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열흘 베트남을 다녀왔다.
비극의 역사를 곳곳에 간직한 채 가난과 아픔을 씻기 위해 뜨겁게 달아오르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는 월남으로 더욱 친숙한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오랜 전쟁 끝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새삼 빈곤과 남루함을 엿볼 수 있는 여행을 했다.
여름옷을 챙겨 들고 다섯시간을 날아 도착한 호치민은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호치민은 우리에게는 사이공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제2의 도시다.
밤 열두시가 넘었건만 공항에는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놀랄 정도였다.
후진국공항들이 그렇듯이 호치민 공항도 음침하고, 칙칙했다.
후텁지근한 첫날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거리를 나서보니 오토바이가 한없이 밀려다녔다.
겨우 다섯시를 넘어섰는데도 거리는 벌써 분주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베트남의 아침을 열고 있었다.
끝없이 밀려다니는 오토바이는 베트남의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서 특유의 풍경을 연출했다.
불과 2~3년전 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는데 이제는 전체의 90%이상이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있단다.
극심한 무질서 속에 뒤엉키는 차량과 오토바이 때문에 도심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고막을 자극하는 크락숀 소리에 귀가 멍멍해졌고, 고물차와 오토바이가 토해내는 매연으로 호흡이 곤란할 정도이었다.
그래서 남녀 할 것 없이 마치 도둑질할 때 복면하듯 스카프 같은 천으로 복면을 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베트남 거리모습은 어디든 아주 친숙했다.
거리를 메우고 있는 차량들이 거의 한국산 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100%, 택시는 70%정도가 한국산 이었다.
택시는 주로 프라이드가 70%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끔은 초소형인 마티즈택시도 곧잘 눈에 띠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 차량에는 한글로 된 상호나 노선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한국산임을 자랑하기 위해 한국에서 쓰던 대로 그대로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거리곳곳에는 삼성과 엘지 등 우리기업들의 광고판이 서있어 한국경제의 위상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뿌듯함을 맛볼 수 있었다.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어디서 든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쌀로 만든 국수인 퍼였다.
닭국 물과 소고기 국물에 말아 주는 퍼가 입에 맞았다.
그러나 아직 위생개념이 부족해 음식점이 불결하고, 시설도 엉망인 곳이 많았다.
이들의 주식은 쌀밥에 두어가지 반찬을 얹어 아주 적은 양만을 먹었다.
호치민에서는 5일간 머물며 이곳저곳을 다녀봤다.
특히 현지기업을 몇 가운데 가볼 수 있었는데 시설이 낙후돼있고,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해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구속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워낙 일자리가 부족하다보니 전혀 문제가 되질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더욱 최악의 환경에서 일하는 그곳 근로자들의 표정엔 순진함이 가득해 가슴이 아팠다.
매일 5개업체 이상을 돌아보는 강행으로 4일만에 업무는 끝을 냈다.
남은 것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촬영여행이었다.
베트남의 젖줄 메콩강
호치민에서의 마지막일정은 메콩강 투어였다.
호치민에서 서너 시간 버스를 타고 나가 메콩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여러 동네를 들락거리며 그들의 삶을 엿보는 관광상품이었다.
요금은 1박2일 짜리가 20달러지만 내용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이틀 간 식사와 호텔까지 제공되는 경제적인 투어였다.
메콩투어를 통해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수백년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는 메콩 강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투어에 나섰다.
메콩강은 베트남 최남단 인도차이나 꼬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풍요의 땅이다.
황톳빛 강물에 보석처럼 떨어지는 햇살이 눈부시고, 고기잡이 배들이 그물을 드리운 그림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메콩강에는 우리나라의 서해대교와 똑같은 다리가 놓여 있어 친근감을 더해줬다.
메콩강은 조용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크고 작은 보트들이 무언가를 싣고 분주히 강물을 오갔다.
마치 시장 경제에 눈을 뜬 베트남의 활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메콩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 중에 하나다.
티벳고원에서 발원하여 중국땅과 미얀마를 종단하고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선을 만들며 흐르다가 남 지나해로 빠져들어 그 생명을 다하기까지 장장 4천5백킬로를 흐른다.
강물이 실어온 퇴적물로 델타 지역은 농사짓기에 좋은 비옥한 땅이 된다.
곡창으로 불릴 만큼 베트남의 쌀 생산량의 60 % 이상을 생산해 내는 지역이 이곳이다.
메콩델타 에서 나는 쌀은 베트남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아 수출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베트남은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이다.
델타지역의 산물은 쌀뿐이 아니다.
코코넛, 사탕수수, 열대 과일, 어류 등이 생산되는 곳이다.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는 땅이지만 베트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풍요롭다는 증거 일 것이다.
메콩강 보트 여행은 대단한 매력이 있었다.
바다처럼 넓은 강, 바나나와 야자수 잎사귀가 하늘을 가린 좁은 수로를 따라 마을들을 찾아 나서면 처녀지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베트남 전쟁때, 이곳 곡창 지대인 메콩 델타 지역은 미군과 베트콩 사이에 전투가 치열했다.
