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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제목: 사업과 직장을 위한 교양과 역사
■ 86번째 주 내용: 5.18폭동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올리옵니다. → 1부 설명
■ 일자: 신축년(辛丑年) 단기 4354년 서기 2021.11.18.목요일.(음력10.14.)
■ 장소=등재한 곳: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
■ 강의자(講義者):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여러분께서 사업과 직장에 초석이 되고 밑바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무료강의는 1마당에서 13마당으로 되어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무료강의를 올리겠습니다.
정정당당한 미래를 위해 우리 젊은 후손들에게 대홍익역사(大弘益歷史)배움터와 천지학당(天地學闛)터를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힘찬하루 보내세요.
오직 배움의 길로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자가 실패를 딛고 승리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 제13마당 설명 중 86번째 무료강의 시작
◐ 5.18폭동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올리옵니다 → 1부 설명
5.18폭동보다 더 심한 폭동에 대하여는 1부. 2부. 3부로 올리겠습니다.
2021년인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인 1980.5.18. 이 당시에 외국기자와 우리나라 기자가 광주사태=5.18사태에서 10일 동안에 취재한 것을 책으로 만든 <5.18 특파원 리포트> 란 책을 근거로 글을 올리옵니다.
이 책에 보면 전라도 40 여개소의 파출소가 무기를 탈취 당하였으며 세무서방화와 방송국방화와 아세아자동차공장에 진입하여 대형버스 22대와 장갑차 3대와 군용트럭 33대 민간트럭 20대를 탈취 하였으며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했으며 교도소를 습격했으며 전남방직, 일신방직, 연초제조창 무기고를 탈취했으며 시위대가 화순광업소에서 차량 1대분의 다이너마이트를 싣고와서 국민은행 앞에 대기함. 이는 5.18폭동 중에서도 폭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를 엄밀히 말한다면 무기를 동원하여 교도소를 습격하였으므로 이는 나라를 뒤엎으려는 5.18반란군으로 불러야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지금부터는 5.18민주화가 아니라 5.18폭동 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아래에 이 <5.18 특파원 리포트>란 책을 근거로 5.18폭동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올리옵니다. 곧 지금으로부터 즉 2021년 신축년으로부터는 42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수 천년 수 만년이 지나도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글을 읽어 보시고 무엇이 민주화며 무엇이 폭동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올바른 혜택들이 정당하게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와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더 올바르게 이끌고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특검을 통하여서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혜택을 주는 것은 정당한 곳에 쓰라고 했지 폭동을 일으킨 자에게 까지 주라고 하지 않았다. 곧 5.18특별법을 폐기를 않하는 이상은 이 5.18폭동들에게 잘못지급된 돈은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에게 비자금을 환수했듯이 이 5.18폭동들에게 잘못지급된 돈은 영구히 밝혀서 환수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률을 총망라한 법전(法典)의 형사편(刑事編)에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소시효(公訴時效)의 정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 라고 법률로 정해놓았으므로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에 대하여 대우도 않해주고 인간이하의 짓을 한 것과 같이 5.18폭동들의 잘못도 영구히 조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10일동안에 일어난 5.18폭동에서 무엇이 나라를 위하고 사회를 위하여 공적이 있다고 5.18유공자(광주민주유공자) 라고 지정하였는지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
≪ 1980.5.21.날에 시위대가 아세아자동차공장에 진입하여 대형버스 22대와 장갑차 3대와 군용트럭 33대와 민간트럭 20대를 탈취하여 도청으로 진격함. 이외 폭동에 대하여는 아래에 올려놓았음. ≫ 반드시 5.18폭동에 대하여 밝혀봅시다.
▣ 1980년 5.18사건 제1탄: 이름을 짓는다면.
그 당시 취재한 외국기자와 내국기자들의 증언으로 진실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제가 5.18사건 제1탄에서 4탄 정도로 이야기를 올리고자 합니다.
제1탄은 과연 1980년에 10일 동안에 일어난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에서 5.18사건을 과연 무엇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맞느냐에 대하여 글을 올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은 나라를 영원히 이어가야 하고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여서 미래를 이끌고 가야하기 때문에 5.18사건에 대하여 글을 올리옵니다.
제가 처자와 먹고살기에 바쁠 때는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제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각 나라 흥망성쇠> 10권외 전자책 40권을 발간하다보니 역사는 보배 중에서도 보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젊은 화랑도와 여랑도들에게 나라를 영원히 이어가야 하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이끌고 가기 위하여 그 당시의 역사를 정확하게 잘잘못을 알고서 판단을 올바르게 한다면 미래는 더 밝고 더 재미있고 더 멋진 삶과 더 힘찬 전진을 할 수가 있다고 보아서 제가 각 문헌을 통하여 아는 범위 내에서 글을 올리옵니다.
곧 그 당시 취재하여 만든 <5.18 특파원 리포트>를 근거로 하여 5.18사건이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민주화인지를 밝혀보고자 합니다.
1980년 5.18사건이 일어나고 15년이 지난 뒤 김영삼 문민정부시대에 5.18특별법을 만들고난 뒤 2년 후에 5.18사건을 그 당시 취재한 것을 1997년 5월에 만들어낸 책인 <5.18특파원리포트>를 중심으로 밝혀보겠습니다.
