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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매이는 여자
박 종 화
1
밤이 깊은 후에 대궐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숙주(申淑舟)의 얼굴은 예전 다른 때보다도 몹시 초췌하였다. 평일에 남이 보면 부러워할 만치 홍훈*이 떠돌며 화기가 가득하던 얼굴빛은 마치 중병 치른 사람의 얼굴빛같이 푸르고 희었다. 도톰하고 윤기 있는 눈두덩은 약간 꺼지어 쌍꺼풀이 졌다. 그의 커다란 몸뚱이는 물속에 잠겼다 꺼내놓은 종잇장같이 풀기 없이 흐느적거렸다.
숙주는 힘없는 기침을 한마디 칵 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고요하던 집 안은 숙주의 기침소리를 듣고 별안간에 어수선하였다. 계집하인들은 허둥지둥 뜰로 뛰어나와 허리를 굽실거리어 꾀꼬리 같은 소리 로,
“영갑마님, 안녕히 행차하십시오” 하고 날마다 한 번씩 하는 인사를 전례대로 종알거렸다. 안방에서 어린아이를 재우고 누웠던 윤씨(尹氏)는 몸을 날쌔게 일으켜 옷맵시를 고치었다. 바시시 방문을 열고 한걸음에 분합*을 지나 툇마루에서 사뿐 내려서 댓돌* 한옆에 조용히 섰다.
“어떻게 오늘은 이렇게 저무셨어요.* 오죽이나 시장하실라구.”
섬돌*을 밟는 숙주를 향하여 그의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숙주는 피곤한 눈을 들어 그의 부인을 잠깐 보고 괴로운 듯이 아무런 대답도 없다. 윤씨는 숙주가 벗어주는 윗옷과 갓을 일변 받아 의장에 걸며 일변으로는 여종을 신칙 한다.*
“얌분아, 어서 영감마님 진지상을 올려라.”
진지상 소리를 듣더니 숙주는 손을 홰홰 저으며,
“밥 고만두어라, 먹지 않는다. 그 대신에 술 가져오너라. ……물 타지 말고 독한 채 그대로 가져오너라.”
하였다.
밥은 그만두고 술만 가져오라는 소리를 듣고 윤씨는 의아하였다. 그리고 또 평소에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던 숙주가 어떤 아니 먹을 수 없는 경우에 술이 좀 독하면 일부러 물을 타라고 신칙하던 숙주가 독한 술을――물 타지 않은 술을 가져오라는 것이 이상하였다. 더구나 그의 초췌하게 된 얼굴과 힘없는 거동을 볼 때에 정녕코 자기 남편이 무슨 큰 걱정과 화 속에 쌓인 것 같았다. 독한 술을 마시려는 자기 남편의 마음과 하루 동안에 돌변된 자기 남편의 창백한 얼굴, 그 사이에는 어떠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윤씨는 여기까지 생각할 때에 그의 마음은 별안간 덜컥 내려앉았다. 마치 폭폭 찌는 여름날에 꼬박꼬박 졸며 바느질하다가! 날카로운 바늘 끝에 손톱 밑을 꼭 찔림과 같이 정신이 번쩍 났다.
“그렇다, 정녕 이번에 나라에서 야단난 까닭이로다. 정승을 때려죽이고 모든 대신을 목 베고 귀양 보내며 그리고 새로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임금님 위(位) 에 나아가고 단종(端宗)전하를 상왕으로 만든 그 까닭이로다” 하였다.
그러면 장차 우리 남편은 어찌 될꼬, 윤씨는 자기 남편의 앞일을 생각하였다.
그는 단종의 신하이었었다. 뿐만 아니라 단종 아버님 문종(文宗)께서 승하하옵실 때 자기 남편을 향하여 아무쪼록 단종을 잘 도와주란 부탁을 마지막 내리셨다. 그러면 남편은 어디까지든지 단종을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평소에 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오, 열녀는 두 사나이를 고치지 않는 법이라 말하며 이 일을 행하지 못하면 사람이랄 게 없다, 뿐만 아니라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 하던 그의 언행을 보면 반드시 수양대군을 임금 위에서 내려쫓고 다시 단종을 왕위에 앉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죽음, 자기 남편은――죽음의 길을 취하여야 할 것 이다.
윤씨는 죽음이란 그것을 생각할 때에 별안간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쳐지며 잔등이 위론 누가 동이로 냉수를 들이붓는 것같이 선듯선듯하였다.* 그는 다시 그의 남편의 죽음의 날을 생각하였다. 만일 남편이 죽으면 어찌할꼬, 나도 또한 나의 절개를 다하기 위하여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어찌 될꼬, 만일 자기 남편이 죽으면 역적의 무리는 도리어 우리를 역 적이라 하여 어린것들을 그대로 살려둘 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 왼 집안 식구는 모다 함몰*이 될 모양이로다 하였다. 그는 다시 한 번 생각하여보았다.
눈에는 자기의 어린 아들들의 주검이 뵈었다. 죽음을 피하려 하는 철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슬피 부르짖으며 몸부림치는 모양이 보인다. 그의 마음은 무섭고 또다시 구슬펐다. 그러나――죽음,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죽어야 한다. 충신이 되려면 절부*가 되려면 죽음――그 길을 취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의 마음엔 무슨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았다. 자기의 남편과 자기와 자기의 어린 아들이 죽음의 길을 취하게 되면 거의 어떠한 형용할 수 없는 거룩한 경지에 이를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사람다운 사람 절개 있는 사람이 되리라 하였다. 윤씨의 마음은 앞으로 닥쳐오려는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이렇게 단단히 작정 되었다.
숙주는 홀로 술상을 대하여 스르로 잔질하여* 독한 술을 마시고 또 마시었다. 한 잔 두 잔 이렇게 하여 그는 대여섯 잔을 연하여 기울여버렸다. 나중에는 커다란 보시기*를 가져오라 하여 강한 송홧빛 나는 술을 가득히 따라 한숨에 쭈욱 들이켰다. 솜같이 피로된 그의 온 몸에는 강렬한 술기운이 핑그르 돌았다. 약하게 그윽하게 혈관 속으로 잔잔히 흐르는 피는 격렬한 술기운을 얻어 강하게 강하게 높이 뛰었다. 주기(酒氣)를 띠어 다시 불그스름하여진 그의 얼굴에는 그리울 수 없는 강개한* 빛이 떠돌았다.
겨우 술상에서 물러앉은 숙주는,
“여보시오, 부인.”
하고 윤씨를 불렀다. 실 한 오라기를 격한 듯한 죽음과 삶 그 사이에 낀 자기 집 온 가족의 운명을 생각하고 홀로 마루에 앉았던 윤씨는 자기 남편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조용히 일어나,
“네.”
하고 숙주 앞에 단정히 섰다.
“하인들을 다 자라고 제 방으로 돌려보내지요.”
하고 숙주는 윤씨를 향하여 말했다.
“벌써 다들 제 방으로 가서 자라고 보냈어요.”
숙주는 한 손을 들어 흐트러진 길다란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여보, 그 언젠가 연전에 문종대왕께서 내리신 돈피갓옷〔貂裵〕*이 있지 않소? 엇다 두었는지 다시 한 번 보게 찾아다주오.”
