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호수 해돋이를 보고
한 해가 저무는 세밑 일요일이다. 추위가 심하지는 않지만 아침 기온이 빙점 부근 머문다. 어제와 그제 이틀은 장소를 달리한 도서관으로 나가 독서삼매에 빠져 보냈다. 그제는 가술의 작은 마을도서관에서 반나절 책을 읽고 햇살이 번지는 오후는 강변 들녘을 산책했다. 어제는 북면 최윤덕도서관에서 온종일 머물렀다. 가술은 개인 서재처럼 혼자였고 북면은 아이들이 더러 보였다.
공공도서관 이용은 장서와 열람 여건을 고려해 특정 장소만 택하지 않고 메뚜기처럼 옮겨 다님이 유익하다. 이번에는 가끔 찾는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으로 나가려고 마음을 정했다. 집에서부터 원이대로를 건너 그곳까지 걸으면 40분 안팎 걸리는데 사서 업무가 시작되는 시각보다 일찍 나왔다. 7시 반에 집을 나와 곧장 가면 열람실 입실을 기다려야 해 어디 한 군데 두를 참이다.
외동반림로에서 낮은 아파트단지를 지나 용지호수로 건너갔다. 새벽어둠이 사라져가는 아침 호숫가는 드물기는 해도 산책 나온 이가 몇 보였다. 예닐곱 명 이른 남녀 젊은 건각들은 발을 맞추어 조깅으로 뛰어 앞서 달렸다. 용지호수에는 지난 몇 해 동안 덩치가 큰 고니 가족이 날아와 겨울을 났는데 올겨울은 찾아오지 않았다. 재작년은 새끼를 까 식구를 늘린 네 마리가 놀다 갔다.
나는 호숫가를 두르는 산책이 아닌 아침 일출 모습을 지켜보려고 서편 산책로에서 서성였다. 가지가 앙상한 벚나무에는 이른 봄날 꽃을 피울 망울들이 도톰하게 달려 있었다. 창원은 도심 바깥으로 산들이 에워싼 분지형 도시다. 동녘에 해당하는 비음산과 대암산에서 해가 솟아 평지보다 일출이 조금 늦은 편이다. 내가 용지호수를 찾은 그 시각 간절곶 수평선에서는 해가 솟은 때다.
비음산 너머 동쪽은 김해 신어산이고, 거기서 더 동쪽은 낙동강 건너 양상 천성산을 넘어서 떠오른 아침 해다. 어둠이 사라져가는 도심 호숫가에서 바라보인 비음산 산마루는 해가 떠오를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마루에는 일출의 서기가 잠시 비치더니 금세 둥근 해가 불쑥 솟아올랐다. 용지호수 수면에는 물닭들이 물길을 가르며 내게로 다가와 일출을 축하한 유영을 하는 듯했다.
용지호수에서 일출 모습을 보고 재개발로 높이 솟은 아파트단지를 지나 원이대로를 건너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향했다. 2층 열람실에 오르자 서서 업무가 시작되어도 다른 이용자는 아무도 없었다. 내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열람석에서 배낭에 넣어간 대출 도서로 집에서 읽고 있던 ‘궁궐의 고목나무’를 꺼냈다. 거기 열람석은 자리가 편안해 다른 도서관보다 독서 여건이 아늑한 편이다.
책을 쓴 박상진은 우리나라 산림학계 권위자답게 나무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궁궐에 자라는 나무들을 소개했다. 200년 전 그림으로 남은 동궐도를 바탕으로 그 이전과 현재까지 잇는 궁궐로 떠나는 나무 여행이었다. 책에서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봤을 나무와 궁궐 바깥이긴 해도 세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속 빈 둥치에서 몸을 가려 위기를 벗어나 수양버들이 된 얘기도 나왔다.
국보로 지정되어 고려대와 동아대 박물관에 소장된 두 개 ‘동궐도’를 비교하며 창덕궁과 창경궁의 고목을 책으로 살펴도 현장감이 있어 딸바보였다는 효종이 둔 네 공주가 그네를 매어 탔을 나무 모습도 상상이 갔다. 곁가지지만 무량수전 16개 배흘림기둥과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관하는 법경전 기둥 48개가 느티나무임도 알게 되었다. 그 나무는 높이 곧게 자라고 목질이 단단했다.
때가 되어 점심은 휴게실로 건너가 술빵 조각으로 때우고 북 카페 커피로 양치를 갈음했다. 다시 열람실로 돌아와 현재 경복궁과 청와대 경내에 해당하는 후원의 나무들도 둘러봤다. 비교적 근대식 건물인 덕수궁 뜰 나무까지 섭렵하고 왕조의 엄숙한 제례 공간 종묘의 고목까지 둘러보니 한나절이 걸렸다. 발품을 팔지 않고 서책에서나마 지난날 왕이 살던 공간에서 하루를 잘 보냈다. 24.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