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문화 2015년 1월호
[詩人의 詩] 길상호 누구나 위로가 되는 집, 마음속에 있다면… 글 : 길상호 시인
⊙ 가족들의 상처까지 품은 공간… 이제 詩로 가득 찬 詩詩한 집 꿈꿔 ⊙ 아버지의 지갑 속에 꼬깃꼬깃 든 아들의 시 한 편
학교 조교들과 크리스마스이브 모임을 계획한 날이었다. 서둘러 학과사무실 정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전날 꿈속에서 받았던 그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전화기 폴더를 열고 가만히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대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은 자신을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라고 밝히고는 〈그 노인이 지은 집〉이 당선작으로 뽑혔다는 이야기와 함께 축하의 인사를 전해 왔다. 전날 밤의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꿈인지 생시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 노인이 지은 집〉은 이렇듯 특이한 경험으로 시인의 삶을 시작하게 해 준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또 다른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학원강사 접고 다시 학교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직장생활을 위해 충남의 예산이라는 소도시에 정착한 적이 있다. 선배의 소개로 입시학원 강사를 하게 된 것인데, 처음엔 가르친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주말에는 함께 등산도 하면서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선생님들과 자취방에서 술도 한 잔 하면서 타향에서의 생활이 그리 쓸쓸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학원에서는 가르치는 것에서도, 아이들과 부모님들과의 관계에서도 인정을 받는 선생님이 되어 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슴 한구석이 점점 더 허전해지는 것이었다.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시 때문이었다. 그날그날의 수업준비와 7~8시간의 수업, 그리고 퇴근 후까지 계속되는 부모님들과의 상담을 소화해 내다 보면 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더 이상 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학원은 그만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2년가량의 학원생활을 접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내에 새로 생긴 문예창작학과 조교 일을 하면서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벌어졌던 시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관찰 노트도 다시 만들고, 시로 쓰는 일기도 새롭게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마음으로 시를 맞이하면서 전에 쓰던 시들의 결정적인 단점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너무 소품들이었다는 것. 그간 써 왔던 시들을 한 단계 뛰어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배워 터득한 시의 모든 것을 담아 낼 수 있는 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때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후로부터 틈만 나면 집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간 이사를 다녔던 집들과 거기서 만난 인연들을 떠올려 보기도, 군 제대 후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때를 반추하기도 했다. 재개발지구의 빈집들을 떠돌면서 거기 남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뒤적이는 취미를 얻기도 했다. 골목을 걷는 날들이 많아졌고, 집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늘어 갔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의 《목수의 집》을 만났다.
산하는 방방곡곡 깊이 병이 들고, 그가 꿈꾸어 온 노년의 넓고 아름다운 집은 그 혼자 힘으로나 사람의 손으로는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노년을 살아야 하고 사후도 대비해야 할 그는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의 마지막 집을 마음속에 마련해 두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청준, 《목수의 집》 중에서
소설의 뒷부분에 등장하는 이 두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집이라는 것이 사람과 자연을 이어 주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삶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그런 집 한 채 마음속에 지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걸까! 그리고 그런 삶을 보여주셨던 어머니, 아버지를 왜 잊고 있었던 걸까! 소설은 가까운 곳의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헤매기만 하는 나를 정신이 번쩍 들도록 일침을 꽂았다. 그때서야 내가 ‘집’이라는 소재 속에 담아야 할 이미지는 이미 고향집을 통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의 기억 속에서 고향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아버지의 가출과 함께 시작된 가난, 그 후 날마다 이어지던 어머니의 울음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형, 누나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이른 나이에 도시로 떠나야 했고, 막내인 나와 쌍둥이 동생은 떠나간 그들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집을 떠올리면서도 마음이 고향집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을 해 보면 그 집은 가족들의 아픈 상처까지 따뜻하게 품어 주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지친 마음이 기댈 수 있는 요소들이 참 많았다.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돌담 아래 여러 종류의 꽃씨를 뿌렸다. 맨드라미, 채송화, 상사화, 해바라기, 풍접초, 과꽃…. 계절마다 각양각색으로 꽃들이 피어나 담 그늘을 환하게 밝히곤 했다. 장마철 비바람에 꽃들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지지대를 세워 하나씩 정성스레 묶어 주셨다. 삶에 지쳐 있는 자신인 것마냥 꽃들을 일으켜 세워 놓고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은 따뜻해 보였다.
겨울 눈에 비친 집 보석처럼 빛나
세 번째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는 인간의 상처와 자연의 치유능력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은 마루였다. 무더운 여름 그곳에 누워 있으면 나뭇결을 따라서 바람이 불어 가는 것처럼 시원해졌다. 옹이가 빠져나간 구멍을 통해 마루 밑 세상을 탐험하는 즐거움도 꽤 쏠쏠했다. 여름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한겨울에도 종종 마루에서 시간을 보냈다. 한번은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방에서 나왔는데 마당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었다. 눈을 얇게 뿌려놓고 구름이 물러간 뒤 달빛이 비치자 집 전체가 보석처럼 빛났던 것이다. 나는 화장실도 잊은 채, 추운 줄도 모르고 마루에 웅크리고 앉아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을 혼자 누리고 있는 듯 마음이 벅차 올랐다.