숙주의 말소리는 떨렸다. 윤씨는 세간 놓인 골방으로 들어가 누르고 검은 털이 아롱진 윤기가 지르르 흐르는 돈피갓옷을 꺼내왔다. 숙주는 갓옷을 받아 이리저리 만지고 쓰다듬어보았다. 몽롱한 취한 눈에는 더운 눈물이 빙그르 돌았다. 눈청* 위에 가득히 고였던 눈물은 밑에서 새로 솟아나오는 눈물에 몰려 한 방울 한 방울 돈피갓옷 위로 소리 없이 뚝뚝 떨어졌다.
옆에서 숙주의 거동을 살피고 있던 윤씨는 갓옷 위로 소리 없이 떨어지는 숙주의 눈물을 볼 때에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올랐다. 코뿌리가 별안간에 찌르르해지며 더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두 볼 위로 주르르 흐르는 두 줄 눈물이 입술가로 왔을 때에 찝찔한 눈물 맛을 맛보는 윤씨는 또다시 남편의 죽음ㅡ아들의 죽음ㅡ자기의 죽음이 번갯불같이 머릿속으로 휘돌았다.
숙주는 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윤씨를 향하여 무슨 말을 할듯 할듯 하였다. 가래가 목구멍에 탁 걸리는 바람에 숙주는 서너 번 칵칵 하고 기침을 했다. 또다시 그는 윤씨를 향하여 무슨 말을 할듯 할듯 하다가 입술을 꼭 다물고 스스로 자기의 혀를 깨물어버렸다. 숙주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들은 다 잘들 자우?”
“네. 안방에서 모두 잡니다.”
하는 부인의 나지막한 대답소리를 뒤로 둔 숙주는 사랑으로 나갔다.
2
문종대왕이 돈피갓옷을 숙주에게 내리기는 벌써 사 년 전 일이다. 몹시 추운 겨울날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밤이었었다. 그때에 병환이 중하신 문종은 내시를 집현전으로 보내어 당시에 문장과 재기로 명망이 놓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의 모든 학사를 편전(便殿)*으로 부르시었다. 명을 받은 모든 학사는 황망히* 내시를 따라 어전*에 나아가 부복하였다.* 옥체를 병상에 던지고 괴로이 신음하시던 문종은 모든 학사의 입시*함을 보고 강잉히* 몸을 일으켜 수척한 용안에 미소를 띠시고 집현전에 대한 모든 일을 하문하시었다.* 화제가 장차 다하려 할 때에 문종은 내인*을 명하여 술을 들이라 하여 친히 술을 따라 모든 학사를 주시며 옆에 모시어 있던 열한 살 먹은 세자인 단종을 부르사 앞에 앉히고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추연히* 모든 학사를 향하여,
“과인이 세상을 버린 뒤에 그대들은 모름지기 힘을 다하여 이 어린 세자를 도와 명부(冥府)*돌아간 나의 마음을 적이 편케 하라.”
하시었다. 이 부탁을 받은 모든 학사들은 일제히 몸을 구부려,
“백골이 진토가 되옵드라도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하였다. 이 대답을 들으신 문종은 다시 미소를 띠시며 자주 술을 따르시어 모든 학사를 주었다. 사양하다 못하여 열 잔 스무 잔 마시고 또 마신 모든 학사들은 독한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나중에는 상감의 앞인 줄도 분변치* 못하고 다 각각 제멋대로 횡설수설하다가 그대로 모두 쓰러져버렸다.
문종은 내인을 명하여 입으시던 돈피갓옷 몇 벌을 가져오라 하시어 취하여 정신 모르는 모든 학사에게 입히라 하시고 또다시 내관을 명하여 사린교*를 태워 각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 하시었다.
그 이튿날 술이 깬 모든 학사들은 다 각각 자기의 몸에 돈피갓옷이 더하여졌음을 보고 만나는 대로 손을 붙들어 왕은의 융숭함을 감읍하였다. 이때에 대신으로 어린 단종을 도우라는 명을 받은 이는 황보인, 김종서 두 사람이었고 학사로 이 부탁을 받은 이는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들이었었다.
이러한 부탁을 내린 지 얼마 못되어 문종대왕은 날로 병이 침중하여* 마침 내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버리시었다.
나어린* 단종은 왕위에 나아가게 되었다. 문종의 생전에 간독한* 유지를 받은 두 대신과 여러 학사들은 어린 새 임금을 도와 모든 나라 일을 처결하고* 힘을 다하여 어진 정사*로써 백성을 어루만져주었다. 이때에 문종대왕의 아우인 수양대군도 또한 중요한 지위에 있어 그의 조카인 어린 임금을 돕게 되었다. 그는 항상 사람을 대하여 말할 때에 암연히* 자기는 주공(周公)에 비하고 단종은 성왕(成王)에 비하여 주나라의 주공이 그의 조카인 성왕을 정성껏 도와 어진 정사로써 억만 백성에 임하여 성왕으로 하여금 만대의 어진 임금이 되게한 거와 같이 자기도 또한 단종을 도와 그러한 어진 임금이 되게 하겠단 뜻을 말하였다. 이렇게 겉으로 어진 이의 탈을 쓰고 말하는 그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야심이 싯벌건 불꽃과 같이 펄덕거렸다. 그는 스스로 찬탈자가 되어 어린 단종을 내어쫓고 자기의 임금 자리에 나아가려 하였다.
그는 먼저 널리 인재를 구하였다. 재주와 지혜가 사람에 뛰어나는 표일한* 인물과 기운과 담력이 수십 인을 압도할 만한 날랜 역사*를 구했다. 그는 공손한 태도와 두터운 폐백*으로써 모든 선비를 대접하고 너그러운 풍도*와 은혜로운 일로써 모든 사람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모사*로는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會)의 무리를 얻고, 역사로는 홍윤성(洪允成), 홍달손(洪達孫)의 무리 삼십여 인을 얻었다. 항상 그의 집에는 재사*와 호걸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수양대군의 심복이 되어버렸다.
단종이 등극한 지 겨우 일 년이 될락 말락 할 때이었다. 수양대군은 먼저 자기의 대적(大敵)인 당시에 우의정으로 중망이 높은 김종서를 죽이려 하였다.
때는 찬 바람이 사람의 살을 엘 듯한 시월 초열흘날 밤이었다. 이 때에 김종서의 집은 돈의문 밖이었었다. 수양대군은 가만히 역사 팔구 명을 보내어 돈의문 성 위에 매복하고 있게 하였다. 이것은 자기가 설혹 미처 김종서를 죽이지 못하여 밤이 깊어 성문을 닫게 될지라도 문 지키는 수문장을 때려죽이어 자기가 다시 성안으로 돌아갈 때까지 성문을 열어두게 함이었다.
