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십니다(1). 그들은 백성들 가운데 죽은 자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되는 일을 피하여 자신의 직무에 영향을주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단, 그의 직계가족에 대해서는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2-3). 또 머리털을 깎아서 대머리 같게 하지 않도록 하고 또 살을베어 슬픔을 나타내어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슬픔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아내도 구별되게 구해야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거룩함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의 딸이 창녀가 되어 자신을 속되게 하면 아버지의 명예와 거룩함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 딸을 불태워 죽여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해석가들은 먼저 돌로 쳐서 죽이고, 그 시신을 불태워 부정함을 정결하게 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만큼 제사장은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과 가정을 잘 돌보아야 했습니다(4-8).
관유를 부음 받아 세워진 대제사장은 가족과 친척의 죽음에 애도할 수 없었습니다. 성소에서 나가 그 성소를 더럽혀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중 전체의 유익을 위한 일과 하나님을 위한 직무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대제사장은 반드시 처녀와 결혼을 해야 했고, 이혼 여인이나 과부와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손도 나중에 대제사장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단에서 섬기기 위한 아론의 후손들의 육체도 온전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신체의 불완전성은 기능적인 면에서도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수행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불완전함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이 누릴 수 있는 몫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신체에 장애가 있는 제사장 자손들은 가난한 상태로 전락하거나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 않도록 거룩한 것과 가장 거룩한 것으로 분류되는 화목제, 속죄제, 소제의 제물들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회막 안과 제단 근처에만 가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지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면전에서 섬기며, 백성과 하나님을 중재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고, 여러가지 종교적인 판단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거룩한 삶을 유지하도록 여러가지 제한이 있었습니다. 애도의 대상에 대한 제한, 아내의 기준에 대한 제한, 직무를 위한 신체적 제한 등 입니다. 신체적 온전함은 그의 사역의 온전함과 상응합니다. 장애를 가진 자들을 차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거룩함과 제한은 결국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절대적인 도덕적 거룩함을 유지하셨고, 그 거룩함과 의를 당신의 교회에 나누어 주십니다. 교회의 머리로서 예수님은 교회가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비록 그의 신부이며 제사장인 교회는 이 땅에서 온전하지 못하지만 마지막 날에 순결하고 흠 없게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 거룩해 져 가는 성화의 길을 걸어갑니다. 따라서 거룩함과 구별된 삶은 목사나 사역자만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에 주어진 의무입니다. 물론 목사나 사역자는 다른 성도들보다 훨씬 더 높은 도덕적 기준과 거룩함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목사나 사역자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성도는 세상의 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거룩해야 하고, 더 높은 도덕적 정결함과 거룩함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세상으로 보내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임하도록 하신 방식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와 제사장으로서 오늘 하루도 거룩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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