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봄날, 강릉엘 다녀왔다.
바람처럼 도착한 강릉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해풍을 직수굿하게 견디는 소나무였다.
사열대처럼 도열한 소나무의 강건한 어깨와 그 햇살 틈으로 바다가 드나드는 풍경들..
동해바다가 텅 빈 몸으로 욕망의 섬을 띄우지 않듯이, 빈 바다가 충만한 이유를 강릉의 솔숲에서 받는 듯했다.
바다는 비었어도 허허롭지 않음이랄까. 강릉의 솔숲은 바다의 공백을 채워주는 경전처럼 가득 지혜로웠다.
바다가 불러주고 소나무가 답을 쓰는 해파랑길의 교리문답 같은 곳.
바람은 파도를 실어나르고 솔은 초서체로 바다에서 돋는 운치. 그 홀연함을 인식하면서 해안선을 바라보게 하는 곳.
강릉이 글월의 고장이라더니, 고서적처럼 솔향 또한 묵은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되고도 당당한 소나무와 그 언저리의 바다.
그 고장의 허난설헌, 신사임당.. 그녀들의 강릉을 잠시 두고, 바다의 솔향 가득한 해파랑 강릉부터 추억길에 올려본다.
바다를 거니는 솔은 산책하는 사람들의 유유자적한 발걸음을 닮았다.
낭만 걸음 속에 바다를 바라보는 솔숲이 함께 걷는 해파랑 39길.
강릉의 해파랑길은 이렇게 해묵은 솔향길이다.
경포해변의 소나무 도열식이 늠름한 군대의 사열식을 보는 듯하다.
여기저기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국 숫자처럼 솔방울도 뒹군다.
동해바다의 짙푸르름은 깊은 이야기에 심취한 사람들을 묶는 듯하다.
유난히 둘씩 짝을 지어 이야기에 빠져든 사람과 사물들이, 짙은 청색 바다를 이렇게 푸름에 몰입하게 하였을까,
늘씬하게 각선미를 발휘하는 소나무 군집을 뒤로한 저 등굽은 소나무는 바다에 먼저 당도하려는
성급한 마음이라 해두자.
이웃 강문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직선의 수평선을 건너는 곡선의 무지개 미학이 '솟대다리'라는 이름으로 떠 있었다.
솟대의 곧은 직선을 아래로 눕히고, 느긋하게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 한 마리 꿈틀, 몸을 뒤채는 형상이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는 이 경포와 경포대, 강문교의 아름다움애 대해 이렇게 칭송하고 있단다.
'한 척의 배를 띄워 호수를 건너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동해가 거기로다.
조용하구나 경포의 기상이여. 넓고 아득하구나 저 동해의 경계여.
이 곳보다 아름다운 경치를 갖춘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직선의 올곧음을 곡선으로 치환한 동해식 표기법일까. 강문 솟대다리는 솟대의 이미지를 파격적으로 해체한
심플한 아침해 같기도 했다. 바다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해의 부신 미소. 이곳은 동해였다.
이곳 솟대다리에서는 해파랑길 도보여행을 위해 대부분의 위치를 걸음으로 표기해 두었다.
한 걸음당 45cm라 할 때, 허균 난설헌 생가터 까지의 거리는 2600 걸음이었다.
경포대까지는 4400 걸음.... 걷고싶게 만드는 위치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 해파랑 39길의 시작점인 이곳에 어인 내용인지... 두바이의 상징이라는 '버즈 알 아랍'을 죄끔 흉내낸 듯한
짚라인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름은 '아라나비'
'바다'를 뜻하는 '아라'와 '나비'를 합성한 언어로, '체험객이 안전띠와 연결된 도르레를 와이어에 걸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다 위를 하강하는 신종 익스트림 레포츠'였다.
워낙 활동적인 것에 취약한 체질이라 이런 모험심은 감히 꿈도 꾸지 않지만, 얼마전 이곳에서 중경상의 사고가 발생해서
다녀온지 얼마 안된 나에게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던 곳이다.
관계자 여러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휴우~~ 안타길 잘했구나 하는 나만의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
하지만, 로프 하나에 나비의 몸처럼 바다를 가르는 사람들을 눈으로 보는 장면은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더 그렇겠지.
나는 코끼리가 들어올리는 것도 기겁을 했던 사람인지라, 절대.. 평생.. 이런 담대한 구조는 타지 못하리라.
그곳에 적힌 안전수칙 중에 참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긴 머리는 묶어 주세요.'
'치마를 입고 체험하는 것은 제한(말리지는 않음)' 이라 되어 있었다.
말리지 않음이라는 어휘 때문에 너무나 입고싶은 여성분이 있을까봐, 괜히 상상하며 웃었다.
가까이에 있는 '솔바람다리'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다리로 이동해 보았다.
강릉의 솔바람이 다리 위를 지나면 이렇게 서로 엮이는지는 몰라도, 거미줄이 바람에 단단히 붙들린 것처럼 보였다.
맞은편의 동산이 바로 죽도봉이다. 작은 공원으로 산책로가 나 있었고
남항진과 강릉항을 잇는 이곳 솔바람 다리를 지나면 왼편의 기슭으로 나무계단이 나 있으니, 그곳으로 오르면 될 것이다.
해파랑길을 걷거나 바우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잠시 언덕에서 항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집게발이 여럿 달린 상상의 곤충이 배밀이를 접었다 펼쳤다 하는 것 같았다.
암튼... 그 배밀이 사이에서 바라보는 아래의 모랫벌 풍경이 아름다웠으니, 곤충의 품은 참으로 아늑하였다 할까.
해가 넘어가니 시간도 넘어간다.
오직 강마을 풍경에 빠진 사람 몇몇만 강을 낚고 시간을 붙잡았다.
4월이었던데다 저녁이면 제법 쌀쌀했음에도 저들만은 그런 것쯤이야 초월한듯 해넘이를 견디었다.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무엇을 낚는지 관심이 있겠지만, 나는 그 풍경이 따사로운지 시린지에만 관심이 갔다.
기분 좋게도 강릉은 커피의 메카라고 한다. 조금 거친듯 고독한 동해바다의 이미지와 왠지 잘 어울리는 느낌이라 생각되었는데,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마신 커피자판기마저 유명하다 하였다. 에구, 나는 뭐했는지 그곳을 그저 지나치고 말았다.
아마도 어둠에 묻어가는 바다..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는 밤바다가 나에겐 더 좋아서겠지.
저녁은 조용하게 소주와 조개구이..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니는 밤바다 코스였다.
강릉의 밤하늘에는 밤의 파도가 참 깊고도 푸르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강릉을 본격적으로 여행할 부푼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난설헌, 생각할수록 가슴이 촉촉해지는 그 여인의 집으로 마침내 가는 것이다.
그곳으로 내가 가고자 한 기다림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알았다.
첫댓글 이 페이지 보시기 불편합니다. 커서를 가운데로 쫘~~~악 끌어다 보십시오.
굳이 안보셔도 괜찮지만서두. 히^^
솟대다리 솔바람 다리가 예술이네요 ..
우리나라에도 좋은 곳이 많네요
여행기도 좋지만 사진이 작가의 수준을 넘어 섰습니다
솟대다리가 왜 숏다리로 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