수양대군은 갑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관복을 입어 갑옷을 감추었다. 칠팔 명의 여력이 많은 무사들은 종자*의 맨드리*를 하고 각각 날카로운 무기를 품에 품은 뒤에 수양대군을 옹위하여 따랐다. 일행은 돈의문을 지나 김종서의 집에 당도하였다. 이때에 김종서의 아들 승규(承珪)가 바깥사랑에 있다가 수양대군의 옴을 보고 뒷사랑에 홀로 있는 종서에게 고했다. 종서는 빨리 나와 수양대군올 맞았다. 인사가 막 마치려 할 때에 옆에 섰던 무사는 별안간 철퇴를 꺼내어 힘을 다하여 종서의 두골을 때렸다. 종서는 윽― 하고 땅 위에 가로 떨어졌다. 멀리 서 있던 승규는 불의에 참혹한 일을 보고 슬피 부르짖으며 자기의 아버지를 구하려 뛰어왔다. 역사는 다시 날카로운 칼을 빼어 쫓아들어오는 승규를 갈겼다. 승규의 목은 떨어져 땅으로 굴렀다.
삽시간에 종서의 부자를 죽인 수양대군은 곧 종서의 집을 나왔다. 그는 모든 역사를 거느리고 곧 대궐로 들어갔다. 편전에 누웠던 단종은 수양대군이 역사를 거느리고 들어옴을 보고 슬피 부르짖었다.
“아 ― 아저씨 살려주시오.”
하고 나어린 단종은 벌벌 떨었다.
수양대군은 단종 앞에 나아가 부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우의정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이 부동하여* 항상 역적질할 뜻을 두었음을 알고 먼저 오늘밤에 김종서를 죽였다는 일을 아뢰었다.
그리고 전후일을 의결하기 위하여 이 밤 안으로 어명으로써 모든 재상을 부르시라고 핍박하였다. 두려움에 싸여 사시나무 떨 듯하는 몸을 겨우 부지하고 있는 나어린 단종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다만 모기소리만한 입 안의 소리로,
“그저 아저씨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하였다.
수양대군은 곧 긴급한 국가의 대사가 있으니 밤 안으로 곧 입시하라는 명패(命牌)*를 모든 재상과 대장에게 띄웠다. 그리고 대궐 문 안엔 철퇴를 가진 수십 명의 역사를 매복하여 모든 재상들이 들어오는 대로 누구누구를 헤아릴 것 없이 덮어놓고 때려죽이라 하였다.
별안간에 이 급보를 들은 모든 재상과 대장들은 시각을 지체치 않고 대궐로 향하였다.
이렇게 하여 수양대군은 다시 영의정 황보인을 때려죽이고 병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우찬성 이양(李穰)을 위시하여 모든 재상을 하룻밤에 다 죽여버렸다.
수양대군은 스스로 영의정의 자리에 나아가 이조판서 병조판서의 벼슬을 겸하고 다시 내외병마도통사가 되어 국내의 모든 병마권을 다 자기 손아귀에 넣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심복을 가장 중요한 벼슬에 처하게 하였다.
이리한 지 얼마 안되어 단종이 선위한다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수양대군은 왕(世祖)위에 나아가고 단종은 아무런 힘없는 상왕을 만들어버렸다.
3
새로이 왕이 된 세조는 항상 숙주의 문장과 재주를 사랑하였다. 그때에 숙주는 다만 문장과 재예(才藝)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말에 정통하였다. 명나라 말은 물론이오, 일본말, 몽고말, 여진말에 막힐 데가 없었다. 세조는 숙주를 자기의 심복을 만들리라 하였다.
어느 날 세조는 숙주를 불렀다. 숙주는 난처하였다. 자기가 세조를 가서 보는 날이면 그를 향하여 두 번 절하고 왕이라 불러,
“하늘명이 성왕에게도 돌아왔으니 신은 그윽이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나이다.”
하고 하례하는 말을 베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고 보면 자기는 깊은 문종의 은혜를 저버리고 어린 단종을 배반하여 역적을 섬기는 의 아닌 사람이 될 것이었다. 숙주는 몸이 병들었다 하여 부르는데 응하지 않았다.
이 뜻을 안 세조는 몸소 친히 집현전에 이르렀다. 세조의 이름을 본 모든 학사들은 다 각각 몸을 감추어 흩어져버렸다. 세조는 먼저 숙주의 병상을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기의 신하가 되라 권하였다. 숙주는 응하지 아니하였다. 먼저 자기가 문종의 간독한 유언을 받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숙주는 어리고 불쌍한 단종을 배반하고 세조를 섬기어 만대에 의 아닌 놈이란 더러운 이름을 전하게 할 수 없다는 뜻을 말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세조는 노기가 하늘 끝까지 치올랐다. 그는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불호령을 하였다.
“이놈, 이 만고에 역적 놈아, 네 목엔 칼이 안들 줄 아니.”
하고 호통을 하였다. 그는 다시,
“어린 자식들의 잔인한 죽음이 보고 싶으냐” 하였다.
처음에ㅡ 이놈아 이 만고에 역 적 놈아 할 때에는 숙주의 머리에는 괄한* 피가 일시에 와짝 올랐다. 다시ㅡ네 목엔 칼이 안들 줄 아니하고 소리칠 때에는 숙주의 온 일신에는 악이 바싹 올랐다. 숙주는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ㅡ어린 자식들의 잔인한 죽음이 보고 싶으냐 하고 호통할 때에는 숙주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에 와짝 올랐던 더운 피는 어느 결엔지 스르르 내려가버렸다. 전신에 바싹 올랐던 악은 가슴 뭉클한 괴로움으로 변했다.
숙주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무사가 시퍼런 서리 같은 칼을 가지고 자기의 목을 향하여 내리치는 모양이 보인다. 눈이 부시도록 처참한 칼날이 번갯불같이 번쩍할 때에 휘ㅡㄱ 하고 찬바람이 돌며 자기의 목은 뚝 떨어져 땅 위로 데굴데굴 굴렀다. 목에서 뚝뚝 떨어져 흐르는 시뻘건 더운 피는 뜰에 깔린 하얀 모래를 석류알같이 새빨갛게 물들여놓았다. 이때에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백성들은 다 자기를 칭찬하였다. ‘아ㅡ 참, 신숙주는 충신이다.’ ‘거룩한 양반이다.’ ‘참 만고의 충신이로다.’ 그의 귀에는 이런 소리
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숙주는 적이 미소하려 할 때에 그의 눈에는 총명하고 어여쁜 자기의 어린 여덟 아들이 보인다. 큰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한참 공부 잘하는 총기가 자기보다 몇 배나 나은 열두 살 먹은 사룡(四龍)이, 열 살 먹은 아이로 필재가 제법 있는 오룡(五龍)이, 감때와 심술배기가 여간내기가 아닌 일곱 살 먹은 육룡(六龍)이, 한참 온갖 재롱을 부리며 원수라도 귀엽게 볼 네 살 먹은 칠룡(七龍)이, 천진난만한 어여쁜 얼굴에 방글방글 웃음을 띠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곤지곤지’ ‘주얌주얌’ 하며 재롱을
피우는 금년에 돌 지난 팔룡(八龍)이, 이 모든 아들의 얼굴이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보였다. 이리하다가 키가 구 척이나 되는 오륙 명의 흉악한 놈이 다 각기 한 손에 칼 하나씩을 들고 길고 튼튼한 동아줄로 자기의 여덟 아들을 묶었다. 모든 아들은 슬피 부르짖으며 고함쳤다.