메콩 델타 지역은 베트남의 곡창으로서 베트콩들이 게릴라 활동 을 전개하던 근거지였다. 사이공과 가깝기도 했지만 아열대 수림, 키를 넘는 풀, 망그로브 늪지 등의 자연환경이 베트콩에게는 몸을 숨기기에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군들은 치고 빠지는 베트콩의 게릴라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했지만 악어, 뱀, 거머리, 전갈, 독거미, 모기, 말라리아 등과도 싸워야 했다.
민간인이 많아 베트콩에게 무작위 폭격을 가하는 것도 어려웠다.
밤 엔 게릴라가, 낮에는 미군이 지배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남베트남군과 베트콩이 서로 메콩강의 젊은이를 징집함으로서 형제끼리 싸우는 경우도 발생했다.
미군들은 좁은 수로를 찾아다니는 베트콩을 찾아내기가 여의치 않자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의 고엽제를 썼다.
미군은 월남전에서 7천2백만 리터의 고엽제를 뿌렸다.
이 고엽제의 양을 휘발유로 따지면 1만대의 차량이 3년동안 출퇴근을 하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다.
20년 이 지난 지금도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음식이나 모유에서도 발견되고 있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하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사용한 폭탄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의 4백 50배에 달하는 1천 3백만 톤에 달한다.
메콩 델타에서 가장 매력 있는 곳으로 꼽을 만한 곳이 수상 시장이다.
메콩 델타 의 수상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메콩강 삼각주의 교통 중심지에는 미토, 가베, 칸토, 빈롱 등의 도시들이 있고 이들 도시에는 예외 없이 큰 수상 시장이 형성된다.
수상 시장은 메콩강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곳이다.
메콩강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생산한 온갖 산물이 이 곳 수상 시장에 모여든다.
작은 배에서 거대한 삼판에 이르기까지 수상시장은 수백척의 배들로 장관을 이룬다.
배에는 저마다 다양한 상품들을 실려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듀리안, 롱안 등 과일은 물론이고 쌀, 채소 등의 농산물, 메기, 숭어 같은 수산물, 오리, 닭, 돼지 등의 가축들이 있는가하면 대 바구니 같은 수공예 품까지 다양하다. 강변은 물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지은 수상 가옥들 이 늘어서 있고 이 가옥 주변으로도 물건을 팔고 산다.
강 위에는 큰 배들은 정박해 있고 작은 배들은 분주히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교환한다.
메콩 델타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은 가져온 물품들을 팔아 일상용품과 바꾼다.
동이 트는 새 벽 희뿌연 안개를 뚫고 분주히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들의 움직임은 영화 속의 장면 같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메콩 델타의 배들은 독특하다.
작은 것은 거의 수면에 뱃전이 닿을 듯하고 한쪽으로 쏠리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아 서있기가 겁이 날 정도다.
그러나 이 런 배를 메콩강 사람들은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인다.
배 뒤편에 서서 두개의 노를 교차해가며 노를 젓는다.
노의 형태는 다르지만 배를 젓는 모습이 마치 베니스의 뱃사공 같은 모습이다.
베니스와 메콩강이 다른 것이 있다면 베니스의 배들은 관광용이 대부분이지만 메콩강의 것은 거의 생활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배라는 점일 것이다.
작은 배들은 소형 엔진으로 움직인다.
배 뒤편에는 작은 엔진이 있고 이 엔진에 연결된 쇠막대기 끝에는 프로펠러가 달려 있다. 뱃사공은 이 쇠막대기를 상하 좌우로 움직여 배를 조정한다.
배가 조금 더 커지면 단순한 교통 수단이기보다 메콩강 사람들의 주거 양식이 된다.
메콩강 사람들은 상당수는 배에서 자고 먹고 생활한다.
배에는 햇빛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설치되어 있고 이 지붕 아래엔 그물 침대, 취사 도구를 갖추고 있다.
수상 족들은 메콩강에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다 시장에 팔고 그것으로 식량이나 생활용품을 사서 생활한다.
땅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의 생활은 수상 가옥에 비해 윤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집의 구조는 단순했다.
집안에는 들어서면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집안뿐만 아니라 가게에도, 심지어는 자동차에도 제단을 마련해 논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사는 집에는 반드시 수로가 있고,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이 항아리로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한다.
베트남 전통적인 가옥에서는 수로에 화장실을 마련한다.
배설물이 바로 수로에 떨어지면 잉어나 오리들이 먹고 자란다.
이 수로의 물은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메콩강 마을에서는 항아리가 많을수록 부자로 여긴다고 한다.
잘 사는 집에서는 항아리가 10개도 넘고 메콩 델타에서는 항아리 공장이나 벽돌 공장이 지금도 성업중이다.
이들은 땅위에서 살든 배위에서 살든 메콩강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의 양식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간다.
현대화의 물결이 메콩강에도 밀려와 변화가 일고 있지만 그들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콩강은 타임머신을 타고 간 과거의 나라 같았다.
