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민 21:4-9)
일본의 경영전문지인 PRESIDENT지가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에 ‘꼭 했더라면…'하고 후회하는 것들에 대해서 각각 설문조사를 실시했답니다.
자영업자들을 제외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30대 이상 성인들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다는데요, 역시 각 세대별로 ‘공부와 투자, 그리고 저축’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30대 이상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물어봤는데요, '20대 때 해 두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1위는 자격증 취득, 2위는 어학과 공부, 3위가 저축과 투자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30대가 되면 벌써 노후를 걱정해야 되는가 봐요?
그럼 40대들은 30대에 꼭해 놓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이 사람들도 역시 30대들이 대답했던 것처럼 자격증이나 어학 공부, 그리고 저축과 투자를 꼽았는데, 그 외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자녀 양육에 더 적극적이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들을 했답니다.
사실 요즘엔 아이를 낳자마자 보육시설에 갖다 맡겨버리는 일들이 참 많은데, 아이가 태어나서 너댓살 될 때까지가 제일 중요한 시기이거든요?
내 아이는 내가 키워야 됩니다.
어린이집에 가 보세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울러대죠?
한 아이 달래고 나면 또 다른 아이가 울죠?
보육하는 선생님들이 월급이나 많이 받나요?
너무 너무 힘이 드니까 아이 기저귀 갈아 채워주는 것 조차도 버겁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키워서는 아이들의 인성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학교 폭력이다 뭐다 해서 결과가 다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저도 올해 큰 아이를 대학에 보내놓고 보니까 참 아쉽더라고요.
둘째도 내년에 대학에 간다고 나가고 나면 금방 군대에 가야죠?
직장에 다녀야죠? 그러다가 장가 가고 나면 끝입니다.
이제 저도 제 인생에서 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이제 앞으로 몇 달도 채 남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을 때 좀더 화목한 가족을 이루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0대가 되면 인간관계를 잘 해 놓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대답이 나와 있어요.
50대가 넘어서 60대가 된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진작에 이혼을 했더라면…’이라는 답이 꽤 많이 나왔다는 겁니다.
평생을 살면서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탓에 그런 후회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요?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더 예수님을 잘 믿어볼 걸.’ 그런 후회들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상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뒤돌아서 생각을 해 보면 그래도 그때 내가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이 정말 후회가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영부영하다가 세월이 금방 흘러가고 맙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알잖아요?
한순간에 자기 신앙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에 후회하기 전에 첫사랑을 회복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말에도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그러는데, 430년 동안이나 살아왔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목적지로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설렘과 기대가 있었겠습니다마는 막상 따라나서 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던 거예요.
우선은 그 길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힘이 들었을 겁니다.
출애굽 당시에 남자 장정들의 숫자만 쳐도 60만이 넘었다고 하니까 남녀노소 모든 백성들의 숫자를 합치면 거의 200만 명이 넘었을 거예요.
그 수많은 백성들이 한꺼번에 이동을 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겠죠.
우선은 먹고 마시는 문제에서부터 이들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들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잘 몰라요.
적과 싸워서 이겼을 때에는 신이 났겠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메추라기들이 떨어져 땅에 막 쌓일 때에는 그저 신기하고 놀라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금방 시들해지고 감사하던 마음들도 얼마 가지 못하고 또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고 그랬던 거예요.
오늘 본문의 내용이 그 대표적인 사건 아니겠어요?
21장 1절과 2절, 3절 말씀을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 왕과 싸워서 그 성읍을 완전히 다 멸망을 시켜 버리고 그 곳 이름을 완전히 멸했다는 듯으로 ‘호르마’라고 불렀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얼마나 잘 된 일이에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그래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기쁨이 얼마 가지 못하더라고요.
그 다음 바로 4절 말씀부터 오늘 본문인데요, 백성들이 호르산에서 출발을 해서 홍해 길을 따라가는 겁니다.
바로 앞장에 아론이 죽어서 장사를 지낸 기록이 나오는데, 지금 이 시점은 애굽에서 나온 지 40년이 되는 6월 초순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광야길을 뺑뺑 돌고 돌고 돌면서 결국 제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40년 전에 애굽에서 나왔던 곳이 바로 여기 홍해였거든요.
그런데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에돔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려고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게 되었던 거예요.