가을에는 어머니와 함께 격자무늬 문 위에 창호지를 바르기도 했다. 새하얀 종이 위에 단풍잎, 은행잎, 미리 말려 둔 꽃들을 올려놓고 다시 한 번 종이를 덮고 나면 어머니는 푸우우- 푸우우- 입으로 물을 뿌리셨다. 가끔 햇살이 가 닿으면 어머니의 입술 끝에 만들어지던 무지개가 마냥 신기해 따라해 봤지만, 물은 내 입속으로만 들어오면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을 장독대 가을볕에 기대어 놓으면 물이 마르면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쭈글쭈글 주름이 펴지는 소리, 어머니의 얼굴도 저렇게 활짝 펴질 날이 있으리라 기도를 해 보기도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이 있었다. 아버지는 보통 이웃의 고모 댁에서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집으로 들어와 잠만 주무시고는 그 다음 날 다시 떠나 버리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멀쩡한 모습으로 무너진 헛청을 수리하고 계셨다. 산기슭에서 퍼 온 황토에 작두질한 지푸라기를 섞어 반죽한 뒤 벽의 구멍을 메워 가고 있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마음에도 커다란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흙투성이가 된 아버지께 나는 따뜻하게 데운 세숫물을 조용히 가져다 드렸다.
그 노인이 지은 집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 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 <그 노인이 지은 집> 전문
고향의 집이 지금에 와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자연이 구석구석 스며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처를 가진 사람도 내치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아 치유해 주는 게 자연의 힘 아니던가! 그런 고향집의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니 시를 통해서 완성하고 싶었던 집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나는 노트를 꺼내 놓고 기초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하나씩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단단한 주춧돌, 알맞은 나이테의 기둥, 잘 익은 황토벽, 바람결의 마루, 비가 새지 않는 기왓장의 지붕, 꽃잎이 다시 살아나는 창호지문 …. 앞의 한 행을 쓰는 동안 뒤의 한 행이 연이어 떠올라, 시를 완성하기까지 채 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 좋은 시는 시인이 쓰는 게 아니라 시가 시인의 손을 빌려 나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잃어버렸던 시의 방향, 삶의 목표를 다시 찾은 것 같아 참 오래 마음이 뜨거웠었다.
시의 마지막 두 행은 며칠이 지나 덧붙은 문장이다. 시로 집을 지어 놓고 누구를 가장 먼저 초대할까 고민을 하다 보니, 역시 아버지였다.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신 분이기도 했지만, 반평생을 어느 집에서도 마음 편하게 지내신 적 없으셨을 것을 알기에. ‘하얗게 바랜 노인’이 집 안에서 하루라도 편안하시길 바라며 시의 마지막 문장을 끝냈다. 그 마음을 아셨는지 2013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갑 속에는 신문에서 스크랩해 둔 아들의 시 〈그 노인이 지은 집〉이 접혀 있었다.
도시문명 속의 집들
현대 도시문명 속에서 자연의 위로를 담은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많은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집들만 늘어 가고 있다. 이웃들의 살아가는 소리도 소음으로 바뀌고 마는 집, 계절과 함께 숨쉬지 못하고 혼자 창문을 닫아 버리는 집, 사람이 떠나고 나면 폐기물이 되어 썩지도 않는 집, 그 안에서 사람은 과연 얼마나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집을 재산의 중요 항목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의 사고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집마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오르내리는 집값과 관련해 끝없이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심지어 집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도 많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물론 도시화된 현대의 환경 속에서 오롯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집을 짓기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음속의 집이라도 제대로 지어야 할 것이다. 누가 찾아와도 위로가 되는 집 한 채 마음속에 있다면 삶이 누구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詩人이 만난 詩人
“사람들은 반쯤 미쳐 있다”
⊙ 10남매 중 막내이자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나 ⊙ “인간의 상처와 자연의 치유력에서 해결책 찾고 싶어” ⊙ 홀로 요리하고 밤새워 음악과 술잔 기울이는 시인, 그는 천생 삶이 시가 되는 사람
길상호 시인과 대담을 정리하는 동안 밖엔 내내 겨울비가 내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퍼지는 파문과 파문의 이어짐이 생각을 닫고 열고를 반복하며 문장의 보폭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있어 시는 인생에 속하고 그 인생은 시로 녹아 흐르고 있다고 할까.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 첫 문장이 말해 주듯 길 시인은 정통적인 서정적 발화로 내면의 폐허 등 인간 존재 형식에 대한 성찰이 빼어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학적 근황은 어떠할까.
