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1
3. 라반의 집으로부터 도주한 야곱(31장)
1)회의(1-16절) - 야곱이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라반의 변한 태도, 자기 자신의 가정을 일으켜 세울 필요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에서의 서약을 생각나게 하셨고, 이 타락한 사람은 이제 돌아가서 그를 축복하신 여호와와 맺은 자기의 약속을 성취해야만 했다. 라헬과 레아는 떠날 것에 동의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주님의 뜻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그의 아내들이 벧엘에서의 체험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2)추적(17-35절) - 그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야곱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에 서둘러 도망친다. 신자가 비밀스러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간증인가! 라반은 이미 야곱에게서 3일 거리에 있었으므로 일 주일 동안은 그에게 잡히지 않았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이 미리 라반을 경고하셨으므로 야곱이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31절/ 잠 16:7). 라반은 짐짓 감정이 상한 것처럼 행동했다. 아마도 그는 자기를 죄로 이기려 하며 점점 부자가 되어가던 야곱이 없어진 것을 기뻐했을 것이었다. 그가 사실상 관심을 가졌던 일은 그의 우상을 누군가 훔쳐갔다는 것이다. 죄는 죄를 낳는다. 라헬은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성난 라반은 행렬을 모두 조사한다.
3)대결(36-42절) - 20년 동안 쌓인 울분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며 야곱은 장인에게 모두 늘어 놓았다. 라반은 우상 숭배자였고 야곱은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들 사이에 무슨 합의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야곱의 성난 연설에서 유일한 속죄의 요소가 있다면 자기 성공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점이다(42절).
4)언약(43-55절) - 찬송가에 나오는 “미스바의 축복“이란 말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둥을 세워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피차에 상기하도록 했다. 이 돌들은 “미스바의 축복“이 뜻하듯 그들의 우정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상호 불신에 대한 증거였다. 47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언어도 서로 달리 사용하였다. 두 가지 명칭이 모두 “증거의 무더기“ 또는 “간증의 무더기“란 뜻이다. 가족들이 서로를 신뢰할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서로 용서하고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의존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 52절은 라반이 세운 기둥을 경계석으로 하여 야곱이 감히 넘지 못하도록 했음을 알려준다.
야곱의 20년에 걸친 종살이가 끝났다. 그러나 그는 벧엘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창 32
야곱과 에서/ 창세기 32-36장
이 장들에서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벧엘로 가는 도중에 생긴 생의 중대한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육과 영, 옛 생활과 새 생활 사이의 대결을 예증해 주는 세 가지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1. 씨름꾼 야곱(32장)
에서가 오고 있었으므로, 야곱은 그의 잊어버렸던 과거와 만나야 할 처지에 있었다. 에서가 그를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야곱은 속여 취한 모든 것을 잃을 것인가? 과거가 어떤 사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지울 수 없으며 20년이란 역사도 지울 수없다. 그러나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에 세 가지 다른 만남을 경험한다.
1)하나님의 천사들과의 만남(32:1-20) - 그는 벧엘에서 처음으로 이 천사들을 만났었다(28장). 이들은 하나님이 조정하고 계심을 그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 즉 “두 진영“(야곱의 장막과 천사들의 군대)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에게는 오래 전에 그를 보호하시리라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오늘날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할 때에 히브리서 1장 14절과 시편 91편 11-13절을 주장할 수있다. 그러나 야곱은 다시 자기 자신과 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물로 에서를 누그러뜨리려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식솔을 두 떼로 나누고(7절), 보호하는 천사들의 군대는 무시했다. 육신적인 확신으로 이런 단계를 밟은 후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께서 라반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셨던 방법을 잊었단 말인가?(31:24)
2)주님과의 만남(32:21-26) - 사람이 하나님과 홀로 있게 될 때에 일들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께서 야곱과 씨름하려고 오셨고, 이 전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야곱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고 씨름을 한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그는 자신을 방어하며, 양보할 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야곱이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갈 2:20)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게 하시려고 그를 깨뜨리시기를 원하셨다. 밤새도록 야곱은 자기를 방어하였고 항복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가 죄를 지은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이 야곱을 연약케 하셨고 이 씨름꾼은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축복을 받으려고 꾀를 부리거나, 축복을 받으려고 거래를 벌이는대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다 !
3)자기 자신과의 만남(32:27-32) - 사람은 먼저 주님을 보기까지는 참으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의 참된 자아가 “야곱 - 사기꾼 !“이라고 고백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가 자신을 직면하고 죄를 고백하자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과 더불어 겨룸“ 또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과 함께 능력을 소유하는 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새로운 출발, 새 이름과 함께, 곧 새로운 능력, 육신으로 행치 않고 성령으로 행하는 능력을 주셨다. 이것은 새로운 걸음걸이로 증거가 되었다. 야곱이 절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어졌다. 그러나 다리를 저는 것은 연약함이 아니라 능력의 표시였다. 31절은 새 날이 밝아옴을 말한다. 해가 솟아 올랐고, 야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에서를 만나려고 절룩거리며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