에돔 족속들은 좀 사나운 데가 있어서 만약에 그리로 갔다가 전쟁이라도 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겁을 먹고 도망가게 될까봐서 될 수 있으면 에돔 족속들하고는 안 부딪치려고 아마 에돔을 비껴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온통 화강암 지대여서 거칠고 험한 광야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도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속이 상해서 못 살겠다.’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고요, 지도자의 뜻에 따라서 고분고분 순종을 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속이 상하면 말도 안 들립니다.
교회에 나와도 말씀이 안 들려오고요, 눈도 마주치기 싫어지고요, 만사가 다 귀찮아지는 거예요.
그게 다 마음이 상해서 그런 겁니다.
백성들이 마음이 상한 이유는 길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을 지나서 가면 금방 갈 수 있는데, 그 멀쩡한 길을 놔두고서 삥 둘러서 우회를 한다고 하니까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길 때문에 마음이 생했는데, 표현은 영 엉뚱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뭐라고 불평을 했습니까?
5절 말씀ᄋ르 다같이 봉독해 보시겠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자,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고 있는데, 모세에게만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세를 싸잡아서 한꺼번에 원망을 하는 겁니다.
이걸 조심해야 합니다.
뭔가 못마땅한 것이 있거들랑 기도해야지 원망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원망이 사람에게만 미치고 나면 그만인데, 꼭 하나님에게까지 원망을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원망이 엉뚱한 것으로 번져버립니다.
길이 맘에 안 드는데 왜 먹는 걸 탓하는 거예요?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그런데 원망은 무슨 원망을 했어요?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그러며서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출애굽기 16장 31절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에 만나를 주셨을 때에 너무 너무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뭐냐? 생전 보도 듣도 못한 것이 참 신기하게 맛있네!’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만나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깟씨 같기도 하고 희고 동글동글한 것이 꿀섞은 과자 같았다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맛있다고 할 땐 언제고 그 귀한 하늘 양식을 보고서 뭐라고 그랬어요? - ‘이 하찮은 음식’
전에 쓰던 우리 개역 성경에서는 ‘박한 음식’이라고 그랬는데, 감사한 마음이 있었을 때에는 그렇게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던 음식이 어쩌다가 박한 음식이 되었을까요?만나가 바뀐 걸까요? 아닙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40년동안이나 내려주셨던 그 좋은 만나가 그만 ‘천박한 음식’, ‘하찮은 음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거예요.
출애굽을 해서 40년이 지나는 동안 벌서 애굽에서의 종살이가 어땠는지 다 까먹었어요.
눈만 뜨면 죽겠다고 그러고 입만 열면 못 살겠다고 그러고, 이 광야에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게 더 나을 뻔 했다고 그러고 말이죠.
죽겠다는 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요!
‘죽겠다 죽겠다’ 그러니까 정말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내려 보내셨잖아요?
불뱀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광야에 서식하고 있는 독사인데 가끔 ‘동물의 세계’인가요? 그런 프로그램에 보면 나오잖아요.
그 독이 얼마나 강하고 독한지 그 뱀에 물리면 얼마 안 가서 죽습니다.
이 뱀에 물리면 열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그래서 아마 불뱀이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뱀 색깔도 붉은 빛이어서 불뱀이라고 불렀다고 그러고요.
아무튼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한 번도 신발 한 짝 떨어진 적이 없었고, 입고 나온 옷이 해져서 못입은 적이 없었고, 그 벌판에서 뱀에 물려서 죽었다는 기록이 단 한 번도 없었잖아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죽겠다고 짜증을 부리고 난리를 치니까 하나님께서 손을 놔 버리신 거예요.
사방 도처에서 불뱀이 나와서 막 무는데, 젊은 사람들은 안 물고 꼭 나이 많은 사람들만 물고 다녔나 봐요.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안 물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부리는 사람들만 물고 다녔나 봐요.
결국 광야생활 40년 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만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되었던 사람들은 거기서 다 죽었다니까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남고서 나머지 사람들은 불뱀에 물려서 다 죽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백성들이 그제서야 모세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예요.
7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원망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통회자복하고 나니까,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구원해 주셨는데, 어떤 방법으로 구원해 주셨습니까?
구리 뱀을 장대 위에 높이 매달으라는 거예요.
성경에는 놋뱀이라고 그랬죠?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아 놓아라! 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할렐루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들은 다 뱀에게 물린 사람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벌써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잖아요?