“올해 초에 시집을 묶으려고 시들을 정리하면서 진지하게 그간의 시 작업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등단을 한 지도 벌써 십 년을 훌쩍 넘긴 시기인데, 한 번쯤은 점검을 할 필요가 있겠더군요. 제 시의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동안 어떤 변화들을 거쳤는지, 그 변화의 방향은 나와 맞는 것이었는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좀 좌절을 했습니다. 지키려고 했던 시의 정통성은 진부한 시로, 새롭게 얻고 싶었던 시의 참신성은 아직 설익은 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한동안 시를 쓰는 게 두려웠었는데, 그렇게 앓고 나니까 시 쓰는 방식에 있어 잘못된 제 습관들이 고스란히 보이더군요.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의 시들은 너무 감정적인 경향을 갖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이런 점들을 유의하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의 시집과는 달라진 모습의 다음 시집을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결핍이 詩를 쓰는 원동력
대학 졸업 후 배고픔을 잊기 위해 했던 학원 강사 생활. 그러나 시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최근 시를 읽다 보면 하나의 대상을 통해 그 본질 속 무한한 의미망을 엮어 내고 있다는 느낌이 인다. 가령 ‘나는 심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사람, 몇 가닥 혈관만 남은 가지 끝에서 익기도 전에 물러버린 행성입니다(〈식은 사과의 말〉 中)’와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이러한 시적 환기는 어쩌면 그의 살아온 내력에서 은유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은데 그의 유년은 어떤 각별함이 있는 것인지.
“10남매 중에서도 저와 동생은 쌍둥이로 태어나서 더 특별한 유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동네 어른들로부터도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안 좋은 기억도 한 가지 있는데요. 그건 어떠한 상황에서도 둘을 비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몸이 좀 약하다는 쪽에서, 동생은 공부 능력이 좀 떨어진다는 쪽에서 늘 열등감을 갖게 되었지요. 동생과 제가 한 몸으로 태어났으면 완벽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줄곧 해 왔던 것 같습니다. 또한 10남매는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는데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나가시는 바람에 모두들 자신을 조금씩은 희생하면서 살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들은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남은 식구들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해 가며 생활해야 했으니까요. 저와 쌍둥이 동생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새벽에 밭에 가서 일을 하고 나서야 학교에 갈 수 있는 날들이 꽤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결핍들이 시를 쓰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만요.”
시에 있어서의 상상력은 어쩌면 내면의 결핍이라는 은폐된 실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근원적인 바람에서 시작될 수도 있겠다. 충남 논산의 산과 들이 그의 유년을 일궈 와서인지 그의 시에서는 자연을 통해 시적인 모티브를 얻고 거기에서 주제로 밀고 가는 치열함이 돋보인다. 자연으로 안내하고 끝없는 경이에 영혼을 잇대게 하는 원동력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인간이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현대인의 삶은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끝없이 경쟁하고, 상처받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도 허무해지고, 이런 과정을 무한반복하며 삶을 끌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지요.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여유와 치유능력과 어울림의 미학을 배운다면 인간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제 시를 더욱 자연 쪽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저는 나중에 시골로 들어가 살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꿈이 지금의 도시생활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깊은 내면적 소통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자크 마리탱의 ‘시란 사물들의 내면적 존재와 인간적 자기의 내면적 존재 사이의 상호 소통’이라는 문장이 덧붙여진다. 그의 자연과의 감응은 생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감수성으로 길어 내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펴낸 세 권의 시집의 지향점과 느낌은 어떤 것일까.
“첫 번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에서는 좀 전에 말씀드렸던 이야기들, 유년시절의 삶과 자연을 통한 깨달음 등의 문제를 많이 다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 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의 상처와 그 원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죠. 사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반쯤은 미쳐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자리를 잡아 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얼거리며 종일 거리를 걷는 여자, 술에 취해 새벽마다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들, 외국인지 내국인지 모를 거리 등 모든 게 혼란스러운 풍경뿐이었지요. 그래서 두 번째 시집 《모르는 척》에는 아픈 사람들과 제 자신의 내적 갈등이 이미지화되어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는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간극을 극복하려고 했는데요. 인간의 상처와 자연의 치유능력 사이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거죠.”
요즘 모든 시인이 느끼다시피 시인으로서 시만 쓰기에는 현실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시인이 생계수단의 직장을 갖고 시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첫 직장은 학원 강사였다. 길상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대학 졸업 후 입시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리고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머릿속에 생각이 고여 있을 시간이 없더군요. 당시 강사로서의 능력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과감히 정리하고 대학원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대학원 생활도 그리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학문적인 연구와 시 창작 작업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후 학교 선배와 함께 대전대학교 앞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차려 운영을 했고요. 그런데 장사는 안 되고 손님이 없는 시간에 시를 참 많이 썼지요. 그 당시 시들에서 ‘감자’ ‘양파’ 같은 식재료들이 소재로 많이 등장했답니다. 결국 식당도 망하고 생활은 해야 하니까 가구공장에서도 잠깐, 농기계공장에서도 잠깐, 학습지 교사로도 잠깐 일을 하다가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습니다. 대전보다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말이지요. 마침 이재무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천년의시작’이라는 출판사에서 일을 할 수 있었지요. 2년 반쯤 출판사에 있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와 지금은 안양예고와 여러 곳의 시 창작 강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사에서 시작해 다시 강사로 돌아온 셈이네요.”