경자년(庚子年) 현재 2020년으로 따지면 41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여러분과 함께 슬기를 모아 나라를 같이 걱정해 봅시다.
➜ 1980년 5.18사건 제1탄: 이름을 짓는다면.
■ 진실은 언론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 1980년 5월 18일~27일까지 10일 동안의 객관적의 사건을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 광주사건은 폭동이냐? 봉기냐? 항쟁이냐? 대항이냐?
■ 정말 5.18의 진실은 무엇인가? 무엇이 민주화이며 무엇이 폭동이냐?
■ 현장 취재기자는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 1997년도에 발간한 즉 17년이 지난 후 5.18사건에 대하여 그 당시 취재한 이름이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다.
5.18폭동. 5.18봉기. 광주폭동. 광주사태. 광주소요. 광주항쟁. 광주민중항쟁, 광주무장항쟁, 군인폭동 등이다.
김영삼 문민정부 때 헌법에도 위배되는 법을 소급하여 즉 1995년 7월 18일에 서울지검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명언의 말을 번복하고 즉 지검의 조서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이는 역사를 거슬리는 것으로 5.18특별법을 김영삼대통령은 지시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 이라고 만들었다.
■ 그 당시 취재기자들의 증언으로 진실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 1980년 5.18사건은 신군부 저항에 대하여 광주학생들과 시민들이 무기를 동원하여 정부를 상대로 대항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름을 짓는다면 5.18신군부정권대항사건 이라고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즉 전라도 40 여개소의 파출소의 무기가 탈취당하였으므로 고로 앞으로는 5.18폭동 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 법을 소급한 것은 법이 아니다. 곧 세월을 소급한 것은 역사가 아니고 역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곧 죽은자를 살릴 수 없으며 나이를 소급할 수가 없으며 세월을 소급할 수가 없으며 태양을 뒤돌릴 수 없다. 엎질려진 물을 다시 담을 수가 없다. 고로 소급한 모든 법은 법이 아니다. 곧 5.18특별법도 법이 아니다.
다시 말하여 헌법에도 위배되고 원칙과 도리에도 위배되는 법을 곧 천지리치(天地理致)에도 위배되는 법을 소급하여 만든 법은 법이 아니다.
앞으로 나라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소급한 법을 전부 없애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어느 역사나 어느 임금이나 어느 사람이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금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다만 현재의 위치에서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여 현재 더 좋은 쪽으로 정책을 펼려고 하는 것뿐이다.
■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弑害)사건 이후 정권도 잡지 못하고 나라혼란만 일으키고 그 다음날 27일 0시 40분경에 체포되었다. 그 후 역사는 1979년 12.12.사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5.18폭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박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대법원판결 확정 후 즉결심판으로 처형됐다. 즉 사형시켰다. 이후 이해 8월에는 최규하대통령은 사임하고 9월 1일에는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 1980년 5.18폭동은 전두환의 계엄확대 반대, 전두환 정권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이다.
■ 1980년 5.18폭동은 정권쟁취 싸움이다. 나라를 구하고 조국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정권을 잡으려는 정권쟁취사건이다. 곧 역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권을 잡은쪽에서 보면 5.18폭동이며 반정부입장에서 서서 보면 무기를 동원한 5.18.광주항쟁사건이다. 곧 나라 입장에서 보면 5.18반란군이며 5.18광주사태이며 5.18폭동이다.
■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박정희대통령이 시해 당하므로 인하여 정권쟁취를 위한 연장선에서 광주학생시민들이 파출소무기 탈취와 공공시설물을 방화하고 장갑차, 소총 등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하였다. 곧 정권을 장악한 군정권을 타도하고자 했으며 이에 대항하였으므로 곧 무기를 탈취하고 동원하였으므로 이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다. 고로 이 5.18사건은 무기를 동원한 5.18신군부정권대항사건 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라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5.18폭동 이라고 말하자 합니다.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이 정확한 역사를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 저는 역사를 천지리치(天地理致)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본다면 1980년 5월 그 당시에 모든 역사는 군부가 광주사태를 진압하여 끝났는데 즉 그 당시 모든 게임은 끝났는데 17년이 지난 후에 공개된 5.18취재는 김영삼 문민정부시대에 5.18특별법을 만든 후 2년 후에 발간한 것으로 그 당시 역사를 거슬리는 일들이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10일 동안의 역사에 대해 이름을 짓는다면 신군부를 부정하며 무기로 대항하였으므로 5.18신군부대항사건 이라고 이름을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아니면 저는 그 기간에 일어난 사건을 보면 전라도 40개소 파출소무기탈취와 세무서방화와 방송국방화와 장갑차탈취와 다이너마이트탈취와 교도소습격 등을 저질렀으므로 원칙적으로는 5.18반란군 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5.18폭동 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곧 앞으로는 5.18폭동 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 1980년 5.18폭동 제2탄: 그 당시 배경.
1980년 5.18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과연 그 당시의 배경은 어떠하였나?
박정희대통령이 김영삼을 그 당시 신민당총재직과 의원직을 박탈함으로서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이 부마항쟁으로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인 유신체제이며 곧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부마항쟁이 공수부대 투입으로 1979년 10.16.~10.20.까지 5일만에 끝나고 6일 후 김재규가 1979년 10월 26일에 박대통령을 시해(弑害: 총으로 사살함)하였다.