뱀에게 물린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든지 말았든지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사는 우리들은 모두가 다 뱀에게 물린 사람들입니다.
감사와 찬양과 기도가 끊겨 버렸다면 그건 뱀에 물려서 이미 위급한 상황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사람을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인간의 교만이 죄를 낳게 되고 만 것처럼, 구리 뱀이 무슨 신통한 치유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아담이 인류에게 죄악의 유산을 물려준 나약한 인간이었다면, 두 번째 아담은 우리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첫 번째 불뱀이 모든 죄인들을 멸망시켜 버린 심판의 도구였다면, 두 번째 놋뱀은 인간들을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형상을 담은 십자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원망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원망 거리가 생기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에게느??? 더 큰 감사의 제목들이 생겨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고통의 멍에를 벗어 버리기 위해서 주님 앞에 나온 당신의 자녀들을 그 크신 사랑으로 안아 주실 것입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갑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불뱀에게 물렸는데 살아날 방법이 어디에 있겠어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할렐루야!
십자가의 방법이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해 보이는지는 몰라도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따라해 보세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폐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지혜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잘나고 똑똑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재주가 좋아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구원 받는 거 보셨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누구를 전해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전하니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십자가를 쳐다 보면 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많이 배우고 유식하고 똑똑했지만, 자기의 언변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대화술과 자기가 자랑하는 지혜 같은 것들은 다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했습니다.
세상 자랑은 다 분토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2:2)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다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들을 죄가운데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누구든지 살아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4-9)
목사님들이 가장 많이 설교하는 본문 중 하나는 아마 요한복음 3장 14-16절일 것입니
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꿰어 하늘과 땅 사이에 달았을 때에 불뱀에 물려 독이 퍼져 죽게 된 사람이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게 되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
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죄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요한복음 3장의 배경이 되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21장입니다. 이 경우
에 민수기 21장은 보통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는 데에 인용된 말씀이
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민수기 21장은 불신자들이 구원받는데 사용된 말씀이 아닙니다. 원래 배
경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불평했을 때 불뱀의 심판을 받게 되었
고, 불뱀의 독으로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치료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21장은 불신자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신자의 치료
를 위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이스
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민수기를 불평의 책이라고 부
르기도 합니다. 민수기에는 모두 아홉 번의 불평이 나오는데,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불평이 아홉 번째 불평입니다. 이제 21장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불평과 원망의 이야기
는 나오지 않습니다.
민수기는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천로역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
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애굽에서 탈출하는 기본구원에서 끝
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가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하나님의 백성 된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
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어도 어떤 분들은 승리와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는 반면, 어떤 분들은
그렇지 못하고 간신히 천국에 가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민수기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이 걸어가고 있는 영적인
행로요, 영적인 천로역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21장의 이야기는 광야 40년 방황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일어난 사건입
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입니다. 에서의 후손이
사는 에돔 땅을 지나기만 하면 하루 만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왕의 거절로 인해 에돔 땅을 지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호르산을 돌아서 홍해길로 가나안 땅을 향
해 나아가게 됩니다. 호르산을 진행하는 도중에 아론이 123세의 나이로 별세하고, 이
스라엘 백성들은 눈 앞에 보이는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한 실망감 때문에 마
음이 상합니다. 4절 말씀에 보니까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
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
다. 백성들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망은 믿음의 반대요,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실망은 건강한 삶의 적
이요, 삶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역기능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때로
실망과 좌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
어야 합니다. 실망은 아무 유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 유익도 없는 것을 왜 붙들어
야 하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실망을 극복하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실망과 좌절의 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망하고 좌절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다 온 길을 돌아서 가
라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다 온 줄 알았는데, 다시 뒤로 돌아서 홍해길로 가라
고 하니 백성들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습니까? 제가 교수생활 할 때, 어떤 학생들은
2학기에 학점이 안 나와서 졸업식장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
다. 졸업인줄 알았는데 졸업이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씁쓸한 절망감이 밀려오겠습니
까? 또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해서 이만하면 영적으로 성장한 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어떤 죄에 걸려서 넘어진다면 얼마나 좌절이 되겠습니까?
