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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온라인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랑별파파
저는 오늘도... 많은 분들이 듣기 싫어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제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여 비판하지 않길 바랍니다.
요즘,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습관적인 말들이
온라인 기독 카페와 오프라인 교회들를 중심으로 횡횡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구원을 아주 쉽게 보는 듯한 뉘앙스가 숨어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한 핵심이자 본질입니다.
그런데...
처음 입교한 사람들을 세워놓고 사영리 영접 식을 거행한 후
'이제 여러분은 믿음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영접했다는 의미는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셨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주님의 자녀란 표현은 좋은 것이지만, 어떤 영적 근거도 없이...
너무 쉽게 선포된다는 게 아주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한다는 말 한 마디에 성령님이 쓩~ 하고 오십니까?
내 입술 고백 여하에 따라... 즉, 고백 하면 주님이 영접될 수도 있고,
고백 안 하면 영접 안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다음의 말씀을 묵상해보십시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장 26-27절)
말씀의 무게는 엄청난 것입니다.
절대 간단히 선포해서 해결될 말씀이 아닙니다.
사영리 영접식으로 주님을 영접한 분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과연 이분들이 언제 자기를 부인했고 제 십자가를 졌겠습니까...
차라리...
여러분은 이제 주님의 자녀가 될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을 기회가 있도록 초청받았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게 훨씬 더 진실한 의미일 것입니다.
처음 입교한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성자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성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의 영적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주님의 자녀로 선언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념적 세뇌에 들어갑니다.
반강제적으로 얼떨결에 사영리 입교식에 '네' 라고 응답했는데
그걸 성령을 받은 표징으로 각인시킨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또 그걸 굳게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미 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네' 라고 대답한 것은 주님을 믿었기에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이미 주님을 믿은 것(성령님을 영접 혹은 임재한 것)으로 간주하여
구원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후부터는 주님께서는... 사영리 영접식에서 '네'라고 한 자녀들을
마지막 날까지 따뜻한 은혜로 보살피며 편안하게 천국으로 이끄시니
이제 구원받은 자로서 이 세상을 누리며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너무 행복합니다.
이 구원을 의심하면 믿음 없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교육받기에
교인들은 그때부터 구원받은 것으로 굳게 확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거의 대부분 교인들은
십자가의 진리(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에 접할 동력조차 차단된 상태가 됩니다.
사영리 영접식을 하는 순간...
이미 십자가를 다 통과한 것인데, 굳이 그게 왜 필요하냐는 겁니다.
그 이후... 영적 각성이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사람은 원래 태생이 죄의 덩어리라 절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회개의 은혜를 적용하는 게 아니라, 죄를 덮어주는 은혜(?)를 적용합니다.
이렇게 죄를 합리화하며 은혜만 앞세워 편리하게 죄와 타협합니다.
그 후, 아무 부담 없는 달달한 설교만 부담 없이 계속 들으며 인생을 끝냅니다.
이것이 이 시대 기독교의 참람한 실상입니다.
자신에게 성령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니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보이지도 않는데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니요...
서글프게도 이 불편한 진실은
대부분 성령도 받지 못한 분들이, 관념적인 느낌에 몰입되어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속삭임에 다 걸려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슬슬 분노가 일어나 돌을 집어 드는 분들 중
저를 비난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성령을 받았나 받지 않았나 그것을 먼저 진지하게 점검하십시오.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아홉 가지 열매도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관념적인 자기 확신과 머릿속으로 인정하는 수준에서
구원받았다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길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주님께 간절히 구하고, 두드리고, 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문자적인 표현으로 기록되었으니 의미상 쉽게 느껴질 뿐이지,
구하고, 두드리고, 찾는 과정이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이는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된 맹독성 독사(죄악)들이 우글거리는 게
인식되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세상살이하면서 각인된 모든 죄악의 쓴 뿌리들을
통탄해하여 자기를 부인하며...
심령의 갈급함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애통의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 찾았을 때 만나주신다는 뜻입니다.