그러나 김재규는 정권을 잡지도 못하고 도리어 사회혼란만 일으키고는 1979년 10월 27일인 그 다음날 체포되어 5.18폭동 기간 중인 1980년 5월 24일에 심판을 받아 사형을 당하였다.
김재규가 체포되고 2달 후에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하는 12.12사건이 일어나고 전두환의 새로운 군인집단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박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무정부의 공백상태와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상태에서 서울에서 학생시위가 일어나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 후 또 광주에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확산되자 이때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실시하면서 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게 되자 전라남도 광주에서 그 다음날 5월 18일에 광주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박대통령이 시해당한 이후 정치상황은 전두환과 야당지도자들의 정권을 잡기 위한 당시 배경이다. 곧 누가 정권을 잡느냐가 그 당시의 배경이다. ≪ 세계역사는 말하기를 정권을 잡은 자가 자국 안에서 폭동이 일어났는데 진압을 않하고 구경만 하는 자가 있겠는가? ≫
➜ 1980년 5.18.폭동 그 당시 배경
■ 헌법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정해져 있다.
■ 유신헌법(維新憲法)이란 곧 박정희대통령의 재임기간으로 제4공화국을 말하고 있다.
■ 유신헌법(維新憲法)이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제3공화국헌법 일부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비상조치를 선포하였다.
그 뒤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유신헌법안을 의결하여 그해 11월 21일에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확정됨으로써 제4공화국의 유신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유신체제는 통치체제의 통치능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기여하였으나 국민의 정치참여 요구를 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역사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만든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그 당시 신민당총제이며 국회의원인 김영삼에게 자격을 박탈하므로 해서 박정희대통령 시해하기 전에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항쟁이 터지므로 해서 이를 무리하게 공수부대 투입하여 5일만인 10월 20일에 진압을 했으나 이로 인하여 6일 후 1979년 10월 26일에 김재규에 의해 시해 당하므로 해서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마항쟁에 대하여 위대한 문구를 넣고자한다. 즉 부마항쟁이 아니라 위대한 민주부마항쟁 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 이때 민주부마항쟁은 무기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위대한 민주부마항쟁 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1979년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그 다음해인 1980.5.18.에 광주에서 일어난 5.18사건은 40 여개소의 파출소의 무기를 탈취하여 교도소를 습격 대항했기 때문에 5.18폭동 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곧 이 위대한 민주부마항쟁으로 인하여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는 막을 내리고 민주화의 발걸음을 걷게 만든 시초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박정희대통령은 위대한 부마항쟁으로 인하여 1961년 5.16혁명으로 따지면 19년간의 재임기간으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 성공한 쿠데타(정변)는 세계역사가들은 모두가 혁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정권 즉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 당시 혁명에 가담도 않하고서 지금의 잣대에서 혁명을 쿠데타로 고치는 자는 역사를 모독하는 처사며 세계혁명가와 우리나라 혁명가를 먹칠하는 자로 능지처참해야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
1963년에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므로 대통령의 재임기간으로는 17년간의 임기로 유신체제 즉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인하여 모든 계획을 안정되게 추진하여 완성하여 국가를 튼튼하게 안정적으로 확립을 하는 데는 좋은 성과를 가져 국제무대에 진입하는 데 큰 업적도 많이 있다. 만약에 더 집권을 하였다면 아마 핵무기도 만들어 놓을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좌우간에 장기집권으로 경제발전과 국방력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고 봅니다.
■ 전두환의 헌법은 제5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통령 재임기간은 7년간이며 노태우의 헌법은 제6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통령 재임기간은 5년간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근대사의 정치역사다.
모든 사건은 임금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5.18폭동이 일어나기 전의 배경으로 역사의 보고(寶庫)에서 기록하고 간직하고 있는 기간의 순서로 아래에 부마사건과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12.12사건과 5.18폭동을 올리옵니다.
여러분의 학문에 사업에 직업에 역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1979년 10월 16일 부마사건: 위대한 민주부마항쟁
부마사건은 1979년 10월 16일~20까지 5일간 일어난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반정부인사들을 연행, 체포, 고문, 연금 등 야당 인사인 김영삼 신민당 총재직과 의원직 박탈로 인한 반정부를 외친 반정부민주항쟁사건이다.
1979.10.16.에 부마사건=부마사태=부마항쟁=부마민주항쟁의 시작은 부산대학교 학생 500명이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탄압 중지하라는 반정부를 외치고 시작되었다.
18일에는 마산 경남대학생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18일에 계엄령선포와 공수부대 투입으로 20일 진압되었다.
그러나 일주일도 않되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대통령은 5.16군사혁명 이후 19년간에 막을 내리고 시해 당하므로 유신체제 즉 제4공화국은 종식을 맞이했다.
저는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마사건을 위대한 부마민주항쟁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위대한 민주부마항쟁으로 부르는 봐입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인 유신체제를 종식 하게하여 민주주의의 시발점을 만든 시초가 되었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1979년 10월 16일~20일까지 5일간 일어난 위대한 부마민주항쟁 이후 6일 후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대통령은 김재규가 서울 중구에 소재한 중앙정보부 분청에 본인 집무실이 있는 중정식당에서 주최한 연회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김재규와 측근들이 박정희와 경호원 5명을 사살해버렸다. 이로 인하여 장기집권인 유신체제 즉 유신헌법 즉 박정희의 제4공화국은 막을 내렸다.