제가 어떤 기도원에 가서 설교를 하는데 한 여자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저 분이 큰 은
혜를 받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에요. 이 분이 여전
도사님이신데 남편이 당뇨병에 걸려서 오랫동안 함께 잠자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
던 중 그만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동창생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륜을 저지르고 말
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하나님. 제가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여전도사 노릇을 했
는데 이만한 죄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갔으니 내 꼴이 뭡니까?”하고 대성통곡을 한 것
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성장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돌
아서게 되면 마음이 상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친척인 에돔의 불친절 때문입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입니
다. 이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님이기 때문에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즉 야곱 족속에
게 있어서는 형님 집안과 다름없습니다. 아우 집안의 후손들이 형님 집안의 길을 평안
히 지나가기를 원하는데, 형님 집안의 왕과 군사들이 나와서 칼로 막고 죽이겠다고 하
니 야곱 집안 후손들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예수님도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
인 가룟 유다의 배반을 받았고, 심지어 다윗은 자기 자식의 배반을 받았습니다. 다윗
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내고, 아버지의 후궁 열 명을 백주에 범했으
니 다윗의 상처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친한 친구와 가족의 불친절, 배반은 언제나
치료하기 어려운 상처와 좌절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세 번째로 길이 멀고, 어렵고,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대로는 미국의 고속도로처
럼 국가를 통과해서 가는 길입니다. 물론 잘 닦이고 평탄한 도로입니다. 이런 좋은 길
을 두고 돌 많고 경사진 산길을 가려니 더 힘이 든게 당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불평이 튀어 나왔을 것입니다.
2. 실망하지 않을 이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첫째
이유는 아무리 험한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입
니다. 아무리 왕의 대로라도 어린 아이가 혼자 그 길을 간다면 위험할 것입니다. 그러
나 험한 산길이라도 아버지가 손을 잡고 올라가면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떤 군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행동이 망나니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군
인 아버지가 하루는 아들에게 “내가 그 동안 너의 행동을 참고 봐왔지만 이제 더 이
상은 안되겠다. 너는 죽어 마땅한 녀석이므로 내가 산에서 이 총으로 네 생명을 거두
겠다”고 말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속 깊은 곳으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산
길이 하도 험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좀 쉬었다 가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
답합니다. “이 놈아. 죽을 놈이 쉬기는 뭘 쉬어.” 그래도 아들은 쉬었다 가자고 사
정합니다. 그래서 잠시 쉬는데 이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아빠하고 등산하니까 참
좋네요.” “야. 이 녀석아. 조금 더 가면 죽을 건데 좋긴 뭐가 좋아?” “평생 동안
언제 아빠가 나하고 이렇게 등산 한 번 해본 적이 있는 줄 아세요? 내가 죽으러 가는
길이지만 아빠하고 손잡고 등산하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이 아버지가 생각
을 해보니까 자기가 국가를 위해 충성하느라고 아들과 등산 한 번 같이 못 갔던 것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만 마음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들을 데
리고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이처럼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은 감사하고 행복한 길입니다.
찬송가 456장에도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
습니까?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주님과 함께 가면 즐거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하나님께서 공급자가 되시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방황했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옷이
헤어지지 않았으며 목마르거나 배고프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땅에서 생수를 내시기를 40년 동안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속
도로를 달리더라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겠
습니까?
저는 78년도에 공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공군 소위가 되기 위해서는 다섯 달동안 훈
련을 받는데, 마지막에는 3일 동안 산악훈련을 받습니다. 방독면을 쓰고 지내야 하는
고생스러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 산악훈련은 공군장교들에게 아주 기다려지는 훈
련입니다. 그 이유는 점심시간만 되면 보급부대의 차가 오기 때문입니다. 보급부대의
차가 오기 때문에 그 날은 흰 쌀 밥에 건더기도 많은 맛있는 국을 먹게 됩니다. 힘든
훈련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는 보급부대를 생각하면 그 훈련도 받을 만한 훈련
이 됩니다. 이처럼 공급자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우리
는 더불어 함께 갈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기 시작했
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산을 돌아서 홍해길
로 간다 하니까 가나안 남방의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그
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
을 다 멸하리이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참 오래간만에 믿음의 소리를 들으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사람
들을 물리치고 그 곳 이름을 호르마(파괴/destruction)라고 짓습니다. 험한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험한 길로 가도 승리를 주시면 그 길
이 좋은 길입니다.