만나주신다는 것은 곧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온갖 때로 찌든 상태에서 진정한 회개함도 없었고
심령의 갈급함도 모르고,
가난한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달랑 사영리 입교식 하나로 성령이 임한다니요...
그래서 이미 믿었으니 구원받은 것이라니요...
이렇게 해서 구원이 결정된다면
그 좁디좁다고 기록된 천국 문은 잘못 기록된 것입니다.
찾는 자가 극히 적어서 구원받는 자가 매우 적다는 의미는
성경을 기록한 제자들이
독한 포도주를 먹고 취해서 잘못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즉, 회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설령,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이제 그때부터 구원으로 향하는 첩경의 출발점에 겨우 섯을 뿐입니다.
그때부터 믿음을 증명하고 다지는 행군으로서
광야의 고난과 연단이 기다리고 있으며,
광야를 지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들에게 면밀히 물어보십시오.
광야의 연단과 고난을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성령도 받지 못해 구원의 첩경인 출발선상에 서지도 않은 교인들이
이미 구원은 완성되었다 자부하며, 구원을 확신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참람하고 위험한 상황입니까...
주님께서 초호화 전세기를 동원해, 믿는다 하는 교인들을 태우고
애굽 공항을 이륙해 홍해와 광야를 그냥 가뿐히 통과한 후
가나안 공항에 부드럽게 연착륙시키는 게 아닙니다.
출애굽기가 구원의 과정을 기록한 예표란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광야의 과정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기둥의 기적으로 보호하고 인도했습니다.
바위를 쳐서 마실 물이 나오는 기적을 보고도,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 주님의 사랑을 보고도
주님을 믿지 못해, 원망하고 배신하여 1세대 단 두 명만이
약속의 땅이 허락되었습니다.
광야의 연단이 행위 믿음입니까?
이렇게 천국 문은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은 흐지부지 구렁이 담 넘듯 슬며시
역사 속의 설화처럼 간단히 설교하여 교인들의
영적 경각심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 고
구원을 아주 안락한 호화 전세기를 타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식시켜 버렸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말은
애통한 마음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찾아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전제가 깔려야 성립되는 말씀입니다.
즉, 십자가 통과가 이루어져야 성립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나를 못 박는 것도 인위적으로
혹은 지식적인 관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면 내 의지가 아닌 성령님의 의지로 귀결되고,
나를 부인하고 제십자가를 지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닌 성령님의 의지가 개입되어
자동으로 내가 십자가에 죽고 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의와 자아가 십자가에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 숨 쉬며
성령도 받지 못한 교인들에게 믿기만 하면 구원이란 말은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지옥으로 가라는 선포입니다.
성령도 받지 못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말에
갓 입교한 교인들이 엄청난 착각 속에
그들이 받을 구원의 기회마저 박탈되고 있는 사실을 아십니까?
구원은 성령을 받기 전에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단 몇 분짜리 사영리 영접 식으로
그들을 이미 가짜로 성령을 받은 상황으로 만들어 놓고
더는 진짜 성령님을 받을 생각조차 못 한다는 기막힌 현실입니다.
바울 사도가 기록한...
예수님을 내 구주로 인정하는 입술 시인은
사영리 영접식 때, 부담 없이 따라 하는 그런 간단한 시인이 아니고,
초대교회 시절 극도의 핍박과 또 핍박자들 앞에서 내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내 구세주라고 당당히 인정하는 시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인은 가벼운 입술 시인이 아니라,
하나뿐인 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영의 시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런 영의 시인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런 상황을 기준으로 하여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 과정도 없이...
변화 없는 상태로...
믿기만(?) 하면 구원이니...
그대로 그냥 육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성령님의 인도 없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제 갈 길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상황이 정말 얼마나 무서운 상태인지 아십니까?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의... 영적 근거도 없는 가르침에
교인들은 거듭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종교 생활만 거듭하다가
지옥으로 다 쓸려간다면 이 책임은 누가 질 것입니까?
