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종주 6구간 - 운흥산ㆍ수암봉ㆍ수리산
일자 : 2002년 5월 1일
구간 : 방죽머리 ~ 운흥산 ~ 수암봉 ~ 수리산 ~ 47번 국도
도상거리 : 14.7km
산행시간 : 7시간 45분
5월은 계절의 여왕, 아름다운 연초록의 계절이어서 5월의 산이 가장 보기 좋다고 생각한다. 이제 갓 물들어가기 시작한 연초록의 나뭇잎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한여름의 진초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 그런데 봄이라는 계절이 이제는 너무나 짧아지고 있다. 봄 냄새를 제대로 느낄 틈도 주지 않고 여름에 밀려 살며시 가버리는 봄,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08시 55분 42번 국도가 지나는 방죽재에서 철조망을 끼고 능선에 붙는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정맥의 능선에는 한동안 얌전하게 지켜만 보던 찔레넝쿨이 정강이를 사정없이 공격한다.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가 가로막는다. 우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과외비를 받고야 맞아주는 118봉, 굴다리를 통과하여 100여m 되돌아와 마루금을 붙어야 하는데 서두르다보니 시작부터 애고다. 오늘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걱정이 태산 같다. 118봉에서 완만한 내리막길은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를 내려다보이고, 이어 완만하게 오르내림 끝에 기독교 묘지를 통과한다. 50여분만에 우측으로 도리재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대청마루(0.5km) 작은 입간판이 서있는 콘크리트도로인 도리재를 가로지르며 찔레나무 군락을 헤치며 오른다.
정맥길에 여기저기 쓰러져 가로막는 아카시아나무를 힘겹게 통과하고 연이어 가파르게 오름길이 이어지다 올라선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남동)이다. 정맥꾼들은 2분 거리에 있는 삼각점(안양 443, 90년복구)이 있는 204.5m의 운흥산에 오른다.
찬란한 5월이 시작되는 첫날, 하늘은 맑고 푸르다. 봄 가뭄을 해소시킨 2일동안 내린 비, 낮은 산이지만 시야가 탁 트여있다. 지나온 능선들을 더듬어 볼 수가 있고, 북으로 빌딩 숲의 서울시가지 뒤로 북한산이 우뚝하다. 동남쪽으로 관악산과 그 옆으로 청계산이 그리고 가야할 수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좌측 아래로 물왕저수지의 옥색수면이 아름답다.
능선분기점에 돌아와 남동방향으로 산불초소를 바라보며 이어가는 정맥능선에는 산불흔적이 나타난다. 바람에 날리는 싱그러운 어린잎의 아카시아 또 다른 모습의 키다리 아카시아나무는 산불로 검게 그슬린 채 지나는 정맥꾼들을 안타깝게 한다. 산불초소가 서있는 205봉에서 뒤돌아보는 운흥산, 이어지는 정맥은 쓰러진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들이 어지러운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선 봉이 190봉이다.
190봉에서 내려다보는 시흥시 목감동일대는 마치 거미줄을 쳐놓은 듯한 도로망과 흐르는 자동차의 물결이 한동안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고 올라선 곳엔 100m가 훨씬 넘어 보이는 깎아지른 절개지가 정맥꾼들을 기다리고 있다. 송전탑을 겨냥하며 내려선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에서 오른쪽으로 굴다리를 통과한다.
목감초등학교가 있는 2차선 포장도로, 42번 국도와 397번 지방도가 지나는 목감사거리다, 금강조경 출입문으로 들어서서 한차례 올라선 곳이 74봉이다. 4차선 안양 시흥간 지방도로를 가로지르고 다시 절개지를 올라 밋밋하게 이어지는 능선에는 잡목들이 성가시다. 그리고 또다시 절개지...
정맥꾼들 앞을 막는 절개지, 살아오면서 가끔 낭떠러지 앞에 서서 힘겨워 할 때가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한가, 이렇게 힘겨워하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다시 미끄러지듯이 절개지를 내려선 곳이 당진 65km, 안산 5km 이정표가 보이는 서해안고속도로다. 오른쪽으로 철조망을 따라 42번 국도와 마주치는 지하차도를 통과하여 다시 마루금으로 돌아와 능선에 붙는다.