미디어의 긍정과 부정
윗옷에 손수 바느질한 주머니 하나. 기존을 거부한다기보다 원래 있는 ‘너’와 ‘나’의 새로운 만남이라고 할 것이다. 그를 거쳐 간 직업은 어쩌면 그가 타인과의 다양한 경계를 경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가 꿈꾸는 ‘나중에 시골로 들어가 살 생각’은 요즘 사회 이슈를 인위적으로 분할하고 구분하면서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결정되도록 분열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염증일 듯싶다. 요즘 부쩍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사회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같이 악몽을 꾸고 같이 슬퍼하고 또 같이 분노하곤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볼 때 그는 시인으로서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한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국민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졌지요. 때문에 이제는 국가적인 차원이든 기업과 개인의 차원이든 다양한 문제를 누구나 쉽고 자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숨기려 해도 쉽게 숨길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까, 그리고 잘못을 유발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문제를 덮을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국민적인 분노가 더욱 커지는 것이겠지요. 세월호 문제부터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김수창 제주 지검장의 음란행위, 아파트 관리비 비리, 가수 신해철 사망과 관련된 병원들의 공방 등 분노할 일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요. 국민들에게 사회적 인식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미디어의 역할은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몇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습니다.”
손바느질한 上衣 주머니
길상호 시인은 홀로 요리하고 혼자 밤새워 음악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인. 그래서 그는 천생 삶이 시가 되는 사람이다. 그는 미디어의 통합능력 부족을 들었다.
“사람들이 노할 힘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요. 분노도 문제를 받아들일 힘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문제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힘이 더욱 절실한데, 그것이 부족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무력감에 빠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간혹 불거져 나오는 문제에만 반응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다 보니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거지요. 더군다나 미디어가 분노를 유발시키면서 그것을 정화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해 주지 못하는 것이 요즘의 실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려되는 일은 국민 분열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서로에 대해 비방하는 글만 있을 뿐, 화합을 도모하는 글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정치색별로, 세대별로, 지역별로 대한민국이 갈가리 찢겨져 있는 기분입니다. 화합을 위해서는 우선 잘못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또한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도 분노의 감정만 키울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더욱 고민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길상호 시인과 인터뷰하면서 그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그의 상의에는 어김없이 손수 바느질한 주머니가 하나씩 달려 있단다. 나직이 그 용도에 대해 듣고 있노라면 기성의 그 어떤 것과 다른 그만의 생활이 느껴진다. 홀로 직접 요리를 하고 혼자 밤새워 음악과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인. 그는 천생 삶이 시가 되는 사람이다.⊙
- 〈글 윤성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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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을 부르는 시어의 주술사
[paper 특강] 꾼, 삶이 예술이다 - ⑪ 서정시인 길상호 이산아카데미 2018-12-08
“‘그 노인이 지은 집’은 군계일학이었다. 한 편의 시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은 질량감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한 노인이 집에 들어가는 과정, 즉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아무런 무리없이 균등한 밀도를 바탕으로 통일감을 형성한 점이 크게 돋보였다. 특히 서사적 요소에 서정적 요소를 차근차근 잘 어우러지게 한 데서 오는 감동이 컸다. 이번 심사를 통해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서정시가 본궤도에 오른 느낌을 받았다. 한때 과도한 부담으로 느껴졌던 현실참여라는 짐을 이제 비로소 내려놓은 것 같다는 점을 부기한다.” (김남조, 김광규, 정호승)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원로시인들이 길상호의 작품을 선정하며 한 심사평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 좀 보자”며 원로들은 길상호를 늦게 얻은 외둥이처럼 편애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춘문예 당선작을 두고 ‘한국 서정시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극찬이라니. 길상호 시인을 나에게 추천한 이 역시 시인이었다. 단단한 내공에 인품도 뛰어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유독 길 시인의 작품을 공유하고 있었고, 캘리그라퍼는 길 시인의 문장을 즐겼다. 시인들 역시 길상호를 두고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어의 마술사라며 좋은 서정시의 본보기로 짚고 있었다. 길상호의 시는 대학 시절 나와 작은 자취방에서 겨울을 나던 한 청년 시인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지독한 고독함과 배고픔, 그리움이 뒤섞여 남루한 가족사에 힘겨워하곤 했다. 늘 언어의 칼끝을 자신에게 겨누었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밤새 앓던 사람이었다. 길상호의 시에서 그 사람의 체취가 났다. 내 벗은 요절했기에 청년 시인으로만 남았다. 시인과 만남은 뜻밖의 설렘을 준다. 내가 버스 안에서 시집을 읽었던 적이 언제였나. 인터뷰는 인사동의 조용한 찻집에서 했다. 