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과연 성스러운 ‘아버지‘ ’어머니‘일까요?
경기 수원의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2023년 6월 21일 오후에 나왔습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영아살해 혐의로 친모인 30대 여성 A 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는데, A 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시신을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시 소재 아파트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고, A 씨는 "아기를 낳은 후 곧바로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두 명이 더 태어나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낳자마자 죽였다는 그 보도를 접하면서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떠오른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열일곱 그 신산했던 시절에 내 영혼을 전율케 했던 도스또예프스키의 전집 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인간에 대해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하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소설 중의 한 편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발표한 것은 1897년의 일이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의 전 사상과 전 예술, 전 종교를 집대성한 소설로 장대한 규모와 긴밀한 구성으로 사흘간에 이루어진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욕과 음탕의 화신이며 어릿광대인 아버지 표도르 빠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야성적인 정열의 화신으로 나오는 장남 드미뜨리, 무신론자이며 이지적인 인물인 이반, 그리고 신성의 세계와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알로샤와 이반의 이성적 자아의 왜곡된 복제인같은 스메르자코프가 제각기 다른 심리적 정신적 특성을 유감 없이 드러내며 소설은 전개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유형지 옴스크 감옥에서 퇴역육군 소위 일리인스키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훗날 무고로 밝혀져 풀려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은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은 드미뜨리가 그의 애인 그루센카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 표도르와 첨예하게 맞서다가 아버지를 죽이면서 3000루불을 강탈한 죄로 법정에 서는 것으로 전개됩니다.
그 소설 속에는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한 모든 욕망들이 기록화처럼 한 부분도 빠뜨려지지 않은 채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검사 이폴리드 끼릴로비치와 변호사 페쮸쿠비치의 명 논고와 변론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소설 속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검사와 변호사 간의 불꽃 튀는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검사는 드미뜨리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길고 유장한 논고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 당시 러시아의 문제를 세익스피어의 "죽음 뒤에는 어떻게 될까"와 푸시킨의 시 "그는 우리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 왔으니까요" 또는 고골리의 「죽은 넋」에서 썼던 러시아의 「삼두마차」의 비유에 내포된 자유주의 사상까지 말하고 한 집안의 아버지로서의 표도르 빠블로비치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경박한 광대로서 음탕한 기질만 남고 자기의 어린 자식들을 하인에게 맡겨 구석진 곳에서 기르게 했고, 아들에게 주어진 지참금 마져 다 써버린 뒤 누가 그 아이들을 데려가면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그 다음은 그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그가 과연 아버지일 수 있으며, 아들들이 아버지라고 과연 생각했을까?" 그러면서 검사는 표도르 빠블로비치의 이른바 그 나름의 도덕적 철칙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와 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에게 들려진 표현이었던 '아프레 므와 르 델뤼지(aprs moi le dluge.) '내게 해만 없다면 홍수가 나도 상관없다.'라는 프랑스어 다시 풀어 말하면 "나만 무사하다면 세상이 다 타버려도 좋다" 그러한 심리 상태였던 아버지를 이야기하면서 검사는 드미뜨리가 알료샤와 헤어진 후 썼던 숙명적인 편지를 증거물로 내 놓습니다. 바로 그 편지가 드미뜨리의 유죄를 증명하는 가장 중대하고 치명적인 증거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통해 부탁해 보고 아무도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면, 이반이 출발하는 대로 곧 아버지를 죽이고, 장미빛 리번으로 묶인 봉투를 베개 밑에서 빼내고 말겠다.'
검사는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살인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범행은 그 편지에 씌어진 내용 그대로 실행되었다."
그러나 변론에 나선 페쮸코비치는 3 천 루불 이라는 돈도 없었다. 그리고 강탈행위도 없었으며 또 살인사건도 없었다고 이야기하며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던 드미뜨리의 말을 변호합니다. 술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서로 악을 쓰며 "죽여 버릴테다" 너희 놈들 다 죽여버리겠어! 라고 말했다고 해서 살인이 일어나느냐고. 그러면서 그는 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최근에 핀란드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만, 어느 하녀가 남몰래 아이를 낳아서 버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조사를 받은 결과 지붕 밑 다락 한구석에서 그 여자가 쓰던 트렁크가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그 트렁크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걸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서 여자가 죽인 갓난아이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여자가 나중에 자백한 것이지만, 그 트렁크 속에서 예전에 그 여자가 낳자마자 이내 죽여 버린 갓난아이의 해골이 두 개나 발견되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 여자를 과연 그 아이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여자가 그 아이들을 낳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그 여자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어머니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그 여자를 감히 부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과연 우리들 중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이어서 그는 '그렇지만 아버지는 너를 낳았다. 너는 아버지의 핏줄이다. 그러니까 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 반론을 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낳을 적에 과연 나를 사랑했을까?'하고 청년은 또 다른 의혹을 품게 된다. 그리고 그는 더욱 더 깊은 의혹 속으로 빠져들면서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은 나를 위해서였을까? 아버지는 그 순간에, 필시 술기운의 자극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욕정에 사로잡힌 그 순간에, 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내아인지, 계집아인지 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고작해야 내게 음주벽을 유전시켜 주었을 뿐-이게 아버지가 나한테 베풀어 준 은혜의 전부가 아니냐....." 라고 드미뜨리를 변론하며「말러의 군도」에서 「프란츠」의 모놀로그를 인용합니다.
"아버지는 나를 낳기만 했을 뿐, 나를 사랑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난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오늘의 이 시대에 그런 아버지를 성스러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조선 역사를 지탱했던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버지는 과정이야 어쨌든 그래도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요,
그리고 어제 보도된 수원에서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하고 냉장고에 넣은 그를 성스러운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옥이란 무엇입니까? 결코 다시는 사랑할 수 없는 어떤 고통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대상이거나 어떤 사물을 사랑할 수 없으면 그때부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랑이 아닌 욕정만이 넘쳐나는 시대,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누군가가 묻습니다. “불행이란 무엇입니까?”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합니다.“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 아린 말입니까?
어머니, 또는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는 온 ‘우주’가 다 들어있는데, 오늘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이 새벽 소설 속에서 이반이 자주 했던 말 "모든 것은 허용되고 있다"가 문득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슬프게, 슬프게,
2023년 6월 22일,
도스토예프스키와 영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옴스크 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