“아이구 살려주십시오.”
“아― 아무 죄도 없으니 살려줍시오.”
아무 철모르는 칠룡이와 팔룡이는 “엄마―’ 하고 으아― 울었다. 여덟 아들이 슬피 부르짖을수록 번쩍거리는 칼들을 든 여러 흉악한 놈들은 우악한 주먹과 팔로 연약한 여덟 아들을 때리고 찼다. 나중에 그 흉악한 놈들은 일시에 칼을 휘둘러 여덟 아들의 목을 베었다. 숙주의 눈에는 지긋지긋한 죽음의 한 마당이 보였다. 모든 아들의 목은 잘라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무서움에 고사리 같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엄마―”를 슬피 불러 우는 칠룡이와 팔룡이의 어린 목도 베어져 연붉은 피가 한 방울 한 방울 땅으로 스며든다. 숙주는 몸이 으쓱해지며 정신이 아득하였다. 숙주는 눈을 떴다. 세조는 여전히 앞에 앉아 있었다. 숙주의 등에는 찬땀이 가득 배었다.
세조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숙주를 달래었다. 죽음으로써 ㅡ 지긋지긋한 여덞 아들의 잔인한 죽음으로 숙주를 위협하고 영화로움으로ㅡ찬란한 영화로움의 꿈으로써 숙주를 달래었다. 마치 어린이를 매로써 위협 하고 사탕으로써 달래임 같이 그를 달래었다.
숙주는 생각하였다. 자기가 세조의 말을 듣지 않고 죽으면 ㅡ가련한 어린 여덟 아들은 아무런 허물도 없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죽음ㅡ그 죽음은 보통 그대로 죽는 죽음이 아니라 칼로써 잔인하게 어린 아들의 목을 베어 피를 흘려 죽게 하는 죽음이다. 자기가 세조의 말을 들어 항복만 하면 여덟 아들의 목숨은 산다. 참혹한 죽음을 면하고 살 수가 있다. 자기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 한마디에 모든 아들의 '죽음’과 ‘삶'은 달렸다. 당장 이 자리에서 말하는 한마디 대답은 모든 아들을 살리게 할 수 있고 죽게 할 수 있다.
숙주는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세조가 여전히 앉아 있다. 고개를 드는 숙주를 보고 그는 또다시 목소리를 화하게 하여,
“숙주, 어떻게 할 테야? 어서 빨리 대답하지――”
하고 재촉하였다.
괴로움과 무서움으로써 가위를 눌린 것 같은 숙주의 가슴은 천 근이나 되는 쇳덩이를 눌러논 것 같았다. 비지 같은 땀이 술술 솟아 온 전신은 물풍덩이* 속에 든 거와 같다. 숙주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눈에는 여덟 아들의 슬피 부르짖으며 참혹히 죽는 꼴이 또다시 보였다. 숙주는 가슴을 두드려 목을 놓아 통곡하고 싶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생각하였다.
자기 한 사람만이 의 아닌 사람 고약한 놈이 되면 여덟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구나 하였다. 그 여덟 사람은 모르는 남이 아니라 불쌍한 철모르는 자기의 아들들이로다 하였다.
그의 마음은 결단되었다. 여덟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충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버리리라 하였다. 여덟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불의의 놈 고약한 놈이 되자 하였다.
숙주는 머리를 들었다. 앞에 앉은 세조를 향하여 기신없는* 소리로
“명하시는 대로 복종하겠습니다.”
희미하게 들리는 가늘고 작은 목소리는 마디마다 떨렸다. 숙주는 일어났다. 벌벌 떨리는 두 다리가 비척 비척하였다.* 세조를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그의 앞에 부복하여,
“대왕은 성수무강*하소서.”
하고 입안엣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조의 입 언저리에는 가만한 이김의 웃음이 떠올랐다.
세조가 왕위에 나아감을 본 모든 학사들은 손들을 붙들고 서로 통곡하고 탄식하였다. 그들은 가만히 세조를 죽이고 다시 단종을 임금 자리에 나가게 하기를 꾀하였다. 성삼문, 박괭년,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김질(金瓆)의 모든 학사들을 위시하여, 무관으로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과 및 유응부(兪應孚) 이 모든 사람들은 날마다 모여 이 일을 의논하고 가만히 기회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마침 명나라에서 사신이 들어왔다. 세조는 창덕궁 안에 크게 잔치를 베풀고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려 하였다. 이 일을 안 모든 학사들은 이 틈을 타 세조를 암살하고 그의 모든 심복을 죽인 뒤에 의 없는 역적 신숙주를 목 베려 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의논하고 때를 기다릴 때 함께 거사하기를 꾀하였던 김질은 홀로 가만히 생각하였다. 만일 이 일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자기의 목숨은 붉은 옷 입은 망나니 칼에 이슬과 같이 스러지게 될 뿐이었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매 별안간 무섭고 두려웠다. 만일 자기가 미리 이 일을 세조에게 고하면 자기 몸에는 죽음은 고사하고 부귀와 영화가 끝이 없이 두터울 것 같았다. 그는 가만히 자기의 장인 되는 정창손(鄭昌孫)으로 하여금 이 일을 세조에게 고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세조는 크게 놀랐다. 곧 금부대장을 명하여 성삼문의 무리를 시각을 지체치 말고 잡아 옥에 가두라 하였다.
4
사랑으로 나아가 홀로 누운 숙주의 머리는 무거웠다. 슬픈 근심, 괴로움, 부끄러움, 모든 번뇌가 어지럽게 혼잡되어 그의 머리를 흔들어놓는다. 그는 자기가 세조에게 항복한 일을 생각하였다. 또다시 성삼문 이하 보든 학사가 세조를 암살하고 다시 단종을 세우려다가 모두 붙잡혀 옥 속에 갇힌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성삼문 이하 모든 사람들이 의 아닌 역적 신숙주의 목을 베어 천하에 조리돌려* 난신적자*를 경계하자고 의논하였다는 일을 생각하였다.
숙주는 울었다. 소리를 죽여 기를 다하여 자꾸 울었다. 더운 눈물이 흥건히 베개를 적실 때까지 울었다. 그칠 줄을 모르고 자꾸 쏟아지는 콧물 눈물을 마시어가며 그는 울었다. 그는 성삼문과 자기의 사이를 생각하였다. 삼문은 자기와 사생 (死生)을 같이하자던 친구였었다. 평소에 그는 삼문을 엄형(嚴兄)과 같이 공경하고 삼문은 숙주를 어린 아우와 같이 사랑하였다.
숙주는 자기의 사삿일이나 국가의 공사나 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삼문에게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삼문과 더불어 오래 이야기하고 깊이 생각한 뒤에 일을 처단하였다. 문종이 병이 위독하여 어린 세자 단종을 부탁할 때에 자기와 삼문은 한자리에서 그 부탁을 받았었다. 나중에 술이 취하여 정신을 모르게 되어 문종이 돈피갓옷을 입힐 때에도 자기와 삼문은 다 같이 그 은혜를 받았었다.
세조가 단종을 내어쫓고 왕이 된 이날에 자기는 먼저 단종을 배반하고 세조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모든 사람은 세조를 암살하고 다시 단종을 임금 위에 나아가게 하려 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 붙잡혀 그들의 목숨은 지금 경각에 달렸다.
