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빌3:12-14)
오늘은 한해를 마감하는 연종주일입니다. 내일이면 다가올 2024년을 어떻게 사용하면 보람된 삶을 누릴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본문입니다. 순교할 날을 눈앞에 둔 바울사도는 디모데후서 4장 7절~8절에 말하기를“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가 자신의 일생을 마감하면서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었는지 그의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첫째. 바울사도는 과거를 잊어버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본문 13절에“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했습니다.
기억력이 좋은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잘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때도 많습니다. 악몽 같은 기억, 부끄러웠던 기억, 실수했던 일, 억울한 일을 당했던 기억 등, 이런 것은 빨리 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잊지 못한다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어집니다.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신 망각의 은총입니다. 운동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나 해설가들이 자주 하는 말이“저 선수 지난 실수를 빨리 잊어야 하는데...”라는 말입니다. 지난 실수 잊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너무 조심하다보면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것들을 잊어버려야 할까요?
1. 과거의 잘 나간 것도 잊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인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영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서울대학교 혹은 하버드대학교 정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바리새인이었으며, 신분적으로 보면 로마의 시민권자였습니다. 지성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빌 3:7에 보니 그런 영광스러운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긴다”고 했으며, 8절에 보면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의 영광을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2. 지난날 잘못한 실수와 허물과 죄악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다 묻어버리고 잊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 과거의 상처, 과거의 죄악, 그것을 자꾸 기억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이것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듭니다. 빨리 잊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많은 죄악을 범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는 과거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아 맞아 죽을 때에도 사람들을 선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과거의 죄악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보배로운 피의 능력으로 과거의 죄를 용서 받고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죄악을 저질렀던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지난날의 상처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 받기 위해서 상처 준 사람을 “안 보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는 방법은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전 11:23-27에 보면 기가막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치료의 하나님을 붙잡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를 사랑해 버리는 겁니다.
둘째. 바울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본문 12절~13절에“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은 계속 낮아지시는 삶이었습니다. 죄인, 병든 자와 가난한자, 소외된 자의 이웃이 되셨습니다. 삶의 마지막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낮아지심으로 출생하여 낮아지심으로 살아가셨고, 낮아지심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하셨습니다.
본문의 바울사도 역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린도전서 15:9)고 했습니다.“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베소서 3:8)라고 했습니다.“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나(내게도)”(고린도전서 15:8) 라고 했습니다.“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15)고 했습니다.
셋째.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푯대를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본문 13절~14절에“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나의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의 부르심, 자신의 사명, 자신의 비전을 알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람의 칭찬이나 세상적인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까닭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의 가치는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받아 누리기 위해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넷째. 사도바울은 최선의 신앙경주를 했습니다.
본문 12절에“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으며 14절에도“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달려가노라”는 말씀의 원문의 뜻은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삶을 경기자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까?“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사도에게 주신 복음증거의 사명을 가리킵니다.
오늘 지나면 2024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이 소중한 시간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자나간 일은 잊고 자신에 대해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항상 하늘나라를 목표로 삼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