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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
16 어떤 청년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부자 청년 이야기는 해석상 논란이 많은 장에 속한다.
성경에 수많은 사건과 내용, 또 종말론까지 해석이 서로 천차 만별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쓰여져 있지만 역사책이 아니다.
또 수학처럼 답이 똑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복음을 증거할때 성경 구절만 나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고 증거해야 한다.
주님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누가복음 24장
27 이에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령은 분별의 영이시며 말씀과 함께 역사 하신다.
그러니까 진리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상고할때 말씀을 분별하게 하시며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악한 영은 말씀을 왜곡하여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게 하여 구원을 못 받게 훼방한다.
사단도 말씀을 인용하여 복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단은 복음을 가리어지게하여 사람들 마음을 혼미케하여 멸망으로 향하게 만든다.
고린도 후서 4장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악한영과 말씀으로 영적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영적전쟁에서 승리할수 있다.
본문 말씀을 보자.
말씀에 나오는 부자청년은 어릴때 부터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온 청년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 정도면 영생 얻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늘 이 정도면 영생 얻을수 있을까?하는 의문속에서 살아 왔을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질문을 하였으며 율법을 철저히 지켰느냐?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라는 당연한 답변을 기대하고, 다 지켰습니다!
나는 선하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 왔기 때문에 영생 얻을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예수님께 자신을 내 세우며 말한다.
그렇게 철저히 율법을 준수한 자신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니까 근심하며 떠나게 된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 소문을 듣고 찾아 왔지만 구원자 하나님 아들이 아닌 선한 선지자 선생님으로 알았을 것이다.
부자청년은 철저히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으로 부족하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소유를 팔아" 이 말씀은 재산 일부분이 아니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그 뒤에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좆았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도 제자들처럼 모든 소유를 버리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영생 얻을수 있다라는 말씀이다.
자, 그러면 예수께서 왜 부자 청년에게 그런 답변을 하셨을까?
여기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믿지 않고 선한 분이라 생각 하였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나는 너희들이 선하게 살아야 구원 얻는다 전하려고 온 선지자가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서 온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희들은 다 죄인 들이다.
내가 너희들이 기다린 구원자 메시야다, 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부자 청년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같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그 속에 사랑이 없었다는 것이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새 계명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러나 새 계명은 마음속의 죄까지 들추어 낸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의 계명을 폐하시고 율법의 완성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물론 부자 청년이야기는 흔히 해석하는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살아라는 교훈적인 말씀으로도 적용이 된다.
그러나 구원론적으로 말씀을 이해하면 율법의 정죄와 복음이 담겨져 있다.
율법을 지켜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부분 다 아실 것이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믿은 상태가 아니다.
선한 선생님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 믿지도 않은 부자 청년에게 가난한자에게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면 영생을 얻을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전 재산 다 팔아 나누어 주고 모든 것 버리고 예수님 따라 감으로 구원 얻는 것이라면 구원 얻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모든 소유가 아니라 일부를 팔아 나누어 주라는 소리다.
그리고 믿고나서 행해야 구원 얻을수 있다.
야고보서 2장에도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을 것 같다.
그러면 믿고 행해야 구원 얻을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재 반론을 하겠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에도 나와 있지만 여러분은 길거리 쓰러져 있는 노숙자 집에 데리고 와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한 적이 몆번 있는가?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가?
그 외 주위에 어려운 가난한 사람 얼마나 도와 주고 있는가?
솔직히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이웃은 커녕 내 아내, 내 가족, 육신의 형제, 교회 형제 자매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전 재산을 다 팔아서가 아니라도 일부 재산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은 많다.
안 믿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도 많다.
선행으로 구원 얻을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인가?
믿고 행해야 구원 얻는다면 믿는 자 마다 다 선행의 실천이 각각 다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간사해서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구원받은 자도 날씨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고 행해서 구원 얻는다라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사실상 율법주의와 같은 말이고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부인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반론으로 야고보서를 비롯해 빌립보서 2장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등 많은 뒷바침 할수 있는 성경 구절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와 여러 반론 성경구절도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차차 말씀 드리겠다.
정리를 좀 해 보자.
나의 주장은 믿는 자는 당연히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선행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를 보고 불신자들이 복음을 들을수 있다.
그런데 믿고 행해야 구원 얻을수 있다는 것은 다른 복음, 유사 복음이라는 것이다.
어떤이는 성령이 내 안에서 행하는 것이지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물론 내가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거룩한 삶으로 이끄신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자꾸 세상에 빠지면 징계와 최악의 경우 육체의 죽음으로 징계를 받을수도 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좆아 행한다는 것은 구원받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순종할때 이끌어가심이지 거듭나지 못한 자를 구원을 받게 하려고 이끄시는 것이 아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구원받았고 현재도 구원받은 상태이며 은혜를 붙들고 거룩한 삶을 살기위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죄와 상관없이 주님을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실 것이다.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구원받은 자는 행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고 행해야만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십자가를 온전히 안 받아들였고 다른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이 절반은 미완성 구원이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행함으로 구원을 완성하겠다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복음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 이 말대로라면 우리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인줄 절대로 알수가 없다.
