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다” 의견 대세 … 생활기반시설 확충 등은 풀어야 할 숙제
판교역 개통, 테크노밸리 통해 자족도시 면모 완성될 듯
‘대한민국의 비버리힐즈’라 불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판교. 특히 분양 당시 수도권에 살고 있는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2월 서판교 산운마을 부영아파트를 시작으로 판교 입주 1년 5개월이 흘렀다. ‘판교아파트=로또’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뜨거웠던 판교의 명성은 여전한 것일까.
앞으로 남은 판교 입주 일정과 판교의 당면과제를 짚어보고, 판교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말하는 ‘판교’에 대해 들어봤다.
음식점, 상점, 은행 등에 생기 돌아
지난 19일 오전 판교동주민센터(동장 조석묵) 2층 웰빙교실에서는 라인댄스 중급반 수업이 한창이었다.
“자 다음 작품은 아바의 슈가슈가 갈께요, 리듬을 살려서 부드럽게 음악을 타세요.”
문희숙(55) 강사의 얘기가 끝나자 음악이 흘러나오고 수강생들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댄스에 열중이다. 최고령자인 박민영(61) 씨부터 가장 막내인 장은경(38) 씨에 이르기까지 수강생들의 유연한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2월 판교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판교동주민센터 문화프로그램은 현재 23개 강좌에서 수강생 600여명이 2기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데 수강 등록 신청 기간에는 주민센터 앞에 진풍경이 펼쳐진다. 센터 프로그램의 인기가 워낙 폭발적이어서 이른 시각부터 200~300명의 신청자들이 앞다퉈 접수를 하기 위해 모여들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 뿐 아니다. 요즘 판교에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려 먹어야 하는 대박 음식점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가 하면, 은행이나 관공서의 대기번호표 벨도 ‘딩동’ 대느라 바쁘다. 바깥출입이 많은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판교 주변 공원에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트레이닝 차림의 주민들, 강아지를 끌고 산책 나온 사람,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주부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서울 목동에서 살다가 7개월 전 판교 삼평동으로 이사 온 고춘아(54) 씨는 “녹지가 많아 쾌적한데다 교통까지 편리해 도시생활과 전원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판교인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96% 입주 완료… 올해 안 6895가구 입주 앞둬
그렇다면 제법 신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는 판교아파트의 입주는 어느 정도나 마무리 되었을까. 판교신도시 입주종합상황실에 따르면 17일 현재 판교 입주세대는 1만7286가구로 입주가능 대비 입주율은 무려 96%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입주 가능한 아파트 1만7915가구 중 동판교 9047가구, 서판교 8688가구에 불이 켜졌다.
판교 신도시 택지개발지구 전체로 볼 때 판교에 들어오는 공동주택 세대 수는 총 2만5790가구. 이는 입주가능 아파트에 성남순환 재개발 이주단지(4993가구)와 현재 시공 중인 아파트(2882가구)를 합한 숫자다.
백현, 봇들마을 등 동판교와 산운, 판교원마을의 서판교 지역을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동판교에 비해 서판교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상황. 입주 가능한 아파트의 입주율은 96, 97%로 비슷하지만 입주대상 전체를 놓고 보면 서판교는 80%, 동판교는 겨우 58%에 불과하다. 동판교의 경우 봇들마을 6단지 1297가구와 백현마을 3,4단지 3696가구 등 국민임대주택 5000여세대가 아직 입주 전이기 때문이다.
판교신도시 입주종합상황실 이영호 씨는 “판교 신도시는 2003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단계 사업이 진행됐고 올 12월까지 2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며 “판교에 거주하는 입주 가구 수는 공동주택 2만5790가구를 비롯해 총 2만9263가구이며, 수용 인구 수는 8만7789명으로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안에 입주할 아파트로는 봇들, 백현마을의 국민임대주택 외에도 산운마을의 태영 데시앙 1396가구를 비롯해 한양, 울트라, 범양건영, 계룡건설의 휴먼시아 등에 506가구가 더 있다. 내년 3월 산운마을의 금강주택 펜테리움과 7월 백현마을의 대우 서해 푸르지오 그랑블의 입주를 끝으로 판교 입주가 마무리 된다.
