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운동을 가기위해 준비한다. 오늘은 길게 뛰어도 돼, 간단히 허리에 차는 백에다 간식도 챙긴다. 간식이라야 초코렛 몇 알 뿐이지만 물은 어디서든 비라리하고 주로 인근을 뛰는 것으로 길을 섭렵하고 있지만 오늘은 다른 길로 뛰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차를 타고가면 유등천에서 대전천 갑천을 뛰면 거리표시도 되어있어 좋지만 외통길이라 식상하다.
토요일 출근하지 않고 운동을 한다는 것이 꺼림직하지만 아이엠에프 이후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XX MRO, X MARKET등에서 할인마켓처럼 공구상의 밥그릇을 통째로 들치기하고 있다. 설령 영업을 한다고 해도 손해 보는 장사밖에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데다 출근해도 주5일 근무하는 회사가 많아 전화도 거의 없어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나도 주5일 근무를 하는 것이다. 내가가진 행복 여러 개 중에서 하나만 잃자 하나로 인해서 여러 개를 잃는다면 불행한 일일 것이다. 지금 내 나이면 부모님이 주신 건강은 다 바닥이 나고 하루하루 밥 먹듯이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침 운동을 하면 아침 식사를 한 것처럼 하루가 나근나근 흘러가는 것이다.
날씨가 청랑하다. 긴 아파트 담장으로 붉은 장미가 눈부시게 피어있다. 정말 꽃송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열이 젊은 사람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처럼 신선하다. 이렇게 환송을 받으며 출발하는 것이다. 길섶 조경과 공원이 아우러진 관저동은 가도 가도 지루하지가 않다. 길가에 핀 하얀 찔레꽃 앵두나무 열매 자두나무에서는 제법 큰 열매들이 어연번듯하게 커가고 있다. 공중화장실에 들러 비우고 간다. 먼 길 가다가 비우는 것을 잊으면 포기해야한다. 속을 비우니 한결 몸이 가볍다. 준비 완료다. 지구 끝가지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익숙한 길을 가볍게 달린다. 대부분 만나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할아버지, 둘이 꼭 붙어 다니는 아줌마들 뛸 만도 한데 몇 년째 걷기만하는 아저씨 굽은 자세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청년 인근 구봉산으로 등산가는 부부들을 만난다.
동쪽 느리울 마을 쪽으로 방향을 튼다. 적당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좋은 길이다. 뛰는 운동을 하다보니 거의 안가본 길이 없다. 가수원으로 방향을 튼다. 교차로마다 아름거려진다. 어디로 가야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기 때문이다. 가수원에서 정림동 쪽으로 향한다. 다리공사가 몇 년째 계속되는 바람에 꺼리는 길 이었다. 재생 타이어로 만든 보도 불럭은 촉감이 좋다. 진흙탕 길을 지나갈 때는 빠지는 것을 피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는데 우측을 내려다보니 물도 맑고 낚시하는 태공들도 눈에 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층계를 내려와 갑천 둔치와 만난다.
전혀 뜻밖에 새로운 길이다. 대교 밑에 달구지가 다녔음 직한 옛날 다리가 그대로 있어 운치가 있다. 그 옆에는 가수원역으로 향하는 철교가 있고 그 옆에는 기둥만 남은 옛 철교가 있어 무슨 다리의 역사를 보는 것처럼 이채롭다. 늘 새로운 길은 희망에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처음 새로운 길을 갔을 때는 일을 배우고 혼자 몸이었기 때문에 별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새로운 길을 갔을 때는 처자식도 있고 무역업에서 판매업으로 급선회하는 일이어서 두려움이 컸었다. 구매자에서 판매자의 입장에 서고 보니 애써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영업에 관한 책들을 읽고 카다록을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처럼 밑줄을 쳐가며 암송하고 거울 앞에서 말하는 자세를 바로잡았었다.
좌측으로는 정림동 우성 아파트 우측으로는 갑천이 발길 멈춘 듯 흐른다. 갈대들이 정강이를 담그고 있고 사이사이 왜가리들이 낚시에 열중이다. 자연을 인간이 개발한다고 어불성설이다. 자연은 홀로 서기를 하여 진물 선경仙境을 만들어 놓았다. 오늘은 환경단체들이 왜 그토록 자연보호를 외치며 개발을 저지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위정자들이 이곳에 한번만 빠져본다면 쉽게 판달 할 수는 없겠다는 확신이 선다. 군데군데 낚시대를 펴고 자연과 동화된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속에 내가 들어온 느낌이다.
강물과 함께 훤런(fun run)을 한다. 강에는 개개비소리도 들리고 물소리도 들리고 위협적인 황소개구리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린다. 강둑에는 노랗고 보랏빛 나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세잎 크로바를 행복이라 했던가? 이곳에는 행복이 카펫처럼 깔려있다. 새로운 길은 잠시 두려움 이었을 뿐 엔돌핀이 솟는 환상적인 길로 바뀌었다. 우~웅 귀를 거슬리는 황소개구리 소리 한때는 강과 호수를 점령하고 천적인 뱀마저 잡아먹던 황소개구리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개체수가 현저히 떨어져 현재는 걱정할 수위는 아니란다. 원인중의 하나는 근친혼으로 인한 체질약화라는 학설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한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길이 꽉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물안개 걷히듯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 어둠 속에서만 밝은 빛이 보인다고 했지 않은가?
수중보까지 힘들이지 않고 달려왔다. 역시 새로운 길은 두려움보다는 신선함 때문인지 의욕을 돋군다. 강변농원을 지나 반지리 마을 입구로 향하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시계를 보니 한참 여유가 있다. 머리와 꼬리가 잘린 고즈넉한 오르막길이다. 유난히 다람쥐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엉겅퀴 감자꽃등을 감상하며 고개를 넘으니 언젠가 들렀던 괴곡동 선골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에는 좁은 비포장 도로였는데 지금은 2차선 포장도로가 뚫려있다. 그래 막다른 길은 없는 거야 죽으라는 법도 없는 거야 축사 앞에서 반환점을 돈다. 예정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가족 나와 아내 대학 3학년인 큰아들 대학 졸업반인 딸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러다 내년에는 우리 집 실업자가 4명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나 대화를 해보니 나름대로 앞길을 열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반환점을 돌았으니 이제 내가 돌아 갈 길은 구도다. 공자가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지천명의 나이다. 새로운 길은 지금까지 닦아온 길에다 잇대어 놓는 길이다. 마라톤 대회는 완주하는 선수가 승리자다. 내가 그리는 새로운 길은 오늘처럼 고생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동행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일년만 지나면 마라톤하며 일년만 젊었어도 날았을 텐데 라고 그리워할 오늘이다. 파이팅, 고개를 오르니 버러진 냉장고하나 거죽을 벗고 바람에 보시하고 있다. 겹겹이 껴입고 있던 그늘진 마음 벗어놓고 온다.
애바른 황소개구리들이 사라지고 무논에는 참개구리 울음소리 되살아난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밖으로 달려갔다가 오면 속으로 똑같은 길이 생겨있다. 런링하이 체험하며 선경 속을 날아다니다 나온 기분이 든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그런 데가 어느 곳입니까?”
“추우면 얼어 죽고 더우면 타죽는 곳이다.”
중국선사 동산양개(807~869)가 남긴 말이다.
첫댓글 선배님 갑천의 어디에선가 한번 뵈었으면 하네요 ...갑천을 걸어본지가 무척이나 오레되네요 (016-419-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