“아― 성삼문도 아들이 오 형제나 있다!”
숙주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마음의 약한 자야―”
그는 또다시 이렇게 탄식하였다.
그는 부끄러웠다. 세조가 자기를 위협하고, 달래는 그때에 세조를 향하여 두 번 절하고 몸을 구부려,
“대왕은 성수무강하소서 .”
하고 중얼거린 게 너무 비열하고 더러웠다. 스스로 자기의 얼굴에 침 뱉고 싶었다. 이렇게 그는 자기가 자기를 조소할 때에 그의 눈에는 또다시 서리 같은 칼날이 보였다. 여덟 아들이 일시에 칼을 맞아 슬피 부르짖으며 거꾸러지는 모양이 보인다. 그의 마음은 묶어둔 쇠공이*로써 어지럽게 가슴을 치는 것 같았다. 그는 괴로웠다. 미칠 것 같았다. 크게 고함치며 팔을 흔들고 발을 굴러 방 가운데로 뛰어다니고 싶었다.
숙주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마치 열병 환자와 같았다. 칠팔 번이나 방 속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펄썩 주저앉았다. 눈을 꽉 감고, 한참 앉았던 숙주는 또다시 벌떡 일어나 칠팔 번이나 방 속을 헤매었다. 그는 혼자 부르짖었다.
“죽일 수 없다. 여덟이나 되는 불쌍한 자식들을 아무 죄 없이 칼날에 고혼*이 되게 할 수 없다.” 그는,
“아아.”
라고 소리치며 기운 없이 보료* 위로 쓰러져버렸다.
이튿날 숙주는 후줄근해 일어났다. 안에 들어가 아침상을 대할 때에 그는 자기의 부인을 향하여 여태껏 숨기고 말하지 않던 모든 일을 말하려고 하였다. 자기가 세조에게 항복한 일――그것 이 결단코 항복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참혹히 죽을 여덟 아들 때문에 어찌할 수 없어서 그리했다는 말과 그 뒤 얼마 안 되어서 자기의 사생의 친구인 성삼문 이외 모든 학사가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다시 세우려다가 일이 발각되어 모두 잡혀 옥에 갇히었다는 일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은 세조가 친히 모든 학사들을 국문하려는* 날임과 암만 생각하여도 자기는 어린 자식들 때문에 죽고 싶으나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윤씨의 얼굴을 바라볼˙때에 이 모든 말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부끄러웠다. 자기의 부인을 향하여, 이 말을 하기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는 이전 어느 때에 자기의 부인을 향하여,
“사람은 절개가 가장 귀중한 것이오, 사나이나 여자나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은 절개란 것이오, 사나이로서 두 임금을 섬기는 것은 마치 여자로서 두 사나이를 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하고 말한 것을 생각할 때에 그의 얼굴엔 모닥불을 끼얹는 것같이 화끈거렸다.
숙주는 마침내 이 일을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죽으러 가는 양과 같이 그는 느릿느릿 걸음을 걸어 문간을 나섰다. 등대하고* 있는 사린교에 몸을 실은 숙주는 또다시 길게 탄식하였다. 숙주는 대궐로 향했다.
5
이날은 성삼문 이하 모든 사람을 세조가 친히 갖은 형구*를 갖추어 놓고 죄상을 국문한다는 날이다. 이 소문을 들은 온 장안은 불끈 뒤집혔다. 순직한 백성의 마음은 흔들리었다. 그들은 서로 만나 수군거렸다. 동네와 거리마다 우뚝우뚝 모여선 사람들은 제가끔 한마디씩 지껄댄다.
“오늘은 충신들을 잡아다 모다 목 베이는 날이라지.”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어떻든 그네들이 일들을 너무 섣불리 하다가 그 지경 들이 되었느니.”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받자 그중에 키가 훨쩍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자가 팔뚝을 걷어붙이며 침을 두어 번 퉤퉤 뱉더니,
“어쨌든 두말할 것 없이 천하에 잡것이니 우리네 상놈도 형이니 아우니 조카니 하고 항렬을 찾는데 일테면 조선 안에 제일간다는 종반*양반이 개만도 못하게 조카임금올 내·…….”
이 소리를 듣고 있던 키가 작달막한 곰보는 “쉬 ―” 하였다. 한참 기염을 피우며 지껄대는 키 큰 사람은 깜짝 놀라 불량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둘러본다. 이 꼴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눈깔 불량한 자는 그제야 제가 속은 줄 알고 빙그레 웃으며 주먹을 쥐어 곰보를 때리려 하면서,
“이런 생피를 붙을 놈 같으니.”
하고 욕했다. 히히 웃으며 쫓겨다니는 곰보는 다시 발을 멈추고 이편을 바라보면서,
“우리 육조 앞으로 구경 갈까?”
하였다. 눈깔 불량한 놈은,
“이놈아, 육조 앞에는 무얼 빨아먹으러 가.”
하였다.
“충신들 죽어나오는 구경하러 가지 .”
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래, 참 우리 가보세.”
하고 일제히 발을 들어 키 작은 곰보를 따라선다.
늦은 아첨이 겨운 때였다. 세조는 익선관*에 곤룡포*를 떨드려입고 모든 위의*를 갖추어 근정전 높다란 용상에 나와 앉았다. 전후좌우로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게 일월용봉(日月龍鳳)을 그린 봉미선*을 든 내시가 둘씩 둘씩 옹위해 섰다. 전상과 전하에는 영의정, 이조판서, 호조판서의 육조판서를 위시하여 좌찬성, 우찬성, 대사헌, 대사간 금관조복*짜리, 사모품대*짜리, 차례를 따라 늘어선 휘황찬란한 홍포,* 녹포*는 바람에 빗겨 펄럭거렸다.
뜰 아래에는 금도끼, 은도끼, 푸른 기, 붉은 기, 장검, 철퇴를 든 무사를 위시하여 모든 형구를 맡은 형리가 정제히 늘어섰다.
세조는 소리를 가다듬어 선전관을 불렀다. 세조의 부르는 소리를 들은 선전관은 대답하고 나아가 부복하였다. 세조는 소리를 높이어,
“역적 성삼문의 무리를 국문하려 하니 빨리 잡아들이라.”
하였다.
이 소리가 떨어지자 선전관은 세조를 향하여 두 번 절하고 일어나 뜰로 향하여 무어라 중얼거렸다. 선전관의 소리가 떨어지면서 긴 대답소리, 짧은 대답소리, 연해 나오는 대답소리는 마치 장림 (長林)*에 부는 바람소리와 같이 공중에서 공중으로 이어 예― 의 一 이 ― 우一 아― 하고 떠돌았다.
한참 있다가 대궐 안이 떠들썩하여지며 금부의 나장이*들은 팔뚝같이 굵은 동아줄로 사지를 결박하고 목에는 커다란 칼을 씌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성승 모든 사람을 잡아들여 대궐 안 넓은 뜰에 꿇렸다.
세조는 소리를 높여 삼문을 꾸짖었다.
“대역부토한* 역적의 무리야. 무슨 까닭으로 나라를 배반하느냐.”
