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다녀와서!
관광은 여행과는 다르지만 산행은 여행과 다르지
않듯이 산행을 하면서 답답한 맘을 풀기도하고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면서도 풀리지 않은 일을 두고 풀 수
있는 대안이 무언가하고 괴로워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사람의 일생이 덧없이 흘러 간다는 인생무상(人生無常)
의 허무감에서 비롯되는 여수(旅愁)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노년에 접어들면 "이제는 년륜(年輪)이 더
돌기전에 해외여행을 해야되는데"하는 다급함을 느끼게
되나봅니다. 달포전에 손주 둘이 포함된 딸래 가족이 동
유럽을 가는데 동행하여 16일동안 관광을 하고 귀국하
더니 이제는 딸가족이 갈 수 없으니 날더러 남유럽
관광을 하자기에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은 산행이나
길동무를 하고 원정의 길동무나 산행을 하면서 낭비
에 준하는 지출을 하다보니 이달에도 천복이니 신선
대니 영덕이니하는 셋 건의 원정행이 잡혀있고 오히려
원정보다 가까운 수도권행이 여유로운 시간 때문에
2월3일의 경우는 부천둘레길을 걷고 귀가 중인데
친지들이 불러서 종로3가에서 만나 음주가무에 놀아
나다보니 몰래통장이 깡통의 지경이여서 3월에 절차를
마치고 4월엔 근무를 하게될 수도 있다는 핑게로 못간
다했더니 근무기간 중에 두 사람이 8개월동안 그 고생
을 해도 겨우 천오백만인데 그 것 벌자고 때 놓치면
꼬부랑 늙은이가 여행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연금에 보태는 월세로 먹고 살고 묶여진 돈 풀어서
여행이나하고 살면서 큰 병나면 집이나 한채 팔아서
충당하면 되지 뭐 그리 아둥바둥하며 살려느냐면서
역성을 내며 자기는 맨날 수도권이다 지방이다 산행을
하면서 그 돈은 누구 돈을 쓰느냐며 소리를 질러대니
42년동안 신산(辛酸)의 세월을 함께 살아 오며 이뤄
놓아서 반은 저 사람것인데하는 생각에 할 말이
없었다오. 앞으론 수도권의 산이나 둘레길은 거의
가보았으니 한 번 더 가보겠다는 미련이 남은 곳이
아니면 가고싶은 맘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7년2월5일 인터넷카페 "5060아름다운세상"에서
일요산행지로 정한 북한산 장미정원에서 족두리봉을
오르는 산행을 하기위해 집에서 08:30에 출발 버스로
1호선 전철 3호선 지하철로 집결지인 불광역에 도착
하니10:05 30분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스물 아홉분의
산우들이 속속 도착하는 반가운 님들을 만나 가벼운
스킨십으로 인사를 나누니 오늘도 아름다운 탕춘대
능선에 행복한 하루가 펼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정
해진 10:30 정각에 불광역을 출발 산행 들머리가 있는
장미정원으로 이동 탕춘대 방향으로 오르는데 짓눈깨비
가 내리더니 한낯이 되가는 시간에 산길에서는 비가 내려
비를 맞은 밟고 간 눈 위는 질컥거리도하고 매우 미끄러
워서 실족사고를 당할것 같은 위험이 상존(常存)하니 하산
을 하자,말자는 말들이 분분하더니 탕춘대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 쉼터에서 다리를 쉬면서 베낭으로 지고 온 먹
거리를 펴놓고 나눔의 시간을 갖고는 내리막길을 돌아
족두리봉으로 향해가다가 길이 험한데다 미끄러워서
각황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장미정원으로 원점회귀
다시 서울둘레길 8구간 구름정원길을 걸어서
족두리봉 입구에서 하산 연신내역 방향 뒤풀이
장소에 가서 늦은 중식을 마치고는 주변 노래방
에서 여흥을 즐기다가 집에돌아오니 밤 아홉시가
되어가는 시간었습니다.
홍지문 및 탕춘대성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이후 수도 방위를 위하여 1719년에 완성한
성곽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1715년
(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홍지문(弘智門), 오간수문(五間水門), 탕춘대성(蕩春臺城)을
건립하였다. 홍지문은 서울의 북서쪽 방어를 위한 탕춘대성의
출입문으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하며 홍지문에 연결된 탕춘대성
은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한다. 원래 탕춘대성이 있는
세검정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산주(漢山州)로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 탕춘대성은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부터
홍지문을 거쳐 수리봉까지 이어진 4km 정도이다.
