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무원 첫 시집살이
박주병
아내가 시집을 오자 왕고모 할머니가 조기 대가리를 내밀며 반찬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칼등으로 다지고 양념을 치고 참기름에 개어 밥솥에 쪄서 드렸더니 “우리 손자 장가 잘 갔네.”라고 하셨다.
내가 공무원이 된 것은 1965년이다. 계장은 저녁 굶은 시어미처럼 뾰로통해 가지고 첫날부터 기강을 잡겠다는 건지 내 앞으로 인찰지를 던지며 끈을 꼴 것을 언명했다. 옛날에는 서류를 이런 끈으로 철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당시는 군사행정이 정부의 행정을 쇄신할 때라 새카만 실끈으로 대체되어서 실무에 별 소용도 없는 끈을 꼬라고 한 것이다. 주위의 시선은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실업학교여서 그런지 고교시절에 학교에서 배웠던 거라 술술 꼬아 곧추세워 보였다. 이 과제의 요지는 곧추세우느냐 못하느냐를 보자는 것인 줄을 내가 왜 몰랐겠나? 예상 밖이라는 듯 계장 빼고는 다들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다음에는 서류를 던지며 철필로 정서하라고 했다. 행서와 초서를 혼용한 제법 잘 쓴 글씨지만 일부러 그랬는지 오자투성이인데다가 한자가 너무 많았다. 내 머릿속에 십삼경이 들락날락하는 줄을, 글씨 또한 필사를 앉혀놓고 법체로 배운 줄을 그가 알 턱이 없다. 속으로 비웃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쩌나 보려고 更을 㪅으로, 所를 㪽로 표기해 놓았다. 왜 틀리게 썼느냐고 계장은 힐난했다. 같은 글자라고 했더니 일이 벌어졌다. 우 몰려왔다. 옥편을 가져온다, 사서삼경을 통달했다는 옆방의 과장을 불러온다, 난리가 났다. 옥편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모양인지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에라 모르겠다, 하고 파안대소했다. 계장은 턱을 발발 떨었다. 다음날은 어떤 사안을 주며 기안을 하라고 했다. 이틀을 두고 애를 먹이다니, 군 복무할 때의 선임하사보다 더했다. 나는 처음으로 외제 돼지발톱 만년필을 휘둘렀다. 활자처럼 또박또박 눌러 쓴 기안문을 죽 읽더니 빙긋이 웃으며 “논리가 판결문 같네.”라고 했다. 웃는 꼴 처음 봤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사람이 쓴 기안문이 논리가 판결문 같은 거야 당연한 걸 가지고 또 무슨 꼬투리를 잡겠다고 비행기를 태울까 싶었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割鷄焉用牛刀) 유방에게 한 번쾌의 말이다. 건방진 소릴지는 모르지만 사실 나는 그때 닭을 잡을 칼이 없었다.
공직을 흔히 철 밥통이라 한다. 철 밥통이 되자면 그냥 되는 겻이 아니다. 참고 견뎌내야 한다. 그 당시는 갑질이니 뭐니 하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다. 이 정도의 첫 시련은 당시로서는 어느 관청이나 다반사였던 것 같다.
행정주사로서 시군의 과장을 두루 거친 교쾌하기 그지없는 백전노장, 그의 눈에는 내가 같잖게 보였을 것이다. 1965년 당시 경북 도본청과 산하 도 단위 행정관청의 국비 행정주사보 자리는 총 20개였다. 수백 명이 넘는 서기와 주사에 비하면 아주 적다. 그만큼 승진하기가 어려운 자리다. 어쩌다가 이 자리가 결원이 되면 수백 명의 행정서기가 물고기 떼처럼 우 몰려드는 형국이 된다. 직장 동료 하나가 식사를 하자 하더니 진지한 자세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는 서기가 된 지 10년째인데 형은 바로 주사보가 된 걸 보니 특채인 것 갚아. 빽 좀 달세.”라고 했다. 이런 자리를 난데없이 행정주사보로 바로 들어온 놈이 꿰차고 앉았으니 계장으로서는 미덥지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일을 못하면 자기가 힘이 들 테니 짜증이 났을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 계장은 47세였고 나는 33세였다. 그가 살아 있다면 104세다. 만약 그때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면 계장으로 하여금 그때처럼 만날 짜증을 내고 저녁 굶은 시어미가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건은 쉽게 알고 곤은 간단하게 능하다.”(乾易知坤簡能). 밥도 사드리고 술도 사드리고 하하거리기라도 했더라면 시집살이가 훨씬 쉬웠을 텐데…. 참 쉽고 간다한 이치를 여기 아흔 살 노인이 겨우 안다. 그러나 살아보니, 아는 채 하다가 탈나는 경우가 모르는 체 하다가 탈나는 경우보다 더 많다.
조기 대가리로 반찬을 만들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흔이 되도록 거안제미(擧案齊眉)를 받아 온 이 쭈그렁이가 오늘 따라 그것이 왜 이리 궁금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