얼마 전 제주를 무작정 걸었던 그는 제주 소주 ‘한라산’에 빠져있었고, 그래서 2차는 한라산을 곁들이며 달렸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죠. 등단작품 ‘그 노인이 지은 집’은 오랜 시간 만지작거리다 이청준 소설가의 ‘목수의 집’을 접한 순간 가슴이 떨렸고, 시를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한 편의 시로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일주일 동안 집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다행히 제가 군 제대 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집 짓는 과정을 익혀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집 한쪽 벽면을 황토랑 볏짚을 발라 고치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엮어서 최대한 인공적이지 않은 삶의 집을 짓는 것을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몇 주간 담아두어 익혔다가 막상 쓰는 데는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처음 응모해서 바로 당선되었어요. 작품이 뽑힐지 알았습니까? 네. 의외다. 이런 경우 기자는 더는 물을 말을 찾지 못한다. 당선을 확신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있다. 등단 준비를 오래 해 작품의 예술적 성취를 보는 안목이 있거나 아니면 꿈이 용하다거나. 그동안 시 공부한 것을 모두 집결시킨 작품이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발표 전날 꿈을 꿨는데 신문기자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게시판엔 제 이름이 없어 당황스러웠지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기자가 나타나 저거 잘못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신문사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어요. 물론 어떤 이들은 응모해서 한 번에 등단했으니 천운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응모 전에 많은 작품을 창작하면서도 스스로 모자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 응모를 하지 않았던 거거든요. 그러니 습작 기간이 짧았던 건 아니지요.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고 정밀했다.ⓒ민중의소리
그 노인이 지은 집
그는 황량했던 마음을 다져 그 속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집 크기에 맞춰 단단한 바탕의 주춧돌 심고 세월에 알맞은 나이테의 소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발랐다 벽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새마다 스스스, 풀벌레 소리 곱게 대패질한 참나무로 마루를 깔고도 그 소리 그치지 않아 잠시 앉아서 쉴 때 바람은 나무의 결을 따라 불어가고 이마에 땀을 닦으며 그는 이제 지붕으로 올라갔다 비 올 때마다 빗소리 듣고자 양철 지붕을 떠올렸다가 늙으면 찾아갈 길 꿈길뿐인데 밤마다 그 길 젖을 것 같아 새가 뜨지 않도록 촘촘히 기왓장을 올렸다 그렇게 지붕이 완성되자 그 집, 집다운 모습이 드러나고 그는 이제 사람과 바람의 출입구마다 준비해둔 문을 달았다 가로 세로의 문살이 슬픔과 기쁨의 지점에서 만나 틀을 이루고 하얀 창호지가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고 있는, 불 켜질 때마다 다시 피어나라고 봉숭아 마른 꽃잎도 넣어둔 문까지 달고 그는 집 한 바퀴를 둘러보았다 못 없이 흙과 나무, 세월이 맞물려진 집이었기에 망치를 들고 구석구석 아귀를 맞춰나갔다 토닥토닥 망치 소리가 맥박처럼 온 집에 박혀 들었다 소리가 닿는 곳마다 숨소리로 그 집 다시 살아나 하얗게 바랜 노인 그 안으로 편안히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전 사실 좀 의외였습니다. 지금 40대 중반의 시인이 6, 70년대의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구사한다는 것이요. 이재무 시인이 특히 길 작가의 작품을 치켜세우더군요. 길 시인을 두고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문풍이라고 할까요. 대학시절 읽었던 농민 시인, 향토 시인 그 특유의 정서가 배어있습니다.
하하, 글쎄요. 이재무 선배님은 대학 선배라서 특별히 아끼는 마음을 갖고 계실 것 같아요. 등단하자마자 많은 선배님과 선생님들께서 아주 따뜻하게 환대하셨어요. 제 시어에 있는 향수와 향토색 짙은 특유의 정서를 아끼셨어요. 이런 건 아무래도 어린 시절 촌에서 새벽부터 밭일하고 자연과 동무했던 경험 덕분이라고 봐요. 그런데, 후배 시인들이나 애호가들이 제 시를 꼽는 건 아무래도 잘 짜인 규범 같은 시라서 그런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보고 배우기 좋은 시라는 거죠. 후배들도 등단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제 작품이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일정한 틀에 갇힌 시라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어서, 저 스스로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한 부분도 있어요. 시를 쓰면서 첫 시집이 주는 갑갑한 같은 것을 지금도 느끼곤 하거든요. 작가들은 “배우기 위해 작법을 익히지만, 완숙해져서 자신의 것을 온전히 쓰려면 기존에 배운 작법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다시 물었다. 과거 자신의 시에 대한 불편함, 못남과 창작자로서의 고단함이 찾아올 땐 어찌 합니까? 그런 갑갑함이 ‘저녁의 퇴고’에도 드러납니다. 첫 시집 출간 후 돌아보면 내 시는 너무 정직하고, 이미 배운 시적 규범 안에서만 썼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유로운 기운과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시적 형태에 내용을 가두려 했다는. 그 후 감성을 터뜨릴 수 있는 부분은 더 자유롭게 터뜨려 놓자 생각을 고쳐먹었지요. 작품 경향을 바꾼다는 건 작가에겐 생활 전반을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그러니까 전에 갖고 있던 인식, 생활습관, 환경 등을 모두 버려야 하는 거지요. 전 늘 숲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에서 자랐고, 그 안에서 시를 써왔어요. 제 시의 서정성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그 단정함을 깨뜨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태원 환락가의 중심으로 이사했습니다. 성 소수자 골목이 있었고, 몸값을 흥정하는 이들이 있고, 외국인 노동자가 드나들고 이슬람 사원이 보이는 곳이죠. 두 번째 시집을 위한 도전이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두 번째 시집에선 좀 자유로운 기운이 있어요. 그런데 이태원 생활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니까 이태원 생활이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점점 힘들어졌어요. 결국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하고 나서야 편안해졌지요. 사람이 가진 그 정서적 근원은 그리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죠.