➜ 1979년 12.12사건
1979년 10.26.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이 터지고 그 다음날 김재규는 27일 0시 40분에 체포되고 정권도 잡지 못하고 나라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2개월 이후 12월 12일에 소장이던 전두환은 자신의 부대에 행동개시 명령을 내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을 체포하고 전두환의 새로운 군인집단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은 누가 정권을 잡느냐보다는 한반도의 안정에 더 관심이 있었던 미국은 재빨리 전두환을 지지하고 나섰다.
➜ 1980년 5.18.폭동
위대한 부마민주항쟁이 터지고 난 뒤 7개월 후인 1980년 5월 18일~27일까지 10일동안에 일어난 사건이 5.18폭동이다. 왜냐 전라도 40개소 파출소무기탈취와 세무서방화와 방송국방화와 장갑차탈취와 교도소습격 등을 저질렀으므로 이는 5.18폭동보다 더한 폭동이다.
1980년 5월 1일 수 백명의 학생들이 계엄령과 강압정치의 종식을 요구하면서 광주시내를 행진했다. 곧 점차 서울과 다른 도시들로 퍼져나갔다.
5.16군사혁명을 기점으로 19년간 재위동안의 박정희대통령의 시해로 사회혼란과 나라안정을 위해 전두환은 1979년 12.12사건이후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확대실시하면서 김대중을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시켜 10일 후인 5월 27일에 5.18폭동은 막을 내렸다.
이 5.18폭동은 한마디로 박정희대통령이 시해 당하는 사건 이후 자국민끼리의 정권쟁취싸움이며 또한 무장싸움으로 자국내의 동족에게 총을 겨누는 비극을 발생하게 했다.
즉 신군부는 광주시민과 학생을 총을 쏘았고 반면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군인과 경찰을 쏘았다.
아아 이것은 국가의 비극이며 슬픔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과정이라 어느 누가 이를 말릴 수가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인간의 도리와 천지리치(天地理致)에도 어긋나는 많은 법을 소급하여 김영삼정부 부터 보복정치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진정 미래를 열고 갈 일은 즉 앞으로 할 일은 보복정치를 종식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일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재조명하여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즉 홍익학(弘益學)을 연구하는 홍익학연구소(弘益學硏究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관건(關鍵)이다. 즉 문이며 열쇠며 핵심이다. 곧 정치보복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는 지혜가 들어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를 가르치는 홍익학연구소를 만들어서 나라와 백성과 젊은 화랑도와 여랑도들을 위한 미래를 슬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아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정권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다 보면 좋은 대안, 대책, 방책을 세워서 국익을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홍익학연구소를 만든다면 가능하리라. 라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1980년도에 5.18폭동은 비극의 연속극을 만들었다. 만약에 그 당시에 무기만 동원하지 않고 숭고한 민주화정신으로 대항했다면 아마 야당인사들이 더 빨리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민주화가 일어날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좌우간에 광주에서 5.18폭동이 10일간 일어났다. 이때 전라도 40개소의 파출소의 무기가 탈취당하였으며 세무서방화와 방송국방화와 장갑차탈취와 다이너마이트탈취와 교도소습격 등으로 광주의 대학생과 시민은 탈취한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했다. 그러하므로 5.18사건을 앞으로는 무기를 동원하여 교도소를 습격하였으므로 앞으로는 전체적으로 5.18폭동 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곧 부마항쟁은 무기를 동원하지 않았으므로 민주부마항쟁으로 부를 수 있지만 5.18사건은 파출소의 무기를 탈취하여 대항했으므로 5.18반란군 이라고 해야 하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민주화는 벗어났으므로 5.18폭동 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므로 앞으로는 5.18폭동 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 1980년 5.18폭동 제3탄: 그 당시 전후로 전체적 과정
역사는 그 당시의 모든 여건에 따라 즉 그 당시의 배경으로 사건들이 일어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으며 그 시대의 대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역사는 지구가 없어지는 날까지 또 인간이 다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즉 인간이 존재하는 한 즉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수 없이 큰 사건이나 혁명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역사를 연구하면 좋은 방책을 세워 나라를 오래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보배 중에서도 보배인 것이다.
역사를 폐기하라는 말은 역사를 가장 모독하는 자며 나라의 보배를 가장 더럽히는 자다. 곧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되면 천지만물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좋은 치적(治績)과 나쁜 실적(失績)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나쁜 점을 반성하고 개선하여 좋은 방책을 찾는 자가 진정한 역사가며 진정한 지도자 라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다시 말하여 내 할아버지 할머니 내 아버지 어머니가 다 돌아가셨다면 이 모두가 내가가장 소중한 역사인데 내 부모 내조부모를 다 폐기하라면 내 조상을 모독하는 처사로 이는 인간이라고 볼 수가 없다고 봅니다.
박정희대통령도 1960년 자유당 정권의 이승만대통령 12년간의 독재정치에 4.19학생의거가 일어나 이승만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이러한 때에 수많은 시위와 데모가 일어나 나라가 혼란하여 5.16군사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도 5.16군사혁명으로부터 19년간의 장기집권으로 또 시해당하고 이러한 어지러울 때에 전두환소장의 신군부가 혼란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어느정도 잡아가는 와중에 1980년 광주에서 누가 정권을 잡느냐 하는 5.18사건이 즉 5.18폭동이 또 일어났다.