3. 실망이 불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민수기 21장이 고비였습니다. 21장 이전에는 온통 고난과
불평의 이야기로 가득 찼었지만, 21장에서는 조금씩 승리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
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실망이 있으시다면 오늘부터 불평을 그치시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으십시오. 실망이 바뀌
어 기쁨이 두 배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
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곧바로 불평하고 말았습니
다. 실망과 좌절의 다음 단계는 불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
해 불평합니다. 불평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불평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
굽에서 인도하여 내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땅, 장자를 죽이는 땅,
고생하는 애굽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 건져주신 것인데, 불평하는 사람들은 하
나님께서 자비를 주셔도 여전히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면 고통에 대해 불
평이요, 자비를 주면 자비에 대해 불평입니다. 이런 불평을 가리켜서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불평은 식물과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근거 없는 불평입니다. 하
나님께서는 매일 만나를 주시고, 물이 없을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런
데도 식물과 물이 없다고 하니 이 얼마나 근거 없는 불평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두 가지 소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는 믿음의 소리도 들으시고, 불평의 소리도 들으십니다. 믿음의 소리에는 승리로 응
답하시지만, 불평의 소리에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근거 없는 불
평을 발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불뱀이라는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이 불뱀이
사람을 물면 불처럼 열이 나서 결국 죽게 됩니다. 이 불뱀들은 원래 사막에 흩어져 사
는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집합명령을 내리신 겁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도 불뱀이 있습니까? 질병의 불뱀, 사업실패의 불뱀, 정신 혼돈
의 불뱀, 자녀들이 말썽 부리는 불뱀. 이러한 갖가지 형태의 불뱀들은 결국 불평과 원
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민수기도 이 불평과 원망의 문제를 아홉 번이나 집요하
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21장에서 아홉 번째 불평이 깨끗이 끝나버
렸듯이 여러분의 모든 불평도 오늘부로 다 끝내시고 여러분 앞에는 오직 승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치료책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주실 때, 거기서 그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채찍을 주시면, 반드
시 치료책을 주십니다. 이 치료책을 받아들인 사람은 살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책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
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범죄한 사실을 인정하
고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7절 후반에 나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
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온
몸이 퉁퉁 붓고 죽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약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영계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무지한 사
람들입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무당과 점쟁이들이 점
치고 칼춤 추는 것은 모두 귀신 들려 하는 것입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악한 영들의 역
사를 보면서도 선한 영이신 하나님과 천사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해결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
간 사이에 중보자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중보자입니다. 모세는 우리 중보자
로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
니다. 다른 종교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진리는 진리로 말해야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문제 있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누구입니까?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부처나 공자, 맹자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중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플
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피타고라스도 모두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하늘의 하
나님과 문제 있는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중
보를 요청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한 분이
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0절의 말씀처럼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양 편을 모두 중보할 수 있
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모세에게 하늘과 땅 사이에 놋뱀을 장대에 달
아서 세워놓도록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놋뱀은 그리스도 예수의 상징입니다. 문제
가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아 치료를 받았던
것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구원해 주시
도록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달아놓았을 때, 모세의 말에 순
종하여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장막 안에서 “모세여. 웃기는 소
리 하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퉁퉁 부어 죽게 되었는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산단 말입
니까? 난 깨끗이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거 안봅니다”라고 부정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
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구원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세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
씀하셨습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며,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
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지옥을 믿지 않아. 난 깨끗이 죽고 말
지 천국과 지옥 같은거 믿지 않아!”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천국, 혹은 지
옥에 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권에 달린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한 자세
로 하늘과 땅 사이에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영혼의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
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에 간절히 이야
기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신앙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사람은 이처럼 기본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갖가지 불평, 낙
심, 원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그런 성도님들도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예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
다. “예수여! 제가 실패했습니다. 예수여! 저의 죄로 말미암아 이런 불뱀이 제게 다
가왔습니다. 제가 지금 불뱀에 물려 실망하고 낙심하여 마음이 상했습니다. 제가 하늘
과 땅 사이에 달린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오니 나를 고쳐주옵소서.”
예수님은 기본구원의 주님이시며, 또한 믿는 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건설구원의 주
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구원받지 못한 분들은 구원
을 받고, 치료를 받지 못한 분들은 치료를 받고, 문제가 있는 분들은 해결함을 받으시
기를 바랍니다. 해결함을 받아서 이제부터는 불평과 원망을 그치고 감사함으로 승리하
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