하고 호통하였다. 삼문은 고개를 들어 전각 위에 높이 앉은 세조를 치어다보며 한 번 크게 껄껄 웃었다.
“신하로 임금을 내어쫓고 남의 나라를 빼앗은 역적이 도리어 우리를 역적이라 하느냐.”
하고 삼문은 크게 소리쳤다.
“한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는 것이다. 우리 임금(단종)만 아는 나는 다시 그대가 있음을 아지 못한다.”
“평소에 그대는 말끝마다 주공주공(周公周公)하였다. 주공이 언제 그대와 같이 그의 조카 성왕(成王)을 내쫓고 스스로 천자된 일이 있더냐.”
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문은 벌벌 떨리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전상에 좌우로 서 있는 판의금(判義禁)은,
“찌놈 쉬 一 발악하지 말고 공손히 아뢰어라.”
하였다. 삼문은 그들을 쳐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쥐새끼 같은 무리는 지저귀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하고 또다시 호통을 쳤다. 세조는 열이 벌컥 올랐다. 실쭉해진 두 눈이 시뻘게지며 하늘이 무너져라 하고 호령을 지른다.
“네 저놈을 항복할 때까지 되게 쳐라!”
하였다. 높고 넓은 전각은 찌르렁하고 울었다. 또다시 긴 대답소리, 짧은 대답소리가 공중에서 공중으로 연하여 일어났다.
금부 나장이들은 좌우 옆으로 달려들어 삼문의 옷을 벗겼다. 굵다란 튼튼한 곤장으로 으깨져라 하고 삼문의 볼기와 다리를 쳤다. 삼문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수양대군아, 네가 암만 나를 때릴지라도 내 마음은 빼앗지 못하리라” 하였다. 전각 위에서 “더 때려라, 자꾸 쳐라”
하고 일어나는 소리를 받아 금부 나장이들은 힘을 다하여 자꾸 때렸다. 삼문의 허여멀건 볼기에선 피가 흘렀다. 살은 모두 으깨져 한 조각, 두 조각 흐느적거렸다. 철썩철썩 솟쳤다 다시 떨어지는 곤장에는 시뻘건 피와 살점이 묻어올랐다. 다시 철꺽 하고 솟았던 곤장이 떨어지는 바람에 시삘겋게 피 묻은 으깨진 살점은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세조는 매질을 그쳐라 하였다. 그리고 단근질 *을 시작하라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나장이들은 뜰 한옆에 산더미같이 숯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시뻘건 불은 이글이글 피었다. 나장이들은 서너 자나 되는 팔뚝 같은 무쇠 십여 개를 숯불 속에 넣었다. 이때 아픔을 참고 엎뎌져* 있던 삼문은 다시 전상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사모품대에 홀(笏)*을 쥐고 구부려 섰는 숙주가 보였다. 삼문은 아프고 괴로움도 잊어버리고 별안간 성이 벌컥 올랐다.
“이놈, 이 신숙주야, 개만도 못한 의 아닌 놈아.”
하고 소리질렀다. 그의 숨은 분함을 못 이기어 씨근거렸다. 그는 기가 막혀 혀가 잘 돌지 못하였다.
“돌아가신 문종대왕이 돈피갓옷을 내리실 때 나어린 세자의 등을 어루만지시고 무어라 하시었었니―응…… 이 의 없는 놈아, 그때 너는 무어라 대답하였니.”
삼문은 목이 탁 막히었다. 카一 ㄱ 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가래에는 붉은 피가 섞이어 나왔다.
이 소리를 듣는 숙주는 얼굴이 벌게지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다만 고개를 숙이어 발끝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세조는 숙주를 불러 전(殿) 뒤로 피하라 하였다. 숙주는 얼빠진 사람과 같이 멀거니 섰다가 세조의 말대로 전 뒤로 들어가버렸다.
“빨리 단근질을 시작해라.”
하고 호령이 내렸다. 금부 나장이들은 시삘겋게 단 쇠를 꺼내어 삼문의 넓적다리를 뚫었다. 삼문은 탄식하였다.
“나라를 빼앗은 역적이 충신을 죽이려 형벌함이 너무도 악착하고나.”
하였다.
시뻘건 쇠가 넓적다리를 꿰뚫고 들어갈 때에 살은 바지지 하고 탔다. 기름이 이글이글 끓었다. 달았던 쇠는 식어져버렸다, 삼문은 자기 손으로 쇠를 빼어 땅에 던지며,
“쇠가 식었으니 다른 쇠를 가져오라.”
하였다. 나장이는 다른 쇠를 갖다가 삼문의 왼편 팔뚝을 꿰었다. 이렇게 하여 한 팔 한 다리는 끊어져버렸다. 삼문은 얼굴빛을 고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꿰었던 쇠를 꾀어 땅에 던지면서,
“식었으니 또 다른 것을 가져오너라.”
하였다. 이 모양을 보는 세조는 하도 어이가 없었다. 도리어 그는 기운이 줄었다. 삼문을 함거(檻車)*에 실어 새남터*로 내보내 목 베어 죽이라 하였다.
세조는 다시 박팽년을 가까이 데려와 꿇리라 하고 문초하기를 시작하였다. 세조는 팽년의 재주를 자랑하였다. 여러 가지로 팽년을 달래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항복하지 아니하였다. 여러 사람의 국문은 신시 때나 되어 끝났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굽히지 아니하고 끝까지 대항하였다. 세조는 그들을 성삼문과 같이 목 베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동생과 조카를 모두 잡아다 죽이고 여자들은 붙들어 다 관비를 만들어버리라 하였다.
이 모든 이들을 실은 함거는 추성문(秋成門) 밖으로 나갔다. 추성문 밖을 위시하여 육조 앞 넓은 거리는 이 모든 충신의˙ 죽으러 나가는 걸 구경하려는 흰옷 입은 백성의 무리로 빽빽이 채워졌다.
백결 치듯* 모여 선 사람의 물결은 움죽거렸다. 동으로 한 떼, 서로 한 떼, 마치 사나운 바람에 움죽거리는 넓은 바다의 물결 같았다.
“저기 나온다. 성충신이 탄 함거가 저기 나온다.”
모든 사람들의 눈은 모두 한쪽으로 모였다.
“어디 참, 저기 나온다. 야― 저기 성충신이 탄 함거가 나온다.”
“어디, 아니 보이는데 ― 오― 참 저기 보인다.”
사람마다 한 번씩 지껄대는 이 모든 소리는 하늘과 땅을 흔들어놓는 듯이 소란하였다. 육조 앞 넓은 한길은 난리 난 세상 같았다.
성삼문을 실은 함거는 한길로 나왔다. 사람의 물결은 좌우로 쭉 갈라섰다.
상투를 풀어 함거 기둥에 매이고 한편 팔과 한편 다리를 굵다란 동아줄로 묶이운 삼문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팔과 다리가 떨어진 어깨와 넓적다리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 함거 바탕에 깔아논 거적 위로 떨어졌다. 대엿 살 먹은 그의 어린 딸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아버지를 부르며 함거 뒤를 쫓았다. 이를 본 삼문의 눈에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겹겹이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다 각각 눈물을 뿌렸다. 눈물을 흘리고 따라가던 하인은 커다란 잔에 술을 따라 삼문에게 바치었다. 삼문은 고개를 구부려 입을 대어 마시었다. 술을 다 마신 삼문은 목청을 높이어 노래하였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그의 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구슬프고도 힘 이 있었다.