만약에 당신이 전두환소장과 같이 포부가 크고 조직력이 있고 나라걱정을 크게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지도자의 능력이 있었다면 과연 전라도 광주사건을 어떻게 하겠는가?
즉 광주에서 파출소의 무기를 탈취하여 폭동이 일어났는데 진압은 않하고 구경만 하겠습니까?
역사는 한번 일어난 사건은 뒤로 되돌릴 수가 없다. 곧 태양이 뒤로 돌아갈 수가 없다.
전두환 신군부입장에서 보면 광주폭동이며 곧 광주무력대항 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곧 무기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였으므로 이는 5.18반란군 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5.18폭동 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광주학생과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광주항쟁 이라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그러나 광주에서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하였으므로 이는 민주화가 아니라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무기대항사건이며 곧 전체적으로 보아서 5.18폭동 이라고 보는 봐입니다.
민족의 비극인 1980년 5월 18일 그 당시의 전후로 주요한 사건들을 일자별로 이야기 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 1980년 5월 1일부터 학생데모는 5월 16일에 절정을 이루었다.
1980년 5월 16일까지는 광주학생과 시민들은 시위나 데모 정도로 일어났으므로 이때까지는 광주민주화항쟁 또는 광주민주화운동 이라고 말하여도 된다고 봅니다.
■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확대실시하면서 김대중씨를 포함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시켰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5월 20까지는 대규모항쟁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 1980년 5월 21일 이날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이날부터는 시위대가 경찰서 및 군무기고로부터 무기들을 탈취하기 시작했으며 시위대가 처음으로 광주세무서 예비군 무기창고에서 카빈 17정을 탈취했다. 방송국이 불타기 시작했다. 장갑차와 군납품용 지프트럭 등이 시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위대 중 장갑차를 몰던 청년이 2,3겹으로 포진하고 있던 군인들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군인 4~5명이 쓰러졌다.
이에 1980년 5월 21일 12시 55분경부터 계엄군의 본격적인 발포가 시작되었다.
오후 3시 40분경부터는 거의 전쟁상태였다. 이때 총기를 입수한 일부 시위대들이 군인들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다.
탄약고에서 다이너마이트 1백개와 폭약 4상자를 탈취해 갔다.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
곧 전라도 40 여개소의 파출소의 무기가 탈취를 당하였다. 5월 21일의 광주사건은 무력동원대항 이라고 봅니다.
■ 1980년 5월 22일부터는 5월 26일까지는 계엄군과 시민군(무기를 동원한 광주학생시민군)간의 수습대책 및 협상기간 이라고 봅니다.
■ 1980년 5월 27일 새벽 2시 군인들이 최후통첩을 해왔다. 2시간 안에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을 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새벽 광주사태의 모든 것이 끝났다.
군대가 새벽 3시 30분 시내로 진입하여 도청에서 고등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과정에서 강경파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27일 새벽 5시쯤이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광주사태가 완전히 끝난 후 27일 새벽 5시 25분에는 계엄분소장의 첫 담화가 발표됐다.
군은 지난 21일 철수한 후 일주일간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동안 군이 진입하지 않기로 시민대표들과 약속했으나 성과가 없었으며 불량배, 깡패, 전과자 등이 시민군을 조직 이적행위를 해 어쩔 수 없이 진입했다. 생략 ..... 군은 성공리에 작전을 끝냈다. 시민은 질서회복에 앞장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6시에 작전 전황이 발표됐다.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이 바로 1980년 5월 18일에서부터 5월 27일까지 10일간동안 일어난 5.18폭동이다. 곧 5.18폭동들이 일어나서 진압이 되는 과정들이다.
이후로의 역사는 최규하대통령은 1980년 8월에 하야하고
1980년 9월에 전두환은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82년 8월 15일에는 김대중씨와 광주관련자 등은 특별사면 하였다.
1990년 7월 14일에는 광주피해자보상법 제정되었다.
5.18사건 후 13년이 흘러가고난 후 임기를 마친 두 대통령을 1993년 5월 13일에 김영삼대통령은 12.12사건을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이미 그 당시에는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당하고 무정부시대에 나라혼란을 수습한 전두환대통령을 다시 말한다면 그 당시의 게임인 축구, 야구, 배구, 농구 경기가 이미 다 끝났는데 13년이 지난 지금의 잣대에서 그 게임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아니 아주 게임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를 농락하는 처사로 역사의 대범죄를 저질렀다고 보아 그 잘못된 범죄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1994년 10월 29일에는 12.12사건을 12.12반란 이라고 발표하였다.
1995년 7월 18일에는 서울지검에서는 5.18폭동 수사 결과발표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명판단을 하였다. 곧 결정을 하였다. 이 말은 명언이다.
왜냐하면 세계역사들은 성공한 정변(쿠데타)는 모두가 혁명이라고 기록하였다. 만일에 혁명을 지금의 잣대에서 정변(쿠데타)으로 고치면 그전의 혁명이라고 한 세계역사서인 하나라의 정변(쿠데타)에 성공한 탕왕과 은나라의 정변(쿠데타)에 성공한 무왕도 전부다가 혁명이라고 했는데 이 모두를 정변(쿠데타)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러하면 위대한 세계혁명가와 우리나라 혁명가에게 먹칠을 하는 짓이며 또 역사를 능멸하는 처사로 그 역사의 죄는 크다고 봅니다.