대중교통 여건 개선`혐오시설 건립 저지도 과제
신도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긴 하지만 자족 명품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판교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우선 하수종말처리장, 납골당(자연수목장), 집단에너지공급시설(열병합발전소) 등 혐오시설이 판교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판교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유해가스 등 주민 안전의 우려가 제기되었던 판교소각장에 대해서는 최근 성남시가 인수 보류 입장을 낸 상황. 이에 대해 백현마을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주부 정은수(가명·38) 씨는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그러는 건 아닌지 솔직히 의심된다”며 “동판교쪽 아파트와 겨우 1km 떨어진 곳에 쓰레기 소각장이 생기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밖에 군용 헬기 소음, 아파트간 동간 거리와 일조권 확보, 학교 배정 문제, 대중교통 확충,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 지하화 등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꼽힌다.
운중동에 살고 있는 김은정(가명·42) 씨는 밖에서 들려오는 군용 헬기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씨는 “대체로 지금까지는 판교 생활이 만족스러웠는데 헬기 소음 때문에라도 2년 전세 계약 만료 후엔 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15년간 살다 동판교로 이사한 이영신(가명·51) 씨는 “너무 가까운 아파트 동간 간격 때문에 앞뒤 베란다에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지내야 할 정도”라면서 “4베이 구조의 아파트 뒷베란다가 북쪽 방향이기 때문에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빨래를 아이들 방에 널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주변에 학교와 병원, 교통 등 각종 기반시설을 제때 확충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봇들, 백현마을이 있는 동판교에 비해 분당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산운, 판교원마을의 서판교는 상대적으로 상업시설이 부족해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50개가 넘는 상가건물이 착공에 들어갔고 2000개의 점포가 분양을 시작했다.
최소 3~5년 내 ‘판교 로또효과’ 실현 기대감
판교의 한 상가분양 전문업체 대표는 “상업용지가 100% 낙찰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업시설 착공이 이뤄진 현장은 극히 드물다”며 “내년 9월 판교역이 개통되고 2~3년 후 상업시설이 충분히 공급될 것을 감안한다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판교 입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완벽하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내년 9월 개통하는 판교역과 2012년까지 20만 평 규모로 조성될 테크노밸리를 통해 자족 도시의 면모를 갖추면 판교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분당구 삼평동 강남판교부동산 이국진 공인중개사는 “지하철이 강남과 연결되고 알파돔시티가 완성되면 최소 3~5년 안에는 상주 인구 16만5천 명, 유동 인구 20만 명이 형성돼 ‘판교 로또 효과’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판교에 살아보니 _ 분당구 판교동 박민해 주부
“배차간격만 확인하면 이보다 빠를 순 없어요”
지난해 11월 분당 구미동에서 판교원마을 5단지로 이사한 박민해(38) 주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교통이 편해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서울 신촌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광역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니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에요. 강남 가깝단 얘긴 많이 들었어도 종로나 강북 가는 길까지 이렇게 편할 줄은 몰랐어요. 배차간격이 좀 길긴 하지만 버스 시간만 확인하면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훨씬 빠르겠더라구요”
무엇보다 초6, 초3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단지 안에 학교가 있어서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다니니 좋아요. 며칠 전에는 아파트 상가에 가정의학과가 문을 열어 앞으론 멀리까지 병원 찾아가지 않아도 되구요. 판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늘고 있어서 점점 살기 편해지는 것 같아요.”
야탑까지 장을 보러 나가야 하지만 평일시간을 이용해 마트에 들르기 때문에 그다지 큰 불편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사올 때 2억5천만원 하던 전세가 지금은 5천만원 이상 올랐다는 소문에 걱정이 늘었다고.
“며칠 전에 저희 아파트 1층 전세가 3억에 나왔더라구요. 워낙 전세가 귀해 가격이 뛰었다는 얘기도 들려오지만 재계약 시점에 크게 오를까봐 마음이 쓰이긴 해요. 앞으로도 판교에서 쭉~ 살고 싶거든요.”
홍정아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