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6일 노원구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문를 채택했습니다. 뒤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읽어보시고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발의년월일 : 2003년 7월 16일
발 의 자 : 이윤숙 의원외 20인
1. 제안 이유
육군사관학교내 삼군부청헌당 우측에 있는 연령군 신도비는 영등포구 신길7동 대방초등학교 주위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당시 배성관(당시 82세, 골동품상)씨에 의해 1967년 8월 3일 육군박물관에 기증되었으며, 1980년 6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 받음에 따라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육군박물관에 의해 잘 관리되어 오던 중 최근 영등포구에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바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처사이며, 노원구민으로서 절대 수용할 수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함이다.
2. 주요 골자
가. 본래 연령군신도비가 있었던 연령군의 묘는 이미 1940년에 충남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장된 이후 신도비만 남아 30여년 동안 방치되고있었음.
나. 방치되었던 연령군신도비는 1967년에 육군사관학교에 기증되어 서울시유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되고, 노원구청과 육군박물관에 의해 관리되어 온 만큼 현재 묘지도 없는 곳으로 신도비를 반환해 달라는 요구는 원위치 이전이라는 본래적 의미와 전혀 부합되지 않음.
다. 노원구가 생겨난 이래 노원구민들은 우리 구 문화재로 인식하고 아이들 또한 학교에서 노원구에 있는 지방문화재로 배우고 있으며 각종의 문건에도 노원구 소재의 문화재로 소개되고 있음.
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노원구 소재의 문화재로 공인된 연령군 신도비를 30년도 훨씬 더 지난 오늘에 와서야 원인 무효라며 반환을 요구하는 영등포구의 입장은 타당성이 없으므로 수용할 수 없음을 밝힘.
[연령군 신도비 반환 요구에 대한 불가 결의문]
최근 영등포구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 국방위원회에
'문화재반환 촉구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육군사관학교내 뜰에 있는 조선시대 숙종의 왕자인 연령군 신도비를
영등포구로 반환시켜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첨부된 자료를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연령군 신도비는 본래
영등포구 신길동 현재 대방초등학교 주위에 있었던 것이지만
1940년에 구획정리에 의해 묘가 충남 예산으로 이전되고 신도비만
방치되어 남아 있던 것을 1967년 당시 소유자가 육사에 기증하고
1980년에 서울시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육군박물관이 관리해
오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신도비 양식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로서 다른 데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수(離首)형의
지붕돌을 가진 신도비이며, 비문은 아름다운 송설체로 정성껏 쓰여
있어 금석문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도 귀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신도비의 주인공은 오늘날의 합참의장격에 해당하는
오위도총부 도총관의 이력을 갖고 있어 옆의 삼군부 청헌당과 함께
조선시대 군사(軍史)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연령군 신도비는 우리 노원구민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연령군신도비가 1967년에 육군사관학교로 옮겨지고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초등학교 교과서는 물론 노원구를
소개하는 각종의 자료에 우리 구 소재 문화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등포구는, 육군박물관이 지난 30여년 이상을 잘 관리해오던
것을 이제 와서 '원인무효'라며 반환을 요구하면서 '문화재는 원래의
위치에서 보관되고 유지될 때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역설합니다. 그 말은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원래의 위치라는 것이 무슨 타당성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묘지는 이미 타 지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최초의 건립 장소 이전이라는 것은 이미 문화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치를 상실한 무의미한 일입니다.
또한 영등포구가 제시한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도비는 방치된
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독지가에 의해
육군박물관에 기증되고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잘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묘지와는 떨어졌지만 차선이자 현시점에서는
최적의 장소인 육군사관학교 교정내에서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우리 지역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육군박물관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방사를 공부하는 좋은 장소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우리 노원구 의회 의원 일동은 65만 노원구민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합니다.
현재 영등포구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반환 요구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음을 밝힙니다.
연령군 신도비는 이미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는 물론 각종의
자료에도 노원구 소재의 문화재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 노원구민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문화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미 '원위치 복귀라는 문화적 가치, 역사적 가치'를 상실한
문화재를 다시 옮겨 모두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발생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만약 영등포구가 문화재 반환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 요구한다면
우리 노원구 의회도 이에 적절한 대응을 취해 나갈 것을
결의합니다.
2003년 7월 16일
노원구의회 의원 일동
[별첨자료]
연령군 신도비 현황
▷ 연령군(延齡君) : 본명은 이훤(李 , 1699∼1720)으로 조선 제19대 숙종의 아들이다. 지금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오위도총관을 지냈으며 숙종의 병 간호를 하다가 21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숙종이 그의 효행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비를 세웠다.
▷ 신도비(神道碑) : 정2품 이상의 뚜렷한 공적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모범이 될 때 당사자 묘 앞에 세우는 비
▷ 연령군 신도비 규모
- 이수(離首) : 화강석의 지붕돌 위에 두 마리의 이룡(離龍)이 무지개 모양으로 서로 마주하는 조각으로 되어있다.
- 비신(碑身) : 오석(烏石), 높이 2.48m, 너비 1.53m, 두께 4.85m
- 귀부(龜趺) ; 화강석, 높이 1.35m, 너비 2.65m, 길이 4.28m
▷ 연령군 신도비 이전 배경
본래 신도비가 있던 곳은 경기도 금천현 번당리였으며, 지금은 영등포구 신길7동 대방초등학교 교정 근방이다.
1940년 일제의 '경성지구 구역 정리 계획'에 의거하여 연령군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장되었으나 신도비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해방 후 관리자가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가 1967년 골동품상이었던 배성관씨(당시 82세)가 연령군이 오위도총부 도총관이었다는 qloans의 내용을 확인하고, 방치 상태에 있는 신도비를 육군사관학교로 이전할 것을 제의했다.
이에 육군사관학교는 당시 문화재관리국의 이전 승인을 받고 1967년 8월, 6관구사령부 공병단과 의정부 주재 미 공병단의 지원을 받아 현 위치로 이전하여 원형 그대로 잘 관리해왔다.
그러다가 이 신도비가 문화적 가치가 높음을 알고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1980년 6월 11일자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받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