수많은 불쌍한 영혼을 지옥으로 쓸어 넣은 목회자는
혼자 지옥 가서 어떤 가혹한 고통을 받을 수 있겠지만,
순진하게 속다가 지옥에 떨어진 불쌍한 영혼들의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은
누가 위로할 것입니까?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에서 위로가 되겠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두루 다니다가 교인을 하나 데려다 놓으니
배나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편리한 영접식 때문에 믿기만 하면 구원이니,
안심하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선생들이 감추고 있습니다.
아니... 그 자신들도 성령으로 거듭나본 적 없으니
그 기막힌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교육받은 교인들이 또 기독 카페를 들락거리며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하며 누룩처럼 거짓 진리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통과(자기 부인, 회개, 거듭남)를 거부하는 교인들에게는...
그런 메시지가 환영받을지 모르겠으나...
주님께는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어렵습니다.
구원의 어려움은...
이미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모든 사도들도 선포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에 어렵다면 어려운 것이고,
주님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천국 문을 찾는 자가 극히 드물다고 하시면 그런 겁니다.
선생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책임지고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하며...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란 추측성 표현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성경의 본질과 다른 교리가 계속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전해야 합니다.
사람의 편리한 생각을 전하면 안 됩니다.
성령도 받지 않았는데...
성령받은 성도의 증거인 아홉 가지 열매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거짓 선생의 달콤한 가르침에 성령 받았다는 최면에 걸려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지옥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거짓 선생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23:15절)
진정한 회개도 거듭남도 없는 교인들에게
전후좌우 정확한 부연 설명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거두절미의 가르침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 후(나를 부인 회개하고 거듭나서)
주님의 말씀대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영성으로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제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과
좁은 길을 통과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을 때 구원받는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는 성경에 다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기 힘들다고 관념적으로 편하게 해석해서
이 귀한 주님의 추상과도 같은 말씀에 대해
전후 사실을 다 생략한 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결론 내서는 안 됩니다.
믿음도... 거듭난 영의 믿음인지, 관념적 지식적 혼의 믿음인지
구분도 안 되고, 경계도 모호한 상태에서...
즉,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하는 모호한 말로
주님의 말씀을 무력화시키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기정 사실이지만,
믿음이라는 말로만 대충 뭉뚱그려 건너뛰려 하지 말고,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람이 만든 교리에 기초하여 전하지 말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확실히 전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권면드리고 싶습니다.
구원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천국은 교회 다닌다고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닙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며... 성경 말씀대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듣기 좋게 하기 위해 거짓 진리를 전할 수는 없습니다.
천국 문을 통과하시려면,
진짜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나셔야 합니다.
그 후 주님은 성령 받은 성도님들을 거친 광야로 통과시키며
천국 백성의 합당한 영성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연단이 기다릴 것입니다.
너무 힘들어 쓰러지면 주님께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같이 가자고 또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에게는 주님의 이런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 통과한 성도님들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간단한 사영리 영접 식을 성령 받은 것으로 믿고,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사단의 달콤한 속삭임에서
부디 벗어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구원이란 성령님을 받아 함께 동행하면서,
영적인 말씀의 비밀을 알고 순종하는 자들이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이 글을 쓰면서...
구원을 쉽게 생각하는 구원파적 신앙을 소유한 분들에게
엄청난 비난이 올 것임을 알고 쓴 것입니다.
구원을 쉽고 편안하게 인식하는 분들은...
지금까지 배우고 의지한 것과는 다르니, 이 글에 매우 분노할 것입니다.
여태, 구원이 쉬울 것이라 강력하게 믿고 있었는데,
성경 말씀을 근거하여 들쑤시니 상당한 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비추어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하는 것이
신앙 글을 쓰는 사역자의 사명입니다.
교인들의 시선이 무서워, 복음의 본질을 흐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한낱 날아오는 돌이 무서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글을 쓰는 사역자로서 자격 상실입니다.
얼마든지 돌을 던지십시오.
떳떳하고 당당하게 돌을 맞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