* 탕춘대성
탕춘대성은 도성·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인왕산 동북쪽
에서 시작하여 북쪽을 향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모래내를
지나 삼각산 서남쪽 비봉아래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 성은
완공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으니, 동쪽부분인 북한산성의
보현봉에서 형제봉을 지나 북악터널 위인 보토현을 거쳐 구준봉
서쪽으로 서울성곽과 이어지는 부분은 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성의 명칭을 탕춘대성이라 한 것은 현재 세검정이 있는
동으로 약 100 여m가 되는 산봉우리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또한, 도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성이라 하였으며, 겹성으로도
불려졌다. 탕춘대성 능선길은 완만하며 쉽게 오를 수 있는 오솔길
로 등산을 겸한 역사탐방로가 된다. 탕춘대성에 오르려면 세검정
상명대학교와 구기터널·홍은동에서 시작하면 성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탕춘대성은 홍지문·오간대수문을 경계로 크게 두 지형으로
나눈다. 홍제천을 경계로 남서쪽은 인왕산의 서울성곽에서 북쪽으로
갈려나 온 산줄기를 따라 축조되어 있고, 북동쪽은 북한산국립
공원 탕춘대 능선을 따라 해발 527.5m 의 비봉을 향해 뻗어 있다
. 인왕산지역은 서울 성곽에서 갈라진 지점으로부터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지형으로, 솔밭 우거진 능선길에 토루가 형성되어
있다. 토루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성 바깥쪽으로
돌출된 암반 능선지대를 만난다.
* 홍지문
홍지문은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홍지문)'이라 편액을 써서
문루에 달았는데,1921년에 주저앉아 방치되었던 것을 1977년
7월에 서울특별시 도성복원위원회에서 홍지문과 오간대수문,
그리고 주변 성곽 280m를 포함하여 복원하였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
홍지문은 홍예형태의 육축 위에 정면 3칸 측면2칸 (9.38m X 4.02m)
의 우진각지붕을 한 단층 문루가 있으며, 문루좌우에는 협문을 내고
전돌로 여장을 둘렸다. 육측의 앞뒤로 홍예에 철엽을 씌운 문비를
마련하고, 육측내부 좌우측에 성으로 오를수 있는 계단을 두었다.
홍지문은 한성의 북쪽에 있다하여 '한북문'이라고도 하였다. 1999
년에 성문의 단청과문비를 비롯하여 문루 좌우 협문을 보수하였다
. 상명대 앞에서 내리면 홍지문으로 향하는 진입로로 들어갈 수
있다. 옆으로 흐르는 시내가 걸음을 재촉한다. 시내 부근으로 주택과
상가들이 있기 때문이지 계곡 물 가장자리로 생활 쓰레기들이 이따금
눈에 띄는 게 약간 흠이다. 맑은 물과 깨끗한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면 홍지문과 그 계곡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홍지문은 산으로
연결되는 성, 즉 탕춘대성과 이어져있다. 급격히 산으로
오르는 도성은 아직도 고성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
각황사(覺皇寺)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壽松洞)에 있던 절.
1910년에 전국의 승려들이 모금을 하여 세웠다. 당시 조선시대
이래로 금지되었던 승려의 도성(都城) 출입이 허용되자, 동대문
밖의 원흥사(元興寺)에 있던 한국 불교의 중앙기관인 원종종무원
(圓宗宗務院)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 때부터 승려들은 서울
장안에 들어와 포교를 하게 되었다. 지금의 조계사(曹溪寺)를
지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출처:두산백과
8구간) 구름정원길:북한산생태공원 상단에서 진관
생태다리까지 5.2㎞ 거리이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60m 길이의 스카이워크와 이어지는
하늘전망대, 서울시 기념물 24호인
화의군묘역 등이 있다.
(서울지명사전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님! 그리워
심형섭:작사
심형섭:작곡
나훈아:노래
물어물어 찾아왔소 그 님이 계시던 곳
차거운 밤바람만 몰아치는데
그 님은 보이지 않네
저 달 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
*물어물어 찾아왔소 그 님이 계시던 곳
차거운 밤바람도 멀어지는데
그 님은 오시지 않네
저 별 보고 물어본다 님 계신 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2017-02-04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