1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2집 모르는 척 , 3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 4집 우리의 죄는 야옹ⓒ민중의소리
그는 첫 시집 ‘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로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이미지를 꽉 짜인 축조물로 엮어내는 근래 보기 드문 시인으로 호평받았다. 문단의 관심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나온 두 번째 시집이 ‘모르는 척’이다. 시인 이수정의 평이 절묘하다. 그는 첫 시집에 실린 시들의 비유와 이미지의 정교함을 보고 ‘저렇게 쓰다간 이 사람 일찍 죽겠다’ 는 생각을 했고, 두 번째 시집을 읽곤 시인이 수압을 견뎌 더 어두운 심해로 가려가는 것을 보고 우울해졌다고 했다. 책이 나오자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정시의 기린아 길상호가 계보를 버리고 요즘 작가들 경향으로 갔다는 반응. 반대로 그의 시가 일찌감치 모범답안의 그물을 뚫고 새로워졌다는 평가. 그리고 북한산 자락으로 돌아와서 쓴 세 번째 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에선 다시 서정시의 본류를 올라탄 그를 볼 수 있다. ‘무한락스’ ‘아침에 버린 이름’ ‘도비왈라’ 와 같은 작품엔 존재에 대한 괴로움과 가족사에 대한 응어리 같은 것이 묻어납니다. 세상과 조응하지 못하는 고독한 청년의 감수성말입니다. 존재에 대한 괴로움이지요. 스스로 만들어놓은 감정 덩어리들. 괴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괴로움들이 있어서 살게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들이죠. 그런데 그 괴로움의 연원은 아버지였어요. 아버지가 시를 쓰게 해주셨죠.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로 사는 게 뭘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고, 나이 들어선 아버지가 세상의 괴로움을 증명하는 하나의 단서로 발전한 것 같아요. 10남매라고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없이 자라셨다고요. 어머니가 힘드셨겠습니다. 어머니도 힘들었지만, 형과 누님들도 일찍부터 살림을 지키기 위해 경제 생활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형제가 5남 5녀였는데, 저와 동생이 일란성 쌍둥이였지요. 4살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시고 다른 살림을 차리셨죠. 가난도 지독했지만, 집안을 가득 채운 어두운 분위기 있잖아요. 어릴 때 사진을 보면 활달하고 잘 웃던 애가 어느 한순간 침울한 아이로 바뀌어 있어요. 아버지의 부재가 어린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나 봐요. 쌍둥이였는데, 동생은 다부진 체격으로 운동을 잘했고 전 공부를 잘했지만 몸이 약했어요.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은 우리 쌍둥이를 보고 “둘을 합쳐 놓으면 완전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불완전체로 보였던 거죠. 아버진 일 년에 한두 번 오셨는데 저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셨던 것 같아요. 용돈과 선물도 따로 챙겨서 주셨어요. 아버지 성정에 공부를 잘하는 나를 더 흐뭇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망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이 한 데 뒤섞여 버린 것 같아요. 아버지가 밉지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어요.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탈출구가 필요했거든요. 그러다 이상의 시 ‘거울’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시에서 말하는 이는 내면적 자아가 충돌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분명 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겉의 나는 착한 아이였지만 내 속의 나는 뛰쳐나가려 울부짖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시화전을 열었어요. 좀 유치한 시였는데 작품을 본 선생님께선 계속 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칭찬하셨거든요. 그래서 시인이라는 목표가 일찌감치 마음속에 정해졌지요. 어려서는 시를 쓰면서 자아를 막무가내로 괴롭혔어요. 그런데 시에 대한 관점이 바뀐 일이 있지요. 어느 날인가 ‘아버지’라는 시를 밤새 울면서 썼어요. 그런데 시를 다 쓰고 나자 속이 시원했어요. 그건 원망이나 저주가 아니고 아버지의 처지에서 다시 세상을 재구성해서 쓴,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였어요. 아버지 삶에도 말하지 못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 대한, 우리에 대한 마음은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 이날 처음으로 ‘시’란 원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 삶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쓰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물이나 사람. 그 존재와 삶에 대한 이해가 시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요즘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를 종종 발견해요. 이제는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문득문득 그렇게 아버지는 시를 통해 나타나곤 하지요. 정말 가족사란 그렇게 검질긴 것일까. 길상호의 등단작품엔 한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기둥 사이에 휘파람으로 울던 가지들 엮어 채우고 붉게 잘 익은 황토와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벽을 바르고 있었다. 시인이 어릴 적 본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이 ‘우리의 죄는 야옹’(2016.문학동네)이다. 그는 실제로 3마리의 ‘냥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다. 첫째 ‘물어’는 박지웅 시인이 기르던 아기 길냥이였고, 나머지 두 마리 ‘운문이’랑 ‘산문이’이는 계룡의 친구 집에 들렀다가 본 15마리의 무리에서 데려온 남매다.