“봉래산 제 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이 노래를 듣는 여러 사람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빙그르 돌았다.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서,
“그야말로 참 충신의 노래이다.”
“천도*도 무심 하시지…….”
“나무아미 타불 ―—”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하여 죽음을 향하여 가는 모든 충신의 함거는 해가 서로 기울 때까지 하나씩 하나씩 노들강 건너편 새남터로 향하여 갔다.
6
숙주가 대궐로 들어간 뒤에 윤씨는 홀로 바느질을 하고 앉았다. 손으로 옷을 꿰매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형형색색의 천사만려*가 떠돌았다. 어젯밤에 늦게 돌아와 술을 마시고 탄식하던 남편의 수상한 거동, 오늘 아침에 기신없이 죽어가는 양의 모양으로 아무 소리도 없이 대궐로 들어간 그의 모양 이런 것 저런 것이 모두 의심스러웠다. 멀지 아니하여서 어떤 무슨 큰일이 닥쳐올 것 같았다. 이번 나라에서 야단 난 그 일로 인하여 자기 남편에게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어젯밤에도 생각한 것처럼 죽음―—자기 남편의 죽음이 올 것 같았다. 그는 또다시 자기의 죽음, 아들들의 죽음, 충신, 열녀, 이 모든 것을 순서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는대로 생각을 머리에 그리고 바늘을 놀리고 있을 때에 밖에 나갔던 얌분이가 씨근벌떡하고* 뛰 어 들어오며 마님을 불렀다.
얌분의 씨근거리고 뛰어옴을 본 윤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번갯불같이 자기 남편의 죽음이 연상되었다. 그는 손에 잡았던 바느질을 놓고 벌떡 일어나서,
“왜 그러니.”
하고 마주 뛰어나왔다. 얌분이는 여전히 씨근벌떡하며,
“저ㅡ 한길엘 나갔더니 사람이 하도 많길래 무슨 구경이 났느냐고 물으니까 성학사, 박학사, 여러 양반들이 새로 되신 상감을 죽이려다가 일이 탄로가 나서 오늘 모두 상감이 친히 문죄를 한 뒤에 목을 베이러 새남터로 잡아간대요.”
하고 억지로 말을 마쳤다. 이 소리를 들은 윤씨는 마음속으로,
‘에쿠, 일 났구나.’
하였다. 그는 별안간 정신이 팽글 돌았다. 얌분이는 겨우 숨을 차리어 또 말을 꺼낸다.
“그런데 마님, 그 성학사가 여기 늘 와서 댁의 영감과 좋아지내는 그 성학사가 아니셔요?”
하고 윤씨를 보고 물었다.
윤씨는 말 대답을 할 경황도 없는 것처럼 옳은가보다라는 뜻으로 고개만 끄덕끄덕하였다. 얌분은 또다시,
“그러나저러나 이번 일에 댁의 영감마님께서는 원 괜찮게 되시었는지요” 하고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물었다. 윤씨는 속으로 ‘왜 아니 끼셨겠니’ 했으나 겉으로는 아무 소리도 없이 가만히 앉았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저께 눈치가 하도 이상하더니 그예* 오늘 이런 일이 나는구나.’
하였다. 그는 별안간 청천에 벽력을 맞은 것 같았다. 그는 생각하였다. 인제는 죽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하였다. 충신인 자기 남편의 뒤를 좇아 죽는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하였다. 그의 마음은 타는 것 같았다. 그는 여러 번 생각하였다. 죽음과 삶, 삶과 죽음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생각하였다. 얼마 아니 있으면 역적들은 자기의 어린 아들들을 잡아다 죽이려 아니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잡아다 관비를 만들겠구나 하였다. 그는 또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자기 남편의 죽음을 보고 자기 어린 아들들의 죽음을 보고 그리고 자기는 살아 관비가 뙤려면 무엇이 시원하랴. 그의 속마음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죽음만 같지 못하다. 욕을 보고 삶이 죽음만 같지 못하다.’
그의 마음은 안타까웠다. 온몸엔 오한이 오싹 일어났다. 금방 속바람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한참 만에야 그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그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또 일어났다. 충신, 열녀, 이것은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절개 있는 사람의 일이다. 사람다운 사람이라야 능히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죽으리라 하였다. 그의 마음은 굳게 작정되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죽으면 어떻게 죽을꼬 하였다. 칼로 목을 찔러죽을까. 우물에 빠져 죽을까.
그의 눈에는 벽에 걸린 기다란 허연 수건이 보였다. 그는 옳다, 목매어 죽으리라 하였다.
윤씨는 집안 하인들을 모두 한길로 내보냈다. 나가서 잡혀가는 이들의 동정을 보고 있다가 만일 자기 남편이 그 속에 끼었거든 빨리 와서 자기에게 말하라 하였다.
윤씨는 부엌을 지나 뒤뜰로 들어갔다. 우물에 가득히 고인 맑고 깨끗한 물을 두레박으로 풍풍 떠서 옆에 놓인 커다란 돌확*을 깨끗하게 부시었다. 그리고 다시 돌확에 가득히 물을 부었다.
부엌문을 닫고 밖으로 거리를 본 뒤에 윤씨는 입었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었다. 속옷까지 벗은 윤씨는 상앗빛같이 매끈하고 윤기 도는 흰 살을 돌확 속에 풍덩 담갔다. 조그마한 때도 없이 우알을 깨끗하게 씻은 윤씨는 돌확 속에서 뛰어나왔다. 수건으로 온몸에 주루루 흐르는 물에 씻을 때에 그는,
“이런 깨끗한 살도 이 밤만 지나면 살이 썩어서 더러운 냄새가 나겠구나.”
하였다. 윤씨는 자기의 보드랍고 하얀 살이 하룻밤 동안에 썩어져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같이 생각되었다.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은 윤씨는 다시 부엌문을 열고 대청으로 올라갔다.
윤씨는 빗접*을 펼쳐놓고 쪽 찐 검은 머리를 풀었다. 향긋한 동백기름을 너덧 방울 따라 흐트러진 머리에 발랐다. 얼레빗*으로 먼저 엉킨 머리털을 풀고 참빗으로 다시 때를 빼었다. 한 가닥 한 가닥 곱게 빗은 뒤에 그는 다시 어여쁘게 머리를 쪽 쪘다. 그리고 그는 십여 년 전에 시집올 때에 꽂았던 옥비녀, 금귀개,* 말뚝잠,* 평시에 꽂지 않던 모든 화사한 수식(首飾)*을 꽂았다.
다시 분세수를 마친 윤씨는 엷게 얼굴에 분칠하였다. 그리고 백어(白魚)같이 어여쁜 흰 손에는 사람의 눈을 현황케* 할 만한 꿀빛 같은 검파 가락지, 핏빛 같은 자만호 가락지, 황금빛 찬란한 순금 가락지를 있는 대로 모조리 끼었다.
