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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일본 방송을 보다가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불경을 우리가 흔히 아는 한문 불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에 대해 알게되어, 마침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이기도 하니 썰을 풀어보려 합니다. 재미없어도 이해부탁드려요~^^
※자료 및 내용 출처 : 일본 NHK 방송 '역사탐정(歴史探偵) 2023년 5월 방송 분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쓰여진 불경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불교 그 자체와 함께 일찍이 중국에 번역되어 들어와 있었지만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이 점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수행자가 있었으니...
바로 당나라의 승려 현장(玄壯)법사 되시겠다.
30대 이상에겐 익숙할 '날아라 슈퍼보드'의 모티브가 된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그 현장삼장법사 맞다.
이 사람은 이해안되는 부분이 많았던 당시 불경에 힘겨워했다. 그러던 어느날 생각하기를...
"문제의 원인은 번역이 개같이 된 것인게 분명하다! 내가 오리지날 불경을 찾아 천축에 가서 불경 원본을 구해 오겠다!"
라며 결국 13~15세로 추정되는 시기에 히말라야 산맥을 피해 서쪽의 타클라마칸 사막쪽으로 돌아 천축(인도)으로 고생길이 훤한 여정을 떠났고, 이 실화는 후대인들이 각종 MSG를 첨가해 서쪽으로 떠나는 여정, 서유기(西遊記)로 재탄생된다.
젊은 청년승려 현장은 서쪽(천축)에서 퀘스트를 완수하기 전엔 동쪽(당나라)은 쳐다도 안보겠다는 부동(不東)의 신념을 가슴에 새기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무려 19년간 인도 전역에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패엽경(貝葉經)이라고 불리는 종려나무 잎 종이에 쓰인 불경 원본을 긁어모아 당나라로 금의환향한다.
물론 이 패엽경은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져 있었고 동아시아에 뿌리기 위해서는 한문으로 번역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 엄청난 양이었다. 한문번역된 대반야심경의 양은 600권이나 된다.
그런데 현장은 이걸 고작 3년10개월만에 뽀갠다! 이는 8000문자를 2.5일만에 번역하는 현재 기준으로도 개쩌는 작업속도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어시스턴트를 잔뜩 두는 것. 불경번역센터인 역장(譯場)을 세우고 많은 수의 승려를 제자로 들였다. 현장은 당시 당태종이 극진히 대우해주던 초엘리트였으니 이 정도 인프라 구축은 어렵지 않았을거다. 그런데 산스크리트어를 하는 승려는 한정적이었을텐데 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 당시 역장의 풍경을 재현해보면 그 모습은 대략 위의 사진과 같다. 역할은 보이는 것처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1번 : 역주(譯主)
번역 총책이며 산스크리트어가 가능한 사람, 그냥 쉽게 말해 현장법사 자신이다.
역주는 패엽경 원어를 소리내서 읽는다. 이미지에서 읽고 있는 것은 반야심경(Prajnaparamitahrdaya)의 제목을 뺀 첫 구절(관자재보살행심바라밀다시 오온개공도일체고액)이다. 뜻은 원어(도일체고액 제외한 나머지) 기준
"신성한 부처되실 아왈로키테슈와라께서 깊은 최상의 지혜를 끝내 지으실 때, 인간의 심신이 쌓아가는 다섯가지 것들을 보시더니 그것이 공허함을 보시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2번 : 서자(書字)
역주가 산스크리트어를 읽으면 들리는대로 비슷한 한자로 음차한다. 따라서 한자 각각의 뜻은 내용과 관계없다.
3번 : 필수(筆受)
서자가 음차한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한문 뜻이 통하게 변환한다. 이 과정은 중요한 부분이므로 현장이 직접 코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왈로키테슈와라'가 관자재(觀自在)라는 완전히 딴판의 이름을 얻게되고, '보디사트바(부처되실)'가 보살(菩薩)로 음차되어 도합 관자재보살, 또는 관(세)음보살이라는 한문 이름이 등장한다.
