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니 구포시장 국밥집이었다
백 년은 된 듯 허름했다
죽은 줄 알았던 김종삼(金宗三)씨가 국밥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얼굴이 말갰다
눈빛도 환했다
여전히 낡은 벙거지를 쓰고 있었다
설렁탕이며 해장국이며 깍두기를 딱딱 제자리에 갖다주었다
뜨건 국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공손하였다
두 병째 소주를 시키자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왼쪽 벽을 가리켰다
‘소주는 각 1병’
삐뚤삐뚤 아이 글씨였다
-『부산일보/오늘을 여는 詩』2025.02.25. -
언제나 말없이 점퍼 차림에 벙거지를 쓰고 술집에 홀로 앉아 술을 즐겼다는 김종삼 시인은 후배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1950년대 시인입니다.
가난과 음악과 술을 친구 삼아 고독을 즐겼다는 괴짜 김종삼 시인에게 시인이란, 고생스럽지만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스럽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랍니다. 그렇다면 국밥집 아저씨도 재래 시장통에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시인 아니겠는지요.
시인은 시인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구포시장 어느 국밥집에 들어가 시인이 차려주는 공손한 밥 한 끼 먹고 싶어집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순수 세계와 현대인의 절박한 세계를 함께 썼던 시인을 저도 만나고 싶습니다. 잘 살기 위해 잊고 있었던 마음, ‘공손’이란 마음을 되뇌어 봅니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있는 시인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