕의 아들 평왕(平王)이 등극하여 수도를 서쪽 호경(鎬京)에서 동쪽의 낙양(洛陽)으로 옮기게 된다. 그래서 그 이전 시대를 서주(西周), 이후 시대를 동주(東周)라 일컫는다.
주나라의 동천(東遷)은 단순한 수도의 위치 변경에 그친 일이 아니었다. 천자가 여자 하나를 웃기기 위해 제후들을 농락하였다가 나라가 망했으니, 이로써 천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제후들은 이제 천자의 명령을 듣지 않고 각자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제후들은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패권을 다투기 시작하여, 중국 천하는 바야흐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나라가 낙양으로 동천한 것이 기원전 770년, 이로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약 550년 동안 중국은 전란에 휩싸였으니, 이 시기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 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른 한편으로는 각국의 제후들이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동안에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그야말로 중국 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등장한 수많은 학자들과 학파들을 통칭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한다.
춘추 전국 시대는 다시 전후로 나누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구분하는데, 대제후국이었던 진(晉)나라가 한(韓)·위(魏)·조(趙)의 세 나라로 분열된 기원전 403년을 그 기준으로 삼는다. 대부(大夫)의 지위에 있었던 한씨·위씨·조씨의 가문이 제후를 죽이고 나라를 삼분하여 스스로 제후가 되었다는 것은, 춘추 시대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천자의 권위가 완전히 무시된 사건이었으며, 그리하여 전국시대는 춘추시대보다 더욱 혼란해진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봉건제도
전제군주제가 확립된 중국에서는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시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중국은 너무나 큰 나라였기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제왕이라 하더라도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대에, 그 광대한 중국을 직접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왕은 자기의 아들이나 동생, 친척 혹은 신하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으니, 그 나누어준 땅을 봉토(封土)라 하고, 그 봉토를 다스리는 임금을 제후(諸侯)라 하였다.
그런데 제후가 나누어 받은 봉토 또한 그 넓이가 만만찮았기 때문에, 제후들은 그 땅을 또 다시 나누어 주었으니, 그들을 대부(大夫)라 한다. 이리하여 ‘천자-제후-대부’의 위계를 지닌 권력층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한 사(士)라는 계급이 있었고, 맨 아래에 피지배층인 일반 서민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의 걸왕을 내쫓았다고 하는 것은, 어디서 어느 날 갑자기 은나라가 생겨나서 하나라를 정복했다는 것이 아니다. 걸왕은 중국 전체를 다스리는 천자이고, 걸왕이 천자의 자리에 있을 때 중국의 국명은 하(夏)였다. 그때 은나라는 하나라 안에 있는 여러 제후국 가운데 한 나라였으며, 탕(湯)은 제후였다. 따라서 그때의 탕은 왕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왕’이란 칭호는 오직 천자만이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자인 걸왕이 폭정을 행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지자, 탕이 혁명을 일으켜 걸왕을 내쫓고 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라는 멸망하고, 중국의 국명이 은(殷)으로 바뀌는 것이다.
당시 천자(天子)는 ‘왕(王)’이라 칭했다. 제후는 본래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다섯 등급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공’이라 통칭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를 들어 ‘공’의 작위를 지닌 송나라 임금은 ‘송공(宋公)’, ‘후’의 작위를 지닌 제나라 임금은 ‘제후(齊侯)’, ‘백’의 작위를 가진 정나라 임금은 ‘정백(鄭伯), ‘자’의 작위를 지닌 초나라 임금은 ‘초자(楚子)’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나라의 크기나 국력은 작위와는 상관없었다.
그런데 춘추 전국 시대에 천자의 권위가 붕괴되면서, 제후들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춘추 시대에 이미 초나라 임금이 ‘왕’이라 자칭하기 시작하였고, 전국 시대가 되면 대제후국의 임금들이 모두 ‘왕’이라 자칭하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신분에 어긋나게 스스로를 칭하는 것을 참칭(僭稱)이라 한다. 그리하여 천자도 ‘왕’이고 제후도 ‘왕’이 되어 구별이 없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 무왕(武王)은, 천자가 된 자신과 제후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새로운 칭호를 궁리한 끝에,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두 글자를 떼 내어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만들었고, 자신을 ‘첫번째 황제’라는 뜻으로 ‘시황제(始皇帝)’라고 칭하였으니, 그가 바로 ‘진시황(秦始皇)’이다. 이리하여 ‘황제’라는 천자의 칭호와 ‘왕’이라는 제후의 칭호가 확정되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오제’ 가운데 황제(黃帝)는 ‘임금 황(皇)’ 자가 아닌 ‘누를 황(黃)’ 자인 것을 유의할 것.]
본 블로그의 ‘동주열전’은 중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열국지의 내용을 발췌 편집한 것으로, 오래 전에 ‘소설 열국지’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던 것입니다. 이번의 ‘열국지’는 전편을 원전에 충실하게 완역을 시도했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첫댓글 장편 연재글 열국지 재미 흥미 기대 만발 입니다 하하하
선배님의 즐거움을 위해서~~~ㅎㅎ
ㅁ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길 열국지 길 ~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시는 골드훅님께
축복을 빕니다 ~
다음엔 시원한 신건지나 께꾹지를 부탁드려요.
노력 하겠습니다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셨군요.
응원합니다.
함께 갑시다요
기대가 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 ~~~
골드훅 님, 열국지 연재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최근에 들러서 님이 올리시는 열국지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열국지 제목으로 검색해보니 골드훅 님이 2021년에 올리신 열국지 (총 68회)는 엊그제 시작한 열국지와 어떻게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