오늘날 영어권에서 동아시아 불교의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Avalokitesvara와 Guanyin이라는 사실상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두 이름이 모두 알려져 있고 영문위키도 문서가 각각 개설되있다. Guanyin문서에서는 이 명칭이 동아시아에서의 Avalokitesvara의 표현이고 현지 문화에 녹아들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 참고로 '관세음보살'과 '관음보살'은 같은 단어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었기 때문에 피휘를 하기 위해 '세(世)'를 날려먹은 결과물이다. 이는 비단 불경 뿐만 아니라 당나라 시기 문헌 대부분에서 이 글자들을 발견하기 어려운 원인이 된다.
4번 : 철문(綴文)
문서를 엮는다는 뜻이며 불필요해보이는 글자를 칼질하고 당나라 중고한어 문법에 맞게 교정한다.
5번 : 윤문관(潤文官)
사실 4번까지만 해도 한문 능력자는 경전을 읽는것은 문제가 없겠으나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살을 붙인다.
즉 원어에는 없던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 모든 고통에서 건너느니라)는 현장법사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타언어 자료가 목격된다면 현장의 번역본이 재번역 된 것으로 본다.
학계에서는 이런 변형 첨가사항에 의해 반야심경이 Prajnaparamitahrdaya를 바탕으로 현장이 창작한 경전이라 보는 시각도 있고 더 심하게는 위경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튼 현장이 구축한 역장의 이런 끝내주는 분업 시스템은 엄청난 분량의 경전을 번역함과 동시에 후학 승려들을 번역에 참가시켜 교육시키는 역할을 동시에 했다.
이러고보니 뭔가 오늘날의 대학원 연구실과 갈려나가는 조교들을 보는 느낌이다...;;;
여튼 현장은 귀국부터 입적할 때까지 19년 가량을 번역에 매달렸고, 덕분에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는 한문불경이 널리 전파되게 된다.
다만 한문불경도 한,일,베트남, 심지어 현대 중국어를 사용하는 일반 불자들이 이해하려면 또 해석이 필요하단 문제가 있다. 특히 문해율이 높아진 오늘날에는 이 문제가 더욱 부각된다.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계실적에, 어느 할머니 불자가 팔만대장경을 보더니 그게 장경판인줄 모르고 "빨래판"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불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불교계의 대유산도 그저 빨래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로 인해 집필을 시작했다는 스토리는 유명하다.
그래서 불교계에선 각종 경전을 입문자도 알기쉽게 우리말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조계종에서는 반야심경의 우리말 표준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기불릭 모두가 포교에 공을 들이는 군대의 경우 영내 법당에서 이 우리말 불경을 자주 들을 수 있다.
........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이며
재미있게 보셨길 바라며,
모두들 성불하십시오~^^
끗!
첫댓글 와 흥미돋
오 재밌어 엄청 체계적이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네
흥미돋.. 19년만에 와도 극진히 대접이라니 대단하다
와 관음보살의 세가 피휘였다니.. 너무 재밌다
와 마지막 법정스님의 깨달음도 너무 좋다 이 글 너무 재밌네
빨래판ㅋㅋㅋㅋ
13살에 가서 19년을 타국에서 불경을 모아오다니 단순히 집념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숭고한 정신이다 ㄷㄷ
오!
와 진짜 흥미돋... 저런 과정으로 번역했다니 신기하다
와 흥미롭다 근데 2에서 3이 잘 이해가 안돼
음차한 한자를 바탕으로 뜻을 넣는다는거야...? 그러면 3에서 결국 다시 원문을 번역해서 알아야된다는건데 2의 과정은 왜 필요한거지 ㅜ 빡대갈인가바.. 똑똑여시 알려줘,,,
나도 이 부분을 잘 모르겠어…
산스크리트어 발음나는대로 한자로 적음->뜻 넣음
이면 차라리
산스크리트어 -> 뜻 넣음이 낫지 않나?
결국 둘 다 산스크리트어 뜻을 알아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진짜 연구실같네.. 근데 부동이 동쪽은 쳐다보지도않겠다 여기서 나온거였어? 대박
와 대박 넘 신기해! 글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