그는 고양어어를 배우고 있다. 나중 고양이어를 인간계에 전하는 능력을 준비하고 있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연민이랄까요? 저도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고 ‘물어’도 엄마에게 버림받은 길고양이였어요. 처음 물어를 본 날이었는데, 눈도 못 뜬 상태에서 무릎 속으로 자꾸 제 무릎 속으로 기어들어 오더라고요. 따뜻한 온기를 찾는 것이죠. 그런데, 그 순간 제 무릎이 오히려 따뜻해졌어요. 처음 만난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시인은 온기를 나누는, 체온을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시집을 내며 덧붙인 시인의 말이다. 물아와 운문이 산문이 고양이들을 데려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야옹야옹. 새로운 언어를 연습한다. 말이 되지 않는 고양이어를 듣고서도 눈치가 빠른 고양이들은 나를 정확하게 이해해준다. 얼토당토않은 말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시가 되지 않는 문장들은 교감으로 당신에게 가닿길 바란다. 사람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고양이들은 보여줘요. 가령 눈이 오면 우린 그 정경에 주목하지만, 고양이들은 여러 가지의 감각을 한꺼번에 즐기고 있어요. 창턱에 앉아서 그윽한 눈빛을 하고, 귀를 쫑긋거리면서,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가끔씩 털을 세우기도 하면서. 가끔은 그런 행동을 저도 따라 해 보곤 하는데,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비와 눈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게 돼요. 작품 중 ‘야옹야옹 쌓이는’ 은 따뜻한 판타지로 읽었습니다. 마치 죽은 길고양이를 위한 추모곡 같은.
야옹야옹 쌓이는
낡은 문장의 날들이 눈에 덮이고 비로소 밤이 전생처럼 고요해지면 고양이 영혼들이 줄지어 골목으로 모여들었네 사뿐사뿐 발걸음마다 꽃무늬가 찍혀서 눈길은 온통 향기로 채워졌다네 응달을 지키고 서 있던 눈사람은 이때 발바닥이 시린 고양이들을 위해 눈송이 긁어모아 모닥불을 피워두었는데 영혼이 쬐기에 가장 알맞은 온도 어떤 고양이는 잘려나간 발까지 따뜻해져서 더는 절뚝거리지 않아도 되었다네 지난 생의 못 다한 대화가 깊어질수록 눈빛을 받아먹으며 눈발은 굵어지고 비밀스런 전설이 발톱처럼 자라기도 했다네 담장 가득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가로등은 눈 한번 깜빡일 수가 없다네 아주 가끔 성에꽃 핀 창문을 열고 풍경을 몰래 훔쳐보는 자가 있는데 오드 아이가 되어 남은 생을 살게 된다네 고양이들 혀끝의 울음이 끝날 때까지 야옹 야아옹 눈은 그치지 않는다네
길 시인의 시집, 모든 시에는 구체적인 소재가 있고 묘사가 있습니다. 사물의 구체성에서 화자의 생각으로 번지더군요. 네. 잘 보셨어요. 대학시 절엔 관념적인 시도 많이 썼어요. 그런데 그래서는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친근하게 전달할 수 없더라고요.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통해 공감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대학 시절 창작동아리 선배가 그러더군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면 한 시간 정도는 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봐라. 그렇게 관찰부터 하라고. 전 정말 나무 옆에 서서 한 시간을 묵묵히 지켜봤어요. 단순했던 감각에서 점차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끼어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생각의 확장인거죠. 나무뿐 아니라 나무가 갖고 있던 공간, 시간들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관찰하는 일에 더 매달렸어요. 학교에서 자취방까지 거리가 5분이었데, 전 늘 2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어요. 관심을 끄는 것이 있으면 옆에 앉아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렇게 2~3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대학 때는 하루에 13편까지 습작하면서 살았어요. 그때의 시를 보면 말도 되지 않는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 작업으로 시의 토양이 쌓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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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한 마리
일 년 넘게 신어온 구두가 입을 벌렸다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 한 마리 음메-첫울음 울었다 나를 태우고 묵묵히 걷던 일생이 무릎을 꺾고 나자 막혀버리는 길, 풀 한 줌 뜯을 수 없게 씌어놓은 부리망을 풀어주니 구두가 길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기억이 그 입에서 되새김질되고 소화되지 않은 슬픔은 가끔 바닥에 토해놓으면서 구두 한 마리 이승의 삶 지우고 있었다 바닥에서 살아나는 시간을 따라 다시 걸어야 할 시린 발목, 내가 잡고 부리던 올가미를 놓자 소 한 마리 커다란 눈을 감으며 구두 속에서 살며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는 시가 써지지 않으면 몇 달이고 그냥 놔둔다고 했다. 어차피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써버렸기 때문에 안달한다고 창작이 되는 건 아니라고. 그는 작은 배낭을 메고 산이고 들이고 걷는다고 했다. 여행 다니면서 많이 썼어요. 여행, 특히 걷기는 가장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해줘요. 시인이 좋은 점은 작은 메모장 하나만 있으면 쓸 수 있다는 거죠. 또 최근에는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벗도 생겼고요. 아마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책과 시를 읽은 사람일 겁니다. 같이 걷기도 하고 야생화를 따서 차도 끓이고 그러면서 다니고 있지요.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는 것도, 철학이나 미학,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요. 새롭게 대하는 것들은 늘 길들여진 생활에 또 다른 긴장감을 부여하거든요. 그래도 너무 안 나올 때면 그냥 바느질을 해요. 가방을 리폼하고 옷을 꺼내 누벼요. 단순한 작업이지만 낡은 것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또 하나의 작업이죠. 그러고 보니 그의 옷엔 바느질로 박아놓은 주머니가 달렸고, 시인이 직접 만든 가방이 있다. 그는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요리를 좋아하고 제 손으로 빨래한다. 그는 독신이다. 결혼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가방은 길상호가 만든 것이다. 그는 바느질을 통해 손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만의 창작방법이다.ⓒ민중의소리
