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오후4시 10분 김옥녀 권사님께서 운명을 달리했다
저바람 개비처럼 하늘로 훨훨날아 높은곳에서 바라보며 영면하시길 바랄 뿐이다 )
(2012.1월 장모님의 여정사진이 필요할것같아 담아두었든 독사진
이사진을 일부 뒷배경을 포토샵으로 처리하여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다들 오랫동안 게셨든 요양원의 모습같다며 좋아했으면
지난해 부터는 머리를 빡빡 깍아서 좀 그랬다.)
(2011년 7월말 더운날씨에 요양원에서 고생하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처남들은 안된다고 하였지만 ...)
헬체어를 싣고 처제와 같이 화천의 냇가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나누고 두따들이 온갖 아량을 부리며
웃길려해도 잘웃지 않든 장모님! 건강이 나쁘면 모든게 귀찮은가 보다)
(2010년11월 요양원에서 잠시외출후 작은처남댁에서 )
2010년7월 춘천시 남면 보배로운 집이라는 요양원에서 몇달게실때의모습)
처제가 안면도에서 노래방 하는덕에 처남 식구들과 우리작은 아들 가족과 같이
안면도 수목원으로 찻아갔든 그때 모습 그때가 2005년 9월이 였으니 벌써 9년전인데
언덕은 벌써 잘 걷지 못해 우리 며느리가 부축해서 같이 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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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녀 권사님께서는 1929년4월19일 인제군 남면 부평리의 태어 났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장녀로 태어났지만 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남동생이 7살때 우물물에 빠져 숨지자
아버지는 아들이 없다는 핑계로 작은 마누라를 얻어 친모는 게모에게 구박 받으며 살다가
장모님은 그동네에서는 제일 똑똑하고 잘생긴 임씨와 결혼을 했지만 6.25사변으로 남편을 잃고
피난온 조성인씨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인제에서 1956년경 춘천으로 이사오면서 갖은 고생을하면서 2남 2녀를 두었으며
이때 전남편의 아들 임만용군과 친정 엄마를 모시고 어려운 가정사를 이루며 살았으며
현재의 소양성결 교회가 교당을 마련하지 못하며 가정집을 전전하며 살때 함께했든 분으로 교회의 산증인 이기도 하다
올해 교회설립 60주년 기념달력에 장모님의 모습과 집사람의 어릴때 모습이 나왔으니...
이후 세월이 흘러 두아들이 그 교회와 살림난 교회의 장로가 되었으며 손주는 신학대에 입학하여 목회자의길로 걷기도 한다
작은딸도 몇해전부터 교회에나가며 유일하게 우리가족인 큰딸만 안다니는 꼴이 되었으니 조만간 큰딸도 다니게 해야겠다.
시집올때 함께온 아들은 35년전 미국으로 이민가서 어머님을 초청하여 몇달간 보살피다가 귀국후 현재는 연락이 안되는 형편이다
자식들은 모두 맡은바 소임을 다하여 성공한 편이며 이번 장례식때도 처남들의 노고가 많았다.
친가와 처가의 모든어른을 잃게된 우리로서는 이제 모든걸 내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야할 외로운 신세가된 편이다.
파란 만장한 장모님의 삶 요양원 생활 5년 정도하니 모든 근육이 없어 지고 오직 빼만 남은 상태로
심장에서 먼데부터 차가워지면서 인공으로 병원에서 하루더 보냈지만
어쩔수 없이 하늘나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해방과 사변을 당하면서도 늘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일관하여 큰사위인 나를 유심히 아껴주었으며
나 또한 살아게실때 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첫댓글 외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던 우리 외할머니...... 부디 천국으로 가셔서 편안히 지내시길 빕니다.......
아버지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진 글 감사합니다..... 한국 들어가면 바로 외할머니한테 가봐야 할것 같아요......
그래..언제같이 한번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