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애락의 중심에 ‘뇌 변연계’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가해자와 피해자-뇌로 들여다본 심리세계
<사진설명>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사고, 살인, 강도의 위협 등 공포스럽고 혐오스런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볼 때의 뇌 영상을 양전자방출단층촬영한 뒤 지도화한 모습.
가로와 세로 선이 만나는 지점은 대뇌 변연계에 속한
편도로 밝은 주황색을 띠고 있다. 이는 편도가 공포 감정 처리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이 활성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불특정 다수를 죽음으로 몰고간 대구 지하철 방화범은
도대체 제 정신인가
방화범이 뇌중풍 치료 뒤 우울 증세를 보였다는데 이번
참사와 관련이 있는가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피해자들은 악몽, 불면증,
환청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으로 고통받고 있다는데 치료는 가능한가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멍 투성이 안전대책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애인단체, 의료계 등은 일반인의 범죄율이 정신질환자에 비해 17배나 높다는 점에서 이번 방화를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의료계에서는 또 뇌중풍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올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짜증을 쉽게 내는 정도이지 극악한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길 정도는 아니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는 불치병은 아니지만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우울증, 알코올 중독, 공포증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도 지평선
너머로 미지의 땅이 계속 펼쳐지고 있을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이기 때문에 대구 지하철 참사의 정신적
측면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 이외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기쁨과 슬픔, 공포,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의
중추 역할을 하는 대뇌 변연계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연구가 최근 유전공학, 뇌영상촬영, 신경약리학 등의
발전과 함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간뇌(소뇌 포함), 대뇌 변연계, 대뇌 신피질 등 세 부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그동안의 뇌과학은 영장류의 특징인 언어와 논리적 추론을 관장하는 신피질 연구에 집중되어 왔다. 변연계는 감정을, 신피질은 이성을 각각 주관한다. 변연계는 기능적 측면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뇌 신피질과 대비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소홀하게 취급됐다. 한편 간뇌는 호흡, 혈압, 체온 등 생명유지의 중추이다.
변연계는 감정 전반을 조절하는 ‘편도’, 기억의 임시
저장창고인 ‘해마’, 감정변화에 따라 행동이나 내분비계를 변화시키는 ’시상하부’, 운동을 제어하는 ‘기저핵’, 희노애락의 감정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변연계는 불분명하고 비합리적이지만 감정 표현과 직관의 능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정립하는 데에는 신피질의 천재성이 필요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아기의 천진난만한 미소에 저절로 화답하는 데에는 그것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변연계와 신피질이 이분법으로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신피질은 감정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의 상징적 기능들로 여러가지 느낌들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연세의대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김재진 교수는 “인간의 뇌와 마음을 어떤 식의 개념으로 분리한다고 해도
상호작용이 없는 순수한 인지, 순수한 감정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며 “변연계의 감정 처리와 신피질의 의사
결정간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서유헌 교수는 “신경과학자들은 강박증이 대뇌의 전두엽 피질과 변연계의 기저핵과 시상 등을 연결하는 신경회로의 이상으로 생기는 것으로 본다”며 “마음, 의지와 신체를 따로따로 구분하는 경향은 이 회로 내의 어느 부위에서 장애가 시작되느냐에 따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나온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반인의 정신상태는 변연계와 신피질이 상호협력 속에 각자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미국 뉴욕 9.11테러 피해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것은 변연계 또는 신피질에 문제가 발생해
양자간의 조화가 깨진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 정신과학계 일각에서는 “미국 문명은 차가운
이성, 즉 신피질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변연계의 감성에 기반한 문화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육, 사교활동, 의사소통, 놀이 등 변연계의
사회적 능력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험동물로 많이 쓰이는 햄스터는 신피질을
제거해도 그 어미는 계속 새끼들을 돌본다. 그러나 변연계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즉시 모성 본능을 잃고 새끼를 본 체 만 체 한다. 또 붉은털원숭이는 어미와 격리시켜 키울 경우 밤마다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고 자신의
눈알을 후벼파는 등 돌연변이로 성장한다.
인간의 경우 변연계에 속한 편도가 훼손되면 감정에 장애가 나타난다. 편도만 파괴되는 희귀질병인 ‘우르바흐-비테병’ 환자는 상대방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지 못한다. 즉 편도가 망가지면 자신에게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을 못하게
되거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남윤영 교수는 “2차대전 때
부모와 격리되어 따로 수용된 유대인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장한 뒤 우울증을 겪었다”며 “요즘은 미국서도 아기와 엄마가 함께 자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을 펴낸 미 캘리포니아대
의대 정신의학팀은 개나 고양이도 변연계를 통해 인간의 감정에 반응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들은 원시적인 신피질과 성숙한 변연계를 가진
포유동물이고, 그들의 변연계는 인간과 같은 계통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 상태를 읽고 반응할 줄 안다는
것이다.
정신의학팀은 이에 따라 “어떤 사람이 일진이 좋지 않은 날,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가 그것을 알아채고 침대
밑에 숨는다거나 개가 슬픔을 감지하고 다가와 위로해
준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극단적인 의인화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역으로 지각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애완견이 피곤한지, 행복한지, 무서운지, 가책을 느끼는지, 쾌활한지, 적대적인지, 흥분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