결혼을 안 하려 해요. 아버지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랐어요. 한 여성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저의 짐을 배우자가 짊어지게 하는 것도 싫고요. 창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사색과 우울함 같은 것을 전가하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지금 제가 너무 잘 살고 있어요. 요리, 빨래, 리폼 뭐 다 할 줄 알거든요. (웃음) 거기에 고양이 세 마리가 곁에 있고요. 아시겠지만 시인은 궁핍할 때가 많죠. 그 궁핍을 오히려 즐길 때도 많고요. 만일 배우자가 돈을 좀 벌어 저를 후원한다고 하면 저는 그걸 못 견뎌 할 게 분명해요. 내가 아는 한 시인은 꽤 오래 등단을 준비했지만 하지 못했고 생활고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요. 나이 들수록 점점 술도 늘고 자괴감도 깊어지는 것 같아 시인의 길이 참 만만치 않구나 생각해요. 그러니까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로 성공하겠다는 사람이 빈곤으로 인해 겪는 삶의 상처, 가족의 불화 같은 것을 목격하면 저도 우울해지거든요. 후배들에게도 가끔 이야기하는데, 시가 생활을 파괴하면 안 돼요. 생활이 극단적으로 어려워지면 자신을 비관하고 이것이 또 시로 나타나거든요. 전 차라리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꾸준히 시를 쓰라고 해요. 그게 오히려 시인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거든요. 시가 책상에서 나오는 건 아니니까. 제가 29살에 등단했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들이며 연습하고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해요. 등단이라는 건 노력 끝에 얻어지는 하나의 결과일 뿐이죠. 시를 쓸 때 남과 비교도 많이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죠. 그런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강점, 잘 짓는 방식이 있거든요.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면서 단점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하곤 해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밀고 나갈 힘도 줄어들거든요. 안양예고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런 경험을 했어요. 재능이 뛰어난 친구가 있고 반대인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인식이에요. 재능이 있는 친구는 늘 칭찬으로 고무되었기에 창작에 대한 노력,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더군요. 반대로 작은 칭찬에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는 결국 자기 시를 써내더군요. 그러니까 재능이라는 건 자기 자신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게 일찍 터지는 사람이 있고, 오랜 기간 묵혀서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 누가 참고 꾸준히 쓰냐는 문제겠죠. 시인을 꿈꾸며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는 창작방법, 조언을 하나만 듣고 싶습니다. 작가님도 국문학과를 나오셨는데, 학부과정이 도움이 되던가요? 전 꾸준하게 관찰일기를 쓸 것을 권해요. 매일 그날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사물과 상황, 그 특성을 하나씩 짚어서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그저 자신의 가슴 안의 감정만을 토로하면 문학적 근원이 없어지거든요. 사물에 대한 시선, 관찰에서 모든 창작이 시작되는데 이 훈련을 많이 권해요. 세상의 모든 사물은 닮아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시라는 것은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데, 저는 그 유사점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요. 나와 별개라고 생각했을 때와는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요. 그래서 시를 쓰면서 사물과 인연 맺는 작업들을 많이 하게 돼요. 문창과 교육만으로 시를 쓸 순 없어요. 절대적으로 자기 체험과 지식을 통한 훈련이 필수적이죠. 그런데 전 대학 생활을 하면서 철학, 미학, 심리학, 기호학 등의 수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특히 국문학과 수업 중 하나였던 <의미론>은 언어의 근원을 밝히는 내용이라서 더 큰 도움이 되었지요.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에서 많이 배웠어요. 선배들과 매주 교재를 갖다놓고 학습도 했고, 때로는 졸업한 선배들까지도 와서 합평회를 함께 해주며 시를 잡아주셨어요. 합평은 막힘없이 자유롭게 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몇 개의 원칙은 있었어요. ‘시를 통해 상대를 공격하면 안 된다’, ‘시에 드러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 감정까지 손대선 안 된다’는 거죠. 시를 쓰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 내용도 더 파악하기 쉬워지는 법이니까요. 끝으로 그에게 꿈을 물었다. 어른이 되고부터 꿈 대신 계획이나 구상을 물었는데, 이산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제 꿈은 고양이들과 대화를 자유롭게 나누면서 그들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시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게 될 정도가 되면 세계의 비밀도 더 쉽게 눈치를 챌 수 있는 시인이 되어 있겠지요.
감자의 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될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 길상호 시인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 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모르는 척』 『눈의 심장을 받았네』 『우리의 죄는 야옹』 사진 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 현대시동인상, 천상병시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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