30시간의 열차여행
호치민의 일정에 이어 찾은 곳은 베트남의 수도하노이.
호치민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무려 1,700KM.
비행기를 탈까하다 비싼 항공료 탓에 열차로 이동했는데 자그마치 30시간이나 걸렸다.
우리나라의 협괴 열차와 같은 좁은 철로 탓에 평균시속이 70k정도에 불과 했고, 그나마 단선이어서 중간 중간 대기하기 일수였다.
다행히 침대열차여서 이틀저녁을 잠도 실컷 자며 또 다른 자유를 만끽했다.
밤11시에 출발한 열차는 이틀저녁을 새우며 새벽 5시에 하노이에 실어다 줬다.
하노이를 찾은 목적은 바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의 유산인 하롱베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7시에 출발하는 투어버스를 탔다.
이 버스에도 모두 서양사람들이고 동양인은 오직 나 한사람이었다.
하노이 남동쪽 광닌(光林)성의 해안 절경지대 하롱만(Ha Long Bay)은 우리에게 ‘인도차이나’라는 영화로 알려진 아름다운 만이다.
하롱만에는 3,000개나 되는 석회암의 섬들이 에메랄드빛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하롱만 관광의 출발지인 바이차이 선착장을 떠나자 바다에 솟아오른 크고 작은 기암의 섬들이 마치 수석전시장처럼 늘어서 있었다.
‘중국 최고의 절경’이라는 계림(桂林)의 풍광을 몇십개 합쳐놓은 것 같은 신비로운 섬들이 나를 반겼다.
뱃전을 오가며 다채로운 섬과 바위들이 연출하는 황홀경을 카메라에 담아가며 휘파람을 불어 댔다.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언제나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다.
이 섬들을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섬과 섬 사이에는 하롱만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수상족들이 진을 치고 있다.
베트남의 전통배 ‘탠난’에 해물과 과일을 싣고 다니는 수상족들은 ‘1달러’를 외치며 유람선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수상족들은 대부분 맨발이거나 슬리퍼뿐인 발에 헐렁한 바지와 꾀죄죄한 셔츠차림이다.
하롱은 한자어로 하룡(下龍)이란 뜻.
아득한 옛날 외적이 베트남을 침략하자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침략자를 쫓아내며 용틀임을 한 흔적이 하롱만을 만들어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13세기 몽골군이 베트남을 침략했을 때는 찬 후다오 장군이 하롱만 일대의 지형을 활용해 적을 끌여들여 섬멸했다고 한다.
하롱만은 지질학적으로 중국 남서부의 석회암대에 속한다.
약 12만년 전 최후의 빙하기에 침강되면서 ‘빙산의 일각’처럼 다양한 모양의 섬들을 바다 위에 남겨놓았다.
하롱만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경관이 달라진다.
특히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끼면 ‘바다의 정원’ 하롱만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낭만적인 분위기에 휩싸이는 곳이라고 한다.
서너 시간동안 배를 타고 선경에 취해 당도한 섬이 캇터 바라는 섬.
이 섬에 도착해 옹색한 버스에 구겨지듯 몸을 싣고 여인숙 같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진기 없는 밥한 술로 끼니를 해결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풍요로울 수가 없었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도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을 관조하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하노이로 돌아와 시가지를 시이크란 자전거로 돌며 관광을 하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택시를 타고 공항을 향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택시가 한참을 달렸는데도 여전히 깜깜한 한적한 길을 달려 대는데 야 뭔일이 생기는 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불길함이 스치자 트럭 뒷바퀴에 휘감긴 오토바이가 헛바퀴를 돌고 있고, 벌써 사람은 파편처럼 흩어져있는 교통사고를 목격해야 했다.
택시기사를 흘깃거리며 눈치를 보니 뭐 이상한 짓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가방에 숨겨 논 미니삼각대를 손에 움켜 지고 여차하면 무기로 써볼 궁리를 했지만 손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을 더가도 행선지를 알려주는 도로표지판이 에어포트는 안나오고, 하노이 베이라고 만 써있어 이 자식이 왜 바닷가로 끌고 가는 건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한시간을 달린 끝에 마침내 공항 같은 게 나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공항이름이 하노이 베이가 아닌가.
공항이름이 하노이 베이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하노이 에어포트는 조그맣게 밑에 써있었다.
공항을 이렇게도 표시하는지도 모르고 한밤중에 택시 안에서 강도를 당하는구나하며 얼마나 떨었는지...
하긴 택시비도 20달러 가까이 나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비즈니스클래스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누워 눈을 감으니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또 한번 무식이 위력을 발휘한 10일간의 베트남여행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당초엔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칠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포기했다.
첫댓글 한자~~로 시작해서.. 다짜로 끝나는 내용이구먼~~ 잼있게 글 읽었네..아주 유익 했다네.건강하렴~~
서가야, 무지 행복하거당 ㅠㅠ 조아하는 짓할수있고잉 , 부럽다요 . 근디 다른 헛짓거린 안했드뇨 (히히) 넘 잼있고 다음에 참고가 되거당 하여간 고맙고 자주 즐기시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