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달러를 긁어라
여봉우는 서울의 김종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 확인한 결과 장미양이 틀림없습니다. "
" 여러 목격자들이 장미양의 사진을 보더니 하나같이 장미양이 틀림없다고 증언했습니다. "
" 믿을수가 없는 일이군요."
김종화의 목소리는 사뭇 떨리고 있었다.
"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
"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떻게 해서 우리 아이가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되었나요? "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
"이곳 경찰도 아직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습니다. "
그 조직이 매우 잔인한 테러 조직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장미 양이 어떻게 해서 그 조직과 연관되어
변태수 씨 납치에 관계했는지 그 과정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 우리 애가 변씨 납치에 관계된 것은 틀림없나요? "
" 여러가지 정황 증거로 보아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
" 변씨를 유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
" 나는 그 애가 그런 짓을 했다고 절대 믿지 않습니다. "
" 그 애는 이제 열일곱 살입니다. "
" 그런 애가 어떻게 어른을 납치한단 말입니까? "
"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 장미양이 한게 아니라 놈들이 장미양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 나는 장미가 살아 있다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 일본에 살아 있다니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
" 그 애가 다치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 알겠습니다. "
"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
" 그 애가 정말 긴자에 있는 술집에서 일했습니까? "
" 네, 그건 사실입니다. "
" 함께 일한 아가씨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
" 그 애가 술집에 나갔다니…… 그것도 긴자에 있는 술집에 나갔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
"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
" 어떻게 그럴 수가……. "
" 네,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
김종화와 통화를 끝낸 여봉우는 기분이 착잡했다. 그는 오오에 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변태수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
" 내 관심은 오로지 마야한테만 있습니다. "
" 그 애의 장래를 위해서 본명은 사용하지 말아주십시오. "
" 그 애는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무사히 부모의 품에 안겨 주어야 합니다. "
" 인도적인 견지에서도 말입니다. "
오오에의 입가에 냉소가 스쳐 갔다.
" 우리 입장에서는 변태수씨에게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
" 그 사람은 일본에서 납치되었으니까 그 사람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
" 마야가 유괴된 것은 정말 안된 일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경찰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
" 마야는 변태수씨 납치 조직의 일원으로서 구해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우리가 체포해야 할 인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
"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지요. "
그것은 필요하면 사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이었다. 여형사는 상대방의 비정한 말에 화가 치밀었다. "
" 난 인도주의는 국경을 초월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
" 마야는 체포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
" 그 애 역시 피해자입니다. "
" 조직에 강제로 억류된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납치 행위를 도와 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 그 점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오오에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 정상을 참작한다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나 필요한 것이지요. "
" 지금 단계에서 우리는 그런것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
" 우리는 단지 수배 대상으로서 마야를 빨리 찾아내고 싶을 뿐입니다. "
오오에의 논리는 단순 명쾌했다. 그는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 간단 명료한 생각만 가지셨군요. "
여봉우가 화를 억누른 채 말하자 오오에는 이렇게 대꾸했다.
" 난 인도주의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
" 그런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요. "
" 될수록 간단한게 내 취미에는 맞습니다. "
" 난 간단하게, 아주 간단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습니다. "
" 이것저것 생각한다는건 도대체가 골치 아프니까요. "
여봉우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서울에서는 변태수 납치사건을 전담할 수사진이 급히 구성되었다.
피랍된 인물이 워낙 비중이 큰 데다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그 밖에도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 사건을 아주 중요시했고, 그래서 상급 기관에서 직접 그것을 전담하게 된 것이다.
여봉우가 일본에 있는 동안 장미 양 납치사건은 변태수 납치사건 전담반에 보고되었고,
그러고 나서 조금 후에는 두 사건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장미양 수사팀이 변태수 사건 전담반에 자동적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여봉우는 국제 전화를 통해 그런 통보를 받았다.
그는 두 개의 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지휘하던 수사팀이 비록 유명무실해졌다 해도
상부 기관의 수사팀에 통합 흡수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나 상부의 결정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사본부에서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그보다는 윗자리에 있는 상관이었다.