곧 그러하면 이성계도 고려말에 정변(쿠데타)을 일으켜 성공하여 혁명이라고 하여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는데 이도 정변(쿠데타)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러하면 나라와 목숨을 뱓쳐 혁명에 성공한 자를 무시하고 또 역사를 능멸하는 처사로 흘러간 역사를 지금의 권력의 잣대에서 고치는 자를 능지처참하는 법을 만들어야 나라가 바로서며 역사가 바로 서는 것이라고 봅니다.
1995년 11월 24일에는 김영삼대통령은 민자당에 5.18특별법을 제정 지시하여 12월 21일에는 15년 전에 일어난 5.18폭동을 5.18민주화특별법으로 제정 공포하였으며 전두환과 노태우대통령을 12.12군사반란자로 만들어서 즉 혐의로 기소하여 보복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곧 보복정치의 원흉이므로 반드시 능지처참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복정치가 않일어나게 새로 법을 만들어서 5.18특별법을 폐기하여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걸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며 보복정치가 않일어나고 전임대통령을 존중하는 제도를 만드는 날 나라는 살아갈 수가 있다. 국민의 지혜로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1979년 10월 16일 일어난 위대한 부마민주항쟁은 시위학생들이 무기를 동원하지 않하였으므로 인하여 사망자는 없었으나
1980년 5월 18일에 일어난 이 5.18폭동은 참으로 민족의 비극을 자아냈다. 그 당시의 박대통령이 시해당하고 누가 정권을 차지하느냐의 과정에서 전두환신군부와 야당의 지도자와의 정권쟁취싸움에 따른 10일간 동안에 광주 즉 전라도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세무서방화와 방송국방화와 무기를 탈취하고 전라도 40 여개소의 파출소의 무기를 탈취하고 장갑차를 탈취하고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이 일어났다.
광주학생과 시민의 입장이나 또한 나라안정을 위해 군인을 동원하여 탱크나 총으로 과잉진압을 일으켜 사망자를 나오게 한 연속극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나라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여 대통령을 감옥에 않보내는 제도와 대통령을 탄핵 하데 선거로 뽑아주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국민에게 다시 물어서 결정을 내는 제도를 만들어야 앞으로는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노고와 수고의 말을 할 줄도 알아야 보복정치가 않일어나게 되어 앞으로는 더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지혜들이 나온다고 봅니다. 그리고 역사에서 성공한 혁명을 인정하는 역사의식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1980년 5.18폭동 마지막 제4탄: 역사적 입장에서 총평
1980년 5.18~5.27.까지 10일 동안에 일어난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 무엇이 폭동이고 무엇이 민주화 인지를 반드시 밝혀야 나라가 정상적으로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5.18특별법을 폐기를 않하면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의 비자금을 환수했듯이 5.18폭동들에게까지 잘못 지급하고 있는 세금들에 대하여 반드시 환수조치 하여야 하는 것이 남아있다. 이러한 잘못 지급된 돈을 환수하여 차라리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과 서민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정책을 펴야 나라가 살아 나간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자는 하늘에 큰 재앙을 받을 것이다.
■ 역사란 그 당시에 혁명이나 전쟁이 일어난 것을 지금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는가. 고로 역사란 그 당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으로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 역사란 선한 일을 하면 선하게 기록되고 불선하게 일을 하면 불선하게 기록되는 것이다.
■ 무릇 상이란 받는 사람을 격려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을 잃게 된다.
■ 인의는 곧 신용은 놓는다. 고로 사업에 정치에 있어 신용보다 더한 것은 없다. 곧 신용이 인의이며 이 신용이야말로 천하에서 최고의 보배다.
1980년도에 10일 동안에 일어난 5.18폭동은 어느 누가 뒤로 되돌릴 수가 없다.
5.18폭동은 박정희대통령이 시해 당하므로 해서 전두환소장과 광주의 김대중 사이의 정권쟁취의 싸움의 한판이었다고 봅니다.
즉 4.19학생의거로 이승만의 장기정부는 하야를 했다.
4.19학생의거 이후에 곳곳에서 데모가 수없이 일어나 나라가 너무나 혼란하여 1961년 5.16군사혁명이 일어났다.
박정희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부마사건 전에 김영삼 신민당총제직을 박탈하고 의원을 박탈하자 이에 1979년 10월 16일에 부마사건으로 이후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 당하므로 해서 유신정부의 제4공화국은 종말을 고하였다.
즉 1979년 부마사건 이후 6일 후인 10.26사건이 터져 박대통령은 김재규에 의해 시해당하고 김재규는 정권도 잡지 못하고 나라만 혼란을 가져왔다.
김재규는 그 다음날 체포되었으며 이후 정승화육군참모총장과의 사건이 1979년도에 일어난 것이 12.12사건이다. 이 12.12사건에 전두환소장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정권을 잡느냐가 하는 사건이 바로 1980년 5.18폭동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근대사의 역사이다.
