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강가로
엊그제 성탄절이 지난 세밑 금요일이다. 아침 기온이 빙점 부근 머물러 자연 학교는 실내 수업이 제격이다. 어제는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으로 나가 하루를 보냈다. 며칠 전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을 찾았다. 새벽에 생활 속 남기는 글에서 ‘열람실, 메뚜기처럼 옮겨가며’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한 해 동안 꾸준히 다녔던 대산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으로 가려 마음을 정했다.
도서관을 순례하듯 찾으면 겨울 추위는 모르고 넘길 듯하다.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은 신간 도서가 넉넉하고 열람석이 편안하지만 한 끼 식사 해결이 여의하지 못하다.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도 열람 여건과 카페 커피 맛이 좋으나 식사가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대산면으로 나가면 작은 도서관에 장서는 빈약해도 열람실은 개인 서재와 같이 조용하고 바깥에서는 식사가 쉬웠다.
자차를 운전하지 않는 관계로 어디를 가나 도보나 대중교통 차편을 이용해야 한다. 등굣길에 올라 창원역 앞으로 나가 8시 반 출발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엔 가술 산업단지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타는데 조금 늦은 시간은 동읍 일대 식당이나 찻집을 일터로 삼은 서비스 직종 부녀들이 많았다. 좌석을 다 채워 일부 승객은 서서 가다가 주남저수지를 지나니 빈자리가 나왔다.
마을버스가 가술에 이르러 내리니 빈 차다시피 종점 신전을 향해 갔다. 연전 면사무소는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을 바꾸어 신축 청사로 옮겨갔다. 예전 면사무소였던 건물은 낡기는 해도 평생학습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1층은 노인대학을 열고 2층은 마을 도서관을 겸한 평생학습센터 강좌 강의실이다. 작은 도서관 열람실은 월수금에 한글 문해 교실 할머니와 같이 써도 불편한 줄 모른다.
마을 도서관 열람실로 드니 출근한 사서와 센터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전에 한 할머니로부터 밀감을 얻어먹은 갚음으로 두유를 나눠 드십사 센터장에게 맡겼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꼬박꼬박 출석해 중년 강사의 지도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약소했지만 지나간 어버이날과 추석 앞에 조그만 성의를 표했는데 할머니들에게는 협찬자가 누구인 줄 모르도록 했다.
마을 도서관은 평소 열람실을 찾는 이가 적어 개인 서재이다시피 지낸다. 지난번 집으로 대출해 읽은 오슬로대학 사회인류학 교수가 쓴 ‘인생의 의미’는 감명 깊었다. 그 이후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독파하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혜초’를 뽑아 두었더랬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과 같은 연령대 김탁환이 쓴 역사소설이다. 진해가 고향인 김 작가도 대단한 필력을 보여준다.
고대 중국 노나라 공자가 유학을 주창해도 천년 흐른 뒤 본향 중국보다 조선에서 빛을 본 학문이다. 석가가 창시한 불교도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어 한낱 변방에 불과했던 신라에서 찬란한 꽃을 피워 불국 정토를 이루었다. 당시 구법승으로 당나라로 건너간 자장과 의상은 귀국해 곳곳에 사찰을 창건했다. 유학을 떠나다 발길을 돌린 원효도 토착 불교 융성에 이바지한 공이 대단하다.
신라인 혜초는 ‘왕오천축국전’ 서책만 전하지 사서에 뚜렷한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김탁환이 작가의 상상력과 답사 취재를 바탕으로 엮어낸 소설 ‘혜초’를 접했다.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당나라로 복귀해 그곳에서 생애를 마친 혜초다. 김 작가는 이 소설 첫 구절을 ‘바람이 산을 옮기고 바람이 하늘을 가렸다.’로 시작했다. 인도와 중국 접경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는 표현이다.
아침나절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때가 되어 밖에서 한 끼 때웠다. 식후 겨울 햇살이 퍼지는 우암리 들녘을 걸어 강가로 갔다. “금계국 시든 검불 말끔히 정리하고 / 줄지은 느티나무 낙엽 진 나목으로 / 길고 긴 소실점 강둑 겨울 하늘 시리다 // 둑 너머 둔치 풍경 시야를 가리어도 / 갯버들 앙상하고 물억새 야위어도 / 봄날은 멀기만 한데 맨몸으로 버틴다” ‘한천(寒天) 강둑’ 전문이다. 24.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