가로막는 군부대 철조망, 잡목들을 베어 쌓아놓은 장애물, 넓은 평지의 안부에 내려선 정맥꾼들은 사격장이니 접근금지라는 안내판을 만나지만 이젠 익숙해져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통과한다. 정맥길에는 노랑꽃으로 수놓고 있고, 어린 아카시아 군락을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서 오름 길이 가팔라진다. 암릉길이 나타나며 이어 폐타이어를 이용한 시설물과 안내판, 사격 훈련 시 통제소인 듯하다.
174봉에 올라서니 멀게만 보이던 수암봉이 가깝게 다가와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조금 떨어져있는 비슷한 높이에 봉을 다시 통과하며 교통호를 따라 안부에 내려섰다가 긴 오르막길은 한차례 가팔라지면서 10m 정도 뻥 뚫린 정맥길은 그대로 고스란히 태양열을 받다보니 땀으로 얼룩지고 힘겨운 오름길은 돌계단이 나타나며 이어 올라선 곳에 TV안테나가 서있고 조금 더 올라선 곳이 원형 시설물이 자리 잡고 있는 봉이다.
북쪽으로 서울시가지와 북한산, 동북쪽으로 관악산을 다시 확인할 수가 있고, 지나온 정맥능선도 눈으로 선을 그을 수가 있다. 잠시 내려섰다 올라선 능선분기점인 222봉 인 듯한 암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뚜렷하게 나있다. 수암터널이 가깝게 내려다보이고, 내려서며 만나는 훈련시설물들, 다시 오름 길은 교육시설물로 만들어진 독립가옥을 통과하면서 넓게 나있는 터널숲길이 이어진다.
정맥길에 설치된 철사다리와 밧줄구간의 암릉길을 통과하며 이어지는 경사길의 오름길은 하늘을 가린 소나무와 참나무숲길을 따라 이어가다가 간이 쉼터를 만난다. 마주치는 등산객들, 한마디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쫓기듯 달려가는 정맥꾼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여유를 부려보며 이야기도 나눠 봄직한 데...
좁은 공터가 있는 능선분기점인 335.5봉에 오른다. 정맥은 오른쪽(남)으로 방향을 바꾸며 완만하게 오르내림이 이어지며 넓게나있는 등산로에는 이틀 간 가뭄을 해소하며 내린 비로 촉촉이 젖은 솔잎길이 마치 양탄자를 밟는 듯하다. 나무사이로 더욱 가깝게 다가서는 수암봉을 보며 터널 숲을 따라 이어나간다.
바윗길이 열린다. 급하게 오르던 정맥꾼들이 수암봉 직전 바윗길에서 산바람을 맞으며 잠시 다리쉼을 하며 여유를 부리는 듯하더니 그것도 잠시뿐, 잠시 올라선 곳이 조그만 표지석이 서있는 수암봉(395m)이다.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서쪽으로 바다도 보이는데 걱정거리는 넘어야할 시설물이 자치하고 있는 수리산...
수암봉에서 왼쪽(동)으로 방향을 팍 꺾으며 내려서는 길이 물기가 있어 미끄러운 가파른 길이다. 내려설 수 있는 등산로가 보이는 안부를 통과한다. 이어 헬기장을 통과한다. 다시 안부를 지나며 이정표(수리산:1160m, 수암봉;900m))가 있는 슬기봉을 통과한다. 드디어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난다. 철조망을 따라간다. 오름길이 가파르게 올라서면서 철조망을 버리고 왼쪽으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초병이 지키고있는 451.3봉이다.
초병으로부터 제지를 받지만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간다며 빨리 통과하겠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행한다. 녹슨 철조망 옆으로 좁게 나있는 길 아닌 길, 갑자기 악 소리에 뒤돌아보니 이영주가 넘어졌다가 일어난다. 잡목 덕에 다행이 다친 데는 없지만 철조망길이 만만치가 않아 걱정이다. ‘영주야 조심해라, 막걸리도 먹지 않았는데 ...’
