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신혼여행(5) - 아 카프리여!
피사에서 아침 일정을 보낸 우리는 4시간이나 걸려서 로마에 입성했다.
로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을 먹은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이태리 남부를 향해 달렸다.
이태리 지도는 꼭 여자 부츠같이 생겼는데,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가장 남부 쪽에 해당하는 폼페이와 소렌토,
나폴리, 그리고 카프리 섬이었다.
가장 기대가 된 곳은 당연히 폼페이였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본 폼페이의 역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가슴이 들떠 있었다.
또 하나 기대했던 곳은 소렌토 항과 세계 3대 미항으로 일컬어지던 나폴리를 보는 것이었다.
소렌토 언덕에 서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고 싶었다.
버스 차창으로 멀리 폼페이를 잿더미로 만든 베수비오스(vesuvius) 산이 보였다.
베수비오스 산은 커다란 구름에 머리를 감추고 아직도 거만한 몸짓으로 서있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약 2,000년 전 한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던 괴물이 지금도 태연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서기 79년 8월24일 아침. 지체 높은 로마 시민들의 여름철 휴양 도시인 폼페이는 바쁘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나폴리로부터 12㎞ 떨어진 베수비오스 산기슭에서 사루누스 강어귀에 세워진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제국의 화려함을 잘 나타내 주는 사치스러운 도시였다.
그러나 갑자기 폭발한 화산으로 인해 인구 2만의 도시는 순식간에 화산재에 덮여버렸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1738년 4월 어느 농부에 의해 고대 수도관의 일부가 발견되면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고 1748년4월에 가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현재 발굴된 폼페이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좁은 미로 같은 골목들과 호화로운 주택들, 골목마다 있는 빵 굽는 가게, 방앗간,
그리고 발굴유물들과 화석으로 변한 당시 사람들, 목욕탕 시설과 수도시설들을 보았다.
고대 수도관은 납으로 되어 있어서 아직 부식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납중독의 위험을 알았었더라면 납으로 수도관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인데,
납이 무르고 다루기 쉬워 그걸로 수도관을 만든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한참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기에 우리도 뒤따라 섰다.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가는 곳이나 줄서 있는 곳은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30분이나 줄서서 결국 구경한 것은 2,000년 전의 사창가였다.
벽에 음화(淫畵)가 그려져 있고 돌로 된 침대가 있었다.
폼페이의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화산폭발이지만,
그들의 무절제한 생활이 신의 진노를 부르지는 않았는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소렌토에서 본 베수비오스 화산) (폼페이의 앉아서 화석이 된 사람)
씁쓸한 마음으로 폼페이를 떠났다.
다음 일정은 낭만의 항구인 소렌토와 나폴리, 그리고 카프리 섬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사실 카프리 섬에 대한 것은 잘 알지를 못했지만 가이드가 옵션으로 권한 것을 받아들였다.
명품이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여행은 기회가 지나면 다시 오기 힘들기에
모든 옵션을 다 수용하기로 맘먹었던 터였다.
우리는 가까운 폼페이 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가는 것이다.
작은 시골 역은 우리네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잠시 후 기차가 도착하고 우리는 부푼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마주 보는 앞자리에는 예쁘게 생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타고 있었다.
들고 있는 수학교과서를 보나 생긴 모습으로 보나 틀림없는 중학생들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가 보는데서 키스를 한다.
유럽에 와서 아무데서나 키스하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어린애들이 바로 앞에서 키스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영 멋쩍었다.
이태리 말도 모르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보는 사람이 무안하여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낮선 이방인이 보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지 이번엔 보란 듯이 딥(deep) 키스를 한다.
여자아이가 얼마나 세게 키스를 했는지 남자 아이 잇몸에서 피가 나왔다.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고 어색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서로가 조금씩 아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하나 찍었다.
우리 문화엔 어색하지만 이곳에서 보니 밉지만은 않은 것이 이곳이 유럽의 중심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기차안에서 만난 소년 소녀)
(소렌토 항구에서)
기차가 역에 도착하자 소렌토 항구로 갔다.
소렌토는 정말 아름다웠다.
항구를 둘러싼 둥근 절벽 아래로 아름다운 항구가 포근히 안겨있었다.
그 해안 절벽 위에서서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며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고 싶었지만,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부르지 못했는데,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소렌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카프리 섬으로 떠나는 배를 탔다.
소렌토에서 멀지 않은 지중해 바다위에 불쑥 솟아있는 카프리 섬은 환상의 섬 그 자체였다.
셔틀버스로 산중턱까지 올라간 다음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탄성을 자아냈다.
지중해 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낙원이 바로 카프리 섬이었다.
바닷가에 줄지어 있는 하얀 집들, 작은 농장, 아름다운 언덕과 절벽들, 하얀 테라스에 피어있는 제라늄,
카프리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 시원한 바람,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카프리 섬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언제 또 오랴 싶어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카메라 칩에 문제가 생겨 이곳에서 찍은 대부분의 사진을 잃어버렸다.
그저 가슴속에 그 아름다움을 간직해 두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사진이 없어져서 그곳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더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사정을 탓하며 내려오는 곤돌라를 탔다.
천천히 내려오는 곤돌라 위에서 잠시 눈을 감고, 눈이 아닌 마음으로 카프리를 느꼈다.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그리고 그리움 한 자락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카프리 연가(戀歌)
쪽빛 바다위로
하얀 구름 솜털처럼
물을 머금고
눈부시게 하얀 예배당
십자가 위에
그리움 하나 걸려있다.
눈웃음으로 지나는
카프리 여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검게 그을린 바다 사내들
귀밑을 간질이는
산들바람에
난 수줍어한다.
아, 아름다운 카프리여!
나 언제 다시 오려나
깊은 한 숨
항구에 묶어두고
배는 떠난다.
(정상에서 본 카프리섬의 전경)
(카프리의 절벽)
첫댓글 효정님의 계속되는 아름다운 신혼여행으로 보는이도 행복한데 어이해 사진이 안보여 아쉬웁네요..다음 모임자리에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꼭 선물해 주셔야해요.. 감사합니다..
사진이 안보여 다시 수정하여 올립니다...겨울에 보니 바다가 더 시원해 보이네요...
가슴을 씻어낼 수 있는 사진이예요 감사 감사^^
저는 베수비오스........소렌토쪽은 못 갔습니다.........언젠가 다시 가고 시포요......................
다시 가실 날이 있겠지요...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