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서른 한 번째로 고양 서오릉의 명릉(明陵,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고양 서오릉
명릉(明陵, 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조성 연도 : 1701년(숙종 27), 1720년(경종 즉위), 1757년(영조 33)
왕릉 형식 : 동원이강릉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이다. 최초의 동원이강릉은 세조 광릉이며, 예종 창릉, 성종 선릉 등 7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선조 목릉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언덕(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에 별도의 봉분을 조성하였고, 숙종 명릉은 쌍릉(숙종과 인현왕후)과 단릉(인원왕후)의 형태로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하였다.
▷ 명릉(明陵) 이야기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명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세우고 서로 다른 언덕에 쌍릉과 단릉으로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언덕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이고 왼쪽 언덕이 인원왕후의 단릉이다.
명릉이 이곳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화가 있다. 숙종이 하루는 평상복을 입고 민심을 살피기 위해 궁궐을 벗어나 어느 냇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냇가에서 한 젊은이가 울고 있는 것이 보여 연유를 물으니, 갈처사(葛處士)라는 유명한 지관이 이곳에 무덤을 쓰면 좋다고 해서 땅을 파는데, 아무리 파도 물이 나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그 지관이 장난을 쳤다고 여기고,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관청에 가서 쌀 300석을 받아올 수 있도록 적은 서신을 주었다. 그리고 지관이 살고 있는 허름한 오두막집을 찾아가 청년의 일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지관은 “모르면 잠자코 계시오. 저 땅은 무덤자리로 들어가기도 전에 쌀 300석을 받고 명당자리로 들어가는 자리라오!”라며 따져 묻는 숙종에게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그의 신통함에 놀라 자신이 국왕인 것을 밝히고, 훗날 본인이 묻힐 자리를 골라달라고 부탁하였다.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지금의 명릉 자리가 바로 신통한 지관 갈처사가 택한 입지라고 한다.
그런데 『숙종실록』에 1681년(숙종 7)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을 공사할 때 숙종이 본인 능 자리를 지금의 명릉 자리로 미리 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숙종은 허우(虛右, 오른쪽 자리를 비우게 함)제도를 참고하여 인현왕후의 능과 숙종 본인의 능 자리를 미리 공사하였고, 1720년에 숙종의 능을 이곳에 조성하였다.
명릉을 조성한 지 37년이 지난 1757년(영조 33)에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인원왕후의 능자리에 대해서는 『숙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713년(숙종 39) ‘명릉과 익릉 사이에 간좌곤향(艮坐坤向) 언덕이 있는데 후에 내상(왕비의 상)이 있을 경우 이 언덕을 쓰되, 명릉과 가까우니 정자각을 같이 쓰라’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명릉에서 400여보 떨어진 곳에 숙종이 미리 살아있는 왕비의 능 자리를 정한 것이고, 인원왕후 본인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명릉 곁에 묻히기는 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757년(영조 33) 인원왕후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홍릉)과 영조 본인의 능 자리를 미리 공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영조는 또 다른 왕릉 공사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명릉 바로 오른쪽 언덕인 지금의 자리가 길지(吉地)라는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지금의 자리에 인원왕후의 능을 조성하여 왕릉 공사에 드는 인력과 국고를 줄였다.
명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의 상설은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과 인원왕후의 단릉 모두 비슷한 모습이다. 능침 아래의 비각 안에는 2개의 표석이 있는데 왼쪽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표석이고, 오른쪽이 인원왕후의 표석이다.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 양옆에는 제향 때 제관이 걷는 변로(邊路)가 남아있다.
▷ 숙종(肅宗) 이야기
숙종(재세 : 1661년 음력 8월 15일 ~ 1720년 음력 6월 8일, 재위 : 1674년 음력 8월 23일 ~ 1720년 음력 6월 8일)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아들로 1661년(현종 2) 경덕궁(현 경희궁) 회상전에서 태어났다. 1667년(현종 8)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674년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14살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에서 왕위에 올랐다. 14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총명하고 영특하여 수렴청정을 받지 않았다.