그는 다시 의장문을 열어젖히고 차곡차곡 쌓인 옷 속에 손을 넣어 이것저것 들썩거렸다. 그는 먼저 안동포 속곳에 안주항라* 단속곳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한산 세모시 치마를 입었다. 그런 뒤에 그는 다시 연옥색 화문갑사 적삼을 내었다.
한 번 죽음을 결단한 윤씨의 마음은 한없이 침착하였다. 죽음으로 향한 그의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였다. 마치 검은 구름장떼가 사나운 바람과 소낙비를 싣고 무섭게 기세를 부려 달을 향하고 쳐들어오나 푸르고도 차디찬 달은 고요히 고요히 가장 냉정하게 조금도 움죽거리지 않고 창백한 자기의 빛을 여전히 대지에 던지는 달의 태도와 방불하였다.
온몸을 깨끗하게 아름답게 단장한 윤씨는 조용히 닥쳐오는 죽음을 기다렸다. 벽에 걸린 깨끗한 무명수건을 떼어 든 윤씨는 자기 집에서 제일 높은 마루 위로 올라갔다. 기다란 수건을 반을 걸쳐 굵다란 대들보에 척척 걸쳐놓았다. 그는 이렇게 하여 죽음의 채비를 다 차리었다. 윤씨는 한 손으로 무명수건을 붙잡고 발돋움하여 바깥 한길의 동정을 살피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앞으로 첩첩이 가린 이웃집 용마루*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다시 귀를 기울여보았다. 역시 똑똑히 무슨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바람에 섞여 떠들어오는 어지러운 은음(嚚음)이 들릴 뿐이었다.
나갔던 하인들은 돌아왔다.
“지금 성충신, 박충신의 함거가 나가셨습니다.”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윤씨의 속마음에는 ‘그러면 요 다음에는 자기 남편의 함거가 나오렷다’ 하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나가보고 오라 하였다.
한참 있다가 하인은 또 돌아왔다. 윤씨는,
“이번에는 누가 나오셨니?”
하고 물었다.
“하충신의 함거가 나가셨습니다.”
하였다. 윤씨는 하인을 또 내보냈다. 나갔던 하인이 또 돌아와서,
“성충신 아버님 되시는 성장군의 함거가 나가셨습니다.”
하고 고했다. 윤씨의 마음속에는 ‘웬일인고’ 하였다. 그는 또다시 하인을 내보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 남편의 함거가 반드시 나오려니’ 하였다.
얼마 안되어서 하인은 또다시 돌아왔다.
“유장군의 함거가 나가셨습니다.”
하고 물러섰다. 윤씨은 마음은 불안하였다. ‘대궐 속에서 죽지나 않았나’ 하였다. 윤씨는 다시 하인을 내보내어 자세히 보고 오라 하였다.
해는 어느 결에 서쪽으로 기울어져버렸다. 들썩거리던 한길은 차차 고요해졌다.
한 식경* 만에 돌아온 하인은 인제 충신들의 함거는 다 나가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다 흩어져 돌아갔다 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은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래 혹시 소인들이 자세히 못 보았나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함거 수효를 물어보니까 소인들이 본 거와 꼭 맞으와요.”
하고 말을 그쳤다.
윤씨의 마음은 초조하였다. 확실히 자기 남편이 대궐 안에서 맞아죽은 것이라 하였다. 그의 눈에는 몹쓸 형벌을 이기지 못하여 그대로 죽어 넘어진 자기 남편이 보였다. 머리를 풀어혜쳐 산발하고 전신에 피투성이를 한 숙주가 팔과 다리를 허우적거리다가 염통이 터져 그대로 즉사되어 죽는 꼴이 보였다.
윤씨는 사람을 대궐 근처로 보내어 전후 일을 수소문하여보려 하였다. 이렇게 .혼자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을 때에 골목 안이 별안간 들썩 해지며 벽 제(牌除)*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홍― 호―ㅇ ―홍
네 이놈, 들어서거라, 나서거라
섯자 서, 게 안거라……
쉬이 ―
네 이놈 게 섯자, 게 안거라
쉬 이 ―
홍― 호― ㅇ 一흥―
골목 밖에 서 있던 하인놈이 혼이 나서 한걸음에 달음질 안으로 튀어 들어오면서 ,
“마님, 이 골목 안으로 파초선*을 받고 초헌*을 타신 대신 행차가 오십니다.”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윤씨는 의아하였다. 이 골목 안에는 재상의 집이 없는데 웬일인가 하였다. 이럴 즈음에 하인 하나가 또 튀어들어오며,
“마님, 영감마님께서 새로 대신이 되어오십니다.”
하였다.
꼭 죽을 줄 알고 정녕 대궐 안에서 흉악한 매에 맞아 죽었거니 하였던 숙주가 살아서 대신이 되어 온다는 소리를 들은 윤씨는 깜짝 놀랐다. 그의 머릿속에는 번갯불같이 ‘항복한 것이로구나’ 하였다. 모든 죽음의 차비를 차리고 있던 윤씨는 분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자기 남편의 약한 것이 너무도 슬펐다. 충신이란 이름을 듣지 못하고 모든 자기 남편의 친구는 다 잡혀 죽으러 가는데 숙주만 혼자 항복하고 대신이 되어 온 것이 너무도 더러웠다. 그의 얼굴은 분함을 못 이기어 새파랗게 질렸다.
이때에 중문 안이 떠들썩하여지며 숙주는 들어왔다. 그는 찬란한 금관을 썼다. 몸에는 화려한 조복*을 입었다.
윤씨는 눈을 똑바로 뜬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온종일 서 있던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있었다.
숙주가 아무런 기운 없이 댓돌에 막 올라설 때에 윤씨는,
“왜 영감은 죽지 않고 돌아오셔요!”
하였다. 숙주의 얼굴은 벌게지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 안엣말로,
“아이들 때문에 ㅡ”
하고 중얼거렸다. 윤씨는 숙주의 꼴이 끝없이 더러워 보였다. 그는 자기 남편의 절개 없는 게 퍽 분하였다. 평시에 밤낮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던 숙주의 입이 똥보다도 더 더러웠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숙주의 얼굴에 침을 탁 뱉어버렸다. 이 무안을 당한 숙주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사랑으로 나갔다.
그 이튿날 동이 환하게 틀 때이었다. 마당을 쓸러 안으로 들어갔던 하인은 높다란 누마루 대들보에 기다란 허연 무명수건에 목을 걸고 늘어진 주인마님 윤씨부인의 시체를 보았다.
『백조ㄻ 3호(1923. 9); 『박종화선집』 (어문각 1978)
박종화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는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한학을 배운 후 휘문의숙을 졸업했다. 1921년 『장미촌』 창간흐에 시 「오뇌의 청춘」 「우윳빛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이후 『백조,』 에 단편 「목매이는 여자」를 발표하고 시집 『흑방비곡』을 펴내면서 낭만주의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엔 카프의 경향문학에 맞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역사소설 집필에 몰두하는데, 「전야」 「아랑의 정조」 「민족」 『금삼의 피』 『다정불심』 『임진왜란』 등이 이 계열의 소설이다. 이 작품들은 최근에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81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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