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공안이 천칠백 공안이나 되는 가운데에
이 조주에 무자는 옛날부터 가장 많이 논란되고 또 많은 스님네들이 이 ‘무자’를 통해서 정진을 하고 ‘무자’를
통해서 많은 참 깨달은 분들이 나왔는데,
그만큼 이 ‘무자’는 공안 가운데에서도 힘을 얻어간
그런 공안이라, 그래서 이 몽산스님께서도
무자에 관해서 이렇게 자세히 설허셨지마는,
우리 정진허는 참선학자의 분상에서는 이렇게 열 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 해놓으신 것이 잘 들며는.
.잘 들으며는 약이 될 수도 있고 잘못 들으며는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을 내는 그러헌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선지식에게 화두를 타가지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가면 아무 병폐가 없는 것이여.
‘유(有)’니 ‘무(無)’니
이 선지식은 이렇게 말씀허시고 저 선지식은 저렇게 말씀허시고 그러니 어떤 것이 옳으냐, 마냐?’ 허고 여기 가서 물어보고 저기 가서 물어보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해서 공연히 분별심을 내가지고
자기 선지식으로부터 지도받은 고대로 해나가지를 않고 공연히 이리저리 따져보고 의심하고 분별심을 내고
거기에서 화두에 병은 생기는 것이다 그 말이여.
오늘 아침 들은 법문도 옳게 들으며는,
그러헌 분별 내지 아니하고 거두절미하고 다못 ‘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나가라고 이렇게
자세히 법문 허신 것이지
여기에 나오는 열 가지 조목으로 자세히 말씀허신 거
그것을 낱낱이 무슨 듣고 외어서 외워서 따지라고 허신 법문이 아니다 그 말이여.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다못 자기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이 돈발을 해서 꽉 맥혀가지고 맥힌 그 의심 하나만이
현전을 헌다고허며는
그 사람은 법문을 참 옳게 들은 것이고
그렇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사리상량을 붙여서 따지고 이런다며는 그것은 법문을 옳게 들은 사람이
못되는 것이여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