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일수록 바다는
완강(頑强)한 팔뚝 안에 갇혀 버린다.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익사(溺死)할 수 없는 꿈을 부둥켜 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있는 바다.
소주(燒酒)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 버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진다.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다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망은 돋아나고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지는가
우리는 모두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세계(世界)는 가장 황량한 바다.
지난밤의 별자리로 우리는 떠오르고
바다 속에서도 우리는 붉게 타오른다.
떠나는 자여, 떠나는 자여
바라보는가,
온 바다로 우리의 피가 번져올 때
달려가는 파도의 시린 등허리를,
바다에 머리를 부딪고 죽어가는 파도를,
이윽고 깨어진 채
바다는 더 깊은 바다로 침몰하고,
밤내 우리의 두개골(頭蓋骨)은 물살에 씻긴다.
그러나 바라보라
우리가 헤매는 곳마다 열리는
진정한 바다를,
진정한 바다를 딛고 살아나는
파도의 푸른 발굽을.
<바다 속의 램프, 고려원, 1980>
***
헤매는 곳마다 열리지는 않았으나
문득 고개들면 저기 이미 한껏 열린 채 있었다
곁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그러한 때,
바다는 옆걸음질 치며 가도가도 끝없는 수평선을 그었다.
개펄을 딛고 하늘로 아무리 수직선을 내 몸이 그으려 해도
저 수평선 가르고 곡선으로 열 두 개 별자리를 디디며 차오는
해와 달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밤새 열려 있느라 기진맥진 했을텐데도
펄럭이는 옷자락 하얗게 깨어부수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파도 앞에서 떠나온 자에게 되돌아 가라 오지 마라 말해주었다.
땅과 바다의 경계에서 외줄타기 하는 사내의 가슴에 가득
4월의 바람이 가고 5월의 그것이 멍들듯 스며들었다.
램프...불씨를 가지고도 불꽃을 사를 수 없는 바다 속 램프,
아마 그것을 찾아 그렇게 떠나갔던 것일까.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이 괴물같은 혀만 날름거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