철조망을 끼고 따르던 정맥길은 왼쪽 아래로 우회길이 나있어 철조망을 따르자는 고집도 부려보지 못한 채 한동안 내려서니 드럼통이 쌓여있는 공터가 나타나고, 군부대로 오르는 진입로를 따라 닫쳐있는 군부대 출입문에 다다르니 키가 크고 잘생긴 헌병이 다가온다. 역시 뻔뻔한 정맥꾼들, 우리의 산줄기를 설명하고 길이 없다는 말을 뒤로 한 채 철조망 옆으로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좁게 나있는 길 아닌 길로 잡목 숲을 헤치며 오르다 보니 준과 희의 리본이 눈에 띈다. 역시 그들은 이곳을 통과했군, 9정맥을 완주한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콘크리트 계단을 만나면서 계단을 따라 오른다. 수리산(475m) 정상은 또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정맥꾼들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충주의 서쪽은 경기도의 죽산, 여주와 경계한다. 죽장의 칠장산 기호 경계에 우뚝 솟았고 서북으로 뻗쳐 수유현에서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일어나 용인의 부아산이 되고, 또 석성산, 광교산을 일으킨다. 광교산 서북에서 관악이 되고 똑바로 서쪽에서 수이산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고 하여 수리산이 한남정맥의 한 자락임을 밝히고 있단다.
수리산을 또 다른 이름으로 수이산임을 기록하고 있고, 어떤 기록에는 견불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데, 이는 어느 왕손이 산중에서 기도 중 부처님을 친견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온단다. 산 정상에서 멀리 군자 앞 바다와 소래염전 및 인천, 수원의 시가지까지 조망된다고 한다. 산 남쪽에는 수현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수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신심을 닦는 성지의 절이라 하여 수현사라 했는데, 그 후 산명도 사명을 취해 수현산이라 칭했다는 것이다. 일부 풍수연구가들은 아주 먼 옛날 개벽이 일어났을 때 서해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수리가 앉을 만큼 남았다 하여 수리산이라 칭했다고 전해지는데 하여튼 시설물이 웬수야 웬수...
오른쪽으로 원형 철망이 둘러져있어 통과하려했지만 부대원과 말씨름 끝에 판정패하고 다시 내려서다 콘크리트 계단을 오르기 직전 왼쪽으로 나있는 희미한 길을 확인하고 숲길을 헤치며 조금 올라선 곳엔 태을봉(489m)으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정맥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선 전방이 좋은 바위에서 258봉을 지나 47번 국도까지 이어지는 정맥능선을 확인할 수가 있다. 잠시 다리쉼을 하다 보니 정맥꾼들이 모인다.
전망대 바위를 뒤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가파르게 내려서는 길에는 군부대로 오르는 검은색의 보온관이 들어 나있고, 커다란 바위를 지나면서 능선길이 완만해 지며 임도가 나타난다. 쉼터가 있는 이정표(8단지입구:1.9km, 속달동입구:2.1m)가 서 있는 갈림길이다. 조금 올라선 곳에는 산불초소가 있다. 산책로로 변한 정맥길...
돌무더기가 있는 봉우리를 통과하며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많은 동네 주민들이 둘씩 짝을 지어 마주친다. 능선분기점인 258봉에 오른다 잠시 다리 쉼을 하며 여유를 보이는 정맥꾼들, 남쪽으로 달리던 정맥이 이곳에서 방향을 동남쪽(왼쪽)으로 바꾸며 완만하게 이어나간다.
철망을 만나면서 공터에 올라서니 송전탑이 나타난다. 철망을 끼고 이어간다. ‘군포시에서 설치한 큰 시민 작은 시’ 이정표(감투봉:1km, 대야동입구:1.8km, 용진사:2.3km), 정맥은 감투봉을 향한다. 헬기장을 통과한다. 아름드리 아카시아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능선길, 다시 5단지로 내려설 수 있는 이정표가 서있는 안부를 가로지르고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선 곳이 감투봉이다.
철망으로 둘러친 산불초소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감투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30~40m 내려서다가 왼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서야 하는데 여기서 길을 찾는데 35분 정도 허비했다. 어제(4월 30) 세계 산의 해 기념 심포지엄에서 만난 길춘일씨가 귀뜸을 해두었는데 깜빡하는 바람에 숲속의 집이 있고 한마음 우리군포 군포라이온스클럽 사자상이 서있는 고개마루인 47번 국도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와 정맥능선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개성 김씨(1916-1982) 묘지, 지금까지 개성 김씨는 친척들을 빼고는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음식점인 신기명가 입간판이 서있는 마을길에 내려서고 이어 산길로 넘어서다 밤나무지대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군포시 당동 신기마을 표지석과 삼성마을 버스정유장 그리고 도로 건너 안양베네스트콜프콜럽 정문이 보이는 47번 국도다. 아르바이트도 많이 한 힘겨웠던 하루였지만 그래도 지나고 나니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조영원교수의 마운틴 오르가슴을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