재위기간 동안 붕당간 정치 대립이 심한 가운데 세 번의 환국(1680년 경신환국: 유악(油幄) 사건으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 교체, 1689년 기사환국: 원자 칭호 문제로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 교체, 1694년 갑술환국: 인현왕후 복위 문제로 남인에서 서인으로 정권 교체)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고, 전국적인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을 실시하였다. 또 상평통보를 유통시켜 상업을 장려하였고, 1712년(숙종 38)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청나라와의 국경을 확정하였다. 그리고 왕실 족보인 『선원록』 편찬을 시작으로 2대 정종의 묘호(廟號, 종묘에 붙여지는 이름) 추숭과 6대 단종과 정순왕후의 복위, 소현세자빈 강씨를 복위하는 등 왕실의 질서와 제도를 확립하였다. 이후 1720년(숙종 46) 경덕궁(현 경희궁) 융복전에서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 인현왕후(仁顯王后) 이야기
인현왕후 민씨(재세 : 1667년 음력 4월 23일 ~ 1701년 음력 8월 14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성부부인 송씨의 딸로 1667년(현종 8) 반송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1680년(숙종 6) 숙종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681년(숙종 7)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 숙종의 후궁 장씨가 왕자(경종)를 낳자 원자(元子)로 정하는 문제로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기사환국이 일어나면서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었다. 1694년(숙종 20) 인현왕후의 복위운동으로 갑술환국이 일어나면서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1701년(숙종 27) 창경궁 경춘전에서 35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후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한 죄로 옥사(신사옥사, 무고의 옥)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 인원왕후(仁元王后) 이야기
인원왕후 김씨(재세 : 1687년 음력 9월 29일 ~ 1757년 음력 3월 26일)는 본관이 경주인 경은부원군 김주신과 가림부부인 조씨의 딸로 1687년(숙종 13) 순화방 사저 양정재에서 태어났다. 1701년(숙종 27) 숙종의 두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702년(숙종 28) 왕비로 책봉되었다. 1720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경종 연간에 있었던 노론과 소론의 대립인 신축·임인옥사(신임옥사)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영조를 끝까지 보호해 주었다. 1724년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1757년(영조 33) 창덕궁 영모당에서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 서오릉(西五陵) 이야기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구리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이다. 1457년(세조 3)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의묘(懿墓, 경릉)가 처음 조성되었고, 1470년(성종 1) 예종의 창릉(昌陵)이 왕릉으로서 최초로 조성되었다. 이후 순회세자의 순창원(順昌園),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숙종의 명릉(明陵), 정성왕후의 홍릉( 弘陵)이 차례로 조성되어 조선시대에는 5기의 능과 1기의 원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영빈 이씨의 수경원(綏慶園)과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大嬪墓)가 옮겨져 지금의 서오릉이 되었다.
연도내용
| 1457년(세조 3) | 세조 첫째 아들 의경세자의 의묘 조성 |
| 1470년(성종 1) |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고 의묘를 경릉으로 높임 예종의 창릉 조성 |
| 1499년(연산군 5) | 예종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의 능을 창릉 동쪽 언덕에 조성 |
| 1504년(연산군 10) | 추존 덕종 왕비 소혜왕후의 능을 경릉 서쪽 언덕에 조성 |
| 1563년(명종 18) | 명종 아들 순회세자의 묘 조성 |
| 1592년(선조 25) | 순회세자 부인 공회빈 윤씨가 세상을 떠남 |
| 1681년(숙종 7) | 숙종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익릉 조성 |
| 1701년(숙종 27) | 숙종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의 명릉 조성 |
| 1720년(경종 즉위) | 숙종의 능을 명릉 왼쪽 자리에 조성 |
| 1757년(영조 33) | 영조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홍릉 조성 숙종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능을 명릉 서쪽 언덕에 조성 |
| 1870년(고종 7) | 순회세자의 묘를 순창원으로 높임 |
| 1970년대 | 추존 장조 생모 영빈 이씨의 수경원을 신촌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김 경종 생모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를 광주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김 |
첫댓글 모든 릉을 다 다니시는건가요? ㄷㄷ
예, 다 다녀왔습니다 ^^
@베라루빈 대단하십니다
@뽕 존스
별말씀을요 ^^
등산과 함께 문화유산 돌아보는 게 취미라서...
숙종이라하니 뭔가 숙의하고 싶어지네요. 숙면도 하고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