죽어봐야만 알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만이 구원을 최종 확증할수 있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라는 것도 말씀이다.(고후13장 5절)
믿고 죽은 자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행위의 결산을 보고 천국이냐? 지옥이냐? 여부가 가려진다는 말일까?
교회는 에클레시아, 불러낸 무리, 구별된 무리라는 뜻이다.
성도는 말 그대로 거룩케 된 무리이다.
거룩하게 될 무리가 아니라 이미 거룩케 된 무리라는 뜻이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가 하나도 없는 거룩한 자로 여겨주신다는 것이 성도의 의미이다.
로마서 3장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성도가 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제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구원 받은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구원받았으니까 막 살아도 되겠네 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도 못했고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
부자 청년에게, 가난한 자에게 소유를 팔아 도와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율법의 조문을 철저히 지켰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껍데기 뿐이다,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며,
또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얻을수가 없다 나를 따라오라 나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로마서 3장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또 영적인 의미로 내가 부자라고 움켜지고 있는 자기 중심적인, 인본적인 생각, 맘몬 우상이 되어버린 물질, 기복주의등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마음 중심에서 버리고 주님만을 소유하라.
예수님만이 영생이시고 최고의 보물이시다!
이 보물을 가진자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이며 천하를 다 가진 자이다.
주님은 어디로 가시며 따라오라 하시는가?
나는 지금 십자가로 가고 있다.
너도 나를 따라오라.
십자가에서 내가 너희 죄를 위하여 죽고 살아난 것을 믿으면 하늘의 보화 영생을 얻을 것이다!
믿음으로 너도 나와 함께 죽고 살아 났다는 것을 깨달아라!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선한 삶을 살아라
그래야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복음을 듣게 되고 그들 또한 살아 날 것이다.
요한복음 6장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들 다시 살리리니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마태5장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에베소서 2장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첫댓글 목사님이신 갑다 ...^^
ㅎ ㅎ
저쪽 까페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OK?
@무조건 Ok ㅋㅋ
그냥, 이쪽으로 오세요
어디선가, 새우젖에 대해 말씀하셨던대
요리에 대한 남다른 유연성에 웃었습니다 ㅎㅎ
@설아.
순두부에 항상 넣어 먹어요
진짜 맛있어요
크탈님이 또 오해할까봐..
요즘은 환자에 살림.. 예전보다 더 정신 없어요
한가한 분이 부럽네요
Ok?
@무조건 Ok ㅎㅎ
훌륭하세요 사모님 대신 요리를 그렇게 맘 써 하시고 ...
저도 오전까지만 시간되고 저녁에 들어옵니다
얼마전엔 중보해 드렸는데 눈에서 멀어지니 어느 새 잊혀져 버렸네요
살림만도 바쁘실 텐데...
기도로 오케이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강건하세요 ㅎ
@설아.
감사합니다~^
Ok!
장문의 글을 ~~ 수고하셨습니다.
1차적으로는 동의하는 말씀이구요 덧붙여..
저는 부자청년이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만큼 구제나 선행 또한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문화적으로 구제나 금식 등 선행을 포함하여 율법을 끔찍이도 지키려고 하잖아요
저는 예수님께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씀은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더 베풀어라 네 재산을 다팔아서라도..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부자청년의 문제점.
하나님보다 물질(재산)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다 팔아서 구제하고 주를 따르라하면 부자 중에 누가 따를 수 있겠습니까
부자가 아니라도 그나마 있는 재산 다 팔고 믿으라 하면 이것은 폭력이 아니겠습니까..
더 선행을 해서 구원을 얻으라가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마음이 부자인 사람,
사랑의 대상 그것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하고요..^^
네 게시글도 그런 관점입니다
구원론의 관점으로도 봐야 하고요
감사합니다~^
Ok!
@무조건 Ok 우리는 모두 부자입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성령께서 가난한 자리로 이끌어주십니다
@얼토당토
ㅎ ㅎ
그렇죠 내 속을 들여다 보면..
성도는 가난하면서 부자죠
보물이 속에 있으면요
Ok?
결론은 죄사함 못받음임!
ㅎ ㅎ
검도
새벽부터 놀러 와서 반갑네!
부자청년 결론은 No 죄사함!
근데 다시 십자가에서 예수님 만나면 영생!
Ok!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 ㅎ
자세히 읽어보세요
그 뜻입니다
Ok?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얻을수 없다
로마서 3장 인용
중심에서 자기 소유 스스로 노력 다 버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를 받아 들여라 그리고 행하라..
이런 의미로 쓴 글 입니다
눈 잘 보여요
아직은 ㅎ ㅎ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