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점엔 조그만 기차역 있다 검은 자갈돌 밟고 철도원 아버지 걸어오신다 철길 가에 맨드라미 맨드라미 있었다 어디서 얼룩 수탉 울었다 병점엔 떡집 있었다 우리 어머니 날 배고 입덧 심할 때 병점 떡집서 떡 한 점 떼어 먹었다 머리에 인 콩 한 자루 내려놓고 또 한 점 떼어 먹었다 내 살은 병점 떡 한 점이다 병점은 내 살점이다 병점 철길 가에 맨드라미는 나다 내 언니다 내 동생이다 새마을 특급 열차가 지나갈 때 꾀죄죄한 맨드라미 깜짝 놀라 자빠졌다 지금 병점엔 떡집 없다 우리 언니는 죽었고 水原, 烏山, 正南으로 가는 길은 여기서 헤어져 끝없이 갔다
-『한라일보/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2025.02.25. -
병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병점보다도 훨씬 먼 곳에 있는 '병점'이라는 떡집은 여러 번 드나들었다. 철도원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지만, 내겐 칠판공장 하는 목수 아버지가 있었으며 우리는 철길 가에 바짝 붙은 집에 산 적이 있다. 어머니는 명절이나 잔치에 쓰기 위해 목련 나무 밑에서 절구를 찧고 떡을 하셨다. 살면서 머리에 쌀도 두부도 죽은 닭도 이고 다니셨다. 그러므로 병점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다.
철길 가에 맨드라미는 기차 소리와 기적 소리에 놀라 자빠지는 나나 당신이지만, 어떤 지경에 이르면 특급 열차를 탈 줄만 알지 기차 지날 때 소스라치고 귀먹는 사람이 생기는 줄은 생각도 못한다. 그러다 사람이 빨려 들어간다는 것도 모른다. 옆에서 누가 소매를 붙잡는다. 병점을 주고 싶은데, 지금 내겐 병점이 없다. 자잘한 행복으로 줄 수 있는 살 한 점 없다.
용케 병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병점에서 헤어져 끝없이 갔다. 잃어버린 사람, 잊어버린 시간. 아픈 병점은 우리를 알고 있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짓눌린 듯한 쉰 목소리가 말한다. 떡 사세요, 병점 사세요, 라고 시인이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