이러한 1980년 5.18폭동 이후 15년이 지나서 1995년 7.18.에 서울지검에서 5.18폭동 수사 결과 발표에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라고 명언의 말을 내렸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있었던 김영삼대통령은 이에 반발하여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고 한 신하의 말을 듣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가장 비열하게 혁명을 정변(쿠데타)으로 만들어서 12.12사건에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을 12.12군사반란자로 만들어서 감옥에 보냈다.
이는 곧 헌법에도 위배되며 또 세상리치(世上理致)에도 위배되는 법을 소급하여 5.18폭동 기간 10동안을 법으로 이미 흘러간 역사를 지금에 와서 않흘러간 것처럼 세월을 묶어놓고 두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소급하여 만든 5.18특별법은 두 대통령에 대해 노고의 말은 없고 감옥에 보내는 관례를 만들어 이후부터는 보복정치가 일어나 나라는 바른 길로 가는 길을 잃고 온통 이간과 분열과 보복정치가 일어나게 만들었다.
곧 보복정치를 만들게 한 주범으로 역사의 대범죄자로 영구히 언젠가는 능지처참해야 나라가 제자리를 찾을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의 대범죄를 영구히 물어야 한다.
곧 김영삼은 박정희에 보복을 당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두 대통령을 보복하여 나라는 현재 온통 보복정치를 못 벗어나고 있다.
6.25전쟁 이후 한민족끼리 무기를 동원하여 현정부를 향해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하는 5.18폭동까지 일어나는 참극이 일어났다.
즉 박정희대통령 시해당한 후 무정부시대에 정권을 잡기위해 신군부는 광주학생과 광주시민에게 총을 쏘고 무기를 동원한 광주의 시민군은 신군부를 향해 총을 쏘는 비극의 연속극이 일어났다.
5.18폭동 이후에는 보복정치를 위한 수많은 악법이 만들어져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내는 도덕이 무너지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모든 사건들이 곧 역사다. 이러한 역사는 좋은역사와 나쁜역사가 다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야말로 진정한 보배로운 역사다. 이러한 역사를 연구하여 왜 부마사건이 일어나고 왜 혁명이 일어나고 왜 5.18폭동이 일어났는지를 연구하여 좋은 방책을 찾아낼 때 나라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역사는 나라의 기본 틀이 되는데 현재 문재인정부는 국정역사를 폐기하라고 지시를 하였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를 모두 무시하는 처사며 애국애족열사들이 희생한 역사를 모독하는 처사로 보아 이러한 짓은 진시황제가 분서갱유(焚書坑儒) 즉 자기를 비판하는 사서삼경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구덩이에 생매장하는 짓보다 더 더럽고 더 지독한 오만자며 독선자며 교만자며 역사를 능멸하는 자라고 봅니다.
문재인은 겉으로는 유연한 것처럼 행동을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음흉함을 가지고 있는 추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가장 인격이 높은 것은 속마음이다. 과연 문재인의 속마음은 겉과 속이 같은가. 아아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정부의 속마음에 전임대통령이나 학생들의 의사나 나라를 찾기위한 의사나 열사들을 모두 죽이는 칼이 않들어있기를 바라는 바(所=事)입니다.
다시 말해서 김영삼과 문재인은 전임대통령을 노고의 말은 없고 북한지도자보다 더 우습게 여기는 자로 보아 앞으로 나라 발전을 위해 이 두 자는 즉 김영삼과 문재인을 반드시 능지처참을 해야 보복정치가 않일어난다고 봅니다.
결론으로 1980년 10일 동안에 일어난 그 당시 전라도 40 여개소 파출소의 무기 등을 탈취하여 그 무기를 동원하여 교도소를 습격하였다. 그 당시 현신군부정부를 대항한 5.18폭동을 앞으로 개헌을 할 때 헌법전문에 넣는다고 문재인정부는 말하고 있다.
만일에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이는 위대한 역사를 무시하고 위대한 역사를 모르는 자로서 나아가 앞으로 현재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할 때는 누구나 현정부를 상대로하여 무기를 동원하여 대항해도 된다는 말이므로 이는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짓이므로 문재인정부를 탄핵해야 한다. 라고 봅니다. 아니 하야보다 아니 탄핵보다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곧 역사를 폐기하라는 말과 또 무기를 동원해서 현정부를 대항해도 된다는 5.18폭동을 헌법전문에 넣는다면 이는 온국민을 올바른 정신의 방향을 무시하는 처사로 백성에게 역사의 모독을 짓는 것으로 보아 온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니 아주 추방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추악한 짓인 5.18폭동을 만일에 헌법 전문에 등재를 하겠다고 한다는 것에 대하여 백성에게 사과를 않한다면 탄핵 대상이 된다고 보는 봐(見=思)입니다. 곧 아주 추방해야 된다고 봅니다.
아아 역사는 개인 것이 아니다. 나라도 개인 것이 아니다.
역사와 나라를 영구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단군역사의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의 이념과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정신과 세계평화(世界平和)를 지향하는 정신들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올바른 얼(정신. 슬기. 지혜)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위대한 분이 많이 있습니다. 안중근의사와 윤봉길의사 이봉창의사와 강감찬장군과 을지문덕장군과 김유신장군과 이순신장군 등 위대한 분의 업적과 나라를 일구는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어야 나라가 제대로 나라답게 일어설 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나라를 세운 건국이라는 말은 우리의 위대한 얼을 가졌다면 단군왕검이 나라를 건국하였으며 해모수가 단군의 역사를 이어 북부여를 건국하였으며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웠으며 그리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삼국과 후삼국의 대진국(大震國)=진국(震國)=발해와 고려와 조선이 나라를 건국한 역사가 있는데 어찌하여 건국의 기점을 3.1운동에 기점을 헌법전문에 올려놓았다. 이는 위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무시하고 농락하는 처사로 건국 기점을 차라리 단군왕검으로 고쳐라.
