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2기 중 서른 세 번째로 고양 서오릉의 창릉(昌陵, 예종과 안순왕후)을 소개합니다.
순서는 제가 직접 다녀왔던 순서대로 합니다.
고양 서오릉
창릉(昌陵, 예종과 안순왕후)
위치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조성 연도 : 1470년(성종 1), 1499년(연산군 5)
왕릉 형식 : 동원이강릉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이다. 최초의 동원이강릉은 세조 광릉이며, 예종 창릉, 성종 선릉 등 7기의 능이 있다. 특이하게 선조 목릉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언덕(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에 별도의 봉분을 조성하였고, 숙종 명릉은 쌍릉(숙종과 인현왕후)과 단릉(인원왕후)의 형태로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을 조성하였다.
▷ 창릉(昌陵) 이야기
창릉은 조선 8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창릉은 서오릉에서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으로,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동쪽)이 예종, 오른쪽 언덕(서쪽)이 안순왕후의 능이다.
창릉은 1469년(예종 1)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의경세자의 의묘(경릉) 북쪽에 조성되었고, 1498년(연산군 4) 안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창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창릉의 두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의 상설은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 비슷하다. 예종의 능침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의 무늬는 일반 조선왕릉의 도깨비 무늬가 아닌 북고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 예종(睿宗) 이야기
예종(재세 : 1450년 음력 1월 1일 ~ 1469년 음력 11월 28일, 재위 : 1468년 음력 9월 7일 ~ 1469년 음력 11월 28일)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 수양대군 사저에서 태어났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고, 형 의경세자(추존 덕종)가 20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1457년(세조 3) 왕세자가 되었다. 1468년(세조 14) 아버지 세조의 양위를 받아 수강궁(현 창경궁) 중문에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남이의 옥사를 수습하였고, 세종의 영릉을 현 여주로 옮겼다. 또 세조 대부터 편찬하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를 앞두었으나, 재위 1여 년 만에 경복궁 자미당에서 20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예종이 아버지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종이 왕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이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는 효성이 지극했던 예종의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 안순왕후(安順王后) 이야기
안순왕후 한씨(재세 : ?년 음력 3월 12일 ~ 1498년 음력 12월 23일)는 본관이 청주인 청천부원군 한백륜과 서하부부인 임씨의 딸로 태어났다. 1463년(세조 9) 왕세자의 후궁인 소훈(昭訓, 내명부 세자궁 종5품)이 되었고, 예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예종이 세상을 떠난 후 원자인 제안대군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잘산군(성종)이 예종의 양자로 입양되어 왕위에 올랐다. 성종이 즉위한 후 인혜왕대비가 되었고, 연산군 즉위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1498년(연산군 4) 창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첫댓글 무방위에서 중이 제머리 깎습니다!
잘하면 다음달에 등업 함 시켜 줘야 것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