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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하나님(삼상 7:3-12)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이 시골에 있는 친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훌륭한 창고를 짓고, 그 지붕 위에는 아름다운 풍차를 설치하였는데, 그 풍차의 날개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귀가 쓰여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스펄젼 목사님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무슨 뜻으로 자네는 풍차 날개에 그런 성경 구절을 써 두었나. 혹시 자네는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바람처럼,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 친구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천만에, 그런 뜻이 절대로 아니라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바람처럼,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아네. 바람 한 점 없는 날일지라도, 비록 내가 바람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조용히 풍차가 돌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나의 삶을 말없이 감싸시며,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그 변함없는 사랑은 바람이 풍차를 돌리듯, 내 삶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지.”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어떤 사람들은 “친구와 같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제나, 어느 때나, 너무나도 친근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어딘가로 피하고 싶고, 마냥 숨고 싶은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도 하고, “심판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불안한 삶을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항상 안기는 그런 포근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달려가 안기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무언가를 꽁꽁 감추려고 하거나, 애써 꾸미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한 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도, 거짓과 속임수가 없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된 삶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어떤 분이, 이삿짐 정리 중에, 지금껏 살던 집을 판 돈과 그간 일을 해서 번 3억원 정도 들어있는 봉투를 쓰레기로 생각하고 내다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내다 버린 분은 치매 증세가 있고, 이삿짐 정리 과정 중에, 많은 쓰레기를 버렸기 때문에, 언제 돈이 든 봉투를 버렸는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잃어버린 돈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것을 잘 간직해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알지 못하면, 함부로 버리게 됩니다. 소중한 것을 쓰레기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이때, 지금 많은 교회들이 IM 선교회의 코로나19 감염으로 호된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교회가 코로나19 집단 확산 진원지로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주된 세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를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개인사업에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몇몇 세력들로 인하여, 더욱더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도 조심하고, 성도들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머무는 곳입니다.
몇 해 전, 로스앤젤레스의 유태인 부호인 마이크 골드 버그씨가 보물을 잃어버려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청소부가 16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를 실수로 다른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통에 내버렸습니다. 그 가보가 청소차에 실려져, 출발한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골드 버그씨는 모든 방법을 다 썼습니다. 시청에 알아보고, 청소차의 번호를 알아내고, 그리하여, 쓰레기차가 매립지에 쓰레기를 버리기 직전에, 그 차를 찾아, 사정을 자세히 말하고, 보물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8톤이나 되는 많은 쓰레기 속에서 작은 물건을 하나 찾는 일이었습니다.
골드 버그씨는 그 썩은 냄새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쓰레기를 정리해나갔습니다.
맡기 힘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6시간 만에, 그 보물을 찾았습니다.
그 보물을 찾는 순간, 골드 버그씨는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노래 불렀다고 합니다.
비록 실수일지라도, 보배이신 주님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보배임을 아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보배임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참된 행복을 모른 체, 방황하며, 헛된 것을 잡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임을 아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아, 잠시 동안만 멈추어 주래”라고 외쳐보지만, 시간은 조금도 멈추어 주지 않고, 정해진 대로 흘러갑니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과거로 돌아가, 잘못 살아온 나의 과거를 바꾸어 놓을 수 없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흘러간 과거는 절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흔적 위에, 지금 우리는 새로운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 마음 먹은 대로, 바꿀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미래는 바꿀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완전히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든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지만, 주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며, 오직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 마음 속에 염려와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게는 우리의 삶이 걱정되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염려됩니다.
크게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이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비록 청주에 살고 있지만, 서울 시장은 누가 되고, 부산 시장은 누가 될 것인지, 그런 걱정과 염려 속에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어찌 되었건, 보궐선거에서, 우리 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문제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또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싸우기도 하고, 아니면, 어떤 유익을 위하여, 당파적으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나라와 나라 간에, 국익을 위하여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은 재미가 없는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 속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개발하고, 또한, 그러한 능력을 지혜롭게 발휘하는 인물을 우리는 지도자로 세우고, 그를 따르기도 합니다. 그를 추종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바로 설 때,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우리들의 삶이 피폐해집니다.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지도자가 있다면,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모세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에 성공한 여호수아는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후, 왕이 없던 시절의 기드온, 삼손과 같은 열두 사사와 사울 왕과 다윗 왕 사이에 위치한 지도자가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정치적으로나, 영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사무엘 선지자가 다스리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과 법궤도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성막 안에 있는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법궤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앞에 있었던 엘리 대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그후, 법궤는 다윗이 왕이 되어 다스리던 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아비나답의 집에 20년 동안, 오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도자가 사무엘 선지자였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마땅히 있어야 할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법궤는 그들과 가까이에 있어야 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블레셋 땅에 있었습니다. 법궤를 이방인들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아멘.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서 블레셋이 이겼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블레셋이 섬기는 이방신인 아스다롯 중, 누가 더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이겼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이방신인 아스다롯이 더 힘이 있고,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보다는 힘있는 권력자를 믿고, 따르는 것이 더 유익하고, 더 빠른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방신이 더 힘이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지면 안됩니다. 헛된 야망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세상은 물질로, 정욕으로, 권력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우리에게 속삭거립니다. 그런 유혹이 달콤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안됩니다. 그것을 따르면, 패가망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취업하기 힘든 이 때에, 젊은 사람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운반책으로 많이 활동한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서 현금을 받아서, 그것을 알려준 계좌로 입금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 달콤한 소리에, 쉽게 빠져버린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유혹이 우리 곁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절대 유혹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비어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러운 죄악을 버려야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욕심을 버려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비양심적인 것들을 버려야, 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해야,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삶을 책임져 주는 것, 그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첫째, 정리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저기 가득 차 있습니다. 다 필요한 것들입니다.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손 때가 묻고, 추억이 깃든 것들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할 것들입니다. 결코 버리고 싶지 않는 것들입니다.
둘째, 버리는 것을 보여 줍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또한,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도록, 내 주어야 합니다.
가급적 많이 버려야 합니다.
셋째, 새롭게 정리정돈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의 대부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시 정리해 줍니다. 기존의 가구 위치를 새롭게 바꾸어 줍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서, 다 감탄을 합니다.
우리 안에, 뭔가가 가득 차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기에, 가슴에 끌어안고,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들이 내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나의 삶을 힘들게 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도 버려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도 버려야 하고, 염려와 걱정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한 구석에 쳐박혀 있어,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어 제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기저기 뒹굴던 것들이 제자리에 있을 때, 얼마나 좋습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있어야 할 제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게 되면, 불편할 뿐입니다. 있기는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 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방신들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가난과 질병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염려와 걱정의 늪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오직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사무엘 선지자는 다시 선포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5절)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여, 하루 종일,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잘못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서 산다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때이지만, 그래도, 교회 중심의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께 회개기도했습니다. 이방신들, 아스다롯 등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미스바에 모여,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상황이 좋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장애물들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만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블레셋이 ‘기회는 이때다’ 싶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에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이 섬기는 이방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가 하나님 앞에 나와,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면, 놀라운 일들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블레셋이 미스바에 모여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싸우려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때, 큰 우레를 발하셨습니다. 갑자기 큰 천둥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천둥소리를 듣고, 당황하여 도망치는 블레셋 사람들을 뒤쫓아가 무찔렀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기도응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 하나를 가져다가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돌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벤에셀”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바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나아가는 길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도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십니다. 죽음에서 살려주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길도 도와주실 것을 굳게 믿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껏 살아온 삶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도와주옵소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