앞으로 남은 관건(關鍵: 문이며 열쇠며 핵심)은 보복정치를 않하게끔 헌법에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보복정치를 않하게 하는 자가 나오도록 하여 곧 이러한 역사를 아는 자가 나오도록 하여 곧 폭넓은 지도자가 나오도록 하여 대용(大容)의 인물이 나와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나라를 올바르고 힘차게 이끌고 갈수 있는 자가 나오도록 해야하는 제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과연 문재인정부는 자기가 주요인사선정에 국민은 비리 등으로 자격에 대해 인정을 않하는데 혼자만이 아집과 백성을 무시하고 임명을 한다면 나라의 일을 앞으로 올바르게 처리를 할 수가 있는지 그 근본이 설지 의문이 갑니다.
옛말에 왕의 말은 명주실처럼 가늘지만 한번 나오게 되면 거문고 줄이나 낚시 줄처럼 된다. 라고 예기 치의편(緇衣篇)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말과 올바른 자를 임명을 해야 나라가 발전을 가져온다고 봅니다. 비리와 부정부패(不正腐敗)가 있는자를 임명하면 그 나라는 그 정부는 비리들만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러하므로 신중하게 임명을 하여 국가를 위해 일 할만한자를 임명할 때 나라는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곧 임금이 한번 임명하면 명주실이 낚시줄과 같이 되어 그 잘못들은 엄청난 비리들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곧 경륜이 있는 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일을 처리한다는 점을 깊이 알아야 한다.
좌우간에 한 가정을 다스리는 것도 어려운데 전임자의 치적을 인정하지 않고 전임자의 노고를 무시하고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라를 과연 올바르게 다스릴 수가 있을까?
곧 전임자의 치적을 인정할 때 또 노고와 위로의 말을 해줄 때 협치, 협동, 협력, 융화 화합 소통 등이 일어나는데 앞으로 할 일은 참모들과 함께 지혜를 모으고 잘 발휘하여 남은 임기동안 더 이상 혼란정부가 않일어나도록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다시말하여 적폐청산은 무시무시한 음모가 들어있다. 적폐보다는 개혁을 하여 좋은 일들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과연 무엇이 적폐(積弊)인가 역사를 폐기하는 것이 적폐인가 또 무기를 동원해도 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사인가. 곧 무기를 동원하여 5.18폭동을 일으켜도 된다는 말인가?
역사를 정확하게 알 때 나의 사업이나 직업에 학문에 도움을 주어 정확한 판단을 해주게 되어 내갈 길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올바른 길로 걸어 갈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이 5.18폭동은 전라도 40 여개소의 파출소의 무기를 탈취하여 신군부에 대항했기 때문에 5.18대항군 즉 5.18반란군 이라고 말하고 싶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앞으로는 5.18폭동 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5.18특별법을 폐기를 않하면 전두환과 노태우 비자금을 환수했듯이 5.18폭동들에게까지 잘못 지급하고 있는 세금들에 대하여 반드시 환수조치 하여야 하는 것이 남아있다. 이러한 잘못 지급된 돈을 환수하여 차라리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과 서민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정책을 펴야 나라가 살아 나간다고 보는 바(所=事)입니다.
≪ 곧 우리나라 법률을 총망라한 법전(法典)의 형사편(刑事編)에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 제2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소시효(公訴時效)의 정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 라고 법률로 정해놓았으므로 전두환대통령과 노태우대통령에 대하여 대우도 않해주고 인간이하의 짓을 한 것과 같이 5.18폭동들의 잘못도 영구히 조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10일동안에 일어난 5.18폭동에서 무엇이 나라를 위하고 사회를 위하여 공적이 있다고 5.18유공자(광주민주유공자) 라고 지정하였는지도 반드시 밝혀야 한다. ≫
이것으로 저의 1980년 5.18폭동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아래에 5.18폭동에서 무엇이 민주화이고 무엇이 폭동인지를 반드시 특검을 통해서라도 전반적으로 진실을 밝혀야 나라가 백성이 서민이 젊은 화랑도(花郞道)와 여랑도(女娘道)들이 정당한 혜택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밝혀보고자 합니다.
아래에 5.18폭동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주요한 것에 대하여 몇가지를 올리옵니다. [86번째 무료강의 종(終) → 5.18폭동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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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대선에 승리하는 비법 중 하나는 바로 무엇이 5.18폭동이고 무엇이 5.18민주화인지를 밝혀내겠다고 공약하는 자는 온 국민에게 호응을 받을 것이다. 곧 이러한 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자격이 된다.
♬ 대통령의 탄핵제도를 없애는날 즉 보복정치를 없애는날 나라는 발전할 것이다. ♬
신축년(辛丑年) 단기(檀紀) 4354년 서기(西紀) 2021년 11월 18일 목요일.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황효상(黃孝相)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
➜ 제블로그: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역사실과 자료실과 홍보실을 운영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