그는 김 씨 성을 가진 과장이었다. 김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
" 놈들이 오천만 달러를 요구해 왔어요. "
" 변태수의 어머니인 김복자 씨한테 직접 전화가 걸려 왔는데 변 부회장의 몸값으로 오천만 달러를 요구해 왔어요. "
" 오천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사백억이야. "
" 천문학적인 숫자야. "
" 그런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나이 어린 소녀였어. "
" 정말 놀라운 일이야."
" 그 여자의 목소리를 녹음해 두었는데 알아봤더니 일본에서 걸려 온 게 아니고 한국 내에서 걸려 온 거였어. "
" 그럼 이쪽에서 벌써 놈들이 한국으로 건너갔다는 건가요? "
" 그랬을 가능성도 있고……다른 하나는 한국 내에 놈들의 조직이 침투해 있어 가지고 전화를 걸어 온 것인지도 모르지. "
" 여형사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값으로 사백억원을 요구하다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액수였다. "
" 그쪽 상황은 어때요? "
" 아직 아무 진전도 없습니다. "
" 김장미양을 찾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입니다만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
" 오천만 달러를 언제까지 내놓으라고 했습니까? "
" 8월 10일까지라고 했는데…… 전달 방법은 나중에 연락해 주겠다고 했어요. "
" 별일 없으면 돌아오도록 해요. "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도쿄에 머물러 수사 상황을 지켜본다는 것은 따분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봉우는 즉시 공항으로 향했다.
여봉우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밤 열 시가 지나서였다.
곧장 새로 마련된 수사본부에 가서 일본에서 가져 온 정보를 보고한 다음
녹음되어 있는 범인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어린 소녀가 장난치듯 오천만 달러를 요구하는 것을 듣고 그는 경악했다.
" 혹시 장미양 아버지한테 이 녹음을 들려줬습니까? "
" 아니, 들려주지 않았어요."
김 과장이 대답했다. "
" 한 번 들려줘 보죠. "
" 혹시 아는 목소리일지도 모르니까요. "
" 아는 목소리라면 장미양의 목소리라는 건가? "
" 전 장미양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
"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 애 부모한테 한번 들려줘 보죠. "
연락을 받은 김종화는 즉시 달려왔다. 그리고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 본 그는,
" 이건 장미 목소리가 틀림없습니다. "
하고 소리쳤다.
" 속단하지 말고 다시 한번 들어 보십시오. "
경찰은 그에게 두번 더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 틀림없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종화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래도 그는 대학교수 출신답게 자기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았다.
눈물은 계속 흘렀지만 흥분해서 떠들어대지는 않았다.
" 그 애 목소리가 틀림없습니다만 이건 누가 시켜서 한게 분명합니다. "
" 그 어린것이 어떻게 이런 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하고 여봉우가 말했다.
" 이건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습니다. "
" 장미양이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
깔끔하게 생긴 김 과장이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
" 일본에서는 지금 장미양을 잡기 위해 비상망이 퍼져 있는데 용케 빠져 나왔군요. "
여봉우가 덧붙여 말했다.
" 이번 기회에 우리 아이를 구해 주십시오. "
"부탁합니다. "
종화가 애걸조로 말하자 김과장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 우리가 구해야 할 사람은 변태수씨입니다. "
" 장미는 납치되어 저렇게 된 겁니다."
" 변태수씨도 구해 내야 하겠지만 우리 장미도 구해 내야 합니다. "
종화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자 김과장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
" 녹음 들어 보지 않았어요? "
" 당신 딸은 인질범이란 말이야! "
" 몸값을 오천만 달러나 요구한 인질범이란 말이야! "
" 범인을 체포해야지 구해 내는 건 말도 안 돼! "
옆에서 듣고 있던 여봉우는 다시 화가 치밀었다.
김 과장의 말이 오오에 형사의 말과 너무나 흡사한데 그는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편을 들 수 없는 입장이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김종화가 비틀거리며 비통에 잠긴 모습으로 밖으로 나가자 여봉우는 그 뒤를 따라가 그를 위로했다.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
첫댓글 장미와 변태수를 무사히 구출해야 할텐데..............
두편씩 올려주지 ㅠ.ㅠ..답답해서리~~
장미가 저런 나뿐일을 하고싶어 했겠어요?
잘보았습니다~~
감사
ㅈㄷ
♡ 늘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